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어?"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이런 늬미…"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어두컴컴한 방에는 쇠창살이 달린 창문이 하나 놓여 있었고 꽁꽁 묶인 나와 의자가 전부였다.

설마 그녀가 나를 감금할 줄이야. 꿈에도 알지 못한 사실이었다.


"입이 험하네 보스는."


입이 험하다고?

당연히 욕이 나올 수밖에. 감금당한 사람에게 좋은 말이 나올 리 만무할 수밖에.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도 나에게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줄곧 기다려왔어. 줄곧, 줄곧, 줄곧, 보스와 같은 방에서 단 둘이 있기만을 기다려왔어."


언제부터 그랬을까?

실수였다. 그녀가 불법 인형이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가져오는 걸 그만두어야 했었다.


"3년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잖아."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보스야."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아. 내 휘하에는 너 말고도 다른 인형들이 많아. 그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몰라."


"뭐?"


"모른다고. 그런 거, 생각해본 적도 없어."


그녀는 다른 인형과는 달랐다.

인형이라기엔 너무 인간 같았다. 그리폰에 처음 들어온 그녀를 배려해서 나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었고 그녀 또한 내 명령에 잘 따랐다.


그런데

그녀를 대하던 나는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어느 새 그녀는 나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혼탁한 눈동자, 빨려들어갈 듯 초점이 맺히지 않은 푸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간간히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게 나만인 것 같아서, 동료 인형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이대로 두면 그녀가 폭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색이 좋지 않네요. 지휘관님, 무슨 일 있어요?"


스프링필드가 물었다. 그녀는 불안해하는 내 의중을 헤아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별 일 아냐. 스프링필드. 잠깐, 생각할 게 있었던 것 뿐이야."


"너무 골머리를 앓다 보면 당신이 힘들어요."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괜찮아요."


그녀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VSK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품 안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휘관… 님?"


문이 열린 곳에는 VSK가 있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나, 그리고 스프링필드의 손가락에 위치한 서약 반지까지.

그녀는 깨달았다. 어째서 내가 그녀에게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 왔는지 어째서 진심이 아니었는지 어째서 석연치 않았는지.


지휘관은 자기 말고도 다른 인형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직장 상사와 부하로서, 맺어질 수 없는 관계. 사무적인 관계.


지휘관에게 나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그저 도구와 주인의 관계, 마음을 나눌 수는 없다.

그뿐이다.

그뿐이기에


"으… 으..."


"VSK?"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절규했다. 이뤄질 수 없는 현실에 절규하고 지휘관의 옆에 있는 스프링필드에게 질투를 느껴 절규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단지 주저앉은 채로 그녀는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오직 지휘관만을 지휘관만을 지휘관만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그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한 지점은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부서진 스프링필드의 소체를 본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비릿한 미소를 짓는 VSK, 초점 없는 눈으로 그녀는 나를 흘겨보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전력으로 달렸다.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러나


퍽!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있다.


"보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기억 나? 3년 전에 보스가 나를 거둬줬던 그 때를…"


가물가물하다.

그녀를 거둔 뒤에는 정신이 없었다.

기억할 새도 없었다. 일이 너무 바빴고 스프링필드가 있었다. 

그렇기에 헤아리지 못했다. 단지 나에겐 주변인이었던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나는 너무 바빴다.

하지만,


"으, 응… 기억나고말고 그렇고…"


"거짓말."


"아냐 나는…"


"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


"왜 그러는 건데...?"


"잊고 있었으면서, 나와 언제 마주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으면서!"


"미, 미안…"


"사과할 필요 없어. 나를 거두었던 순간부터 보스에게 나에 대한 마음은 희미했지? 그렇지?"


긍정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희미하지 않아. 너도 내 휘하의 소중한 인형 중 하나인걸?"


"단지 인형 중 하나, 인거네?"


"아냐 그렇지는…"


"그게 아니면 뭔데? 나에겐 서약 반지도 없고 보스와 함께한 시간도 손에 꼽는걸? 그러니까."


"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가져갈래. 스프링필드와 보스가 함께 했던 시간만큼 나는 당신을 그녀로부터 빼앗겠어. 그러니 함께 있자. 영원히 이 방 안에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나의 옷을 벗겼다.

살갗이 드러나고 우리는 그 좁은 방 안에서 관계를 가졌다.


좁은 방 안에는 달이 차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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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극복용 단편

부디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