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정말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극도로 소심한 성격 탓에 주위에서 고립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기에 나에겐 나쁜 쪽의 관심도 집중됐다.

 

그렇게 고립만 되면 다행이었겠지만 소심한 아이는 활발한 초등학생 무리들 사이에서 '이 아이는 이 정도까지는 당해도 아무 말을 안하는구나' 라는 틀이 씌워져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다.


여자들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고, 또는 예쁜 척을 한다며 괴롭힘을 당했다.


"지가 좋아하는 남자 따위 알게 뭐람, 자기가 못생긴걸 왜 내 탓으로 돌리는지.."


남자들에게는 초등학생 특유의 관심을 괴롭힘으로 표현하는 법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


"저 아이들은 정말 이렇게 하면 자기를 좋아해 줄 거라고 생각하나?"

 

어느 날이었다. 이날도 여느 때와 같이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날 두고 남자애들은 날 학교 뒤에 있는 인적이 드문 쓰레기장으로 데려갔다.


내 앞의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꺼냈지만, 솔직히 뭐든 간에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싶어 나는 딴생각을 하며 이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무시하지 말라고!"


내가 안 듣는다는 걸 보고 화가 났는지 내 어깨를 강하게 밀쳐 순간 깜짝 놀랐던 중심을 잃고 쓰레기더미에 파묻혔다.


"앗..."


쓰레기봉투 안에서 못이 삐져나왔는지 내 뺨을 긁고 지나갔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피가 나와서 당황해 손으로 꾹 눌렀다.


"니..니가 내 말을 안 들으니까!.."


그 남자아이도 내가 심하게 넘어진 것을 보고 조금 당황했나 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더 심하게 다칠 것 같아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려 할 때였다.

 

겉모습을 보고 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때의 희철이는 소설 속에 흔히 나오는 백마 탄 왕자님보다 훨씬 멋졌다.


그 아이는 쓰레기더미 위에서 다친 뺨을 부여잡고 앉아있는 나와 날 둘러싸고 있는 남자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바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나에게 말을 걸었단 사실 만으로도 괴롭힘을 받을까 봐 나를 피해 다니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우리 학교에서 내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난 저 아이를 처음 보았다. 아마 저 아이도 그럴 것이다.


이 세상에 자기가 험한 일을 당한 것도 아닌데 위험을 무릅쓰고 저렇게까지 화를 내주는 사람이 있단 것에 나는 내심 놀랐다.

 

그 아이는 날 둘러싸고 있던 남자아이들을 전부 눕히고 날 보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자, 이제 나와"


나는 부끄러운 감정과 당황스러운 감정이 섞여 붉은 얼굴로 빠르게 일어났고, 그 아이는 날 지나쳐 쓰레기를 버리고 무심히 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이 살짝 붉은 것을 눈치챘다.


아마 이때의 내 얼굴도 똑같았으리라.


그렇게 나는 어린 나이에 첫사랑이 생겼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사고뭉치였기 때문에 발화점이 낮았고, 틈만 나면 주위 아이들과 싸우기 일쑤였다.


맨날 화난 상태로 싸움만 하니 친구 같은 건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어제 일이다. 한 아이와 복도에서 몸이 부딪혔는데 사과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가길래 여느 때와 같이 싸웠다.


그리고 같은 남자애들과 싸우면 지더라도 쪽팔린 건 아는지 보통 선생님에게 고자질은 하지 않는다.


"하.. 그때 더 때렸어야 하는 건데.."


그런데 이번에 싸웠던 애는 여자애도 아니고 지자마자 울면서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덕분에 나는 방과후까지 남아서 청소당번을 맡게 되었다.


뭐 어쩌겠나. 선생님이 시키는건데 안 할수는 없으니...


그렇게 나는 꾸역꾸역 화를 참아가며 청소를 끝냈다.


"이제 이것만 버리면 끝이다..."


청소가 모두 끝나 쓰레기만 버리면 됐기에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쓰레기장에 가 보니 이번에 싸웠던 그 아이가 보였다.


화가 치밀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데 앞에 여자애랑 대화하는 것 같았다.


"야, 나는 누구땜에 집도 못 가고 있는데 넌 여자애랑 놀고 있냐?"


"아니 잠... 나는.. 악!"


나는 결국 청소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와 그 아이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합쳐져 2차전에 들어갔다.


 


 

"칫, 이번에도 이르기만 해봐."


"..."


시원하게 복수하고 나서 쓰레기를 버리려고 하는데 여자애가 계속 길을 막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처음 보는 애한테 실컷 싸우는 장면을 보여진 게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그 아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지켜만 보고 있는 것도 한몫한 것 같다.


"자, 이제 나와"


그냥 빨리 쓰레기나 버리고 집이나 가야지.

...

..

.


 

"희철아, 쟤가 너 찾는 것 같은데?"


"응?"


친구가 불러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여자애가 서 있었다.


"저기.. 어젠 고마웠어..."


"어.. 응, 그래"


뭐가 고맙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고맙다니까 그냥 받아줬다.


"..."


"..."


긴 침묵.


"..."


"..."


불러놓고 얘는 왜 말을 안하는거지?


"할말 없으면 난 이ㅁ... 꼬르륵"


하.. 진짜 부끄럽게..


"혹시... 배고파..?"


"어? 응.. 그럴지도?"


솔직히 부끄러워서 그냥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우리 집이 빵집이라서... 빵, 괜찮다면 먹을래..?"


"어 진짜? 그럼 나야 고맙지!"


이 아이의 집이 빵집이란 것도 놀랐는데, 갑자기 빵을 준다 해서 한번 더 놀랐다.


잠시 후, 솔직히 배고팠던 나는 빵을 다 먹고 나니 좀 침착해졌다.


"어쩌다 보니 빵을 받긴 했는데 고마워. 너 이름이 뭐야?"


"김..한경이야.."


"김한경? 그렇구나, 내 이름은.."


"박희..철 맞지? 박희철."


"어, 아는구나? 맞아 박희철."


그때 예령이 울렸다.


"음, 이제 수업인가 보다. 빵 고마웠어."


"아니.. 나야말로.."


나는 빵도 다 먹었고 해서 쓰레기를 버리려 허리만 돌린 후 뒤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졌다.


"오, 3점슛"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한경이는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졌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도 어찌어찌 같은 곳에 입학했다.


"이야, 오늘도 덕분에 살았어 진짜. 그런데 항상 이렇게 받아도 되는거야?"


"응.. 어차피 우린 남는 게 빵이거든."


"이야~ 나야 고맙지! 언제나 잘 먹고 있어."


그날 이후로, 거의 3년 동안이나 이런 교환을 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한경이는 내가 점심이 맛이 없어서 걸렀을 때만 빵을 갖다줬다.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빵을 먹으면서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아야, 걔 진짜 재수없지 않냐?"


"그러니까. 보나마나 자기 지켜달라는 핑계로 희철이한테 꼬리치는거 같던데.“


"내말이!"


"설마, 희철이가 걜 좋아하는건 아ㄴ.."


"그게 무슨 소리야?"


"힉! 희..희철아?"


"방금 한경이 얘기한거 아냐?"


"아니.. 그..그게.."


 


 


대충 들었는데 한경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다.


그러다 내가 싸움을 잘 하는 걸 보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날 이용했다고 한다. 라는게 그 아이들의 말인데.


솔직히 그 아이들의 말은 잘 못 믿겠다. 평소에도 뒷담화하는 애들이 다 그렇듯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에 자기들의 생각을 끼워넣은 거겠지.


"역시 이런 건 직접 물어봐야지"


마침 복도 끝에 한경이가 보인다.


"어? 희철아 안녕.."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따라와"


"힛! ㅅ..소...손"

 

 


"그래서, 그 말이 진짜야?"


솔직히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도와달라고 하는건 괜찮다. 물론 빵을 줄 테니 자길 지켜달라는 것도 상관없고.


하지만 대화하면서 한경이가 좋은 아이라는 것을 알았고 나는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날 이용하려고 친하게 대한 거면 말은 달라진다.


"아..아냐..! 나는 그저..."


"...? 그저.. 뭐?"


"...니까."


"응?"


"널.. 좋아하니까.."


"어..?...어?!"


자..잠깐!.. 뭐라고...? 설마 방금 날 좋아한다고 한 건가?


아냐, 내가 분명 잘못 들었겠지.


"..."


"내가 혹시나 잘못 들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방금 날 좋아한다고 한 거지?"


"아..어... 응.."


"그..그럼.."


"친구로서 정말 좋아해."


아.


아아아아아악!


이런 일은 처음이라 하마터면 한경이 얼굴을 다신 못 볼 뻔 했다.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허구한 날 싸움이나 하는 애를 누가 좋아하겠어?


"그런 거라면야, 나도 정말 좋아하지..."

 




 

 

"...으으읏....♡..희철아...희철아..."


나는 일기장에 잔뜩 빨간색 하트를 그리며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오늘은 드디어 희철이가 내 고백을 받아준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철이가 내 손을 잡아준 첫 날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말 길었어..."


희철이와 만나고 난 후, 나는 평소에 부모님께 제빵을 배운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이 빵집이긴 하지만, 희철이에게 다른 사람의 손길이 들어간 빵을 먹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희철이가 먹는 빵은 전부 내가 만든 빵이다. 그것도 나만의 조리법을 사용한.


그리고 희철이가 먹는 건 전부 내가 만든 것이어야 한다,


희철이가 빵을 먹는 모습만 봐도 자리에 주저앉을 만큼 심장이 요동친다.


희철이가 빵을 먹어 만들어지는 세포 하나하나가 내 작품이란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흥분에 몸이 떨린다.



그리고 오늘 희철이가 내 손을 잡을 때, 비유 수준을 넘을 정도로 심장이 터질 뻔 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게 해주는 희철이의 그 힘, 손은 나이에 맞지 않게 생긴 굳은 살 덕분에 단단했고, 날 끌고 갈 때 어디까지라도 따라가고 싶었던 큰 등.


심지어 따라가서 한다는 말은 나에게 하는 사랑의 고백.


"정말...희철아...♡♡ 이러다 죽겠어..."


상상한 것 만으로도 심장이 파열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충격이 날 덮쳐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일기장을 덮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나 희철이를 좋아하는데, 만약 희철이는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의 희철이는 자주 싸워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없지만 잘생긴 외모 덕에 모르는 아이는 없다.


그런 희철이가 학년이 올라가, 더욱 잘생겨지고, 더욱 인기가 높아져 날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면?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된다. 절대로 말이다.

 




그 날부터, 나는 희철이에게 어울리는 연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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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자극적인 것만 원해서 하이라이트 부분만 휘갈기고 말았는데 첨으로 각잡고 장편 써보려함

써보니까 왜 사람들이 하이라이트 부분만 쓰는지 알거같음

얀데레까지 가기위한 빌드업 부분 쓰는게 너무 고통스럽다...

앞으로 빌드업 한편 더 쓴 후 본격적으로 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