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양의 진주 (예고편): 싱가포르

두 대양의 진주 (예고편): 도망가지 말레이

두 대양의 진주 (예고편): 동방의 진주 (진)

두 대양의 진주 [1]: 두 대양 사이로 가는 길

두 대양의 진주 [2]: NUS 맛보기

두 대양의 진주 [M1]: 쿠알라룸푸르로의 북진


찬호박입니다. 이어서 쿠알라룸푸르 (1박 2일 중) 2일차 답사기를 올릴 때가 되었군요. 



오늘도 쿠알라룸푸르 시가지에서 출발합니다. 공유 스쿠터가 아무렇게나 놓여진 걸 보면 전세계 공통인 것 같기도 하고요. 




오늘은 행정구역상 쿠알라룸푸르 바깥이지만 많이들 간다던 힌두교의 성지, 바투 동굴로 가봅니다. 

속편하게 그랩을 타도 되지만그래도 바투 동굴 바로 앞까지 전철이 들어가니 그걸 타러 갑니다. 




최근에 개통한 KL MRT 푸트라자야 선으로 환승해줍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푸트라자야 선은 세종시의 모델이기도 했던 쿠알라룸푸르 남쪽 푸트라자야까지 이어주는 전철입니다. 쿠알라룸푸르 도시철도가 전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하단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푸트라자야 선은 사진만 놓고 보면 한국 전철보다도 깔끔하고 널찍해 보이더군요. 


 

KL MRT를 타고 바투 동굴로 가는 KTM 커뮤터를 타기 전입니다. KL 스카이라인이 저 멀리 보이는 걸 보면 벌써부터 꽤 외곽으로 나온 게 느껴집니다. 




사진엔 없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확실히 열차에 힌두교 성지를 방문하는 인도계 사람들,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쿠알라룸푸르 여행을 함께했던, 페낭에 사는 말레이시아 지인은 "분명 쿠알라룸푸르 명소를 가는데 말레이시아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웃더군요. 





성지 앞에 있는 작은 시장과 인파를 뚫으면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 바투 동굴에 도착합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저 272개의 계단은 힌두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저지르는 272가지의 죄들을 상징하는데 저걸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속죄한다고 하는군요. 

그 계단, 지금부터 올라가보겠습니다. 



시바 신의 아들이 바투 동굴을 오르면서 속죄하는 이들을 반깁니다. 




올라가면서 느끼건데, 진짜 천국의 계단 (진)이 따로 없습니다 ㅋㅋㅋ 

사실 올라가면서 인파뿐만 아니라



중간중간에 원숭이 친구들도 불쑥 나타나 길을 막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올라가야죠.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이런 대문을 지나





동굴 안에 사원이 하나 더 있는 구조입니다. 사원에 들어가도 좋았겠지만 계단을 올라오면서 꽤 힘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귀찮은 탓에 안 갔던 걸로...




힘든 것과 별개로 동굴 지형은 그 자체로 꽤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한번쯤 올라와도 될 법합니다. 물론 바투 동굴 올라올 때만 해도 여기는 한번만 와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272개의 계단을 올라온 만큼 높이가 있다 보니 전망은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시바 신의 아들 뒤통수를 곁들인 KL 북부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며 계단을 다시 내려오며, 272개의 죄에 대한 속죄를 끝냅니다. 



바투 동굴과 그 더위는 뒤로 하고 다시 KL 시가지로 돌아갑니다. 



완공은 했지만 아직 개장하지는 않은 메르데카 타워가 보이는 어딘가에




이런 차슈 맛집이 있다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다음 일정 전에 얼른 먹고 갑니다. 




어제는 KLCC와 부킷빈탕에만 있었다면, 이번에는 KL 구시가지 쪽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옛 KL 역과 메르데카 광장이 있는 쪽으로 갑니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미어터지는 차이나타운을 뚫고 갑니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정부청사 건물들을 지나서 구시가지 방면으로 가면





말레이시아 철도청인 KTM 본부와 그 길 건너편에 있는 옛 쿠알라룸푸르 중앙역에 당도합니다. 옛 중앙역은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건데, 10년쯤 전 KL 센트럴 역이 지어지면서 지금은 진짜 중앙역으로서의 위치는 잃었지만 그래도 KTM 커뮤터 열차와 일부 ETS 열차, 그리고 방콕부터 싱가포르까지 이어주는 유서깊은 이스턴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여전히 여기 정차한다고 합니다. 



일요일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들어가 보면 왜 KL 센트럴 역을 새로 지었는지 이해가 되는 비주얼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문화역 서울 284인데 보존이 조금 잘 안 된... 그런 느낌이죠. 



북쪽으로 더 걸어가면 쿠알라룸푸르 원점이 나오는데, 메르데카 광장에 도착했다는 의미입니다. 



메르데카 광장 중앙에는 높이 95m짜리 깃대가 있는데, 이 깃대를 세우는 걸 도와준 게 다름아닌 북한이라죠. 한때는 KL-평양 직항도 있었을 정도로 말레이시아-북한 관계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방증 같습니다. 물론 2017년에 북한 친구들이 최고지도자의 형을 KLIA 한복판에서 암살한 이후 국교가 단절되었지만 말이죠. 



영국령 말라야 총독부로 쓰이던 건물을 지나 메르데카 광장의 중심부로 들어갑니다. 



메르데카는 말레이어로 '독립'이라는 뜻인데, 그 이유는 지금 95m짜리 깃대가 있는 그 자리에서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가 독립을 선포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자리를 이렇게 기념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슬람 국가 아니랄까봐 메르데카 광장 바로 옆에 이렇게 모스크가 있습니다. 




메르데카 광장 바로 옆에 웬 잔디밭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식민지 시절 폴로 경기장이었다 하군요. 역시 누가 전직 영국 식민지 아니랠까봐...



각도를 잘 잡으면 구 말라야 총독부와 메르데카 타워가 같은 프레임 내에서 담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랄까요. 



메르데카 광장에 더 있어도 되었지만 생각보다 날씨도 더웠고 할 게 되게 애매해서 이만 일찌감치 KL 센트럴 역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이로부터 일주일쯤 뒤 다시 오겠지만,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역답게 KL 센트럴도 규모가 상당합니다. 솔직히 서울역보다도 컸던 것 같은...


굳이 KL 센트럴 역에 온 건 다름이 아니라



KLIA까지 직통으로 꽂아주는 KLIA 익스프레스를 타기 위함이죠. 

솔직히 인천공항 공철보다 나은 점은 별로 없어 보이던데 가격은 인천공항 공철 1.5배인 거 보고 이걸 타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편의성은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타기로 합니다. 




그래도 열차는 나름 널찍하고 좋습니다. 크로스시트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GTX A선이 이런 느낌이려나 싶을 정도로 빠르고 정숙성도 좋더군요. 




왜 공항 터미널 초입부터 딘타이펑이 들어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KLIA 2터미널에 도착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겼습니다. 싱가포르까지 가는 스쿠트 항공편이 안그래도 21시 40분 출발이었는데 갑자기 22시 30분 출발로 변경되었더군요. 문제는 이렇게 되면 싱가포르에서 MRT를 못 탈 정도로 늦기 때문에 그랩 때문에 왕창 돈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이 무심하게도 계속 지연되더군요. 



덕분에 이 상태에서 거의 2시간 반을 기다렸습니다. 한번은 승객들이 타다가 갑자기 기계적 문제가 생겼는지 바로 도로 나오더군요. 스쿠트항공 787-9를 타는 게 이렇게도 험난할 줄이야...



엄청 지연을 먹은 덕택에 이륙할 때쯤에는 이미 날이 바뀌어 월요일이 된 상태였고, 이륙하는 순간 마지막으로 보는 KLIA가 한동안은 다시는 아니 보고 싶어질 정도였더군요. 



한 시간쯤 날았던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창이공항에 도착하면서 (1차) 말레이시아 답사기는 끝을 맺게 됩니다. 결국 싱가포르 숙소까지는 그랩을 타고 갔는데, 항공편이 싼 거였는지 그랩이 비싼 건지 결국 항공편 값보다 숙소까지 들어가는 그랩 가격이 더 비싸게 나오더군요... 


마지막에 스쿠트항공의 거의 3시간에 가까운 지연 덕분에 많은 것을 깎아먹었지만, 그래도 초행길이던 쿠알라룸푸르에 이렇게 다녀온 인상은 '혼란스러우면서도 질서정연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느낌이 나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익숙해진 줄 알았던 동남아시아 특유의 정취도 있었습니다. 다만 음식 같은 경우엔 이미 싱가포르에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특색이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다들 말레이시아 하면 코타키나발루를 먼저 가는 이유를 체감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말레이시아에 대한 이런 선입견은 이때로부터 약 일주일쯤 뒤 페낭에 가면서 또 바뀌게 됩니다. 


이상 이틀/사흘(?)간 짧게 다녀온 쿠알라룸푸르 후기였습니다. 싱가포르, 혹은 페낭 이야기가 될 다음 답사기로 찾아오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