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Blackpink


카일은 샤워를 마치고 나온 뒤, 자기 몸의 냄새를 계속 맡아댔다.


"카일, 왜 자꾸 킁킁거리는거야? 강아지도 아니고."

"제 몸에서 실비아 양에게 나는 향기가 나서, 안겨 있는 기분이

들어서 좋습니다. 냄새 맡는 걸 멈출 수가 없네요."

"그, 그거야 같은 샴푸, 같은 바디 워시 써서 그렇지.."


카일은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집에서도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쓰면 항상 실비아 양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 겠군요!"

"발상이 위험한데? 너 진짜 변태같다.. 진짜 의외야."


실비아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이제 항상 나랑 함께 있을건데 굳이 그래야 겠어? 그.. 나도 너한테

나는 냄새, 꽤 좋아하는 편이고.."


카일은 감동받은 표정을 짓더니 실비아를 와락 껴안았다.


"하지만 역시 제 몸에서 나는 실비아 양의 향기보다 오리지날이

훨씬 좋습니다. 입 맞춰도 되겠습니까?"

"무드 깨지니까 그런거 일일이 허락받지 마라잉. 너답긴 하지만."


카일은 눈을 감은 실비아에게 살짝 입맞췄다. 그 이상을 기대한

실비아는 조금 당황했지만, 카일이 미련없이 물러나자 지금껏

변태로 매도했던 자신의 말에 발목이 잡혀 속으로만 화내고 있는 그녀였다. 


"시간도 늦었는데, 자고 갈래?"

"정말로 그러고 싶지만, 지금도 제 이성은 한계입니다. 더 이상 

실비아 양의 유혹을 버틸 자신이 없어요."

".. 참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거든, 멍청아."

"내일이 휴일이었다면, 겁도 없이 그런 말을 한 실비아 양을 

후회하게 만들어 줬을텐데 말입니다."


카일은 옷을 전부 갖춰 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실비아 양."

"조심해서 가. 저기.. 그.. 오늘 좋았어, 정말로."


실비아가 쭈뼛거리며 배웅하자 카일이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뭔가 이렇게 나가니까, 아내를 집에 남겨두고 출근하는 남편

같아서 기분이 묘하게.. 좋습니다."

"웃기네, 잘 가, 내일 봐."


***


행복했던 마법같은 밤이 지난 다음 날, 어제보다 추워진 날씨에

몸을 꽁꽁 싸맨 실비아가 덜덜떨며 출근을 하고 있었다.


"오늘 진짜 미친 듯이 춥네, 미안하다 카일, 내가 어지간하면

민소매 이너 입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


받아 줄 사람 없는 사과를 하던 실비아는 어느 새 익숙해져버린

늘 카일과 마주치는 시간, 늘 마주치는 장소인 마리아 집무실 앞에 섰다.

이제 곧 사무적인 표정의 흑발 미소년이 ..

엥, 금발? 


"두리...안? 네가 왜 여기에?"

"이제 버터남이라고 바꿔불러주는 노력조차 안하는 거냐. 서운하네. 

두리안보단 듣기 나았는데 말이지."

"마리아 아줌마 일정 브리핑은 카일 업무 아니었어?"

"맞지, 원래는. 근데 카일 녀석, 파견 갔거든. 상관한테 업무를 짬때리다니,

얼마나 배은망덕한 부하냐고. 하하하."


파견? 들은 바 없다. 어제 그렇게 오랜 시간 같이 있었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실비아가 너무 충격받은 표정이었는지, 제이크는 

딴에는 달랜다고 이것저것 TMI를 전달해주었다. 수행할 장군이

젊고 예쁜 아가씨 장군님이라는 둥, 몸매가 다이너마이트 급이라는

둥, 차라리 내가 가고 싶었다는 둥. 카일은 행복할 거라는 둥.


그럼 네가 가지 그랬어, 바보 두리안.


"..언제 오는데?"

"음.. 내년쯤?"


실비아는 다리에 힘이 풀릴 뻔 한걸 겨우 버텨냈다. 휘청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가까스로 제이크 앞에서 무너지거나

하진 않았다. 경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상냥한 제이크가 실비아를

붙잡고 괜찮냐는 등의 걱정의 말을 쏟아냈지만 실비아의 귀엔

정확한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빈혈이라 둘러대며 자리를

떴다. 그 녀석이 어제 흘리게 한 피때문에 피가 모자라졌는지도 

모르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고작 늘 있던 녀석이 늘 있던 장소에

없다는 것에 충격받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어딜 감히 갓 사귄 여자친구를 놔두고 장기 파견을 가? 전화로

따끔하게 쏘아 붙여 줘야지.'


항상 재깍재깍 전화를 받는 통에 여태 들어본 적 없던 카일의

통화연결음이 음성사서함 안내 메시지로 바뀔때까지 원없이

듣고나서야, 그가 옆에 없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심심하다.

아니, 그런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그가 보고 싶었다.


"야, 카일. 나 지금 일 안하고 엎드렸다. 너가 뭐라고 안하면

자버릴 거야. 탄산도 두캔 스트레이트로 때릴거야. 빨리 잔소리해."


하지만 대답없는 혼잣말이 될 뿐, 그녀 혼자 쓰는 집무실은 너무나

넓어 보였다. 불현듯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뭣도 모르는 그녀의

몸을 노리고 접근해,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잠적해버리는 비열한

의도 아니었을까? 

아냐, 카일은 그럴 남자가 아니야. 

아니긴, 이제 4일 만났는데 알긴 뭘 알아? 


"아, 진짜. 너 없으니까 이상한 생각만 들잖아.. 빨리 돌아와서

나 좀 안아주고 안심시켜 주라고.."


실비아는 틈틈이 카일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여전히 닿지 않는

카일때문에 점점 불안해졌다. 아무리 파견을 나갔다지만 하나뿐인

여자친구에게 전화 한통, 아니 메시지 한통 못보낼정도인가?

이쯤되면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생각과 잡념을 떨치기 위해, 그녀는 일을 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일, 훨씬 말도 안 되게 많은 일, 무지막지하게 많은 일.

잠을 자면 그와 함께 있는 꿈을 꾸기에 잠도 줄여가며 일했다.


그렇게 강행군 이틀째 아침, 그녀는 사무실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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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두편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