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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순양전함 아마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가 모를 때가 있었다

아니... 항상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몰랐으니까, 얉은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고

모르기 때문에, 그 자리의 분위기에 흽쓸려 가버렸던 걸꺼야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비서함을 바꾸겠다고 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안되는 것이였다


시리우스를 비서함에서 교체한다...

그런 건 생각 한 적도 없었다

그녀가 비서함에 있는 것을 만족하고, 불만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벨파스트나 다이호, 티르피츠가 

비서함처럼 일을 조금 도와줬을 땐, 솔직히 기뻤다


시리우스는 무척이나 열심히 해 주고 있었다

단지, 너무 열심히 해서 여러가지로 역효과가 날 뿐

경솔하다고 할까... 천연덕스럽다고 할까..


그래서 그들처럼 어른 같은 함선들과 일을 한다는 것은 참 신선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주는 그녀들이였다


서류 정리나, 대필, 항목별 구분 등

짧은 시간아니마 배려를 하며 도움을 주었었다


뿌듯했고, 무엇보다 편해졌다

그것을 느껴보니, 비서함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선택사항임을 느꼈다


딱히 시리우스가 곁에 잇는 게 싫어진 것은 아니다

기쁠 때는 격려해주고, 웃어주는 그녀였기에

사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여기에 온 후 줄곧 같이 공감해주던

그녀와 떨어지는 것은 괴롭고 조금 슬플 것이다


미카사 씨도 나와 떨어져 있을 때, 비슷한 기분이였을까?

시리우스 보다 훨씬 오래 만났고, 오랜 시간을 공유했던 그녀

그녀도 나를 떠날 때, 같은 기분이였을까


그때의 나는 여러가지 마음과 감정이 뒤섞여서 무언가를 느낄 여유는 없었다

지금도 외로워질 때마다, 그녀가 언젠가 와줄거라고 믿기 때문에

겨우겨우 버티면서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 비하면, 시리우스와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꽤 빨랐다


뭐... 내가 시작한 일이였기 때문에, 일종한 책임감이라는 것도 있었다

위에 서는 사람으로서, 겉으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일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


함선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고

또한 그녀들의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제는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를 사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였다


나는 다리를 절면서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빠른 걸음으로 사쿠라의 기숙사로 향했다





"...이런 시간에 암컷 냄새를 풍기시면서, 무슨 일이십니까?"


아마기는 자신의 방에 찾아온 나를 보며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곧 언짢은 듯한 태도를 취했다


암컷 냄새... 라고 하면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서 쓴웃음 밖에 할 수 없었고

그녀는 그런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눈동자를 가늘게 하고, 팔로 자신의 코를 막는 시늉을 했다


그녀의 기모노 소매가 입가를 가리면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꼴이 되어, 그녀의 눈을 더욱 강조하게 만드는 듯 했다




"여기 올 동안, 누구랑 만나셨나요?"


"어.... 글쎄, 시리우스 밖에 만나지 못했어"


쓸데없는 거짓말은 간파될 것이기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행히 사쿠라와 로얄의 기숙사에는

다른 함선들의 모습이 드물어서

누군가와 만나는 일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기는 내 말을 듣고, 조금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내요

지난번 훈련 결과를 납득하지 못한 아카기와 카가가

손이 빈 함선을 데리고 훈련장에 간 덕분에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내요"


"소...소란?"



뭐... 지휘관이 함선과 같이 자다니...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야릇한 일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소란이라니 뭐야!?


아, 물론 내 말을 믿어주는 함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마기는 수중의 손거울을 내게 비추었다

거울에 비친 것은 지친 내 얼굴과 눈 언저리의 다크 서클이였다



"이 근처를 잘 살펴보세요"


아마기는 내 목덜미를 가리키며, 손거울을 보기 쉽게 움직였다

거기에 찍힌 것을 보고, 나는 반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뭐... 뭐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그러신가요?"


아무래도 눈 앞의 그녀는 믿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럴만도 하지



상사가 목덜미에 새빨간 진홍색 키스마크를 달고 찾아오면

누구라도 어이가 없을 테니까 말야



군복 옷깃에 가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살짝 끝이 보이도록 달려 있었으니, 더욱 설득력을 갖게 했다

사실은 모두에게 숨기고 싶었다는, 무언의 설득을 하듯이 말이다

모두가 모르는 곳에서 그녀와 단둘이서 이것저것 했다고 말하듯이...



"...지휘관님"


"저...정말이라니까!!"


"그렇게 여자와 놀고 싶으셨다면, 이 아마기에게 상담을 해주셧어야죠"


"아냐, 난 정말 모르는 일이야!!"


"저야 지휘관님을 믿는다쳐도

아카기나 다이호가 이걸 보면, 분명 격한 감정을 표출했을 것입니다"


"으윽"




그... 그래, 그건 맞는 말이야

그녀들이 이걸 봤다간, 분명 이런 문답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야

이름 붙인 범인을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도 아닌

용의자고 뭐고 누구든 보이는대로 공격해 들어갈 것이 틀림없었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걱정해주는 거겠지

이런 나라도, 사랑해준다면 기쁘긴 하지만

과격한 행동을 해 버리는 것은 곤란한 일이였다


"그럼... 이 마크를 붙인 짐작 가는 범인이 있으실까요?"


"뭐?"



아마기는 코를 막던 팔을 내리며 말했다

마침내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이번엔 어느 때보다 함박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키스를 받으시다니

물론, 상대가 누구인지는 짐작이 갑니다만......

하지만 지휘관님의 입으로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을 더럽힌 여자의 이름을요"


"더럽히다니?"


"네, 더럽혀졌어요

우리 사쿠라 이외의 함선이 했다면 큰일입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소유물이 상처를 입거나, 더럽혀지면

저도 아카기처럼 분노에 몸을 맡기고 싶습니다만...

그래서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게 지휘관님이 원해서 붙여진건지, 원치않고 붙여진 것인지

당신께서 원하셨다면......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아무것도 모르셨다면, 상대가 어디까지 지휘관을 더렵혔는지

우리는 알 권리가 있습니다

사쿠라의 함선으로서 소유물이 더럽혀진 까닭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하지만 장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어

시리우스 옆에서, 조금... 정말로 조금밖에 자지 않았단 말야"


"그렇군요

하지만 혹시나 모르는 문제기에

제가 나중에 직접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어디까지 믿어 주었을지 모르지만

아마기는 이야기의 매듭을 짓듯 다시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휘관님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자란 좋아하는 이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생물이니까요"


"으..응"


"확실히 당신에게 힘이 될 만한

당신을 생각해주는 여성에게만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는 선을 그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주시지 않으시면 조마조마하여

아마기는 걱정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조심할게"


"불편한 일이 있거나, 도와드렸음 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이 아마기를 찾아주세요

지휘관님 같이 위험한 분에게는 저처럼 도와주는 자가 옆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저도 모르는 사이,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저속한 여자는

싸움에 불씨를 지필 수도 있으니까요"


불씨라는 말에, 나는 조금 침을 꿀꺽 삼켰다


키스마크의 건이 아니라

실제로 타오르고 잇는 불씨를 회수하는 데

그 지혜를 빌리고 싶다고 한다면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기는 나의 눈빛을 보고 무언가 알아차린 듯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일단 암컷 냄새가 풍기니 불쾌하네요

일단 씻어주세요"


우선은 그녀에게 말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았기에

뭐든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키스마크라는 것은 좀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붉은 기색은 사라졌으나, 그 형태만은 뚜렷히 남아 있었다

아마 묻어있던 립스틱 정도가 떨어진 정도겠지

남아 잇는 것은... 희미하게 붉은기가 남은 자국 뿐

멍과 같은 거라고 할까..... 일단 멍이라고 해두자


멍도 내출혈이라고 불리는 상처 중 하나

몇 시간 안에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것은 누구에게 붙여졌을까

용의자는 쉽게 둘로 줄여졌다


론이나 시리우스



그 중, 론과 만난 후에는 

옛날에 신세졌던 사람들을 조금 만나기도 했고

그 사람들이 나의 인상착의를 지적하지 않았던걸로 보아

일단 론은 아니였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경우

내가 아마기를 만나기 전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마기가 내 마크를 가장 먼저 알아챘으니...

정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붙인 걸까?

장난? 아님, 다른 이유가?


잘 모르겠다

오늘 하루 사이에, 그녀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화가 나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유혹을 하지 않나

애초에 그녀가 이제까지 화를 낸적이 없었기에

화가 났다고 생각함이 어불성설이였지만

이제는 뭘 생각해도 혼란스러워, 그냥 다 잊어버리기로 했다



몸을 욕조에 잠근 채, 허공을 둘러보았다


사쿠라의 욕실은 넓군

평소 같으면 내가 절대 들어갈 일은 없을텐데

이런 냄새를 퍼뜨렸다간, 모두를 불쾌하게 만든다고 해서

이번만 특별히 빌려준다고 했다


나는 욕조애서 혼자 빠져가는 듯한

불안정한 감각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뭐, 바닥에 발이 닿으니까 빠졌다고 하기엔 뭐하지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뭘 손댈 때마다, 점점 더 엉망이 되갔고

앞으로 한발짝만 더 내딛었다간 끝을 알 수 없는 곳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차라리 다 내버려두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고 멈추고, 또 생각하고 마는 나였다


생각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서 계속 생각해버리는 것이였다

이런 마음을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


"지휘관님, 등을 밀어드릴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마기가 문을 열고 욕실로 들어욌다



"...뭐어!?"



천연덕스럽게 욕실로 들어온 아마기는

얼굴을 붉히면서, 매혹적인 몸을 수건으로 가렸다


그녀를 얇은 천 한장으로 가리기엔

그녀의 몸은 너무나도 조이는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 순간에도 눈에 띄는 피부가 자꾸만 생각났다


"평소에 피곤하실 지휘관님의 피로를 씻어주는 것도 함선의 일입니다

다른 얘를 시킬 바에, 저처럼 친숙한 함선이 나을 것 같아서요"


"아니, 필요없어!!"


나는 수건으로 황급히 앞을 가리고

욕조에 깊숙이 들어가, 그녀로부터 등을 돌렸다


"괜찮지 않으십니까?

이미 다른 여자랑 불씨를 짚으셨는데

저는 그 불에 반한 나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니... 불장난 같은건 하지 않았다니까!!"



"흐흐, 확실히

그런 짓을 하셨다면, 이런 반응은 하지 않으시겠죠"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리더니, 이번엔 물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천천히 욕조에 몸을 담그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지휘관님은 늘 방에서 틀여박혀 계시죠?

계속 같은 비서함과 방에 틀어박히시다 보시면

주위 함선들은 여러가지 소문을 만들면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답니다

지휘관께서 그것을 부정하신다고 하더라도, 증명할 길은 없겠죠"


물소리가 사라지더니, 이번엔 새로운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조금 거칠어진 숨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격렬한 신음이

넓은 방을 채우는 듯, 내 머리에 와닿았다


"하지만 이번에 비서함을 바꾸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명단입니다

이대로 황당한 소문이 계속 돌았더라면

그야말로 지휘관님 이름에 함부로 흠집이 날 뻔했으니까요

지휘관과 그 여자는 밀접한 관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휘관은 모두를 평등하게 본다...

누군가를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으로 결정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이런 생각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겁니다

단지, 아마기는 MVP가 사쿠라의 함선이 잡는 것이 이상적이였습니다만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내요"


"...그 일에 관해서 말인데"


아마기는 알고 잇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이런 타이밍에 비서함 얘기를 꺼냈으니 말이다


아마 화가 났었을지도 모른다

연습이 끝난 후, 새로운 비서함이 아닌, 시리우스와 만난 내게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무엇을 불어넣었을까봐

의심의 눈초리로 봤던 것은 아닐까


그 무엇이 목덜미의 키스마크라는 것도...



"비서함을 시리우스에..."


"안됩니다"


아마기는 내가 말을 끝내기 전에, 먼저 부정했다

갑자기 시야 한 구석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욕조에서 떠올랐다


그녀의 커다란 꼬리가 물에 젖은 채

나를 뒤에서 감싸듯이 움직였다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훔치듯이, 발견하지 못할 것으로 숨기듯이

마치 자신의 주머니에 숨기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녀에 꼬리에 둘러싸인 나머지, 눈 앞이 캄캄해져 버렸다

아마기는 그런 나를 보며, 나야가야 할 길을 가르치듯이

내 등 뒤의 벽으로 밀어나갔다


그리고 조금 뒤, 부드러운 감촉이 가슴에 느껴졌고

그것은 그녀의 양 팔이 나를 감싸안은 것을 증명했다


"안 돼요, 지휘관님

위에 선 자가, 그런 식으로 말을 바꾸시면

이러면 정말 그 여자와의 관계를 긍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만, ...이 아닙니다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그녀를 지지하는 짓은 절대 하지 말아주세요"



"............"


"이번 훈련은 모두가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아직 나는 대략적인 결과밖에 듣지 못했다

모두가 어떤 식으로 싸웠는지도, 노력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카기도, 카가도, 여느때보다 훈련전에 참가했고

항상 불평 불만을 늘어놓던 타 함선들도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또한 다른 진영도 마찬가지고요

아 그리고..."


아마기는 조그맣게 웃더니


"유니언과 로얄은 아무래도 훈련보다

그 다음의 일에 신경을 쓰던 것 같던데요"


"......"


"언제나 우승은 로열과 유니언의 것이였고

철혈은 로열이게, 사쿠라는 유니언에게 막혀서

번번히 우승 자리르 못 넘겨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더군요"


그룹 활동이란 어딜 가나 귀찮은 것이였다

특히 여기는...


다양한 진영의 함선들이 이곳에 오는 것이였고

함선들은 사람의 기억이나, 소망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통해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였지만

진영에 바탕이 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쿠라와 유니언, 철혈과 로열은

서로 어딘가 복잡 미묘한 관계를 보이고 있었다


기숙사를 제각각으로 나누는 것도 그래서였다


처음에는 그냥 모두 함께 자고 먹는 생활을 했지만

점점 규모가 커짐에 따라, 진영 별로 기숙사를 나누게 되었다



훈련을 시작하면

아마기가 말한 대로, 각자 인연이 잇는 상대에게 향한다

숙적이나 원수 등, 복잡한 관계를 가진 자에게

도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대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나 사쿠라와 철혈이 지고

유니언과 로얄이 싸워 어느 한 쪽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였다


시리우스가 MVP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였다

우승 후보의 진영에 있었으니, 가능성을 높게 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철혈은 특별개발함의 데이터 수집을 위해

최근 해역에 자주 파견되었으니까, 어느 정도 노하우가 있었겠죠

사쿠라 또한 개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출격 기회가 꽤 많았고, 무엇보다 훈련을 위해서

아카기가 모두를 열심히 이끌고 있었으니까요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기고 싶었던 상대를 이겼으니

저는 일단 만족합니다"



"...그렇구나"


"지휘관님은 그렇게 열심하신 분들께

어떤 표정을 지어보이실 생각이십니까?"


"..........."


그렇게 차가운 말을 담담하게 들으니 속이 시렸다

몸이 차가워지려고 하니, 아마기의 따듯한 꼬리가 나를 감쌌다



"지휘관님... 항상 제멋대로 굴 수는 없는 법이에요"


"그래... 그렇지"


"만약 그 여자가 당신께 속삭였다면, 이 아마기가 대답해 주겠어요

우리의 지휘관을 독선적으로 부려서는 안된다고...

당신은 모두의 것이고, 저희는 당신의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옆에 서는 함선은 당신을 잘 알고 있는 함선이 아니면 안됩니다

당신의 약함도, 강함도, 취약함도, 위험함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좋은 여자여야 합니다.

그거야말로 현처라고 불릴 수 있는 이상적인 존재 아닐까요?"


"..........."


"이 아마기에는 짐이 무거울지도 모릅니다만

조금이라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역부족이여서 그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옆에 서서, 모두와 함께 좋은 미래를 가리키고 싶었습니다만

지휘관님은 바쁘신 몸, 혹시라도 비서함을 바꾸시는 일이 생긴다면..."


갑자기 아마기는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나를 감싸던 꼬리를 다시 원래 위치에 되돌려 놓고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역시, 그런 거죠?"


아마기는 따뜻한 목소리로


"지휘관님은 상냥하신 분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애쓰시는 분

혼자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마음과 소망을 짊어지려 하시는 군요

이번 고민도 분명 그게 원인이실 겁니다"


"...아마시로?"


아마기는 다시 두 팔로 나를 감싸안으며


"이것도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시련이라고 봐요

지휘관님의 작은 등에 올라탄 고민

이 아마기가 해결해 보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변덕에 조금 당황한 나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아마기, 지휘관님이 곤란해하신다면

도저히 내팽개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해답은 간단합니다

언제나처럼 아마기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말을 따르냐 마냐는 지휘관님의 선택이지만요"


아마기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 또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당장 매달릴 수 있는 동아줄은 이것 뿐이였다

나는 이 불안정한 이 마당에 또 다른 어디에 매달릴 수 있겠는가


유니온(미국), 로열(영국)

사쿠라(일본), 철혈(독일)

원래 함선을 모티브로 건조하다보니

각 진영 별로 적대감을 가진 게 있어서 그런가보다라는 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2차 대전 당시에 서로 맞붙었던 나라잖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