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삽서 멜~ 


싱싱한 멜이 와수다~




알싸한 나물꽃 내음이 바람에 실려 오는 무렵에

할머니네 마루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다 보면

기다란 골목 너머 차들이 지나다니는 큰길에서



팔 물건을 가득 실은 1톤 트럭이 

스피커를 틀어 놓고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경제권이 없었던 당시의 나에겐 그다지 알 바는 아니었지만

가끔씩 그 트럭에 싣고 다니던 것들이 밥상 위에 오르는 일은 있었다.



'멜'은 멸치. 그 중에서도 크기가 큰 대멸을 이르는 제주어다.

나중에 이걸로 조림도 해 먹는다고 듣기는 했지만

고향에서는 주로 국으로 해 먹었다.



멜국은 그다지 난해할 것이 없는 요리다.

흔히 먹는 잘 우러난 멸치국수의 육수 맛에

푸근한 나물(배추)의 단맛이 우러나와

적어도 국물만은 술술 잘도 넘어간다.


그래서인가

이 멸치를 '고향의 맛'이라고 칭하는 것에

나는 별 위화감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사실 고향의 맛이라는 게 마냥 그립기만 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내 경우는 하도 먹어 질려버린 탓에

멸치 국물 들어가는 걸 어디 가서 돈 주고 사먹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물론 할머니가 직접 멸치를 삶아

볶은 애호박과 깨를 듬뿍 얹어주신 멸치국수는

언제고 잘만 먹었지만

어쩌면 서로 비교되고 그런 것이 싫어 일부러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잔치국수라고도 부르는 이 멸치국수는

이렇게 국수 포장지에도 떡하니 박혀 있을 만큼

한식에서 당연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막상 이 멸치에 대한 자료를 역사에서 찾아 보려고 하면

기묘할 정도로 찾기 힘들다.



적당히 찾아 본 소스에서는

말린 멸치로 국물을 내는 것이

해방 전후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함 시작부터 뇌절을 까고

원신에는 있지도 않은 멸치육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일단 멸치라는 물고기에 대한 언급은 잠깐이지만

조선 후기 무렵에 등장한다.

1750년(영조 26년) 에 균역법 시행을 감독하기 위해 각지에서 보고받은 내용을 기록한

균역행람(均役行覽)에서



전라도에서 조사된 어망 중 멸치망(滅致網)은 

어민들의 반찬용 소규모 어구로 취급하여

세금을 매기지 않았다는 언급이 나온다.



김려(金鑢)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서는

말자어(末子魚)라 부르며 생선으로쓰거나 말려서 쓴다 하였고,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추어(鯫魚) 라 칭하여 마찬가지로 말려서도 쓴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허나 지금까지 쓰이는 방식인

니보시(煮干し)로 통용되는 가열후 건조하는 방식은

당시 조선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내용에 근거하여

해당 방식이 이전에 정착되었다고 말하는 의견도 있지만

후술할 일본에서의 멸치 사용과 더불어

앞선 기록들이 대부분 멸치를 적당히 모래톱 같은 곳에 말려

잘 마르면 쓰고 아니면 거름으로 냈다는 진술을 참고하면

적어도 이 방식이 널리 퍼졌다고 단정하기에는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라 보여진다.


아무튼 재미없어진 이야기를 다시 돌려

저 옛날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이 무엇인고 하면


한국에서 멸치는 전혀 인기있는 물고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라에서는 한동안 별 볼 일 없다며 세금도 안 매기고

이름도 그냥 '몰?루 그냥 쬐끄만 고기' 이런 식이고,

먹다 남은 건 바닥에 널어놓고 썩으면 밭에 버리는 그 정도의 위치였다는 거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우선 예로부터 내려온 한식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한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물.

뜨끈하고 푸짐해서 끈적한 쌀밥과 잘 어울리는 국물을 내는 재료 중



부동의 1위는 역시 쇠고기다.


물론 과거에 소는 귀한 취급을 받았지만

뼈까지 푹 고아낸 설렁탕이 서민 음식으로 올라 있는 것처럼



먹을 여건만 되면 어떻게든 먹었고

조리법과 응용도 가장 풍부한 

한식의 근본 국물이 쇠고기다.



그 다음을 잇는 것이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꿩.

수렵으로 비교적 자주 손에 들어왔던 꿩은



비교적 최근까지

설날 떡국의 육수 재료로 정평이 나 있었고,



이마저도 없을 때

대신에 닭을 잡아 끓인다 하여

'꿩 대신 닭'이라는 말 또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즉 한민족의 입맛은 예로부터

고기국물이 근본이었다 이것인데,

정말 이마저도 없으면 멸치로라도 국은 끓여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한식 국물의 로우엔드는 예로부터 조개가 꽉 잡고 있었고



조선 후기 이후에는 북어를 필두로 한 

명태 제품이 시장을 완전히 점령하게 된다.


즉,

멸치가 남해안 쪽에서 좀 잡혔다 한들

저기에 낑겨 들어갈 틈새는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다.


허나 안타깝게도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멸치 말고도 자잘한 생선은 얼마든 있었지만





밴댕이는 왕실은 물론 

저 멀리 중국 조정에서도 찾을 만큼 인기 있는 생선이었고




청어며 정어리도 값은 헐하지만 맛좋은 생선으로

요긴한 찬거리 취급을 받았다.


멸치가 이 라인에도 끼지 못했던 건 다름 아닌 

성분에 있다.



싱싱한 멸치의 100그램 당 지방 함량은

2.9 그램.



상술한 밴댕이는 16.5그램으로

약 5.6배.



가을의 별미로 꼽히는 전어가 8.48g(2.9배)




징어리쌈밥으로 엮이는 정어리는

10.45g(3.6배)



인류 근본식량 청어로 넘어가면 30.16g

무려 10배가 넘어간다.



육수 재료로 경쟁력이 없으면 

생물이라도 꼬소하니 기름져서 맛이 나야 하는데



생멸 요리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런 맛이랑은 거리가 좀 먼 게 멸치라는 생선이다.


그래서 멸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혀졌다.



가끔 연안 등지에서 삼태기로 퍼내야 할 만큼 잡히긴 했지만

아무도 멀쩡한 이름을 붙여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는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보자.


일본에서는 멸치가 밥상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글쎄올시다 다.



시마즈 시게히데( 島津重豪 ) 대에 저술된 농서

성형도설( 成形図説 )의 묘사에 따르면

당시 멸치 어획이 매우 중요시 되었던 것은 맞는데,



각 다이묘(大名)들의 권력이 농업 생산량(고쿠다카, 石高)으로 정해졌던 동시대에

멸치는 대부분 식재료가 아닌 

더 많은 쌀 생산을 위한 비료로 소비되고 있었다.



사실 일본 하면 가쓰오부시를 필두로

말린 생선으로 국물을 낸다는 다시(だし)를 쉽게 떠올리는데



불과 1900년대 초

카츠라 하츠단지(桂初団治)가 창작한 라쿠고

요리아이자케(寄合酒)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어이, 다시국물 다 됐으면 빨리 가져와라."


"여기 가지고 왔소."


"어라, 국물은 어디로 가고 건더기만 건져 왔어?"


"고기를 바글바글 끓여서 국물은 뭣에 쓴대?

끓여논 게 아까워서 훈도시나 담궈 놨소."


평소 다시국물이라곤 접해본 적 없는 남정네가

난데없이 가쓰오부시 한덩어리를 넘겨받고는

그것을 펄펄 끓여 건더기만 건져 내고

국물에는 속옷을 담가 버렸다- 라는 이야기이다.



일식에 다시가 침투한 것은

에도 막부의 집권과 함께 꽤 오래된 일이지만


이게 일반 가정까지 널리 전파되기까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서민들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생각되는 다시 요리가




장사꾼들이 이런 포장마차를 직접 메고 다니며 팔았다는 국수 요리.



삶아 놓은 메밀면에 뜨거운 츠유다시를 부은

가케소바(かけそば)가 그것이다.



물론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갓 삶아 탱탱한 면을

진하고 감칠맛 나는 츠유에 찍어 먹는 자루소바(ざるそば)나 모리소바(もりそば)를 더 선호하긴 했다.



원신에 등장하는 버전은

용기의 형태나 김 고명이 올라간 점을 보면

자루소바에 가깝다고 여겨지지만



요즘은 뭐 부르는 게 모호해진 모양이니

모리든 자루든 적당히 부르면 될 것 같다.


이야기를 다시 멸치 이야기로 되돌려 오자면



강화도 조약 이후 별도로 체결된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의 영향으로

일본의 어민들이 조선의 바다로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당시 조선 해역에서 가장 환금성이 좋았던 것은

일본의 인기 횟감인 도미.


하지만 이 도미 어업에는 큰 문제가 있었는데



신선함이 생명인 횟감은

조선의 관청에서 절차를 거친 후 일본으로 도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상해버리기 일쑤였고


그렇다고 조선에서 팔기에는 

도미가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생선이 아니었다.



때문에 몇몇 일본인들은 다른 물고기에 눈을 돌린다.



니보시(煮干し)라고 부르는

먼저 삶고 말리는 공정을 거친 멸치는

상할 걱정 없이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고

설령 상한다 해도 그 중 대부분은 어유(魚油)나 비료를 만드는 데에 쓰여질 터였다.



거제도 등지에 멸치 어획과 가공을 위한 해양 기지가 조성되었고



진해 앞바다를 비롯한 일대 어장이 고갈될 만큼

일제는 조선의 멸치를 많이도 퍼다 날랐다.



아이러니하게도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한 건

조선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과도 운명이 닮아 있는

바다의 멸치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후 한동안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멸치는

민족이 큰 고난을 버텨내고 나서야

다시 고개를 들 수 있게 된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대한민국에

미국의 주도로 대량의 밀가루가 흘러들고




여러 사정으로 귀해진 쌀 대신

사람들은 밀가루로 된 음식을 점차 받아들여야만 했다.



와중에 과거 귀한 음식에 속했던 밀국수가 흔해진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었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쇠고기 육수나 김칫국물을 쓴 국수가 익숙했지만

고기는 너무 비쌌고, 김칫국물은 외식을 위한 대량 조리에는 뭔가 미묘했다.


이 감칠맛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대상그룹의 미원과

제일제당의 미풍이 피튀기는 기업전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별 차이가 없는 제품인 만큼

후발주자인 미풍이 힘겹게 밀리고 있던 와중


제일제당이 싸움의 판도를 바꿀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게 된다.




아지노모토의 자리를 차지한 미원에 정면승부하는 대신

동사의 혼다시를 벤치마킹한 다시다를 개발하여

마침내 대상그룹을 점유율에서 앞서는 데에 성공한다.


여기서 저 생선 포장지의 다시다가 훗날 개량되어 나온 것이



이 뭔가 낯선 고향의 맛.


거기에 정부도 멸치와 다시다의 등을 살짝 밀어준 것이



분식 장려 운동의 영향으로

밀가루 메뉴를 꼭 넣어야 했던 식당들이

값싼 면과 손쉬운 조미료에 큰 매력을 느끼는 건 이상할 것이 없었다.




쇠고기 가루를 부어 식히면 냉면이 되고,

멸치 가루를 부어 끓이면 잔치국수가 된다.

지금도 웬만한 고기집에 이 두 메뉴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그냥 같이 먹으면 맛있기 때문인 것 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이후 멸치를 많이 쓰는 남도 지방의 요리가 

한정식 붐을 타며 주류에 도전하게 되고


멸치는 마른멸치 뿐만 아니라

젓갈이 되어 김치에 들어가거나

소스로 활용되는 등





멸치는 당당히 한국인의 맛으로 서게 된다.



함께 끓여 육수와 고기를 같이 먹는 고기나 명태 대신


마른 생선으로 감칠맛만을 뽑아내는 방식은

일식과의 관련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사하게도 일본에서도 전후 미국에서 흘러든 밀가루가



제법 귀했던 흰 면발 요리를 널리 퍼지게 만들었는데



소바는 비교적 비싼 자루소바가 보통이 되고

우동은 가장 단출한 카케우동(かけうどん)이 보통이 된 걸 보면

음식이란 역시 시대에 따라 돌고 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돌고 돈 것은 하나 더 있다.



이전에 치치 특집에서 다룬 탕육사면과



이가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흡수된 나가사키 짬뽕.


이것을 시작으로 고기와는 인연이 적던 일본에도

고기 육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이 중 돼지뼈를 푹 우려낸 돈코츠(豚骨)의 맛도

일본인들의 유전자에 각인되는 '일본의 맛'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멸치로 시작한 국물 여행은 한 가지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심혈을 기울여 다시육수를 달여내는 한국인과




고기국물에 밥을 말아 든든히 배를 채우는 일본인.




어느 새 이 둘을 구분하기가 힘들어지고 만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알고 복잡한 감정을 품지만

파고들면 비슷한 감칠맛에 도달하는 인간.


하나하나 모두 다르지만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따끈한 국물의 이야기.


차이를 연구한 끝에 모두가 같음에 도달하는 과정이

어쩌면 문화를 공부하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요약하자.


1. 이것저것 사연은 많지만 멸치는 엄연한 한식의 맛이다.

2. 자루소바, 카케우동, 돈코츠 라멘이 원신 내에 존재한다.

3. 사실 원신 얘기는 거의 없지만 멸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음.



바람신의 잡채 편


달빛 파이 편


탕수어 편


몬드 감자전 편


일몰 열매 편


경단 우유 편


2021 결산 편


용수면 외 편


강자의 길(야채 볶음면) 편


생선 무조림 편


세계 평화 편


흥얼채 편


새우살 볶음 편


아루 비빔밥 편


풍요로운 한 해 편


타친과 오차즈케 편











뻑큐 아님




끝으로

이번 뇌절을 매듭짓기 위한

긴 여정을 기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