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 나오는 일부 이름과 기관은 허구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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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엔 누제스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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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 8회 검성연무제 대회'에서의 승자는, 아리엔 누제스!"


마이크를 잡은 한 해설위원이 승리자의 이름을 외치자, 경기장 전체가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 소음에 가까운 함성 속에서 거대하고 넓은 경기장 모래 위에는 두 명만이 서 있었다.


한쪽의 남성은 검 자체가 부러졌고 온 몸이 먼지투성이인 채로 쓰러져 있었으며,


반대쪽에 있던 나머지 한 명의 여성은 힘을 별로 쓰지 않은 듯 평온하게 가만히 서 있었다.


서 있던 여성은 야성적인 느낌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 긴 속눈썹과 똘망똘망한 눈, 그리고 오똑한 코와 맑은 입술까지.


엄청나게 강한 그녀의 실력과는 다르게 외모는 매우 수려하였으나,


그 수려한 얼굴 위엔 칼에 베인 듯한 흉터가 여러 개 남아있어 상대를 충분히 압박할 만한 베테랑 검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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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 마치 원숭이들 같아.....'


나를 향해 소리 지르는 관중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경기장 입구쪽으로 나갔다.


내가 현재 있는 곳인 '에스테리아 제국'은 넓은 땅과 주변에서 나오는 탄광, 그리고 무역하기에 편한 해안선 등 여러 이점으로 인해 자연스레 대륙의 수도가 되었고,


매년 열리는 국제적인 검술 대회인 검성연무제 또한 전역의 각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검사들이 총집합해 최고를 기리기에 수도인 이 곳, 에스테리아 제국에서 열린다.


그리고 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이 국제적인 대회를 포함하여 여러 대회에 나가고 있다.
물론 상금은 부가적인 요소이고.


"안녕하세요, 아리엔 양! 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단 한 경기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 가볍게 이기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다들 검성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강ㅎ....."


입구를 나가자 나에게 관심을 보인건지 경기장 주최 관리자 중 한 명이 대회 상금을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난 그가 상금을 내밀자 무감정하게 받고는 그의 말을 뒤로 하고 다시 오빠를 찾아 나섰다.


뒤에서 나를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한시라도 빨리 나에겐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지금의 내가 살아있도록 '두번째 삶'을 준 그에 곁에 서서 그의 체향을 서둘러 맡고 싶었다.


"......."


가만히 서서 내 단전에 느껴지는 또 다른 기운을 현현시키니 하나의 선이 나왔다.


서둘러 하나의 선을 따라가니 경기가 끝난 나를 찾을려고 두리번 거리는 오빠가 있었다.


바로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니 오빠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3년 전, 뒷골목에서 하루하루 삶의 목표 없이 떠돌며 살아가다 운 없게도 괴한에게 습격 당해 죽을뻔 한 나를 구해준 오빠 '아론 누제스'.


그때 당시 그는 한 아카데미에서 검술을 가르치는 고위 기사였다고 한다.


아론 오빠는 그 날 당시 순찰을 하다가 나를 발견하였고 당시 괴한의 칼부림으로 인해 얼굴과 몸에 큰 상처가 나 출혈이 심했기에 사실상 생존률은 제로였으나.....


검사가 효율적으로 검을 다루기 위해 필수라고 꼽히는 '코어'.


단전이라고도 하며 코어의 성능에 따라 강함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코어는 매우 중요하다.


근데 그런 오빠의 코어는 쓸모없는 나에게 처음으로 두번째 삶이자, 마지막 기회로 나에게 코어의 모든 기력을 나에게 흘려보냈다.


코어와 관련하여 여러 대마법사들이 여러번 실험을 해봤으나,


사람마다 성격과 지문, 홍채가 다르듯 코어 또한 개개인마다 다 달라 다른 코어의 기운이 들어오면 격한 거부반응과 함께 죽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근데 나는 그저 살고자 하는 최후의 발악이였는지, 구세주인 오빠의 품이 너무 포근하였는지 그의 코어를 큰 거부 반응 없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난 비공식이지만 역사상 최초로 몸 안에 2개의 코어를 받아들인 몸이 되었다.


아론 오빠 또한 한 몸에 코어 2개가 들어간 경우를 처음 봤는지 매우 놀라워했으나 이윽고 상냥한 오빠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생체 실험을 당할 수도 있다며 나를 위해 비밀로 해주었다.


'역시.....너무 상냥해♥'


하지만 그 이후로 코어가 손실된 아론 오빠는......더 이상 검을 휘두를 수 없는 채로 일반인처럼 살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이 몸뚱아리 하나 살린다고....


게다가 코어로 인한 후유증이 끝나고 '아리엔 누제스'이라는 소중한 이름을 지어줌과 함께 나에게 코어 2개를 조율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검술까지 가르쳐주었다.


아론 오빠는 나에게 새 삶을 주었다.


그래서 난 오빠 몫까지 다 하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그의 말만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나는 그의 수호자이자 검이 될 것이다.

옆에서. 끝까지. 영원히.


"......아, 오빠 생각하니까 더 이상 못 참겠다♥"


나는 마치 암살자처럼 그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 없이 뒤에서 끌어안았다.


스으으읍- 하-


'아.....냄새 너무 좋아♥.....중독될 거 같아....조금만 더....♥'


"읏, 아리엔? 그렇게 세게 껴안으면 허리 부러진다."


"흐응~ 오빠 저 연무제에서 1등으로 상금 받아왔는데, 이정도는 괜찮잖아요?"


"나보다 훨씬 강하지. 우리 아리엔은 검성의 재능이 충분하다니까."


'검성(劍聖)'


검술과 관련된 모든 기술을 통달한 최고의 천재를 가리키는 호칭이며, 현재까지 나오지 않아 모두가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검성 따위, 알게 뭐람.

그것보다.....


'지금 우리, 우리 아리엔 라고 한거 맞지? 아 어떡해.

지금 덮쳐버리고 싶은데....하아....'


당연히 이 사실을 오빠는 알리가 없었고 안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대회 때문에 무려 1시간 12분 38초나 떨어져 있었다구요!"


"......그건 좀 무서운데?"


"아무튼 빨리 가요 ㅎㅎ"


그렇게 시끌벅적한 경기장 쪽을 빠져나와 변두리 근처로 한참을 수다 떨면서 걸어가다보니 구석진 곳에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있었다.


코어 손실로 인해 더 이상 그가 기사로써의 책무를 할 수 없어 퇴직하였고 그 퇴직금으로 마련한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집에 올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지는 기분과 더욱 옆에서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오빠."


"응?"


"저 바람 잠깐 쐬고 싶어서 먼저 집에 가 계실래요?"


"의외네? 껌딱지처럼 붙어다니더니."


"안 그래도 빨리 갈거거든요~"


"그래....뭐 알겠다. 난 짐 정리하고 있을게."


"네~♥"



오빠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후, 손을 뻗어 집 전체에 보호막을 걸어놨다.


내가 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구역 전체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보호막.


오빠에게 웃어주던 미소를 거두고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는 중얼거렸다.


"이제 나오지 그래. 아니면, 내가 찾아가서 죽여줄까?"


평소 아론 오빠에게 말하던 것과는 다른 살기가 섞인 말투로 말하니 여기저기 골목에서 후드를 뒤집어 쓴 사내들이 나타났다.


"인기척을 지우는 술식을 썼는데, 그걸 간파하다니. 역시 검성 급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나보군."


"소문은 내 알 바 아니고, 이번엔 어딜까나..... 암살자 길드 나부랭이?"


"자만이나 하지마라."


"무슨...."


말을 할 틈새도 없이 뒤쪽에서 검이 공기를 위에서 아래로 베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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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밋밋하군.....이상한데."


".....뭐가?"


".....!"


충격파로 인한 먼지가 가라앉자 서서히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던 사내는 그대로 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리엔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사내를 그대로 바라본채 한손에 쥔 검만 뒤쪽으로 옮겨 막아냈기 때문이다.


"아니, 고대의 영혼 주문을 사용한 검을 어떻게 반응한거지...?"


"보스, 술식도 안 통하고 무려 대마법사가 걸은 주문입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막아낸 괴물입니다! 소문이 사실인거 같은데, 계속 대치해야하는 겁니까?"


"이때까지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허접한 새끼들과는 좀 다른가보네. 대마법사를 말하는 걸 보면 좀....위쪽에 있는 대가리인가?"


"대, 대가리...? 감히 황실을 모욕하다니, 목숨이 여러개라도 되는 마냥 지껄이지 마라!"


"크큭, 정답인가보네? '황실의 개'. 어쩜, 불쌍하기도 하지."


분노를 참지 못한 듯 지붕에서 노려보던 다른 한 사내가 소리쳤다.


"너를 죽이고 같이 다니는 그 놈까지 한꺼번에 죽여주지!"


".....'그 놈'?"


능글맞게 웃던 그녀의 입꼬리는 그 새 내려갔고, 팽팽한 긴장감은 이윽고 살기가 내려깔린 분위기로 바뀌었다.


사내들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으며 팔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아리엔의 얼굴에 눈이 서서히 붉은 색의 안광이 올라오며, 아론이 치료해주었던 흉터가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너, 뭐라고 했어....?"


"숨이 갑자기......크윽...."


"너가 감히...감히!! 네 까짓게!! 내 세상의 전부를 모욕해? 죽여버릴꺼야. 죽여버리겠어! 죽여서 사지를 분해시키고 고기밥으로 던져버릴꺼야!"


그녀의 주위로 붉은 아우라가 퍼지더니 주변에 있던 사내들은 숨쉬는 것조차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살 가치도 없는 하등한 벌레들. 죽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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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


"우리 오빠, 벌써 잠들었네~ 혹시나 해서 알아차릴까봐 수면 마법을 걸었는데, 걸어두길 잘했다."


"저 오빠를 건드리려 했던 새끼들 다 사지분해 시켜서 죽였어요. 시체도 말끔하게 처리했구요. 히히 잘했죠?"


섬뜩한 말을 서슴없이 뱉어내는 그녀는 아까까지 살기를 뿜어내던 공포의 표정과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책상에 엎드려 있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안되겠다. 너무 못 참겠다. 너무 꼴려....."


아리엔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를 침대로 옮겼다.


"아까 겨우겨우 참았는데, 이번에 오빠 지켜준거 상 무조건 받아야겠어요."


두 눈을 날카롭게 번뜩이며

그의 바지를 잡고는.....


".....잘 먹을게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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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소설.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제법 있어서 사료 하나 더 제작했습니다.

점심 먹으면서 쓰느라 좀 늦게 올렸네요.

오늘 사료는 소떡소떡입니다.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