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스압 주의.

























이 시리즈를 만들다 보니 드는 의문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원신이 원본 음식을 숨기지 않는다. 

이름 같은 것도 안 바꾸고 그냥 원본대로 낸다고.

그러다 보니 기원 조사는 사실상 핑계고 그냥 음식 썰이 중심이 되어 가고 있는데

뭐 사실 그냥 재밌으면 그만 아닐까?


암튼 오늘은 준비된 게 많으니 후딱 시작하자.




시작은 폰타인의 빵디가 대단한 공작 되시겠다.

여캐가 없는 것도 아닌 폰타인에서 왜 얘가 빵디 원탑인지는 말하면 슬퍼지니까 넘어가고

얘가 만드는 요리를 보자.



고기다. 그것도 구운 고기. 등갈비라고 친절하게 부위도 정해 줬다. 



안 그래도 고기 잘 먹는 서양에서 등갈비라고 버릴 리가 있나. 

등갈비에 양념을 발라 구워내는 요리는 세계 어디에나 있고, 그 중에서도 스티키 립스(Sticky ribs)라고 부르는 폭찹 바베큐 요리가 설명과 잘 들어맞지.



다만, 요리 비주얼에 있어서는 조금 꼬롬해. 등갈비라고 했을 때 흔히 생각하는 돼지 등갈비는 저런 모양으로 나오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저런 모양으로 흔히 먹는 부위는 따로 있어.




프라임 립(Prime rib), 또는 스탠딩 립(Standing rib)이라고 부르는 소의 등심-갈비 부위가 이런 모양에 얼추 맞아. 

또한 차에 집착하는 라이오슬리의 성격과 메로피드 요새의 테마를 고려하면 이건 영국의 로스트 비프. 그 중에서도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일 가능성이 높지.



종교가 만들어 낸 발명품 중 하나가 휴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적절한 휴식이 오히려 일의 능률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근대 이전의 지식 수준에서는 그다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지만, 안식일(安息日)이란 교리를 내세워 조금 무리하게라도 공휴일을 도입했던 종교는 오랜 기간, 미천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지.


아무튼 모처럼의 쉬는 날인데 먹는 것도 뭔가 평소보다 잘 먹고 싶었겠지? 그치만 귀한 휴일에 음식 장만으로 시간 보내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래서 조리 시간 자체는 오래 걸리지만, 손은 비교적 덜 가는 요리법을 쓰기로 했어. 



푸줏간에서 떼 온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적당히 달궈진 화덕에 넣은 뒤, 고대로 예배를 보러 가는 거지.

예배 겸 가족 나들이까지 해서 한 서너 시간 때우고 오면, 화덕 안에 넣어 둔 고깃덩이는 속까지 제법 그럴싸하게 익어 있어.

덤으로 같이 넣어 둔 야채나 요크셔 푸딩(Yorkshire pudding)도 고기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육즙을 머금어 한층 풍부한 맛을 띄고 말이야.



이걸 그대로 식탁에 올리기만 하면, 즐거운 휴일에 어울리는 호사스러운 로스트 디너(Roast Dinner)가 완성되는 거고.



요리의 설명 부분은 폭찹 바베큐에 가까워 보이지만, 비주얼 쪽은 이 로스트 쪽을 더 많이 따른 것 같아.

로스트 하면 흔히 떠오르는 쇠고기일 수도 있고, 더욱 흡사한 비주얼의 양갈비일 수도 있지만 일단 오븐에 구워내는 건 거의 확실하고. 


덤으로 요리 설명에서 언급되는 '유행하는 어떤 조미료'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섬세한 정성을 들였지만 평범한 수프와 맛이 비슷한 느비예트와의 성격적 유사점을 부각하려는 표현이거나



영국의 유명한 소스인 우스터, HP소스를 그저 끼얹었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영국 쪽 테마인 만큼 난 후자라고 생각함.


그래서 라이오슬리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이제부터는 메인 컨텐츠인 뇌절을 시작해 보도록 하자.


바베큐 이야기도 나왔겠다, 오늘은 국뽕 한사발 들이키고 코리안 BBQ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고.



고기를 구워먹는 요리야 전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식탁 한가운데 불을 놓고 실시간으로 조리하며 먹는 문화는 좀처럼 보기 힘들지.

그야 불은 뜨겁고, 연기도 나고, 일일이 구우려면 귀찮기도 하고, 집 안에 냄새가 배는 걸 넘어서 자칫하면 온 집안 살림살이 태워먹기도 딱 좋으니까.



유명한 한국의 고기구이인 맥적(貊炙), 설하멱(雪下覓), 너비아니 등도 다들 주방이나 마당에서 따로 구워 공수하는 방식이었지.





그러다 조선시대 들어 전립투(氈笠套)라는 그릇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어.

바깥쪽의 챙에 고기를 굽고, 가운데에는 기름받이 겸 육수를 끓이는 냄비가 달린 구조지.



이게 조선 시대의 군모였던 전립(戰笠)을 본따 제작된 식기인 것은 확실한데, 실제 전립에 저렇게 고기를 구워 먹었을까에 대한 의견은 분분해.




일단 전립이 한때 금속으로 만들어지긴 했었어. 이게 무거워서 실용성이 없다는 주장도 서양의 케틀햇(Kettlehat)이나 일본의 진가사(陣笠) 등의 예를 들어 반박할 수 있고. 실제로는 이런 첨주형 투구가 구조가 섬세해서 뭐 해먹기 상당히 애매하긴 했겠지만, 이론적으로 가능은 했다는 이야기.


이게 따로 부엌을 갖출 필요 없이 화로에 그릇만 올려놓으면 돼서 상당히 편리한 조리법이긴 했는데...지금도 그렇지만 조리가 편하다고 고기 자체가 저렴해 지는 건 아니지.

예나 지금이나 쇠고기는 귀하고 비싼 고기. 돈 있는 양반, 유생들이나 회식 개념으로 먹는 정도지, 가난한 서민들은 설렁탕이나 국밥에 고기 몇 점 딸려 나오면 엄청 잘 먹는 편이었어. 널리 퍼지긴 했는데, 대중음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는 거지.



나중에 일제강점기로 나라를 빼앗기고 해방 후 6.25를 거치며 전체적으로 국력이 떡락해 버린 탓에, 한국의 식문화는 가장 위부터 싹둑 잘려 버리게 돼. 

고기 요리도 설렁탕, 냉면 정도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물자도 귀한 판에 비싼 소고기를 듬뿍 썰어 구워 먹는다는 건 생각도 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한국의 고기 구이는, 엉뚱하게도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 한인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어.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일본은 고기를 잘 먹지 않았어.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과 함께 금육령이 해제되면서, 하드웨어도 서양처럼 되고 싶었던 일본 조정은 일부러 백성들에게 육식을 하도록 권했어.





이로 인해 탄생한 요리가 고로케, 카레라이스, 돈까스. 

고기를 먹는 버릇이 들지 않아 육향 자체를 거북해했던 일본인들이 쉽게 육식을 받아들이도록 고안한 요리였지.




그리고 의외로 스키야끼도 있어. 본래는 철이 귀했던 일본에서 그나마 있는 철판인 가래(すき, 스키)에 생선이나 야생 동물 고기를 익혀 먹는 전골이었는데, 메이지 일왕이 솔선해서 규나베(牛鍋)를 먹는 등 육식을 장려하자, 여기에도 소고기가 들어가기 시작한 거지.



이렇게 일본에서 육식이 점차 자리잡아 가고 있던 참에, 

재일 한인들도 손에 들어오게 된 고기로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보려는 욕구가 생겼겠지.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야키니쿠(燒肉)의 인기는 생각보다 영 신통치 않았어.

일본인들의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였냐면, 육식 장려를 위해 공개적으로 고기를 먹었던 일왕의 궁궐에 일본의 정신(?)을 더럽혔다며 자객이 난입할 정도였다고.

그런 일본인들에게 별다른 가공도 거치지 않은 시뻘건 고기를 직접 구워 먹어라?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지.



거기다 그 당시까진 아직 축산업과 육가공 등의 인프라가 덜 깔려 있었기 때문에, 재일 한인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부위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내장을 비롯한 비선호 부위.

한국인들에게도 호불호가 갈리는 이것들을 함 무봐라 하고 츄라이했던 탓에, 지금도 일본에서는 야키니쿠라고 하면 호루몬(ホルモン, 내장) 구이를 먼저 떠올리며 괴식 취급하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어.


결정적으로 화로구이라는 방식은 야유회나 개방형 식당 등에서나 쓸만하지, 대도시의 좁아터진 요식업장에서 하다가는 안 그래도 목조 건물이 많은 그 동네에서 불내기 딱 좋은 방식이었다고.

그렇게 고기구이는, 한국에서 건너온 많이 특이한 음식 정도의 인식을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어.




그러다 1970년대, 일본의 기업 신포가 무연 로스터기를 개발하고

이후에도 전기 그릴이나 공조 시스템이 개발되며 고기구이가 가진 불편한 점들이 점차 개선이 되어 갔고


굽는 부위도 비교적 호불호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등심(ロース,로스)위주로 단짠 양념과 함께 내면서, 야키니쿠는 일본 대중들에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했어.



오사카의 쇼쿠도오엔(食道園, 식도원)을 필두로 일본 전역에 속속 퍼지기 시작한 고기구이는 특별한 날에 먹는 호사스런 외식 메뉴로 입지를 든든히 굳혀갈 수 있었고,


마침내 고향인 한반도로 다시 건너갈 채비를 하게 되었지.



1960년대 이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규모 경제 성장을 이루며, 식생활도 그에 따라 가파르게 개선되어 갔어.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은 건, 그 동안 못 먹은 고기. 그 중에서도 쇠고기를 원 없이 먹는 것이었지. 




당시 한국은 불고기의 시대였어. 얇게 저민 소고기를 양념에 재었다 굽는 방식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근본 있는 방식인 동시에, 바다 건너 일본의 스키야키 조리법도 일부 받아들이는 다채로운 변형이 가능했거든.

짭짤하니 밥반찬으로 맛도 좋고, 여러 부재료를 곁들이면 가성비도 좋아 가정식으로도 사랑받았어.


이렇게 익숙한 맛도 물론 좋지.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좀 나아진 한국인들은 그 동안 아득하게 우러러보기만 했던, 멀지만 가까운 어떤 나라의 식문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



바로 미국.

수탈과 전쟁으로 박살이 난 나라의 재건과 부흥을 지원했던 바다 건너 부유한 나라는, 그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았던 입장에서는 장래희망 같은 목표였거든.




대도시에 살면서 한적한 교외의 마당 딸린 집에서 살며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스포츠 경기를 보고, 정원에서 이웃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는 전형적인 중산층(commonwealth)의 삶. 



그 바비큐 파티에서 구워지는 고기는 복잡한 양념 없이 크고 두껍게 썰어, 소금 정도만 뿌려서 굽는 방식이었지.



마침 일본에서 재정비를 마친 고기구이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어. 앞서 언급한 로스터나 전기그릴 덕분에 창업컷이 굉장히 널널해진 고기구이는 불고기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던 외식업계를 순식간에 양분했고, 일본어 로스(ロース), 또는 서양의 로스트(Roast)를 따와 로스구이라고 불렸지.


익숙했던 불고기에 비하면 두껍고, 고기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로스구이는 한국인들이 동경하던 '미국 바비큐'에 가까웠어. 

거기다 대부분 아파트에 살았던 한국의 메트로폴리탄들에게 정원에서의 바비큐 파티는 여러 모로 무리였고, 

대신 로스구이를 파는 식당들이 한적한 교외에 호화로운 정원까지 꾸며 놓고, 손님들을 위한 '가든 파티'의 장소로 변화하게 되었지.





이렇게 1980년대 무렵 소등심과 생갈비, 양념갈비 등을 주력으로 팔았던 '가든'이 전국 각지에 들어서게 되지.

환난을 피해 타국에서 명맥을 이어 오던 한국의 음식이 더욱 먼 나라의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마침내 고향에서 제 자리를 찾게 된 거야.


자, 이렇게 한국의 즉석 고기구이 이야기 한 단원이 끝났는데

뭔가 좀 아쉽지? 코리안 BBQ 라고 했을 때 떠올랐던 그게 없잖아.




바로 이거.


지금부터 2교시로 들어간다. 이번 과목은 돼지. 지금부터 돼지 삼겹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알면 알수록 돼지는 참 흥미로운 동물이야. 인간과 식성이 겹치는 데다 소나 말, 양 같은 초식 동물보다 환경에 더욱 취약하며, 노동력도 거의 제공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먹이만 공급해 주면 엄청난 속도로 살이 붙고, 번식력은 그 쥐보다 약간 못한 정도로 그 덩치를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수준. 고기 원툴인 대신, 고기 하나만큼은 끝장나게 생산 가능한 그야말로 고기 만드는 기계라고 할 수 있지.



이거 말고도 돼지의 인상적인 특징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루팅(rooting).



겜돌이들이라면 익숙한 이런 활동의 어원이 된 행동으로, 돼지는 그 상징과도 같은 길고 뭉툭한 코로 땅을 헤집으며 그게 뭐든 간에, 먹을 것을 찾지.


이런 습성 덕에 돼지는 인류 사회에서 아주 특이한 역할 하나를 부여 받게 되는데, 

바로 도시의 '생체 필터'야.



돼지는 깨어 있는 동안 하루 종일 흙을 헤집으며 먹을 것을 찾는데, 잡식성인 만큼 이 녀석들의 '먹을 것'에 대한 기준은 정말 널널해. 그게 음식이든, 한 때 '음식이었던 것'이든. 뭐든지 집어삼켜 고기로 만드는 게 고기 원툴 돼지의 유니크한 능력이니까.



하지만 이런 능력이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해.

가축에게 뭘 먹이든 고기의 영양에는 큰 상관이 없지만, 맛과 향에는 제법 큰 영향을 끼치거든.

특히 향을 내는 성분들은 생체의 칼로리 저장소인 지방층. 즉 비계에 중점적으로 모여 쌓이게 되는데

유럽 지방에서 도토리를 먹여 키운 이베리코 돼지가 특이한 풍미를 내는 것도 이 비계의 역할이 크지.



아무튼 시골에서 농작물 자투리 정도나 먹이던 돼지야 그렇다 쳐도

도시에서 오만 농축된 폐기물을 필터처럼 빨아들인 돼지고기의 맛은 어떨까?

누구든 별로 먹고 싶진 않을 거야.


이런 이유로, 대도시를 형성한 많은 문화권에서 돼지고기는 한동안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어.

뭐 다른 오컬트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말로 '쓰레기처럼' 맛이 없었으니까. 



거기다 수퇘지 특유의 누린내까지 더해지면, 그 돼지 좋아하는 중국에서도 튀기고 조리고 온갖 처리를 다 해야만 먹을 엄두가 나는 물건이 나오는 거고.




그래도 완전히 하수구에 굴리는 정도만 아니면 그럭저럭 먹을 만 한 품질은 나왔기에, 세계 각지에서 돼지고기는 쇠고기나 양고기보다는 못하지만 기름진 맛에 먹는 가성비픽으로는 치는 편이었어.




한편 중세 한국에서는 주로 중국 사신들 접대하는 용도로 소량만 사육하거나 마을 짬돼지로 키우다가 살이 오르면 도축, 추렴하는 방식이라 딱히 부위를 가리고 그러진 않은 것 같아. 

조선 말 순조 무렵에 임금이 냉면과 '돼지 수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나오고 1930년대 신문에 '세겹살'이라는 표현이 잠깐 등장했지만, 한국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쇠고기. 그 아래로 꿩고기, 닭고기 등을 제껴야 겨우 돼지가 오는 정도였지.



이런 상황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를 넘어, 한바탕 전쟁이 끝난 60년대 초까지 이어져.

이때까지 돼지고기는 부위의 개념도 딱히 없었고, 장국에 삶아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리법도 연구되지 않았어. 그나마 누린내가 덜한 암퇘지 쪽이 낫다는 정도만 알려졌고.



하지만 당시 식량 정책을 궁리하던 정부 사람들에게 돼지는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가축이었어.



경제 규모가 커지고 대도시가 형성되면, 소득이 높아진 도시민들은 필연적으로 고기를 찾게 되지. 

이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게 되고, 식품 물가의 급격한 상승은 그 형태를 막론하고 정부 체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돼.


따라서 커지는 도시에 충분한 고기를 공급하는 건 정치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 

한국의 경우에는 부동의 인기 원탑인 쇠고기 생산량을 높이는 게 가장 시급했지.


그런데 소의 대규모 사육은 돼지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았어.




위가 여러 개 달린 반추형 동물인 소는 풀 위주로 3년 가까이 먹여야 하고, 새끼도 어지간해선 한 해에 한 마리 이상 낳지 않아. 

반면 돼지는 한 해에 20마리 이상의 새끼를 얻을 수 있고, 곡물 위주의 식사로 6개월이면 도축이 가능해.

일단 여기서부터 몬가 체급의 차이가 확 나지?



거기다 마침 한국에는 농업 정책 탓에 남아도는 콩과 옥수수를 온갖 구실을 붙여 밀어내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고, 이것들을 싸게 사들여 농장에 퍼부으면 엄청난 양의 고기를 쑥쑥 뽑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


이런 계산으로 정부의 주도 하에 삼성, 하림, 사조 등 알만한 대기업들이 일제히 양돈 사업에 뛰어들었어. 기존의 잔반, 인분 중심이었던 사료도 싹 재편해 곡식과 깻묵이 든 조제 사료를 먹이기 시작했고, 수퇘지 특유의 누린내는 거세 처치로 없애는 게 가능했지.



이렇게 생산된 돼지고기는 정형 후 곧바로 냉동해 일본, 홍콩 등지로 수출되었어.

특히 이제 막 고기에 맛을 들이면서 전 세계의 고기를 마구 빨아들이고 있던 일본 시장은 아주 좋은 고객. 특히 돈까스와 샤브샤브용 등심과 안심, 뒷다리살 등이 인기가 좋았지.


하지만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런 구조는 급격히 삐걱거리기 시작했어.

일본 내 양돈 산업의 성장, 선호 부위의 편중 등으로 일본으로의 돼지고기 수출은 심각한 불안 요소가 생겨버린 거야.




거기에 더불어 1976년, 한국 내의 쇠고기 공급이 수요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면서 

값이 많게는 50%씩 폭등하는 '1차 쇠고기 파동'이 발생하게 되지.

수출이 주력이던 돼지고기도 거기에 덩달아 값이 치솟는 가운데, 정부는 아무리 돈이 되더라도 리스크가 큰 돼지고기 수출은 사실상 중단해 버리기로 결정하고, 비교적 통제할 수 있는 국내 시장 쪽의 의존도를 높이기로 생각하지.




마침 일본에서 돌아온 로스구이 붐으로 식당 창업의 인프라는 잘 닦여 있었어. 여기에 이것저것 원가 절감을 더해 기존의 '가든'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외식을 할 수 있는 식육식당을 육성하고, 유명한 '광부 삼겹살' 썰을 비롯해 냄새 안 나고 맛있는 돼지고기에 대한 홍보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어.



돼지고기 로스구이 중 가장 호평을 받은 부위는 갈비와 삼겹살. 특히 돼지갈비는 가든 열풍에도 어느 정도 편승하며 고급 부위로 자리매김하지만, 삼겹살은 그에 비하면 입지가 조금 애매했지. 



해외 수출 때의 시스템과 상온에서 빨리 변질되는 돼지고기의 특성 탓에 삼겹살은 냉동 상태로 유통되는 일이 태반이었고, 기름이 엄청나게 떨어지기 때문에 기존 로스구이의 철망형 석쇠도 사용 불가.

결국 듬성듬성 썬 냉동 삼겹살을 알루미늄 호일 위에서 구워 먹는 방식이 주가 되었는데, 직화로 숯불향 듬뿍 머금은 등심이나 갈비구이에 비하면 아무래도 좀 급이 낮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


이러던 삼겹살이 다른 부위 다 제치고 식육 메뉴 1등을 먹게 된 건 다름아닌 또 하나의 발명품 덕분이야.



1969년, 일본의 후지카공업에서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블루 스타(Blue Star)가 등장해.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80년에 이 제품은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고, 블루 스타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은 이름.



부루스타(ブルースタ)로 알려지게 돼.


앞서 '가든'이 등장한 배경에서, 사람들이 집에서 가든 파티를 하기엔 영 힘들다고 이야기했었지? 그 이유 중 하나가 불 때문이야. 야외에 전기를 깔 수도 없고, 나무나 숯을 쓰는 그릴은 너무 무겁고 번거롭잖아?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이 불 문제를 아주 간편하게 해결해 주었지.

마당이 있는 집은 마당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공원이나 계곡 등 야외로 나가 고기를 구워 먹는 '코리안 가든 파티'의 시대가 마침내 열리게 된 거야.

여기에 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은 야외 로스구이에 안성맞춤인 재료로 선택받으면서 마침내 한국에서 삼겹살은 전성시대를 맞게 되지.



언제 어디서나, 특별한 요리 스킬이 없어도 맛있게.

최근에는 한국만의 특별한 문화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코리안 바베큐는 이런 여정을 거치며 우리의 식탁까지 올라왔어.



한때 쇠고기 대신 먹는 싸구려 취급을 받던 삼겹살은 이제 없어서 못 먹는 외식의 대표주자가 되었고.

이 모든 것이 단지 한국 내에서만이 아닌, 여러 나라의 문화와 발명이 섞이고 보완되며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음식의 기원과 역사를 탐구하는 일은 여러 가지 접근법이 존재하고, 아무리 아는 게 많은 사람이라도 자칫하면 통일성과 일관성의 함정에 빠질 수가 있어.

한 사건을 둘러싼 여러 복잡한 사정들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 하거나, 사료가 미비한 부분을 그럴싸한 스토리로 채우려는 유혹은 언제나 존재하지.

당장 이 글도 그런 요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몇몇 부분에서는 읽는 재미를 위해 설명을 축약, 첨가한 부분도 상당히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일러 둔다. 어디까지나 이 시리즈는 원신 이야기를 핑계로 재미를 위해 쓰여지고 있고, 자료는 인터넷과 단행본 등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매체에서 인용되었기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면 언제든 '구글의 힘'을 쓰도록 하자.




끝으로 도서관에 자주 드나든다면, 자료 조사 과정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책 두 권을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왜 돼지만 있냐면 처음엔 삼겹살만 다루려고 하다가 뇌절해서 로스구이까지 해서 그럼. 암튼 돼지책은 재밌음.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요약하자.


1. 특제 소스 등갈비 바비큐 의 원본은 폭찹 바베큐, 또는 선데이 로스트.

2. 특제 소스라는 건 영국의 우스터 소스나 HP소스일 가능성이 큼.

3. 나머지는 원신이랑 딱히 상관이 없지만 재밌으면 괜찮지 않을까?







바람신의 잡채 편


달빛 파이 편


탕수어 편


몬드 감자전 편


일몰 열매 편


경단 우유 편


2021 결산 편


용수면 외 편


강자의 길(야채 볶음면) 편


생선 무조림 편


세계 평화 편


흥얼채 편


새우살 볶음 편


아루 비빔밥 편


풍요로운 한 해 편


타친과 오차즈케 편


멸치 편


코코넛 숯탄 전병 편


일몰 붕어빵 편


돈까스 편


롤케이크 편(몰루아카)


폰타인 특제요리 편


가이세키, 오세치 편(몰?루)


폰타인 수프, 디저트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