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생각해보니 자연은 아름다웠던 것 같다.


떠올려보라, 시허연 구름과 새파란 하늘을.


떠올려보라, 싱그러운 꽃망울과 그 줄기의 부드러움을.


아, 돌아가고 싶어라.


이러면 너무 애늙은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용서해주라, 적어도 외로움보다는 아름답지 않은가.


심지어 몇 년 동안 햇빛을 본 적이 없다.


백열등 하나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마저도 없으면 정말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최소한 시각 정도는 남겨두는 편이 좋았다.



이곳은 어디인가.


끝없는 질문을 해왔다.


몇 년 전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저승?


혹시 이곳은 저승일까?


내 육신은 이미 죽어 없어져 버린 걸까?



환각?


이 모든 건 내가 보는 환각일까?


단지 찰나에 불과한 상상 속인가?



오감 모두가 죽어버린 듯한 이 장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생각이 전부였다.


내 전신에 느껴져야 할 옷깃의 스침이 전부 사라졌다.


내 전신에 느껴져야 할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떠 있었다.


하지만 떠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떨어지고 있는 걸까.


내가 떨어지고 있다면,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느껴져야 했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떠도 보이는 건 어두운 공허가 전부였다.


눈을 여는 것과 닫는 것의 차이가 없었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눈꺼풀과 각막 사이의 경계가 흐릿했다.



내 폐에 공기가 들어차는 것도.


내 핏줄을 타고 피가 미끄러지는 느낌도.


내 심장이 펄떡이는 움직임도.


내 눈을 밝힐 빛도.


내 귀를 울릴 소리도.


전부.


전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나를 이곳에 가둔 것인가.


나를 가두었다면 특정한 의도가 있을 터.


이를 추리하기엔 내 시간은 너무나도 많았다.



무감각에 익숙해질 때가 되어서도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잠은 오지 않았고 배는 고프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인간다운 삶을 산 게 언제였던가.


그것조차 가늠할 수 없었기에 내게 남은 건 하나밖에 없었다.


생각.


생각이 유일한 출구다.



어느날 눈이 부셔 정신이 들었다.


고통을 느낀 게 얼마만인가.


너무나도 오랜만의 빛이라 맨눈으로 그걸 보는데 시간깨나 들었다.


태양빛과 비교하면 몇 억, 몇 조 분의 일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충분히 밝았다.


백열등이었다.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 온 뒤로 최초의 빛을 얻었다.


근육이 녹아내린 듯한 팔을 움직여 겨우 잡을 수 있었다.


타인의 팔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옅은 빛으로 주위를 비추니 소름돋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주위에는 수많은 편지가 쌓여 있었다.


내가 공허라고 생각했던 곳에는 애초에 편지가 들어 차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처음 갇혔을 때부터 편지는 내 곁에 있던 걸까?


아니면 방금 막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나는 그날 이후 덜 외로워졌다.



쥐고 있던 전구를 잠시 허공에 올려다 놓고, 천천히 봉투 하나를 편지 더미 속에서 꺼내었다.


그 속에는 헤진 종이 몇 낱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글자에 초점을 맞추려니 눈이 너무 흐렸다.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나랑은 무관한 내용이겠거니, 하면서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외로웠다.


차라리 죽을 수도 없다면 누구라도 좋으니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설령 그것이 단순한 글이더라도 괜찮으니 누군가의 흔적을 쫓고 싶었다.



높이 솟은 편지 더미에서 한 장을 더 꺼냈다.


두 편지의 필체를 비교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편지를 읽는다고는 해도 단순히 눈에 갖다대어 그 형태를 대충 유추하는 짓의 반복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한 문장도 해석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편지를 읽을 때면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편지는 소위 러브 레터였지만 아주 가끔 다른 게 들어있기도 하다.


천삼백스물다섯 번째 편지였다.


봉투를 열자 작은 알갱이 비슷한 게 내 팔 속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라 팔을 휘젓자 알갱이는 떨어진 위치에 고정되어 내 팔과 분리되었다.


팔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았다.


내가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건 알갱이가 아니었다.


그건 정육각형처럼 생겼지만, 네 개의 축을 가지고 있었다.


일상에서 절대로 볼 수 없는 형태였으며, 그것은 스스로 회전하고 있었다.


내가 수학 시간에 집중만 했어도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것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어째서 나를 이 감옥에 가두었는가.


팔십삼만 구백하고도 여든일곱째 편지를 읽어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저 무한하고도 산처럼 높은 편지 더미를 계속해서 꺼낼 뿐이다.


팔십삼만 구백하고도 여든여덟째 고백을 듣는다면 무언가 달라질까.


편지는 여전히 무한하며 편지가 무한하기에 내 삶도 무한하다.


죽음마저 죽어버린 곳에는 백열등 하나와 연속되는 편지,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저 어둠 멀찍이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내 세계는 이곳이다.


낡아빠진 전구가 비추는 한 아름 정도의 공간이 내 전부다.


언젠가 내가 이 세계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그날에는 이성도, 육신도 이곳에 두어 떠나리라.


그리고 다시 돌아와 남은 더미를 읽으리라.



내가 외로움에 사무칠 때도, 그 감각마저 사라져 마음이 비어있어도 편지는 늘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발신자도 수신자도 불투명한 관계라 할지라도 변함이 없다.


너는 내 고통과 함께 했기에 기어코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네가 보낸 무한한 사랑을 전부 읽고 나면 내 두 팔로 너를 감싸리라.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내 작은 우주에서 영겁을 보내리라."


메아리조차 울리지 않는 공간에서, 내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뭐라도 써야할 것 같은데 정작 아이디어는 없어서 아무렇게나 갈겨봄


코즈믹 호러 비슷하게 써봤는데 정작 호러는 없는 듯


해석 (밑줄부터 하얀 글씨로 적어놓음)


초월적인 존재가 주인공을 임의의 이유로 다른 차원에 가둬놓음

거기에 주인공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담긴 편지를 무한히 떨구는 거임

주인공은 그걸 읽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랑 사랑에 빠지는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