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팠다.


성인이 된지 1분 후의 내가 느낀 기분이었다.


무엇도 이루지 못하였다. 아니 애초에 시도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옳았을까.


어른들이 언제나 나를 위로하고 응원해주기 위해서 해주었던 말.


“얀붕아 키는 나중에 대학 가서라도 훅! 큰다니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남자는 키가 군대가서도 큰데.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분들의 말씀에 감정이 담겨있었는지는 지금 와서는 잘 모르겠다. 이제와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 군대를 가지도, 대학을 가지도 않았지만 나는 성인이 되었다. 나는 이해하였다.


이게 나의 최선이다. 그리고 최종이다.


162cm


초라하다. 볼품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키에 집착했을까.


로망이었을까. 180이라는 이상적인 키에 대한..


안타깝지만 그런 것이었다면 오히려 훌훌 털어냈을 문제였다.


나는 농구를 사랑한다.


학교에서 아니 이 나라에서 나는 내가 농구를 제일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증명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내 말에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테니 말이다.


162cm 농구선수.. 될 수 없다고 누가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현실을 잊고 이상에 부딫힐 용기는 없었기에 그저 순응하기로 하였다.


그것이 나를 아니 내 마음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5cm.. 5cm만 더 컸더..


“얀붕쓰~! 뭐하냐?!”


초인종 너머로 소음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누구보다 만나고 싶지 않은 미안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는 대답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굴욕적이게도 고개를 치켜 들었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서.


”얀붕! 안 심심해??“


”지금은 그다지.. 왜?“


”엥?! 왜긴 왜야 쿠쿸 당연히 같이 놀려고 왔지!! 친구끼리!!“


”그렇지..그렇네 친구끼리..”


그녀는 나를 친구라고 부른다. 오랜 세월 우연히 같이 지냈기 때문일까.


그녀를 처음 본 나이가 6살이었으니 어느덧 강산이 바뀔만큼의 시간을 봐온 것이다.


그 시절을 추억하면 기쁨이었다.


성장의 우월성이 아닌 재능의 개화를 마음껏 뽐내던 시기였기에..


어렸을 적부터 나는 농구를 사랑했고 그녀는 나와 놀고싶어서 농구를 배웠다.


마음이 앞선 것은 분명 나였는데..


그녀는 지금 188cm의 엄청난 키의 소유자다.


머리 두개는 차이가 나는..


벌써 이곳 저곳에서 미모의 농구선수라고 난리가 났다.


그것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래서 그녀를 멀리하고 싶었다.


그녀의 생활을 듣고 싶지 않았다.


농구를 좋아하지도 않았던 주제에..


이런 생각이 열등감임을 알았다. 마음은 수없이 아파왔다.


하지만..


“얀붕..! 언제까지 세워둘건데?!”


“..들어와”


“들어가겠슴다. 부모님은 오늘 안들어 오시지?”


“…어..? 어.. 아마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틈새 들었지만 기분 탓일까.


그녀는 나를 언제나 찾아왔다.


이미 성공이 눈에 보이는 그녀였기에 실패작인 나를 언제나 끊을 수 있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찾아오며 나와 시간을 보냈다.


이유..중요할까..? 그저 내가 이 이시간 불편한데 말이다.


하지만 말 할 수는 없다. 그냥.. 왠지 말해서는 안될 거 같았다.


오한이 든다 해야하나..?


나는 어쨋든 집에 들어온 그녀에게 신경을 세워야만 했다.


”얀붕스! 영화 볼까?”


“무슨 영화? 재밌는거 하나?”


“그럼!! 이 누님이 다 조사해왔지!! 자 쇼파에 빨리 앉아!!“


그녀가 남의 집 쇼파를 팡팡 두드렸다.


나는 아무말 없이 그녀의 옆이 아닌 한칸 뛰어 앉았…


뭐야 왜 오한이…


”왜 거기 앉아?“


”난 원래 여기..“


”왜?“


”….“


”여기로 와. 얼른.“


반항하고 싶었다. 그녀에 말에 따르기 싫었다.


하지만.. 신체 차이에서 오는 공포일까 나는 그녀 옆으로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잘했어. 착하네.“


그녀가 내 머릴 쓰다듬었고 그 순간 나는 큰 수치심을 느꼈다.


그녀가 날 어린 아이처럼 다뤘다는 것에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얀붕!! 영화 시작한다!!“


나는 그저 온 정신을 영화에 돌리려 했다. 그래야만 이 수치심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먼 영화가 중반에 다달아도 나는 영화의 내용에 전혀 흥미가 돋지 않았다.


그저 흔한 멜로.. 소꿉친구 물이었다. 하지만 조금 에로가 섞인 듯한 느낌이었다.


이걸 굳이 얘랑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봐바…어때?”


그녀는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에도 나에게 감상평을 물어왔다. 보통 영화에 키스와 같은 씬이 나올때 마다 였다.


그녀는 기대하는? 눈빛이었지만 나는 내 생각을 전했다?


“뭐가?”


“아니야..어휴! 그래 이래야 얀붕쓰지!!”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내 한쪽 볼을 잡아 당기고는 놓았다.


나는 이런게 정말 싫었다.


키가 작다고 해서 내가 어린애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같은 나이에 성인이었다.


그런데!


그녀한테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그 동안 참아왔어.


오늘은 안돼. 얀순이에게 말하자.


나의 이 심정을!!!


“야 얀순아.”


“왱??”


“너 그거 아냐?”


“뭐를?“


”나는 너 단한번도 친구라고 생각 한 적 없어.“

드디어.. 드디어 전했다.


나의 이 숨겨둔 마음을!


더 이상 그녀가 찾아오진 않겠지.


더 이상 이런 수치심을…!!


”어…어?! 가,갑자기?!“


뭐야…


왜…


왜 얼굴을 붉히지?


”하하하.. 당황 스럽..아니지 나도.. 나도야!! 역시 틱틱대도 그럴줄 알았어. 히힣 얀붕아 이 타이밍에 치고 들어 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그래 좋았어 시발. 오늘 날이라 이거지?“


“어…? 어…어?”


“일단 방으로 빨리…!!”


그녀는 나를 거의 들쳐매다 싶이 한 뒤 침대에 던지고 위로 올라탔다.


“얀순아 뭐..뭐하는..”


“뭐가? 너가 방금 나 꼬셨잖아. 그랬지? 진짜 존나 행복해. 나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덮칠까도 고민 했는데.. 참아온 보람이 있네.. 니 옆에 가증스러운 년들이 붙을때도.. 너가 나한테 튕겨도!! 죽도록 참아왔어. 이제는 보상을 받아야지.”


“뭐,뭔가 오…”


그녀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마치 나를 씹어 먹을 듯이 노려봤다.


“오? 오 뭐.”


“아니 그게..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 깨달았다. 아니 이제서야 눈치챈거다. 나는 그녀한테 반항 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 말 가려하는게 좋을거야. 나 지금 미치기 직전 상태거든? 돌아버릴거 같단 말이야. 그러니깐…!!! 이상한 말이 이 귀여운 입에서 나오면..그땐 너..쿠쿸“


나는 처음부터 입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듯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착 붙였다.


”얀붕아.. 타임은 없다? 농구가 아닌거 알지? 그냥 4쿼터 풀로 뛴다고 생각…알지? 나 못 멈춰. 아.. 그렇지.“


그녀는 고개를 숙여 내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는 속삭였다.


”존나 사랑해. 얀붕아.”


나는… 이제서야..내 키가 작은 이유를 알았다.


그녀가 나의 입술을 강하게 탐할때 그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나는 잡아먹히는 약한 소동물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