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실험체

 

 

 

 

“……그래서 이까짓 걸로 30파온이나 받겠다, 이거냐?”


“요즘 채집이 힘들어지는 바람에 값이 올랐습니다. 어딜 가도 이 가격이에요.”

 

이시오른 약국을 20년이나 운영한 베테랑 상인, 에이브는 그 어떤 손님이 와도 겁먹거나

 

기세에 눌린 적이 없었다. 제 아무리 성격 더러운 손님이 와도 응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남자- 이 기분 나쁜 마법사는 어딘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 질 정도로 무서웠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잘못 건드리면 위험할 거란 직감이 들었다.


“쳇, 하여간 속세의 인간들이란…….”


헤인킬이 은화 30개를 꺼내 탁자 위에 휙 던져놓고, 약초를 챙기고 나갔다.

 

필요한 재료나 물건을 구하려고 마을에 종종 들리긴 했지만 그는 이곳이 싫었다.

 

온통 멍청한 인간뿐, 대체 머리통은 왜 들고 다니는지 모를 바보들만 사는 마을이라고 

 

생각했다. 숫자도 모르고, 자기 이름도 못 쓰는 멍청이들만 잔뜩 있었다.

 

“빌어먹을 공방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그가 중얼거리며 숲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혼자서 연구하며 살기를 2년째, 종종 마법사 사냥꾼들이 찾아와 목숨을 노렸지만 그는

 

매번 살아남았다. 하지만 다음엔? 또 언제 누가 와서 목숨을 노릴지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든 죽기 전에 연구를 완성하고 싶다……그러나 실험체가 부족했다.

 

재생 환원 마법을 완성시키려면 그에 적합한 실험체가 필요했다.

 

“이 망할 년! 당장 안 내놔!”


그 때, 고함 소리가 들렸다. 헤인킬이 주위를 둘러보다 거리에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남자가 몸집이 엄청 작은 여자애를 발로 짓밟고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은 마치 일상적인 일이라는 듯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응? 저 녀석……날개가 있군.”


거의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작았지만, 그건 분명 날개였다.

 

게다가 꼬리도 달려있었다. 아아, 과연. 그런 거였나?

 

“이봐, 거기. 그 꼬맹이는 뭐지?”


“댁은 나서지 말고 꺼져!”


남자가 그를 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다. 

 

“……지금 나한테 말한 거냐? 응? 대가리에 든 거라곤 원시적인 욕구뿐인 짐승 놈아.”

 

“뭐라고!?”

 

“스트렝스.”


헤인킬이 한 손으로 남자의 멱살을 잡아 높이 들어올렸다.

 

“어!? 어어어어!”


“자, 다시 정중하게 말할 기회를 주마.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남자는 자기가 누굴 건드렸는지 깨닫고 겁에 질렸다.

 

숲에 숨어 사는 마법사, 그에 대한 소문은 질리도록 들었다.

 

사람을 납치해 끔찍한 실험을 한다거나, 도저히 세상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괴물을 만드는

 

사악하고 괴팍한 마법사. 누구든 자길 거스르면 무시무시한 저주를 건다고도 했다.

 

“죄송, 합니다…….”

 

“네 주제를 알았어? 그럼 꺼져. 너 같은 쓰레기한테 시간 낭비하고 싶진 않거든.”


바닥에 떨어진 남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쓸모없는 벌레 주제에……자, 어디……이거 꽤 재미있는 게 있었군.”


“아, 우으…….”


헤인킬은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소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머리 옆으로 조그마한 송곳 같은 뿔이 있었고, 머리카락의 색은 자연적으로 나오지 않는

 

연분홍색이었다. 꼬리와 날개, 발굽은 없다. 그는 곧바로 소녀의 정체를 파악했다.

 

“서큐버스……음마로군. 그런데 순혈은 아니야. 뭐지?”


순혈 서큐버스는 좀 더 날개와 뿔이 컸다. 게다가 음마는 본래 인간 남성을 쉽게 홀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는데, 이것의 얼굴은 그리 예쁘지 않아보였다.

 

“붕대로 눈을 감았군.”


“으, 으으으으…….”

 

“가만히 있어라. 너 같은 벌레한테 시간을 쓰는 내게 미안하지도 않은 거냐?”


그가 붕대를 풀었다. 커다란 화상 자국이 있었는데, 눈동자에 색도 빛도 없었다.

 

“과연, 과연. 이 마을 놈들이 장난감으로 쓰는 건가. 뭐, 흔한 일이지.”


음마(서큐버스)의 자식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그야, 당연한 것이다. 인간도 아닌 괴물한테 온정을 베풀 인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너는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해도 문제없겠군. 안 그래?”


“으갓, 흐그윽……?”

 

“이빨도 뽑아버린 건가! 이 자식들, 나보고 악마니 괴물이니 그러면서 지들이 더 하잖아.”


어차피 이대로 내버려두면 몇 주, 아니 며칠도 더 살지 못한다.

 

그저 허무하게 죽어 사라질 바엔 인류와 마법의 발전을 위해 써먹어주는 게 낫다.

 

“좋아, 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그가 소녀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숲으로 돌아갔다.

 

 

 

 

 

 

*****

 

 

 

 

 

 

그것의 인생엔 행복도, 기쁨도 없었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것을 돌봐주지 않았고, 그것은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버려진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연명했다. 시궁쥐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인생이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그 이하였다.

 

그것이 처음으로 만난 인간은, 그것을 늘씬 두들겨 팼다.

 

때리는데 이유 따윈 필요 없었다. 그저 자기보다 그것이 약했고, 마침 기분이 나빠 뭐든

 

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매일 맞고, 도망치고, 숨었다.

 

어떤 날엔 동네 꼬마들이 그것을 붙잡아, 이빨을 몽땅 부러트렸다.

 

역시, 이유 따윈 없었다. 그냥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붙잡혀 눈이 횃불에 지져졌다. 

 

이번에도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것이 고통에 미쳐 날뛰며 앞을 보지 못해 바닥을

 

기어다는 게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행복도 기쁨도 없는, 오직 고통과 절망뿐인 삶.

 

하지만 죽을 수도 없다. 너무나도 무지하기에, 자살하는 법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저 맞고, 또 맞고 고통 받으며 벌레처럼 살다 죽을 운명…….

 

그것은, 그게 자신의 삶이라는 걸 이해했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쓰레기를 주워 먹다 걸려서, 흠씬 맞고 있었다.

 

아픔은 익숙했다. 울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건 오래 전에 깨달았다. 

 

“자, 다시 정중하게 말할 기회를 주마.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우그읏……?”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그녀는 보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싸줬다.

 

도대체 누가? 그럴 리 없다, 그건 불가능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붕대로 눈을 감았군.”

 

붕대가 풀리며, 그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얼굴도 나이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만히 있어라. 너 같은 벌레한테 시간을 쓰는 내게 미안하지도 않은 거냐?”

 

뭐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멋대로 착각했다.

 

아프지, 지금 널 구하러 왔어- 라고.

 

“과연, 과연. 이 마을 놈들이 장난감으로 쓰는 건가. 뭐, 흔한 일이지.”

 

지금껏 잘 참았어. 더 이상 아픈 일은 없을 거야.

 

그것은 처음으로 어떤 감정을 느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긴장된 근육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좋아, 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그가 그것을 껴안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껴안아준 건 처음이었다.

 

그 잠깐 사이에, 그것은 사랑에 빠졌다.

 

자길 실험체로 써먹으려고 한 사악한 마법사에게 애정을 느끼고 만 것이었다.

 

 

 

 

 

 

 

*****

 

 

 

 

 

 

 

“그 버러지들, 너무 망가트려놨잖아.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헤인킬이 그것이 걸치고 있던 거적을 벗기고선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뼈가 몇 번이나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었고, 이빨은 성한 게 없었다.

 

눈의 화상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곪았다 낫기를 반복해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제대로 먹지 못해 거의 뼈와 가죽만 남았다.

 

“이 상태론 실험에 써먹어봤자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지 못하는데…….”

 

“가우, 으그으읏.”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좋아, 하나씩 하자. 우선 써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보자고.”

 

그가 시약 몇 개를 섞어 감염 반응제를 만들었다.

 

“마셔.”


“가우……?”


“얼른 마셔라. 그래야 상태를 확인할 거 아니냐.”


헤인킬이 억지로 시약을 마시게 했다. 

 

그러자마자, 그것이 몸을 비틀며 구토하기 시작했다.

 

“케헥!? 우그윽, 게우으으윽……!”


“내 바지에 토하지 마! 망할……그나저나 상태가 심각하군. 완전 검잖아?”


감염 반응제는 병자가 마시면 몇 가지 반응을 일으키는 약이었다.

 

구토한 것이 검은색일 경우, 소화 기관을 비롯해 대부분의 장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난 의사가 아니라 연구자라고……아아, 제기랄. 괜히 데려왔나?”


하지만 이런 진귀한 실험체는 구하기 어려웠다.

 

평범한 인간을 납치했다간 곧바로 병사들이나 마법사 사냥꾼이 찾아올 테고, 그렇다고

 

노예를 구입하기엔 돈이 너무 부족했다. 

 

게다가 서큐버스의 혼혈이라니, 이런 실험체는 공방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다.

 

“일단 바깥에서 약초를 좀 캐와야겠군…….”


헤인킬이 바깥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자마자, 그것이 와락 달려들어 다리에 매달렸다.


“그앗! 으가아아아아……!”


“뭐야? 야, 떨어져! 네 약초 캐러 가는 거잖아!”


“갸웃, 으윽, 으흐으윽…….”


떨어지지 마, 내 곁에 있어줘. 그것이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성가시게 하긴……! 젠장, 알아서 해!”

 

그것이 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대체 눈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계곡 근처를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는 동안, 그것은 계곡의 물을 만져보았다.

 

차갑고, 거칠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그게 거대한 물이라는 걸 인식했다.

 

“그러다 떠밀려가도 안 구할 거다. 하여간 이래서 애새끼들은 싫다니까.”


계곡물은 마셔본다. 이렇게 깨끗하고 차가운 물은 처음이었다.

 

“가읏?”


그 때,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다. 물 밑에 무언가가 있었다.

 

“크리리리릿!”

 

“!”


계곡 밑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것을 낚아채 잠수했다.

 

“야! 아 진짜, 더럽게 성가셔!”


물 밑에서 잠복해 있다, 물을 마시는 동물을 덮치는 괴물- 언더씨.

 

강한 괴물은 아니지만 어린아이가 습격당해 죽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가 얼른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모처럼 얻은 실험체를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어디 간 거야? 제기랄, 빨리 못 찾으면 익사할 텐데…….”


그 동안, 그것은 물속에서 자신을 붙잡은 괴물을 응시했다.

 

죽는다?

 

죽음은 늘 그녀의 곁에 있었다. 처음엔 무서워서 생각하는 것조차 싫었지만,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죽음의 위기에도 별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그냥 순응했을 터였다. 죽든 말든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를 만난 그것은, 살고 싶었다.

 

피에 섞인 ‘적응인자’가 반응한다. 살고 싶다는 마음에 반응해, 적응을 시작한다.

 

순식간에 꼬리가 성장해- 마치 전갈의 꼬리처럼 변했다.

 

‘죽어.’

 

꼬리의 독침이 언더씨의 몸통을 꿰뚫었다.

 

“……!?”


피가 물에 섞여 물감처럼 퍼진다. 언더씨는 저항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거기 있었나!”


그가 손을 쑥 집어넣어, 물속에 있던 그것을 건져냈다.

 

“파하! 콜록, 콜록……!”

 

“뭐……뭐야? 꼬리가 생겼어? 아니, 이 꼬리는 서큐버스의 것이 아닌데……?”


그는 그걸 보자마자 이해했다.

 

적응했다. 그 찰나의 순간, 몸이 적응하고 진화했다.

 

“적응인자……! 설마, 설마……적응인자를 가진 서큐버스라고! 하! 하하하하!”


믿을 수 없다. 이렇게 희귀한 존재가, 고작 인간들의 장난감으로 살고 있었다고?


그가 웃었다. 우습고 아이러니해서, 큰 목소리로 웃었다.

 

“으, 하하. 하하하하, 으하하?”


그것이 그걸 따라해 웃었다.

 

그렇지만 그가 왜 웃는지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서큐버스 착각 역키잡 얀데레물 같은 걸 써보고 싶었다.

역키잡 야설 좋은데 난 쓰기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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