『どうして私をまた訪ねて来たんですか?』

"어째서 저를 다시 찾아오신 건가요?"


얀붕이가 다시금, 마치 피처럼 붉은 색을 띄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어.


상당히 단도직입적이었지만 다행히도 말투는 '뭐 하러 왔느냐'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반가움이 느껴지는 것처럼 연기했기에 보통의 사람이 들어도 불쾌하게는 느껴지지 않았을 테지.


『この前は、いきなり初対面でお土産を差し上げたので、まずはそれをお詫びしたくてやってきました。』

"전에는 갑자기 초면에 찾아와서 선물을 드렸으니, 우선은 그것을 사죄하고 싶어서 찾아왔답니다."


물론 이제 얀붕이를 마음속에 완전히 담아 놓은 소녀에게도 불쾌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어. 오히려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될 수 있으니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


『其の硝子玉は、お気に召しましたか?急に受け取ったのでどうかよく分かりませんが。。』

"그 유리 구슬은 마음에 드셨나요? 갑작스럽게 받으셔서 어떠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本当に綺麗い品でした、特に赤い菊の紋様が精巧で細密でした。』

"정말로 아름다운 물건이었습니다, 특히 붉은 국화 문양이 정교하고 세밀하더군요."


얀붕이는 소녀의 대답에 가장 적합하고 어울리는 말을 찾아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답해 갔어. 홍차가 담긴 찻잔의 수면 위로 비치는, 벚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기적으로 동요하지 않도록 심경을 안정시켰지.


「一度の過ちも許されない。完璧な言葉を探すしかない。」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아. 완벽한 말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어.'


물론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동시에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완벽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각인시켰지. 물론 표정과 말은 여전히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お気に召してよかったですね。』

"마음에 드셔서 다행이네요."


소녀는 자신의 입을 붉은 국화 무늬가 새겨진 후리소데의 한 쪽 손으로 가리고 살짝 웃어 보였어. 긴 쌍커풀이 한 번 활처럼 둥글게 접혀 미소를 만들어내다, 이내 다시 눈이 떠지고 붉은색이 도는 검은 눈동자가 다시금 드러났어.


『其れよりも、柳さんはーどうしてここに引っ越して来られたんですか?』

"그것보다도, 야나기 씨는 어쩌다가 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신 건가요?"


그리고 소녀는 가장 묻고 싶었던 말 - 마음속으로는 그것 빼고도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이 쌓여 있지만 - 을 밖으로 뱉었어. 의미 없는 하타노가 떠난 뒤 갑작스럽게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온 사람이, 무슨 이유로 절묘하게도 자신이 사는 집의 근방에 이사를 온 것인지의 이유를 너무나도 알아내고 싶었으니까.


「来た。」

' 왔다.'


얀붕이는 순간 동요할 뻔 했지만, 천천히 수면 위의 낙화(落花)를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천천히 찻잔을 입가로 가져다 대 홍차를 한 모금 마셨어.


어쩌다가 내지로 왔느냐- 지금까지 얀붕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가장 곤란했던 말이었어. 상대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니까. 알고 있는데도 내지에서 왔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자신을 '일본인이 되려고 하는 주제 넘은 조선인' 이라 생각할 것이고, 모르는데도 조선에서 왔다고 하면 자신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추락하니 그야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이제 얀붕이가 조선인이라고 볼 증거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 주소도 내지이고, 호적도 내지의 것이고, 말투부터 이름까지 모든 것이 내지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닮아 있어 자신이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알아챌 방도가 전혀 없었지. 그저 내지 출신이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 얀붕이는 이제 더 이상 출신지와 이사의 이유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어.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마음이 다시 평정을 되찾자 얀붕이는 입에서 찻잔을 떼고 방금 전과 다름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어.


『元は目黒に住んでしたけど、高校に入学することになって当方に引っ越してまいりました。』

"원래는 스미다에서 살았습니다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메구로. 얀붕이가 내지로 온 뒤로 가끔씩 산책하러 가는 곳이었어. 마음이 심란해질 때마다 가끔씩 강변을 걸어 가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안정되어서 자주 전차를 타고 그곳으로 산책을 가던 곳이었지. 조선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얀붕이는 능숙하게 자신의 출신지를 내지로 바꾸어서 소개하고 있었어.


『あーそうですね。』

"아- 그렇군요."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어. 아직 얀붕이로부터 이상한 낌새 같은 건 눈치채지 못한 듯한 모습이었지. 물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소녀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얀붕이의 연기는 너무나도 완벽해서 소녀는 저절로 얀붕이가 내지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


「よかった。峠は越した。」

'다행이야. 고비는 넘겼어.'


얀붕이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아주 길게 내쉬었어. 자신의 연기가 혹시라도 어설픈 부분이 있어 상대가 알아채 버린다면 어떻게 할지가 걱정되었지만 어떻게든 잘 넘겼기에 일단 두려움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


『すると、もしか東京高等学校に通っているんですか?』

"그렇다면, 혹시 도쿄 고등학교에 다니고 계시는 건가요?"


『はい。今日入学式を行いましたが。』

"네. 오늘 입학식을 치루기는 했습니다만."


얀붕이는 소녀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어. 금색 단추에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하면 다들 도쿄 고등학교를 떠올렸고, 바로 지금 얀붕이는 그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또 이 근방에는 도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자주 지나다니기도 했으니까.


『あら、優等生を見違えるほどでしたねー。』

"이런, 우등생을 몰라봤네요."


『褒めすぎです。』

"과찬이십니다."


소녀는 사람 좋은 미소를 활짝 내 보이며 밝게 웃었어. 얀붕이는 살짝 마음이 동요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겸손함을 유지했지. 물론 우등생이라는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어. 제국 고등학교, 그 중에서도 바로 도쿄제국대학으로 직행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도쿄 고등학교라면 누구라도 엄청난 엘리트라고 생각할 테니까. 얀붕이는 아직까지 소녀가 입학식 장소에서, 2층의 내빈석에서 자신을 한 시간 동안이나 뚫어져라 쳐다봤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지.


「あの人たちにもこんな言葉は聞いたことがないのに。」

'그 사람들에게도 이런 말은 들어 보지 못했는데.'


얀붕이가 살짝 동요했던 이유는, 지금까지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였어. 학교에서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았고, 얀붕이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양친들은 그 의무를 저버리고 얀붕이를 자식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으니까.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소녀에게 얀붕이는 어디에선가 약간 이상한 감정을 느꼈어. 마치 깊은 호수 속에 잠긴 무언가가, 수백 년이라는 오랜 시간 끝에 마침내 아주 약간이나마 떠오르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


『私は、東京女子高等師範学校に通っているんです 。うちの学校は始業が少し延期されて今は休んでいますわ。』

"저는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저희 학교는 개학이 조금 연기되어서 지금은 쉬고 있지만 말이죠."


소녀는 거짓 없이 사실만을 말하며, 흑적색의 깊은 눈동자로 얀붕이의 모습을 응시하며 미소 지었어. 분명 학교 측에서는 교정 내부의 보수 때문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금 개학을 연기했다고는 하지만- 다른 학교들과 겨우 하루 차이밖에 안 되는 4월 2일 -바로 내일- 이기에 딱히 오랫동안 쉬게 되었다는 감상은 느끼지 못했지.


『師範学校ならー教職をご希望ですか?』

"사범학교라면- 교직을 희망하시나요?"


얀붕이는 조심스럽게 물었어. 일단 평범한 대화 - 만나게 된 경위와 상황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지만 - 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려면 어느 정도는 자신도 질문을 해야 했으니까. 도대체 왜 평범한 대화의 기준이 문답의 균형인지는 얀붕이도 이해할 길이 없었지만 알 길이 없으니 포기하고 따를 뿐이었어.


『はい。英語の方を。。』

"네. 영어 쪽을...."


소녀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붉은 홍차를 입으로 넘겼어. 딱히 동요한 것도 아니었고 긴장한 것도 아니었으며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도 아니었고, 그저 목이 조금 말라 적실 것이 필요해 홍차를 마신 것이었지. 얀붕이는 연기 없이 갈증만을 해소하기 위해 홍차를 마시는 소녀를 조용히 바라보았어. 소녀는 자신이 영문교육학 과목을 주 과목으로 수강하고 있다는 것을 어떠한 첨가나 삭제도, 거짓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 말했지.


『そうですか。』

"그렇군요."


얀붕이는 조용히 말했어. 어째서인지 소녀는 거짓으로 연기를 해 가는 자신과는 다르게 진실되게 살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얀붕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지. 나는 내지인이라고 소녀를 속였는데 소녀는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거짓 없이 말하는 것에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어. 저런 뛰어난 사람 곁에 감히 나 따위가 말을 섞거나 친해지는 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얀붕이는 이것도 살아가기 위한 책략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타이르며 홍차의 수면을 응시했지. 찻잔 위에는 여전히 떨어지는 벚꽃 잎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어.


그 이후로 얀붕이와 소녀는 몇십 분 동안 대화를 했어. 사는 곳이나, 가정에 대해서나, 공부에 대해서 같은 시시콜콜하지만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소녀는 거짓 없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일상적으로 편하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편안함이 느껴지는 말로 얀붕이와 대화를 했어. 얀붕이가 여전히 완벽한 연기로 소녀를 '속여' 간 지 정확히 사십 분 정도가 되어서야, 마침내 대화의 끝을 알리는 말이 소녀의 입에서 나왔어.


『あら、もうこんな時間ですね。』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소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금색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어. 얀붕이에게 시간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녀가 이제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지.


『お宅にお帰りですか。』

"댁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얀붕이는 조용히 말했어. 소녀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그저 입으로 소리를 내어 보았어. 확인 비슷한 것을 하기 위해서였을까, 얀붕이 자신도 어째서 그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


『はい。もう帰る時間になりましたね。』

"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어요."


소녀는 그 말을 하고서 약간 뜸을 들인 뒤, 이어서 계속 말했지.


『残念ですね。柳さんともっと話かったんでした。』

"아쉬워라. 야나기 씨랑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소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어. 가방을 챙기고 다다미 위에 서서, 붉은 국화 문양이 새겨진 후리소데를 입고서 천천히 걸었지. 얀붕이는 소녀가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숙였어. 어쩌면 소녀는 자신의 연기를 알아채고 날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던 찰나에,


『もしよろしければ、今度また柳さんにお伺いしてもよろしいですか?』

"혹시 괜찮으시다면, 다음에 또 야나기 씨를 찾아와도 괜찮을까요?"


소녀는 얀붕이 옆에 앉아 미소 지으며 말했어. 얀붕이는 천천히 소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녀를 푸르고 검은, 깊은 호수 같은 눈동자로 바라보았지. 소녀는 여전히 거짓 없는 아름다우면서도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어.


얀붕이는 깨달았어. 이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 줄지도 모른다고. 나의 덧없고 의미 없는 거짓된 연기와 허상이 전부 벗겨지더라도, 온전한 나 자신을 사랑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으로 자신을 엘리트라고 말해 주고, 연기 없이 진실된 말만을 하는 소녀에게 동경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얀붕이의 눈에는 십몇 년 만에 다시금 생기가 되살아났어.


「美しい。」

'아름다워.'


소녀는 여전히 얀붕이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이제 소녀는 얀붕이가 어떤 사람이든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지. 그 기대에 보답하겠다는 약속이라도 하듯이, 얀붕이는 천천히 말했어.


『私は大丈夫ですから、何時でもお越しください。』

"저는 괜찮으니 언제라도 찾아와 주세요."


아름다운 목소리가 얀순이의 귓가에 닿자, 얀순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얀붕이에게 조용히 말했어.


『また会いましょう、柳さん。』

"다음에 또 만나요, 야나기 씨."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조용히 방을 나갔어.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바람 소리가 지나가며, 얀붕이는 달이 뜰 때까지 그 말의 여운을 느끼며 조용히 방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