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사 씨는 사귀는 분이 있으신가요? ]

그 수줍은듯 건넨 짧은 말 한마디는 나를 당황시키기에 분명 충분했다.


평소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진 몰라도 나는 꽤나 눈치가 빠른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앞에 있는 작은 소녀가 내뱉은 말이 어떤 내막을 품고 있는지 정돈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 아니, 사귀고 있다던가.. 그런 사람은 없지만 딱히 누군가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


다소 단호하긴 했지만 이정도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 그렇다면, 저는 어떠신가요! ]

[ 아.. 앗! 아니! 그게 아니라! 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 아니, 아니..! 그게..!! ]


아닐 수도 있고..


그녀의 이름은 비다.

일루미나에 소속된 지뢰매설병으로 일전의 24호 지하성에서 함께 몰려오는 암귀에 대해 맞서 싸웠던 동료 중 한명이다.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보호복을 입고 다니며, 겁이 많은 성격이지만 강한 책임감으로 고위암귀에 맞서 싸운 전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밖에 그녀와 나는 그다지 접점이 될만한 요소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허둥대고 있는 이 소녀에게 한 가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 비다는 강하고 믿음직한 동료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걸 물어보는 이유가 뭐야? ]


이 말을 들은 비다는 마치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눈을 마주치지 못해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 저.. 일전의 전투에서 조종사 씨가 싸우는 모습을 봤어요.. ]

[ 아이테르를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체구에 분명 제대로 싸우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어요.. ]

[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조종사 씨는 분명 강한 신체를 가지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암귀들과 맞서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

[ 그랬기 때문에 저도 비록 작은 몸이지만 제게 소중했던 고아원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암귀와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거구요! ]

[ 저.. 그 때는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워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지만 진정이 된 후부턴 계속해서 조종사 씨가 생각났어요.. ]

[ 그래서 어쩌면 나는 조종사 씨를 좋..아하게.. 되어버린걸까.. 그런걸까.. 싶어서... ]


당돌하게 말을 이어가던 비다는 이내 말끝을 흐리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 중얼거리는 말들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톰한 이마까지 빨개진 얼굴을 보니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내색하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이렇게 적극적인 구애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내 얼굴또한 뜨겁게 달아올라 있음이 느껴졌다.

그 순간에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틀림없이 비다에 버금갈 정도로 빨갛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덩달아 침착함을 유지하려던 의도와는 다르게 나 또한 부끄러움에 못이겨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던 그 때,

저 멀리서부터 우리를 부르는 우렁찬 고함이 들려왔다.


[ 여어- 아이테르 소년! 비다! 둘 다 이런 곳에 있었구만, 식사 시간이다! 늦으면 국물도 안남을 지도 모른다고? ] 

그람 씨였다.

식사 시간에 보이지 않자 우리 둘을 찾으러 오셨던 것 같다.


[ 네! 그람 씨 금방 갈게요! ]

[ 비다, 우선 밥.. 먹으러 갈까? ]


[ 네..! 다들 기다리게 만들어 버렸네요! 어서 가요..! ]


어색해져버린 우린 마치 들키면 안될 것을 들켜버린 것처럼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식당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 ... ] 

[ ... 저기 비다. ]

[ 네! ..네!? ]

[ ...어쩌면.. 나도 좋아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 ]


돌이켜보면 순정을 품고 고백한 소녀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 ... ]


하지만 그 때, 옆에서 내려다 보였던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두 뺨에 띈 미소는 그것이 충분한 대답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정도는 알 수 있지.

나는 눈치가 꽤나 빠른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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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비다 픽업 내줄거라 믿으며

그림이랑 소설 한 필 남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