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공포 대회에 낼려고 한건데 글자수 제한 때문에 포기함


초월적인 존재에게 과거를 희롱당하면 어떨까 하고 만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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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사랑의 아름다움을 믿나요?

그대를 향할 사랑이, 
봄날의 꽃이 풍기는 향기처럼, 
코 끝을 찡하게 만드는 그런 사랑이길 바라나요?

당신은 그, 그녀와의 아련한 추억에 취해,
깨고 싶지 않을 기억 속에서,
잡힐듯한 추억의 편린들을 해집으며 유영 할 수 있나요?

사랑이 아름답길 바라나요?

이건 당신에게 다다를 미래의 기억

아름다웠을, 코 끝을 찡하게 만들어줬을,

여름의 바닷물처럼, 어머니의 자궁처럼,
어쩌면 당신을 포근하게 안아줬을 지도 모르는 사랑

허나 포옹은 곧 당신을 탐하는 갈망이 되고, 갈망은 곧 본능을 아우르는 욕망이 되니,

그대는 이 사랑을 두려워하라

태양이 고개를 숙여 그림자들이 고개를 들 때

당신을 찾아갈게요

난 이 사랑이 아름다우리라 믿으니

2069년 7월 4일
얀순이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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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야 시발"

오늘 아침 원룸 현관문에 살포시 꼽혀있던 이 편지 

은근히 세련되게 생긴 연보라색 편지지에 이쁘고 가지런한 글자들이 쓰여져있었다.

글씨를 만져보면 굳은 잉크의 울룩불룩한 굴곡이 느껴지는 것이 일일히 손으로 쓴 듯 했다.

이딴 병신같은 장난에 이정도 정성을 쏟다니, 병신 같군.

사랑은 니미

요즘 유행하는 몰래카메라 뭐 그런건가?

좆같은 편지 쓰고 반응 지켜보는 그런거?

장난 칠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가 이런 가짜 연애 편지에 속을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난 일단 주변에 여사친이 한명도 없다.

사실 남사친도 몇명 없다.

거기다 백수라서 누구 만날 일도 없다.

이번달만 해도 누구랑 대화해본 적이 손에 꼽힐 정도다.

난 병신 앰생이다.

하루종일 하는 거라고는 병신같은 글을 인터넷에 싸지르고 웹소설을 보는거 밖에 없다.

참고로 최애 장르는 소꿉친구물이다.

나도 소꿉친구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다고.

아무튼,

난 최고로 쓰레기 병신 앰생이다.

근데 그런 나에게 이런 편지가 온다? 

난 편지를 뜯어보기도 전에 이게 병신같은 장난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했나

누군지는 몰라도 참 나빴다.

왜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나온다.

왜이러지 진짜

회사에서 나가고 되는 일이 없다.


안그래도 우울한데 이 좆같은 편지 때문에 이젠 더 우울하다.

"시발.... 백수에다가 앰생인 것도 서러운데.... 이딴 저능아 같은 장난이나 당하고....."

서럽다.

눈물이 뚝, 뚝, 하고 떨어진다.

괜시리 편지로 얼굴을 감싸본다.

조금 부드럽고, 조금 향기가 난다

꽃 향기

익숙한 향기

찌릿, 하고

다가오는 기억

저기 어딘가, 낯선 곳에서 다가온, 있어선 안될 그 기억

그 병신같은 편지의 향기가 촉매가 되어, 자꾸 머릿속에 뭔가 피어오른다.

"뭐야 씨발"

이상하다.

코 끝을 울리는 향기

향기가 흘러나오는 보라색 꽃

처음 보는 그 꽃이 신기해 나는 발걸음을 멈췄던가

꽃을 들고 있는 소녀

그 낯선 소녀의 익숙한 미소가

"누구의 미소였지?"

아아 그래, 그녀는,

그녀는, 나의 소꿉친구, 보라색을 유난히도 좋아 했었지.

보라색의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잘어울렸던 그녀

그녀는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 그리고 가족

그녀의 이르ㅁㅇㅡ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



꽃의 향기가 사라졌다.

흐르다 못해 넘쳐버린 눈물이 편지지를 잔뜩 젖게 만들어서일까

창문을 바라보니 노을이 지고 있다.

너무 울어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

왜이리 많이 울었지?

수치스러워서?

어디에서 온 수치지?

희롱 당한 기분이다.

무엇을?

난 소중한걸 희롱 당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난 무언가를 빼았겼다.

"자기, 왜 또 울고 있어요?"

내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누구지? 뒤에 있는건?

"자긴 항상 이렇게 운다니깐요, 귀엽기는"

보라색 원피스, 익숙한 미소

이상하다.

난 이런 사람 처음 본다.

"그... 누구세요?"

"네?"

"누구신데 제 집에 계시는거냐고요"

"음, 미안해요 자기, 내 과거가 당신의 과거에 완벽히 도달하지 못했나봐요"

"네?"

"나한테 과거를 맡기는게 그렇게 싫었어요? 그런식으로 울면서까지 저항할건 없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자, 빨리 안겨요. 얼른 못다한 이야기를 끝내자고요"

그녀가 날 안는다.

포근하다. 여름날의 바다처럼, 어머니의 자궁처럼

향기가 날 다시 감싼다.

보라색의 향기

그래 우리는 저번년에 결혼 했었어

우리에게는 우리밖에 없었으니

결혼해도 바뀌는건 없었지

언제나 그렇듯이 몸을 섞고, 서로에게 서로를 포갰어.

따뜻한 추억

유영하듯이 너를 안는다.

선명한 너 사이에서 

나는 방황할 필요도 없었지

넌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내게는 너뿐이었으니까.

"이제야 기억났어"

"네?"

"당신 말이야, 내 사랑."

"이제야 기억 났다니요, 언제는 기억 못했나요?"

"아아, 그렇네, 나도 참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당신은 그 점이 참 사랑스러워요. 유기체의 한계를 못벗어나는 점 말이에요. 
단 하나의 시간선만을 '지금'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니 너무 귀여워요."

"흐흐... 사랑스러운건 당신이 더 사랑스럽지."

아아 그래, 이상한건 없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라면, 난 행복해

아름답구나, 사랑이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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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소설 봐주는거 좀 부끄러우면서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