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너를 보내면 안 되었었다.

아무리 염치없고, 지저분하게라도 너를 붙잡아야만 했다.

집에 없는 너를 찾기 위해 헌터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모텔에서 실려 나온 다 죽어가는 모습의 너를 봤을 때 나는 이를 깨달았다.

 

“갑자기 전화로 일방적인 휴가 통보가 있고 4일 만에 이렇게 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협회에서 영우를 담당하는 직원의 물음에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영우를 저렇게 만들었다는 걸 이야기 하는 게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가 아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오해한 사람들이 그가 받은 상처를 멋대로 해석하고 그를 욕하는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지 않으신가 보군요.”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던 직원이 고개를 돌린다.

사람 대하는 게 서툰 탓도 있지만, 영우의 처참한 몰골에 머리가 미치도록 아픈 게 컸던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영우한테는 저에 관한 이야기는 웬만하면 꺼내지 말아 주세요.”

 

그때 집을 나가기 전 보였던, 그 무엇보다 슬프고 괴로워 보였던 영우의 표정.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영우가 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해할 것은 당연했기에.

이 이상 그를 괴롭힐 생각은 조금도 없던 내 말을 이해한 건지.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왜 안 사귀는지 모를 정도로 붙어있던 저 둘도 싸우는 일이 있구나.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 직원이 일을 마저 처리할 방안을 세우던 것을 뒤로하고 나는 모텔의 밖으로 나갔다.

 

 

 

 

*** 

 

 

 

 

 

 

나는 영우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사과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가 나에게 보내는 신뢰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내가 직접 무너뜨린 신뢰를 어떻게든 다시 쌓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나는 지금, 내 눈에는 영우의 얼굴과 똑같이 보였던 남자와 만났던 그 가게에 와 있었다.

 

“혹시 이 사진 속의 남자를 보셨나요?”

 

어서 옵쇼. 라고 이야기하는 식당의 주인에게 곧바로 스마트폰을 내밀며 말을 건다. 

“봤지. 몇 일 전에 아가씨랑 한 잔 한 사람 아닌가? 매운 소스가 잔뜩 들어간 것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먹는 게 신기해서 기억하고 있네.”

 

“……잠시만요.”

 

식당 주인도 이 얼굴로 기억을 하고 있고, 확실히 보았다. 정말 내 눈이, 정신 상태가 이상해져서 헛것을 본 건가 고민에 빠질 즈음 들려온 말에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매운 음식을 잘 먹었다고요?”

 

내가 본 그 남자는 영우와 행동거지가 매우 비슷해서 눈에 밟혔다.

그 행동 중에는 매운 걸 못 먹어서 분명 혀를 내밀고 부채질을 하는 것도 있었다.

 

“그렇다니까. 좀만 먹어도 매워 죽을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다니. 아마 이 총각 혓바닥은 사포로 문질러도 멀쩡할걸?”

 

매운 걸 못 먹어서 혀를 내민다. 너무나도 잘 먹어서 혓바닥이 의심이 갈 정도다.

내 기억과 가게 주인의 기억이 서로 상충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확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어딘가 걸리는 찝찝함.

그 불쾌한 감각은 이내 이어지는 가게 주인의 한 마디에 끊어졌다.

 

“아가씨도 그때 봤잖아. 아가씨가 한 입 먹은 뒤 냉수를 3잔은 들이켜야 했던 걸 아무렇지 않게 먹는 거.”

 

가게 주인의 말에 하나의 장면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영우의 것과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 그를 영우로 취급하며 술을 마시다가 그의 앞에 놓인 새우튀김을 보고선 맛있겠다며 한 입 얻어먹고선 식감이 이상하다. 맵다면서 소리를 질렀던 기억.

보통의 새우튀김이 매울 리가 없다. 심지어 그때 내가 본 것은 하얀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매웠던 걸까? 그리고 식감은 왜 그렇게 이상했던 걸까?

 

“……저기, 혹시 그때 제가 먹었던 게 새우튀김 아니었나요?”

 

무언가 확신을 한 듯한 얼굴을 한 나는 혹시나 하고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응? 새우튀김이라니, 매운 소스 뿌린 닭강정이었는데?”

 

머리 위에서 물음표가 나올 듯한 표정을 한 가게 주인의 모습에 나는 다시금 확신했다.

갑자기 내가 사람 얼굴과 음식의 생김새도 못 알아볼 정도로 미치지 않은 이상, 이건 누군가의 계획하에 능력자가 벌인 짓이라고.

 

 

 

 

 

 

***

 

 

 

 

 

 

 

능력자. 그것도 시각적인 착각을 일으키는 환각 계열의 인간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다.

그렇게 가정하면, 모든 게 들어맞는다. 나만이 그 남자에게서 영우의 얼굴을 본 것도, 닭강정을 새우튀김으로 착각한 것도. 

 

하지만,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서 환각으로 나를 속여서 접근해온 걸까?

몸을 목적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그랬더라면 어째서 옷가지만을 풀어 헤치고 간 건가?

물건을 훔치거나 해서 부족한 금전을 보충하려고? 그렇다면 왜 가장 중요한 지갑은 커녕 집에 있는 물건은 다 멀쩡한 거야?

그렇게 깊게 생각을 하던 나는, 이러한 점 외에도 내게 접근해서 얻을 거리를 하나 떠올린다.

 

눈사람. 

 

헌터로서 활동하는 나의 또 다른 이름.

사람 유서라는 가치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눈사람은 다르다.

그 이름을 더럽히고, 활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정도로.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내 정보가 누출되었다는 거잖아.”

 

헌터 눈사람. 헌터로서 활동하는 내가 정체를 감추기 위한 가면.

협회에서 철저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그 가면 뒤에 있는 나에게 접근했다는 건 협회 내부에 정보를 유출하는 인간이 있다는 게 된다.

즉, 지금 상황에서 협회에 도움을 청했다가는 유출자를 찾기 위해 협회가 크게 뒤짚힐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협회 소속의 헌터들에게 온갖 루머가 떠도는 지금 그런 일만큼은 피해야 했다.

즉, 이 사건에 대해서는 협회의 도움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하아...”

 

맘 같아선 흥신소나 그런 곳에 의뢰를 넣어 유일한 증거가 될지 모를 그 남자를 찾고 싶지만, 어떤 정보가 유출되고 있는지 모를 지금 위험한 행동은 피해야 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선 경과에 한숨을 쉬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상 온갖 불행을 다 짊어진 인간처럼 표정을 찡그리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2주만에 돌아온 영우가 처음으로 괴물을 잡으러 게이트에 들어가는 날.

영우한테는 미안하지만, 너무나도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던 나는 보호복으로 갈아입고 가면을 썼다.

 

 

 

 

 

***

 

 

 

 

 

2주가 넘은 시간의 휴식 끝에 복귀한 괴물 사냥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굳이 불편한 걸 찾자면, 역시 조금이라도 쉰 탓인지 조절이 부족해 생각 외로 높은 출력이 나온다는 건데, 큰 상관은 없었다.

단순히 불을 내뿜는 정도가 아닌, 제어하는 것까지가 내 능력이었으니까. 그것이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막는 건 간단했다.

그보다, 진짜 문제는…….

 

“……잠시만.”

 

달걀귀신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헌터, 눈사람.

2주 만에 기억상실이라도 겪은 게 아닌 이상 상식적으로 나를 가까이할 이유가 없는 네가 능력을 좀 써서 붉게 달아오른 내 팔을 보고선 다가오는 것이었다.

 

“팔 붉어졌네. 치료해줄게.”

 

서로의 능력으로 인한 피해가 없는 것 말고도 나와 서라가 팀으로서의 활동이 활발했던 이유.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몸에 생기는, 일종의 부작용을 우리는 서로의 것을 없애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됐어.”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헌터로서 반기면 반겼지, 거절할 이유가 없는 치료를 내가 거부하자 순간 당황했는지 서라의 손길이 살짝 떨린다.

 

“이 정도면, 좀만 기다리면 금방 돌아와. 굳이 네가 치료해줄 필요까지는 없어.”

 

그것도 그렇지만, 가장 큰 건 가면을 쓴 너라도 거리를 두고 싶어서였다.

너를 볼 때마다 2주 전 기억이 다시 살아나 그때 느꼈던,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상실감이 떠올랐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매번 너를 볼 때마다 온갖 감정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데, 피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됐다.”

 

하지만, 너는 그런 내 의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멋대로 내 부작용을 치료했다.

부작용이 사라지면서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능력의 사용이 훨씬 수월해진다.

아무리 간단한 던전이라도 육체에 오는 피로가 상당한 헌터에게는 매우 좋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정반대.

눈을 감아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서라의 흔적이 팔을 휘감은 것에 겨우 밀어 넣은 기억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어 머리를 헤집는 탓에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됐다고 했잖아.”

 

나는 아까 전 밝혔던 거부 의사를 다시금 확고히 하고선 괴물을 죽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 맞은 것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널 내버려 둔 채. 네가 치료한 팔을 다시금 훼손시키기 위해 불을 내뿜었다.

 

“이리 보여줘봐.”

 

그리고 그때마다 너는 다가와서 내 손을 붙잡아 제멋대로 치료했다.

 

 

 

 

 

 

***

 

 

 

 

 

 

다시금 2주가 지났다. 처음에는 조금씩 흔들렸던 능력도 완전히 안정되고, 헌터 일은 예전처럼 아주 완벽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괜찮아?!”

 

엄청난 불을 내뿜어서 다시금 붉어진 내 팔을 보고선 기겁을 하며 달려오는 헌터 눈사람.

내가 말한 완강한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헌터 일에 따라와 계속해서 나를 도와주는 유서라 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기다려. 금방 치료해줄게.”

 

화란 화는 다 내고 심한 말이란 심한 말을 내뱉은 나를 계속해서 신경 써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너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던 때가 오버랩 되어 네 손길을 갈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에는 한밤중에 들어간 방에서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낸 네가 나타나 전부 깨부숴버린다.

저 하늘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날개가 불타 추락한 신화 속 인물의 기분을 네가 옆에 있는 매 순간마다 느낀단 말이다.

이러다간 정말로 정신이 나가서 어렸을 때나 있었던 능력의 폭주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스스로 만나기를 거부했던 너를 불러서 이에 대한 담판을 짓기로 하였다.

 

“난 이제 네 가까운 사람. 친구도 아니잖아. 남이 사귀는 관계에 자기 멋대로 끼어들고 화를 내고, 욕을 한 쓰레기잖아.”

 

그런데 왜 자꾸 뒤를 따라오는 건데.

거의 울분에 가까운 내 외침에 마치 칼에라도 찔린 것처럼 움찔 몸을 떤 너는 잠시 뒤 입을 열었다.

 

“그 일이 있던 후 개인적으로 조사해봤어. 근데 어딘가 이상한 거야.”

 

“그 남자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 때 얼굴뿐만 아니라 그때 먹었던 음식, 행동까지 전부 내가 눈으로 보고 머리로 기억한 것과 다른 사람이 본 게 다르더라고.”

 

“그래. 내 눈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어. 아니면 그냥 내가 미쳐버렸다거나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러면 그 가게에서 능력을 사용한 흔적 같은 건 잡히면 안 되는 거잖아..?”

 

너는 한 가지 자료를 보여줬다. 그것은 일정 기간 동안 한 장소에서의 능력 사용 흔적을 정리한 그래프.

그 그래프는 점점 올라가다 네가 이상한 사진을 보낸 날 최고점을 찍었고, 그 이후로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이 정도 수치로는 그렇게 큰 능력이 사용되었다고는 볼 수 없어. 다른 손님이 덥다고 바람을 만드는 능력으로 얼굴을 시원하게 한 걸 수도 있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게 그 이상한 환각을 만든 능력자의 것이라고 믿고 있어. 그러니까...”

 

“한 번만 믿어줘... 내가 그때 너한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발버둥이라도 치게 해줘...”

 

부탁을 넘어서 애원에 가까운 너의 말에 순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거짓이다.

아직도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네가 나를 진솔한 대화 하나 못 나누는 친구로 여겼다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전부 누군가의 속임수이고, 사실 너의 마음을 내가 몰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건 그 무엇보다도 기쁘겠지.

그렇게 나도 모르게 당장이라도 울듯한 너에게 손을 뻗으려는 순간 흠칫 몸이 떨린다.

 

‘시발, 아까부터 계속 뭐가 아닌데.’

 

보이는 것은 현재가 아닌 과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너에게 답답함을 느껴 욕과 분노를 내뱉을 때.

그렇다면, 나는 저 때 혼란스러워하는 너에게 화풀이 삼아 욕을 했단 거야?

 

‘그냥 아무 말 하지 말아줘. 내가 알고 있는 너를 나하고 대화를 나누기 싫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미친년으로 만들지 말아줘...’

 

스스로 밝히기 힘들었던 걸 사과하면서 그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던 너를 나는 미친년이라고 생각한 거고?

 

‘……됐다고.’

 

그런 짓을 했음에도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두 발로 뛰어다니고, 나를 걱정해서 내 일마다 따라와 준 너를 짜증 난다면서 내친 거고?

 

원래라면 이 일들에 대해 당연히 너에게 아주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한 내가 용서가 안 되는 만큼. 너에게 사죄를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최선이다.

하지만, 정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버리고 만 나는 가장 안 좋은 방법을 택하고 말았다.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네. 네 말대로 누가 더위를 식히거나 할 정도로 능력을 쓴 걸 수도 있잖아... 그런 이유로 계속 나를 따라와 괴롭힌 거야..?”

 

바로 눈앞에 있는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고,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

언제나 너만을 바라왔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기적인 짓이었다.

 

“널 볼 때마다 정말 괴로워 죽을 거 같아. 온갖 감정이 머릿속에서 미쳐 날뛰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그걸로도 모자라 가장 힘들 네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내가 겪은 괴로움만을 내밀어 너에게 동정을 호소하고 죄책감을 유발한다.

 

“그러니까... 응? 제발 부탁이야.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줘...”

 

마지막으로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길 바라는 너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말을 때려 박는다.

 

“응, 알았어...”

 

다음 날. 너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해로 인해 또 오해하고 사이가 망하는 걸 쓰고 싶었는데, 남주 급발진도 그렇고 망해도 아주 지대로 망한 것 같다.  

그나저나 쓰다보니까 얀데레라기 보다는 거의 순애에 가까운 거 같네. 

언제나 부족한 글 봐줘서 고마워. 그리고 구린 글 봐서 눈이 아픈 게이들한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