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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가 평소처럼 나를 납치하고, 나는 그 순간마다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던 일상이였지만.

이번에는 평소와는 좀 다른 상황이였다.


평소에는 나를 방에서 못 나가게 하는 정도 였지만, 

이번에는 내가 더 이상 돌아다니지 못하게 내 발목에 칼을 대려고 하는 상황이였다.


그렇게 위기의 순간에 이 세계의 진실이 나와 얀순이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이 세상은 소설 속이었고,

작가는 내 발목이 그어지기 직전까지만 쓰고 연재를 중단했고, 얀순이와 나는 갑작스럽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상황에 혼란하던 도중, 얀순이는 나를 풀어주고서는 그저 나가라고 할 뿐이였다.


그렇게 갑작스레 풀려난 나는 그 어두운 방에서 나올수 있었다.


...

..

.


다음날


학교에 갈 때마다 얀순이와 늘 같이 학교에 갔지만 오늘은 따로 등교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얀순이는 잘 사는 집에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면서 외모까지 아름답다는 설정이라

말 그대로 소설 속의 주인공 그 자체다.


나는 이런 소설의 남자 주인공 대부분이 그렇듯,

모든 것이 평범하다고 할수 있는 평범하게 설정된 학생이었다.


소설이 아니었다면 얀순이와 나는 사는 세계가 서로 달랐겠지...

물론 소꿉친구라는 설정대로 둘이 어릴적 함께한 추억은 있지만,

이 소설이 시작한 시점은 고등학생부터 시작이라서 그마저도 작가가 만들어낸 추억일 뿐이다.

그리고 작가가 만든 설정과 추억들은 작가가 손을 놓아버린 이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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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얀순이와 나는 서로 인사도 잘 안 하는 사이가 되었다.

늘 내게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던 예전과 다르게,

얀순이는 새로 친해진 친구들과 지내고 나는 나 나름대로 친해진 애들과 따로 지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닌 나는 얀순이의 납치 감금 집착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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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이 지났을 때쯤

얀순이가 잠시 이야기좀 하자고 해서 우리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제 따로 만나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예전에 당한 일들이 생각나서 조금은 꺼려지긴 하지만, 지금의 얀순이는 예전과는 다르니까 별 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공원에서 만난 얀순이는 다시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만들어진 추억과 감정이지만, 그래도 같이 지낸 날이 있는지 나랑 사이가 멀어지니까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이야기하던 도중

얀순이가 얀진이랑 무슨 사이인지 물어봤다, 얀진이는 그냥 친구일 뿐인데.

요즘 따라 얀진이가 내게 말을 자주 걸어오긴 했지만 서로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


...

..

.


그날으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얀진이가 옥상으로 나를 불러냈고, 갑작스럽게 고백을 받았다.

하지만 당황한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도망치듯 옥상에서 나왔다.


고백은 사실확인이라고 했던가?

나도 사실 얀진이랑 같이 놀다 보니 점점 친구가 아니라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날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지만 어딘가에서 얀순이가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도망치듯이 옥상에서 나온거지만...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은 없겠지, 슬슬 그때의 기억에서 벗어날때도 되었잖아.

이 세상이 소설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먼저 거리를 둔 쪽은 얀순이잖아.

예전보다는 아니지만 요즘 따라 나한테 자주 달라붙던데.. 이제 와서는 그저 귀찮기만 할 뿐이고.


그러니까 이미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얀진이에게 내일 내가 다시 고백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집에 가는 도중 익숙한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

..

.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운 방 한가운데 나는 의자에 앉은채로 묶여있었다. 

익숙한 이 상황은... 아마도 얀순이겠지.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나를 납치한다고? 진실을 알자마자 먼저 모른 척 한게 누군데.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중에 얀순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


“......”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왜 나를 납치한 거야!! 이유라도 말해보라고!!“


”얀붕아.... 내가 멍청했어... 그때 확실히 해야 했는데!!“


”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이거나 풀어! 그날 이후로 바뀌었다고 믿은 내가 멍청이지!!“


”얀붕아...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지? 그리고 말이 꽤 거칠어졌네? 이게 다 얀진이 그년이랑 같이 지내서 그런건가...?"


”내가 얀진이랑 같이 친하게 지내던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인데? 만들어진 감정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먼저 거리를 둔 게 누군데?" 


”그래 만들어진 감정... 나도 만들어진 감정이라는걸 알자마자 너무 화가 났어, 이제껏 있던 일이 다 소설 속의 이야기라니.”

“매일마다 너를 사랑하며 생각하고 지내온 내 자신을 부정당하는 느낌이라서 화가 난줄 알았는데 아니였어..."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확실히 깨달았지!"


“으아아아아아아악!!!!!!!“


얀순이의 손에는 어느새 칼이 들려 있었고 순식간에 내 발목을 그어버렸다.


”내가 화가 났던 이유가 뭔지 알아? 바로 작가가 만든 고작 그 정도의 사랑한다는 감정 때문에 내 진정한 사랑을 너에게 못줬다는게 화가 났던거야!!"

"원래는 바로 이렇게 하고 싶었지만.. 나도 진심으로 널 사랑할수 있게 되었으니까, 너에게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거든."

"그렇게 달라진 척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는데... 역시 진작에 이렇게 해야 했어! 조금만 방심해도 바로 주제도 모르는 벌레가 들이대잖아?"


“으윽.. 미...미친년... 그냥 죽여줘..!”


“얀붕아 내가 널 왜 죽여? 너 죽으면 나도 죽을 건데.”


차라리 혀라도 깨물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얀순이의 양말이 입 안으로 쳐넣어졌다.


“얀붕아.. 니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아, 너는 죽을 때도 혼자서 못 죽어 그러니까 그만 포기하자?“

”그래도 이제부터 우리의 온전한 의지대로 서로 진실한 추억을 만들 수 있겠네?”


“읍 읍읍!!”


“아이참 울지마... 나도 기뻐서 울고 싶은 걸 참고 있는데, 일단 첫번째 추억을 만들어 볼까...?"

"처음이라 좀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서로 기분은 좋겠지?"


”읍 으으읍!!!!!“


....

...

..

.


그 후로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주인공이 아닌 나는 영원히 얀순이에게 빠져나갈 수 없겠지.


끝나버린 이 세계의 얀순이는 작가가 만든 설정보다 더 미쳐있으니까.

아니 그 전에 끝나버린 이후의 이 세계 자체가 작가의 설정보다 미쳐있는 것 같다.


왜냐면 시간이 흘러 어느새 자라버린 딸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그날의 얀순이와 많이 닮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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