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박사님이 해임되신 지 1년이 되는 날,


저는 여지껏 저지른 일을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박사님을……"


무고한 박사님을 폭행하고,


"아냐, 그럴리가 없어……"


폭언을 일삼고,


"아냐, 아냐……"


그것도 모자라서, 박사님을 죽이려고 했던 그때를.


"아니야아아아아아아아!!!!!"


아니에요.


그럴리가 없어요.


"끄윽……"


그래.


이건 리유니온이 저지른 일이야.


우리들의 결속력을 무너뜨리고, 로도스 아일랜드를 몰락시키려는 계획이었던 거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봤자 박사님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더욱 절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미야 씨, 무슨 일이신가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


히비스커스, 라바……


"히비스커스 씨, 당신은 박사님을 해임시킨다고 말했던 때에 어떤 기분이었나요?"


"네? 갑자기……"


"대답해주세요."


부디 제 생각과 일치하는 대답을 해 주시기 바래요.


아니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그때, 딱히 저는 박사님에 대한 반감같은 게 없었던 것 같은데요."


뭐?


어째서?


같은 감염자였잖아?


그런데 왜 당신만 박사님을 미워하지 않는거야?


"아미야, 씨……?"


치사해.


왜 당신만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어?


어째서 당신만 내가 겪은 고통을 피하고, 그렇게 행복한 채로 있을 수 있냐고.


"……전부 죽여버릴거야."


"……히비스커스, 누구라도 좋으니까 불러와."


"아, 응……!"


이건 불공평해.


"아미야, 이래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 알잖아."


"라바……"


나만 이렇게 절망하다니, 불공평해.


"당신도…… 그때 그를 미워하지 않았지?"


전부, 전부 나와 똑같은 처지로 만들어주겠어.



***



전부 고쳐야 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선물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해.


'자, 안젤리나.'


'뭐야, 곰돌이 인형이네?'


'생일 기념선물이야.'


'헤헤, 고마워. 박사.'


어둡고 건조한 폐기처리장에서, 나는 곰인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이미 내 손으로 망설임없이 불태워버리고, 짓이겨서 으깨버렸으니까.


"박사. 미안해, 미안해……"


눈물을 흘려봤자 박사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안젤리나, 이런 쓰레기장에서 뭐하고 있는 거야?"


그때, 내 앞에서 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사…… 나, 어떡하면 좋아?"


"뭘 어쩌긴."


그리고,


"사죄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잔혹한 현실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내 마음을 그렇게 짓밟아놓고, 설마 용서받기를 원하는 거야?"


"아냐, 이건 우리도 어쩔 수 없었던……"


"변명하지 마. 그딴 변명으로 내가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너희들에게 괴롭힘당한 내 상처들이,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으로 싹 사라질 줄 알았냐고."


"제발, 그런 말하지 말아줘……"


"이미 난 너희들에게서 떠나고,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어."


무겁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으깨질 것처럼 공기가 무겁다.


"제발, 박사……"


"네가 생각하는 나는, 더이상 네 곁에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가."


"바, 박사……"


눈물이 더 많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울어도, 절규에 소리를 질러도 박사는 내 앞에 서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기다려, 박사. 사죄하러 갈 테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박사에게 마지막으로 말하고, 발걸음을 에덴으로 향했다.



***



기분나쁜 아침이다.


평소대로 흠집투성이의 백색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었다.


그때, 무언가가 방패에서 떨어졌다.


"뭐지, 이건……?"


그것은 일부분이 찢겨진 나와 누군가가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더러운 자식……'


그리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네가 누구 덕분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때의 내가 저지른 만행을.


'니, 니어…… 제발 그만……'


'무능한 주제에, 말이 많아!!'


그리고 기억이 전부 떠올랐을 때,


"아, 아니야…… 나는……!!"


내 뇌에서 자기혐오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그래……! 사진, 사진 조각을 찾아야……"


그저 뒤졌다.


서랍이 있는 곳을 전부 열어보고, 침대가 있는 곳을 힘으로 뒤엎었다. 세면대의 유리가 깨져도, 망가진 세면대에서 끊임없이 물이 새어나와도 신경쓰지 않고 온 곳을 뒤져보았다.


"어디에도, 없어……"


하지만 방 전부를 찾아봐도, 찢긴 사진의 조각은 찾아내지 못했다.


주저앉은 채로 자기혐오와 절망에 빠져있던 그때, 작은 노크소리가 들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어 씨? 들어가도 되나요?"


샤이닝 씨였다.


"뭔가요, 이 난장판은……"


"샤이닝 씨……"


나는 그대로 샤이닝 씨에게 기댔다.


이대로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어떡해야 좋은거지……?"


"네?"


"박사에게 거대한 상처를 남기고, 사과하지 못한 채로 1년을 보내버렸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건지 알려줘……"


나는 그때, 샤이닝 씨에게 무엇을 바랬던 걸까.


내 잘못이 아니라는 위로? 분명 박사는 용서해 줄거라는 격려? 내가 잘못을 회개할 수 있다는 훈계?


야속하게도 내게 돌아온 것은,


"뻔뻔하시네요, 니어 씨."


샤이닝 씨의 냉담한 시선과 비난이었다.


"샤, 샤이닝 씨……?"


"니어 씨와 아미야 씨가 저지른 일의 해결책을, 왜 제가 내놓아야 하는거죠?"


"아, 아아……"


"만약 그때의 당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해결책을 원하신다면, 그렇게 나약한 채로 계세요. 그것이 박사께서 무엇보다도 바라는 일일테니까요."


떠나가려는 샤이닝 씨를 붙잡아봤지만, 내 손에 잡혀 남아있는 것은 찢어진 그녀의 검은 로브조각 뿐이었다.


마치 그녀의 검은 로브 넝마가, 나를 비웃듯이 쳐다보는 듯했다.


"……아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참을 수 없었던 난 단검을 빼들고 미친듯이 넝마와 다름없던 로브조각을 난도질했다.


칼집없는 면이 없을 정도로, 흰 바닥에 구멍이 날 정도로, 단검의 끄트머리가 부서질 정도로 찌르고, 찍고, 찢었다.


"불쌍한 사람, 결국 망가져버렸나요……"


샤이닝 씨의 한탄과 함께 발소리가 멀어져도, 나는 끊임없이 웃으며 로브조각을 난도질했다.



***



뿌연 안개가 낀 거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 박사가 묵묵히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박사? 거기서 뭐하는거지?"


그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안 들리나? 박사, 얼간이같이 서 있지 말고 내 근처로 와라."


언성을 높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박사, 리유니온이 안 두려운 거냐? 언제 녀석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내 옆에 붙어있는 게 좋다고."


3번을 말해도 듣지 않자, 답답한 나머지 박사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읏!?"


콰직하고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소방도끼가 나를 향해 매섭게 날아왔다.


"……그 곰녀인가."


그리고, 내 예상대로 갈색머리의 곰녀가 박사의 옆에 나타났다.


"장난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


다들 꿀먹은 벙어리라도 된 건지, 곰녀는 그저 노려볼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 박사를 향해 걸어가자,


내 주위의 시간이 멈춰버렸다.


"떠돌이 산크타……"


분명 몇 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1분이 지나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농담하는 거지?"


박사와 곰녀가 내게서 멀어지고, 나는 아무리 움직이려고 발버둥쳐봐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박사, 박사!!"


그 순간, 눈에 익은 하얀 천장이 보였다.


뭐야, 악몽이었나.


옆에 놓여있던 물병에 남아있던 물을 마시고, 일어나려던 순간 바닥에 떨어져있는 종이가 눈에 띄었다.


"뭐지, 못 보던 종이인데……"


그때의 그 종이를, 찢어버렸어야 했다.


'네 탓에 모두가 불행해져버리고 말았어. 기대해, 네 차례가 오면 진심을 다해서 비웃어 줄테니까.'


붉은색 잉크로 쓴 저주투성이의 종이를 보고,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스와이어인가?


아냐, 스와이어라도 이런 질나쁜 장난은 치지 않을텐데.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감찰팀장님, 일어나셨습니까?"


"아, 그래. 문제없다. 들어오도록."


문이 열리자,


"다행이네. 이제 직접 마주할 수 있어서."


상처투성이, 피투성이에, 두 눈이 없는 호랑이 아가씨가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뭐, 뭐야!?"


"감찰팀장님 덕분에 고통스럽게 죽은 나를, 이제서야 기억하다니 실망인데?"


그때, 모든 기억이 났다.


박사에게 칼로 수많은 상처를 내고, 모두의 추억이 있었던 사진이 있는 액자를 태워버리고, 그에게 극심한 모욕을 해버린 기억,


"아, 아니야…… 이건 꿈이야……!"


그리고,


그런 무고한 박사를 위해 움직였던 스와이어에게 누명을 씌워, 고문을 받다 죽게 만든 기억을.


"감찰팀장님이 드물게 당황하고 있네."


"스, 스와이어…… 말해줘, 이거 꿈이지……? 내가 너를 죽였을 리가……"


부정하고 싶었다.


그때 스와이어의 두 눈을 내 손으로 뽑아버린 그때의 감촉을, 박사에게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죽는 한이 있어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부정하지 말고, 나를 제대로 보라고. "


스와이어가 죽었던 순간의 얼굴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다시 현실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런 짓을 했을리가……!"


"왜, 이제와서 착한 척 코스프레하려고? 박사가 그렇게 괴롭힘당하고 있었던 걸 내가 구해주려고 했을 때, 뭐라고 했는지 너도 알잖아?"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현실일리가 없어.


"박사같은 쓰레기를 구하려고 한 나도 쓰레기라면서 눈알을 뽑아서 죽여버렸잖아?"


"아니야아아아아아아아아!!!!"


크게 소리를 질러도, 스와이어의 목소리가 떠나가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면 뭔가가 달라질 것 같았어? 하긴, 지금 후회하는 너희들 꼬라지가 제일 어울리긴 하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스와이어가 내뱉는 말들 전부,


'현실부정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나? 여기서 박사를 감싸는 사람따위, 개미 한 마리도 없다고!'


'어차피 너는 쓰레기일 뿐이야. 조용히 쓰레기답게 살면 되잖아?'


'이제와서 약자 코스프레나 하는건가?'


'울어봤자 바뀌는 게 있을 것 같았나? 하긴, 지금의 박사는 그렇게 우는 꼬라지가 제일 어울리는군.'


내가 박사에게 했던 매도들이었다.


나는 버티지 못하고 칼을 꺼내들었다.


"박사, 너에게 입혔던 130개의 상처…… 전부 받고 사죄하러 갈게……"


그리고,


하얀 손목에 한 줄씩, 붉은 선을 그어나갔다.


"앞으로, 124개……"


아마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내 손목에 130개의 선이 전부 생기기 전까지는.

-----------------------------

하하 개판이네

그런데 얀붕이들 입맛이 매워서 지금 히로인들 후회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