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휴일.


함대의 운영 및 각종 잡무 담당을 맡고 있는 로열 메이드대의 수장이자 실세라고 불리는 벨파스트. 아름다운 은발과 남자들이 그리던 이상적인 몸매를 그대로 구현한 그녀의 청초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몸매는 가끔 시내에 볼 일이 있어 외출할 때 거리의 남자들의 시선을 그대로 받곤 한다. 하기사 어떤 남자가 그녀를 보고 시선을 뺏기지 않겠냐마는, 그런 그들에게 아쉽게도 오늘은 오랜만의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벨파스트는 외출을 하지 않기로 했다.


외출을 하지 않는 이유라면 하나. 최근 휴일의 낙이 되어버린 바로 '그것'.


담배였다.


아무도 오지 않는 모항의 한적한 장소에서, 느긋하게 바다와 모항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 모금 빠는 담배는 여간 기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근처의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다 보니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피우는 것은 조금 민망하기도 했던 관계로 이렇게 휴일에나마 잠시 시간을 내서 한적한 곳을 찾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익숙하게 느껴지는 한적한 건물 옥상에 올라,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벨파스트는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치이익.


기분 좋은 라이터 소리와 함께 담배 특유의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쉬니, 폐 안쪽까지 담배의 향이 가득찼다.


후우우.


그리고는 연기를 내뿜는 그녀. 길게 이어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왠지 피로와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에서야 알았는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야 모항 곳곳에 재떨이를 배치해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피우고 싶었으나,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그런 건의사항은 올라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격무에 시달린다는 지휘관조차도 비흡연자였으니, 모항 내 유일한 흡연자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몰래 숨어(딱히 범죄는 아니었으나 민망했으므로) 여유를 즐기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하늘 높이 올라가는 하얀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있던 찰나, 어느새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황급히 옆을 돌아보니 지휘관이 있었다.


"주... 주인님?! 오늘은 외출 예정이 아니었는지...?"


"뭐, 그렇긴 한데. 귀찮아서 그냥 오늘은 여기서 쉬려고."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 벨파스트의 질문 아닌 질문에 지휘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그녀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라이터. 있냐?"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벨파스트가 조심스레 라이터를 꺼냈다.


"까먹고 안 갖고 와서 말이야. 고맙다."


그가 품 안에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담뱃갑을 꺼내 벨파스트가 빌려준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담배도 오랜만인걸."


"주인님은 비흡연자가 아니셨는지요?"


"착임과 동시에 끊었는데, 오늘부터 다시 피련다. 격무에 시달리는 해군 장교의 담배피는 모습이라. 좀 멋있지 않냐? 전쟁 영화 같은 걸 보면 다들 맛깔나게 피잖아. 갑자기 생각나서 혹시 담배가 있나 하고 방 안을 뒤져봤는데, 이게 왠 걸. 옛 해군사관학교 시절에 입었던 제복의 안주머니에 그대로 들어있지 뭐냐. 귀찮게 밖에까지 나가서 사 올 필요가 없어져서 다행이었다. 뭐, 제법 세월이 흐른 흔적은 있다만 애초에 담배란 유통기한도 없으니 상관없겠지."


지휘관이 씩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벨, 무슨 고민이길래 이런 곳까지 온 거야?"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 메이드장으로서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겠지요... 로열의 품격이..."


"뭐 어때. 범죄도 아닌데. 하긴. 나야말로 미안하다. 시설 내에 재떨이 하나 배치하지 않았으니. 아무도 안 핀다고 생각했지 뭐냐."


지휘관이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는 로열 녀석들이 가장... 뭐랄까. 품격 품격 하면서도 가장 풀어져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딱히 로열의 품격 어쩌구는 신경 안 써도 된다. 못뚱공 같은 애들도 있고."


"못뚱공...?"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무심코. 포미더블 말이야."


"포미더블 님이 어째서 못뚱공인지요?"


"못생기고 뚱뚱한 공룡이래.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하더라고."


지휘관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 녀석이 못 생긴 건 아니지만, 조지와 함께 함내 부동의 대식가 2명이잖아. 저번에 식사하는 모습을 봤는데 장난이 아니더라고. 못생기고 뚱뚱한 건 왠지모르게 철혈 애들이 퍼뜨린 것 같긴 한데... 공룡은 나도 이해하겠더라. 양이 진짜 장난이 아니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회식을 개최하게 되면 그 녀석은 가능하면 빼 주면 좋겠어. 내 지갑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거든."


"못뚱공... 못뚱공..."


벨파스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허리와 배 부근을 슬쩍 보더니, 지휘관에게 되물었다.


"주인님, 저는 못뚱공이 아니지요?"


"어? 너가 어딜봐서 못뚱공이야. 신경 안 써도 된다."


"그럼 다행입니다만..."


"그보다 벨. 너는 안 피냐? 내 앞에서 그런 예의 차릴 필요 없다. 아까부터 한 모금도 안 빨고 담배만 타 들어가잖아."


"하지만 어떻게 주인님 앞에서 제가..."


"너, 남들한테 보이는 게 민망한 거구나?"


지휘관의 짓궂은 말에 벨파스트가 얼굴을 붉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지휘관이 벨파스트의 왼 손에 들린 피다 만 담배를 뺏었다.


"주... 주인님...?!"


"너 괜찮은 거 피는데. 어디서 구했냐?"


벨파스트가 피다 만 담배를 입에 가져가 한 모금 빠는 지휘관의 모습을 보며 벨파스트의 얼굴이 익은 홍시마냥 빨개졌다.


"아, 담배는 평범한 건가. 그럼 이건 벨파스트의 맛이군."


당당하게 성희롱을 하는 지휘관.

하지만 벨파스트의 반응이 예상 외로 소녀같자, 그 역시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긁으며 사과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 미안하다. 평소 버릇이 나와서 그만. 앞으로는 주의할게."


"아니요. 괜찮습니다. 주인님. 대신..."


벨파스트가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로 지휘관의 왼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붙잡은 그의 왼손을 그대로 입에 가져가, 지휘관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갑작스러운 벨파스트의 행동에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는 지휘관의 얼굴을 보며, 벨파스트가 차분하게 담배 연기와 함께 감상을 내뱉었다.


"이건 주인님의 맛이로군요."


"...맛은?"


"그럭저럭 괜찮네요. 앞으로도 중독될 것 같은 맛입니다."


"어... 응... 고맙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주인님. 부디 즐거운 휴일이 되시길."


벨파스트가 한 층 더 빨개진 얼굴을 필사적으로 숨기며, 우아하게 인사를 올린 후, 그녀는 옥상을 그대로 빠져나갔다.


닫힌 문을 등지고,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했다. 

바보 같은 메이드 같으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람?


하지만 당황한 지휘관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애써 진정시키며, 벨파스트는 아까 전의 우연히 발생한 이벤트를 곱씹었다. 

역시 담배는 좋은 거구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