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붉은색으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그와는 대조되게 주위의 소리는 한없이 고요했지만 말이다


"빌어...먹을..."


손에 감아두었던 사슬은 붉은색 페인팅이 곳곳에 되어있다

내 피로 말이다



"일어나십시오 로이 버넷. 그러고도 버넷경의 후배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 망할

훈련중이었지


죽기직전까지 패길래 날 처분하는줄 알았잖아



"나 다리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윽."


연골쪽이 아작난거 같다



"어쩔 수 없군요. 오늘의 근접전투 훈련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죠."


망할 할배의 목소리가 들리자 박살났던 다리가 조금씩 움직여졌다


"이번에는 특별히 아티팩트로 조치했으니 후유증은 적을겁니다."



적어?

그럼 후유증이 있긴 하다는거잖아 망할...



"그럼 상태가 호전되면 연락하십시오."


망할 노인은 그 말을 던지고서는 그대로 이곳을 떠났다

떠날때의 발걸음 소리가 왠지모르게 즐거워보이는건 착각인가



"이게 어딜봐서 훈련이야..."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자 몸은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다리는 완전히 나았고 상체는 아직 남은 상태


그 상태에서 일어나자 근처에서 청색을 내뿜는 물건이 시야에 들어왔다


"은십자가? 이게 아티팩트인가."


실물은 처음보는데


아티팩트


침식체와 이터니움과 함께 나타난 정체불명의 물건

아티팩트에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존재하며 그 중에는 기적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대단한것도 있다고 한다

그와는 반대로 근처에만 있어도 끔찍한 일을 불러일으키는 아티팩트도 차고 넘친다


요컨데, 그냥 상종하지 말아야할 물건이다



"에휴...내 팔자야.."


얼추 몸이 움직여지자, 옷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고서 일어났다


"그럼, 어떻게 할까."


예정보다 훈련이 빨리 끝난덕에 여유시간이 조금 생겼다


마음같아서는 어디 침대에 누워서 쉬고 싶지만 그런짓을 했다가는 두번 다시 못 일어나겠지



"어쩔 수 없나."



아티팩트를 대충 주머니에 넣고서 기관장실로 향했다



===================



프리드웬 기관


정확하게는 4종 객체 격리 기관


대부분 줄여서 기관이라고 부르는 이 곳은 정말 여러가지 아티팩트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유는 사회 혼란방지


나에겐 그런 이유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나쁜 놈들 손에 안들어가게 막는다는걸 왜 그리 장황하게 부풀리는지 참



현대와 르네상스를 반쯤 섞어둔 복도를 지나 하얀색 문이 인상적인 기관장실에 도착했다



노크를 3번하고서 나는 이 방의 주인을 힘껏 불렀다

"야. 도착했어."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문에다가 귀를 살짝 대어보니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야 업무중인가?


그럼 나중에 와야겠네


"바빠보이니 나중에 온다."



그렇게 말하고서 등을 돌려 떠나려던 찰나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오른발로 밟으려던 지면에 나이프가 박혀있었다


"야! 갑자기 무슨 짓이야!"


깜짝 놀라서 다시 기관장실을 보니 문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 성격나쁜 기관장도


"매너를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실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물벼룩."


"그놈의 물벼룩. 너는 어휘능력에 문제가 있는거냐?"


홍차폭탄은 어이없다는투로 말을 받았다


"벌레한테 지적받는날이 오다니 저도 내려오는걸 고민해야겠군요. 그리고, 물벼룩도 당신에게는 과분합니다."


"다짜고짜 칼을 날리는 여자한테 듣고 싶지는 않은데?"



우리 속좁은 기관장은 그 말을 듣자 나이프 4개를 붕붕 띄우며 말했다


"손등과 발등정도면 교훈이 남을지 고민이군요."


"미안하다. 미안해. 이건 뭐 애랑 말..."


슈우웅!


나이프 2개가 추가로 떠오르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좋네요. 입을 다무니 당신의 교양이 2단계는 올라간 느낌이군요."


뭐래

말 했으면 그대로 날렸을거면서


"그래서, 용건이 뭐죠?"


"훈련이 일찍 끝났어. 그리고 겸사겸사 아티팩트도 반납하려고."


"무슨짓이죠 물벼룩?"


내가 주머니에 있던 은십자가모양의 아티팩트를 넘기려고하자, 홍차폭탄이 나를 죽일듯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왜??



"도대체 누가 아티팩트를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하나요? 물벼룩이라 그런지 가진게 없어서 그런가요?"


가진게 없다고?


"야 내가 실수한건 미안한데. 말이 심한거 아니야?'


"뭐가 말이죠? 아티팩트를 조심히 다루라는 교육조차 못 받으셨나요?"


"위험한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날카로워?"


"아티팩트의 위험도를 지금 일개 요원인 물벼룩이 판단한건가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시길."



"그래 미안하다 됐냐?"



"버넷경의 피를 이은거라고는 이해가 안되네요. 같은 유전자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어요."



"야."



"왜 그러시죠?"



"적당히 해라. 사과했잖아."



공기가 무거워진다



"지금 화내신건가요? 물벼룩이?"


참자


내가 참는거야


"미안해. 그러니까 내가 잘못했어."


사과에 기분이 풀린건지 안 풀린건지는 모르겠지만 손에 있는 아티팩트를 가져간 뒤 짧게 대답했다


"가세요. 오후 일정은 그대로 진행하시길."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여자 대하는게 이렇게 힘든건가."


아니 저걸 여자라고 해야하나

그건 넌센스로 남겨두자




-버넷경의 피를 이은거라고는 이해가 안되네요




문득 머릿속으로 방금 팬드래건이 했던 말이 스쳐지나간다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그런 평범한 할아버지


그 할배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다들 한번씩 꼭 입에서 나오는걸까



사실 난 우리집 할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게 아닐까


어차피 여기에 온 이유도 할배에대한 궁금증을 푸는게 포함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뭐만하면 우리집 할배 이름을 말하다니 재수없다



"할배는 어쩌다가 이런곳에 묶인거야."



나는 신세한탄을 하며 훈련장에 도착했다




==================






"진심이야?"



"물론, 너무 쉬운걸 시켜서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하지."


"하..."




사방이 검은색 강철과 붉은 실선으로 이루어진 방에오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기관이라는 녀석들은 날 괴롭히는걸 즐긴다고



"잘 보게. 내가 하는걸 보면 자네도 금방 할거야."



내 옆에는 검은색 롱코트, 그리고 세트로 맞춘건지 한쪽눈에 검은색 안대까지 찬 모건이라는 할배가 시험을 시작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붉은 실선들은 모두 동작감지기다


개미는 커녕 모래한톨 빠져나가기 어려워보이는 구멍들을 어째서인지 힘들어하는 기색없이 전부 통과해버리는 모건




"아 때려치고 싶다."




"잘봤지?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네."




붉은 실선들의 건너편에서는 외눈 할배가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아 참고로 혹시라도 닿으면 라이언과 실시하는 전투 실습이 10분 들어날거라네. 그러니 너무 쉽다고 대충하지는 말도록."



사실 여기는 새디스트들만 모아둔 정신병동이 아닐까?



신참한테 텃세부리는건 뒷골목에서도 일상이지만 첫날부터 대뜸 뒤지라는 소리는 잘 안하는데 말이지...


"에휴 내 팔자야."


눈을 크게 뜨고 빈틈을 찾아본다


오른쪽 벽면 근처에 아슬아슬하게 넘어갈 구멍이 보이네


심호흡을 크게 한다


좋아


까짓거 해보지 뭐



과거에 파이프에 들어갔던 고양이를 꺼내주었던 기억을 되살려 몸을 집어넣는다


좋아 1단계는 성공...




"이런 거기서 멍을 때리면 어쩌나?"



내가 첫번째 라인을 넘어오자마자 갑자기 2번째 줄의 감지센서가 마구잡이로 움직여 내 몸을 감지했다



"일단 10분 추가로군."


"야! 이딴게 어딨어! 당신이 넘어갈때는 움직이지 않았잖아!"



"음? 내가 말해주는걸 깜빡했었군. 동작센서는 일정시간이 지나면 움직이기 시작하지. 그러니 빠르게 나오는게 좋을거야."



"젠장..."


다시 생각해보니 저 할배 꽤 빠르게 지나갔었지...




"좋아. 다시 돌아가게나. 그래도 처음인데 꽤 잘해주었어."



"그 버넷경의 손자치고는 조금 아쉽지만 말이야."



또 할아버지의 이름이 나온다



여기 사람들은 그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죽는병에 걸린건가?




그렇게 나는 장장 2시간 동안 이 빌어먹을 줄피하기에 도전했다



그리고 최고기록은 처음 도착한곳에서 부터 3발자국 앞으로 가는게 끝이었다


덤으로 내일은 하루 종일 망할 흰머리 할배에게 얻어터질거같다



하하하

정말 행복한 일상이네




========================





"조정이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캄캄한 어둠속 으스스한 조명들속에서 한 남성이 나타나 고개를 이 시설의 주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재료'들은 모았나?"


"물론입니다. 재료들의 최종 '손질'만 끝난다면 5일내에 기동가능합니다."


"좋아. 그정도면 충분해."

남자에게 보고를 받던 이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진다


하지만 만져지는건 얼굴이 아닌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 헬멧이었다


헬멧을 쓴 남성이 작게 읆조리자 보고를 하던 남성도 같은 말을 읆조렸다


"인류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리플레이서 신디케이트의 잔당



그들은 이룰 수 없는 목표에 손을 뻗고 있었다




========================







읽어줘서 고맙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