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칵.


지휘관의 방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오는 스프링필드에게, 다른 인형들이 물었다.


"지휘관님은....어떠셔?"

"...."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만으로도 인형들은 지휘관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상처의 원인이 자신들이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곱씹을 뿐이었다. 언제나 시니컬하고 비꼬는게 취미인 UMP45조차도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어리석었다. 멍청했다.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언제나 일편단심으로 한 여자만을 사랑했으며, NTR을 시도하려 한 자신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해주며 언제나 성실하게 일했던 지휘관이었다.

그런 그의 호의를 무참하게 무시하고, 내던졌다. 인간보다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형임에도 순간의 혐오로 자신들보다 약한 인간을 짓밟고, 구타하고, 정신을 부쉈다.


"제 탓이에요.....제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지휘관님이 저렇게 된 건, 전부 제 탓이에요."


스프링필드는 오열했다.


들어가자마자 깨달았다. 지휘관은 이미 재기불능이라고.

'잘못했습니다'와 '죄송합니다'의 무한반복이었다. 수십일간 빨지도 않아 냄새나고 더러웠고, 자해로 인해 헤져버리기까지 한 옷을 걸친채로, 지휘관은 망가진 침대위에 앉아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했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사라져 공허했흐며, 얼마나 심하게 자해를 한 건지 두 팔의 피부는 완전히 찢어졌고, 혈관과 근육마저 드러나 있을 정도였다. 오랜시간 소독도 치료도 하지 않아 곪아들어간 상처는 그 정도가 너무나 심해 팔을 잘라내지 않는 한 고칠 방도가 없었다.


그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와 동침했을 뿐이고, 자신의 부하들을 충실히 챙겨주었을 뿐이다.  허나 그것이 지휘부를 망가트리는 맹독으로 작용했다. 알케미스트의 함정은 단순했지만, 피해는 파멸적이었다. 나로로봇 한기는 수백의 인형과 한명의 인간의 상처입혔다. 지휘관의 마음은 이미 망가진지 오래였고, 스프링필드조차 회복시킬 수 없었다. 깨어진 돌을 접착제로 붙이려 하는 헛된 시도는 오히려 독이었다.


"지휘관, 님?"

"아아아악!!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발 그만 때려주세요! 앞으로 평생 눈에 안 띄일테니까! 죽은듯이 지낼테니까! 전부 내 잘못이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앞으론 평생 가까이 가지도 않을테니까!!"


자신들이 한 짓거리가 그의 마음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너무나 생생히 느껴졌다.

자신들의 모습이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아무짓도 하지 않았음에도  발작하며 부숴져라 머리를 벽에 내리쳤다. 피가 튀고 피부가 찢어져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막으려 들어봤자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 뻔했기에, 스프링필드는 떨리는 손으로 지휘관실의 문을 닫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문 너머에서는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어떻게...하지?"


아연한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캘리코였다. 나노로봇에 의해 감정이 조종당했을 때 가장 먼저 지휘관을 구타한 것이 그녀였기에, 그녀의 죄책감의 크기는 스프링필드 다음으로 컸다.


"우리가 들어가봤자...소용없을 거야. 저꼴로 만든게 우리인데."

"그럼 누가?"

"역시, 카리나한테 부탁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누가 할건데?"


M9의 마지막 발언에 순간 자리는 숙연해졌다.

두려운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보급관이기에 밖으로 나오는 일이 잘 없다는 것을 이용해 그녀에게 자신들이 지휘관을 학대하는 것을 숨겨왔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면 카리나는 자신들을 경멸해 마지않을 것이다.  아예 죽이려 들지도 몰랐다. 변변찮은 제대하나 없던 지휘부를 여기까지 키운 건 전부 지휘관의 공덕이니까.


"제가...다녀올게요."


나선 것은 스프링필드였다.


"제가 시작했어요. 제가 책임질게요."

"괜찮겠어?"

"괜찮아요. 제가 어떻게 되든, 그건 전부 제 업보니까."


보급고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스프링필드를 바라보며, 인형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뒤, 보급고에선.


---짜악!


찰지기 그지없는 따귀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하아, 하아.....이제, 만족하셨나요?"

"너희들에게 분풀이하는 것보다 지휘관님을 빨리 치료하는게 더 급하니까 여기서 끝내는 거야. 나중에 전원 해체될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예상대로, 카리나는 인형들이 저지른 짓거리에 대해 극도로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사건의 장본인인 스프링필드에게 고스란히 향했다는 것을 보여주듯, 스프링필드의 얼굴은 인형임에도 심하게 부어있었다.


씩씩대면서도 장비 정리로 더러워진 옷과 몸을 급히 씻고 카리나는 지휘관실로 향했다.

복도에는 아직 인형들이 서 있었지만, 카리나를 보자마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좌우로 물러나 길을 열었다.


"전부 숙소에 돌아가 있어. 지휘관님을 만나보고 본부에 보고한 뒤에 너희들의 처분을 결정할 테니."


카리나는 스프링필드가 했던 것처럼, 조심스레 지휘관실로 들어갔다.


"지휘관님....실례하겠습니다. 어라?"


악취가 진동했다. 땀냄새, 피냄새, 썩어가는 살점의 냄새가 섞여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방에서 수십일을 틀어박혀 있는데 사람이 미치지 않았을리가 없지. 

허나, 보이는 것은 망가지고 더러워진 침대위에 쪼그리고 앉아 자책하는 지휘관이 아닌, 붉은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인 한장의 엽서뿐이었다.


 --지휘관은 내가 데리고 간다. 알케미스트가.--- 


짧고 간결하기 그지없는 한 문장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그것을 이해한 카리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지휘관은 철혈에게 넘어갔고, 철혈은 그리폰 최강의 전술가를 손에 넣었다.


---털썩!


그 순간, 들릴리가 없는 소리가 났다. 


카리나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주저앉은 스프링필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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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3편에 넣으려 했던 내용이 더 있었는데, 아무래도 4편으로 빼는게 좋을 것 같더라고. 4편은 못해도 4000자 분량으로 만들어 올게. 

지금 고 3이라 좀 걸릴 것 같지만 5일 안에 써올테니까 인내심을 가져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