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전에 대충 설명




사령관-매즈 미켈슨, 중년건장한 체격, 요리사(한니발 렉터), 전략전술 뛰어남


메이-츤포기, 시발 매즈 미켈슨 사령관인데 츤이 중요하냐 무조건 데레지.


마리-음쇼섹포기, 음중섹에 빠짐


그외 전원-음중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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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호 일과 시간은 공식적으로 오전 8시. 아침 점호 시간은 6시 50분인것이 기본이지만, 사령관의 아침은 이들보다도 빨리 시작된다.




AM 05:10. 사령관은 천천히 자리에서 눈을 뜬 채 침대를 벗어났다.




간단하게 세면을 마친 그가 제일 먼저 마주하는 광경은 사령실의 투명한 홀로그램 유리밖으로 보이는 아침해다. 헤어 드라이어기로 천천히 백발의 머리카락을 말리며, 거슬리지 않게 머리를 위로 넘기고. 수건으로 중년임에도 선명하게 드러난 탄탄한 복근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있었던 도중 사령관은 테이블위에 올려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오, 콘스탄챠. 굳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것만."




밤사이 당직이었던 콘스탄챠가 놔두고간 것이 분명한 따뜻하게 덥힌 우유와 버터 식빵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자신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와 우유와 식빵만을 남겨두고 떠난 콘스탄챠를 떠올린 사령관은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오르카호 주방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콘스탄챠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소완 또한 몇 분 늦는다고 자신을 책망하지는 않을 것이리라.




사령관은 '낭비'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며 혐오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바이오로이드든, 자원이든, 심지어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소모마저도 낭비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그가 이런 자그마한 만찬을 무시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 물론 낭비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호의는 항상 환영이었다.


사령관은 식사를 먹기 전, 테이블에 앉아 콘스탄챠가 써놓고간 메모를 읽어내렸다. 귀여운 글씨체가 딱 보아도 콘스탄챠의 것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날것 같아. 미리 소소한 조식을 준비해봤어요. 주인님의 요리에 비하면 보잘것 없겠지만, 입에 맞으시길 바랍니다. - 콘스탄챠]


"벌써 배부른 기분이군. 콘스탄챠 양."




단말기로 연락을 넣어 감사의 인사라도 하고 싶겠지만, 당직이었던 콘스탄챠는 아마 인수인계와 아침 점호 준비로 인해 정신이 없을 것이리라.


괜히 연락을 해서 그녀의 시간을 잡아먹을 수는 없으니. 나중에 답례라도 해야 겠다며 사령관은 머릿속에 메모했다.




위장에 부담되지 않는 따뜻한 우유와 버터가 발라진 식빵은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구운 베이컨 한 조각과 써니 사이드 업을 추가했다면 더욱 풍요로울 아침이었겠지만, 콘스탄챠의 마음만으로도 이미 사령관은 충분히 배가 차는 것을 느꼈다.




[실례하옵니.....아, 이미 깨어있으셨사옵니까?]


"물론이네. 소완군."




귓가에 들려오는 이어폰에서 소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령관은 곧장 대답했다.




[오늘의 재료 손질은 마쳤사옵니다. 주인님이 내려오시면, 바로 시작할 수 있나이다.]


"고맙네 소완군. 곧 내려가지."


[...하아아, 그럼 기다리겠나이다.]




간드러지는 소완의 목소리에 사령관은 살짝 웃었다.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이나 연인을 기다리는 것마냥 소완의 목소리에선 그리움과 애탐이 느껴졌다.


사령관이 취침하는 겨우 몇시간 정도 보지 못한 것인데도 말이다.




콘스탄챠가 준비한 조식을 남김없이 다 먹은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의외의 인물과 마딱뜨렸다.




"......."


"우웅......주, 인..니임...."




문 옆에는 리제가 몸을 쭈구려 앉은채 고개를 파묻곤 졸고 있었다. 무엇이 목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문을 부수려하거나 강제로 침입하려는 흔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사령관이 일어날때까지 문앞에서 기다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벌써 시간이 좀 지났기에 주방으로 가려했것만, 이렇게 처량하게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령관은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일어나게나 리제양."


"...우....히약!? 주, 주인님!!"




눈을 비비다가 사령관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리제는 화들짝 놀라며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떨었지만, 금새 항상 사랑하고 너무나 사랑했던 사령관에게 달려들듯 품에 안겼다.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리제의 포옹을 피해기보다는 들고 있던 접시의 음식물이 리제에게 묻지 않도록 팔을 조심스레 벌려 그녀의 포옹에 순순히 안겨주었다.




마치 한동안 사령관의 품안에서 좋아죽겠다는 양 해맑은 미소를 띈 리제는 이순간이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령관의 향기와 온기를 느끼며 그에 품에 얼굴을 부볐다.




"후후, 그래. 가위 아가씨, 오늘은 무슨일로 내 방앞에 있었던 건가?"


"앗!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오늘은 주인님! 오늘은 주인님과 일출을 보려고 했어요! 어제 일기예보에서 오늘 아침은 기상이 좋아서 예쁜 해가 뜰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주인님의 방앞에서 저는 밤새....!"


"그렇군. 알겠네."




사령관을 한정으로 언제나 미친듯한 집착과 광기어린 애정을 보여주는 그녀였지만, 사령관은 그 사랑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사령관이 그정도로 리제를 싫어할 일은 없을 것이니까.


자신을 사랑하고 좋아해주는 예쁜 아가씨를 마다할리는 없지 않은가?


약간 변태스러운 중년 아저씨같은 생각일수도 있었지만, 사령관의 품위있는 성격과 행실은 그런 부분을 완벽하게 상쇄시켜주었고. 실제로 함내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를 대하는 사령관의 태도에서는 항상 품위와 자애로 넘쳐 흘렀다.




"..일출이라. 아쉽군. 이미 해가 완전히 떠올라 버렸네만."




사령관이 손목에 걸린 패널을 조작하자. 복도에 닫혀 있던 벽이 일제히 홀로그램 유리로 바뀌었다.


그제야 리제는 이미 해가 완전히 떠올라버린 것을 보고선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제, 제가 늦잠을 자버렸...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주인님.."




사령관은 미소지으며 리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제보다도 한참이나 키가 컸기에 사령관과 리제의 모습은 마치 딸과 아버지와도 같았지만, 사령관의 손길을 받는 리제의 얼굴은 완전히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었다.




"실망하지 말게 가위 아가씨. 그대와 나와 함께하는 시간속에선 해는 언제든지 뜨는 것이니."




사령관은 리제를 위로하듯 끌어안은채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사령관의 한정으로 보이는 끝없는 사랑과 질척거리는 감정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부담스럽고 위험해 보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런 성격마저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만큼 사람이 좋았다. 그녀와 주변의 사람들이 위험해지기 전에 그녀를 품에 안아주자. 그것이 사령관이 생각한 리제에 대한 방침이었고. 실제로도 꽤 효과가 있었다.


지금에서는 거의 버릇이나 습관이 된것마냥 리제를 자주 안아주는 모양새였고. 왠지 모르게 그 모습에선 다른 바이오로이드는 부성애라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래도오...그래도...."


"실망이 큰가보군. 가위 아가씨."




별것아니겠지만, 리제는 사령관과 함께 일출을 볼 계획을 자신의 늦잠때문에 이루지 못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방에서 편히 잤다가 아침 일찍 나를 보러와도 될것을...'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사령관은 리제와 눈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렇다면 실망하신 우리 아가씨를 위해...저녁의 일몰은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나? 부족한 몸이지만 내 노력해보지."


"일, 일몰...네, 네에! 좋아요 주인님! 좋아요! 좋아요! 일몰도 좋아요!"


"저녁의 일몰을 함께 감상하며, 오르카호의 테라스로 나가는 걸세. 거기서 함께 저녁이라도 들겠는가? 카누 모양으로 자른 골수 요리에, 메인으로는......"


"좋아요! 뭐든지 좋아요! 주인님과 함께라면 전 뭐든지 좋아요!"




갑작스러운 저녁 식사 초대에 리제는 그자리에서 방방 뛸정도로 흥분한 기세였다. 아니, 지나치게 좋아서 얼굴마저 빨갛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사소한 것에도 이리도 좋아할 줄 몰랐던 사령관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이리도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아가씨와 함께 식사를 할 걸 그랬군. 후후, 가위 아가씨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겠군. 그럼, 리제양. 일단 아침을 맞이하였으니, 아침 점호 준비를 하러 가주었으면 하네. 다프네양이 그대가 사라진 것을 알면 당황할테니 말일세."


"네에, 네! 알았어요 주인님~!"




저는 주인님의 말을 잘 듣는 착한아이에요! 라는 듯이 리제는 사령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뛰쳐나갔다.


이런 소완과 포티아양이 기다리고 있겠군.


리제의 뒷모습을 흐믓하게 보던 사령관은 소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사랑스러운 아가씨와 시간을 더 함께하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스스로가 정한 약속과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리라.








"늦어서 미안하네. 제군."


"오셨사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안녕하세요 주인님!"




소완과 포티아를 비롯한 주방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사령관에게 일제히 인사를 하자. 사령관은 그녀들 하나하나에게 미소를 지어주면서도 서둘러 요리사 제복으로 탈의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체된 바 서두를 필요성이 어느정도 있었다.




사령관과 마주한 소완의 얼굴에 홍조가 띄었지만, 시간이 촉박한 지금은 안타깝게도 사사로이 인사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아무리 사심이 그득하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소완도 사령관도 요리사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있는 이상 자신이 직접 만드는 아침 식사를 망쳐버릴 불상사를 바라지는 않았다.




"제군들도 좋은 아침일세. 그럼, 소완군 시작해주게."


"알겠사옵니다."




그리 말하며 소완은 한 손에 들려 있던 레시피를 꺼내들곤 포티아들에게 말했다.




"기본적인 레시피는 어제 주인님께서 배부하신 것과 같습니다. 특이사항으로는 아침 식사에 초대된 분들은 대체로 공복일 것이고. 공복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인 오트밀, 토마토, 계란, 블루베리, 토마토, 당근, 사과가 기본 베이스이옵니다. 추가적으로...."




소완의 공지사항을 뒤로 하고 사령관은 아침 식사에 초대된 바이오로이드들의 목록을 살폈다.




밤을 새우며 탐색을 마치고 방금 귀환한 발키리.


곧 당직 인수인계를 마칠 콘스탄챠.


둠브링어팀의 멸망의 메이, 나이트 앤젤.


그리고 불굴의 마리와 실키인가.




모두 항상 고생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이들이다. 아니, 아름답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다.


요리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 사령관은 소완을 불렀다.




"부르셨사옵니까."


"잠시만 실례하겠네."




사령관은 가만히 있는 소완의 머리칼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평소라면 앞머리와 옆머리를 앞으로 내렸을 소완이지만, 사령관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칼을 귀뒤편으로 넘겨주고는 요리사 모자를 씌워주었다.




"주인님, 이것은...?"


"항상 보는 머리스타일도 좋지만, 요리할때 그 모습을 하면, 더욱 보기 좋을것 같아서 말일세."




소완은 항상 군더더기 없는 요리 실력을 자랑한다. 강철같은 체력과 불과 얼음 앞에서도 끄떡없는 내구도, 그리고 군용 바이오로이드마저 우습게 볼 정도의 스피드와 힘도 겸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요리를 하면서 머리카락을 요리에 흘릴 일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굳이 귀찮게 요리사 모자를 쓸필요는 없었다.


물론 사령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오드리에게 요청해 셰프 모자를 얻어온 것은 그저 단순한 미관상의 이유였다.




"이 모자를 쓰면, 왠지 모르게 소완군이 더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일세."




아름다운 것이 곧 윤리적인 것이다. 라는 것이 사령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고. 소완 또한 그런 사령관의 생각을 곁에서 자주들어왔다.




"후후, 감사하옵니다. 혹여 제게 어울리시온지?"


"소완군의 예쁜 은발이 조금 가려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요리하는 순간만큼은 그 모습이 아름답군."




그 말에 소완이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사령관에게 보이진 않겠지만 소완의 얼굴은 어느새 빨개져선 보이지 않는 미소를 감추기에 바빴다.




"감사하옵니다. 그럼 주인님의 선물도 받았으니, 요리하는 순간만큼은 이 모습으로 나가도록 하겠나이다."


"후후, 기쁜것 같아 다행이네. 그럼 우리도 시작하지."


"알겠나이다."




사령관은 요리하는 것을 즐겼다. 아니, 심혈을 기울인 예술로서 승화하는 수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지만, 현재 만들어진 육체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이상하리라만치 요리에 관해서는 상당한 수준급의 실력과 능력,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전술과 전략에 관한 것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구조된 이후, 사령관으로서 교육받으며 스스로 배움과 탐독을 이루었기에 만든 순수한 노력적의 결실이었지만 요리는 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었다.




심지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이름조차 모르는 귀하고 신비한 식재료들에 대한 지식마저 해박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멸망전의 기억이나 지식이 사령관의 몸에 원래 담겨져 있었던 것이라 추측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지식의 근원에 대하여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요리에 대한 지식과 실력을 사령관은 자신이 사랑하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이렇게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칼이 잘 드는 것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확인한 사령관은 재빠르게 고기를 손질한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솜씨에 곁에서 지켜보던 소완은 소리없이 감탄했다.




"역시 그 칼솜씨는 대단하시옵니다. 예술에 영역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시옵니다."


"소완군의 솜씨야말로 더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칭찬은 고맙게 받아들이겠네. 칭찬이란 아무리 받아도 고프기 마련이니 말일세."




사령관의 미소에 소완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붉어졌다.


사모하는 주인이 자신과 같은 영역에서 함께 요리기구와 식재료를 만지며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와 육체의 결합과는 다른 색다른 영역의 행복이었다. 아마도 아무리 다른 자매들이 사령관을 앞다투어 사랑을 말한다 한들, 이 요리를 위한 공간에서 주인과 함께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행복은 누구와도 다른 차별적인 영역이니까.




그런 우월감과 행복감에 소완은 남몰래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윅질을 멈추지 않았다. 오전부터 볶음밥을 요청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어린애같은 입맛인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사령관의 만찬'은 바이오로이드들의 입장에선 흔치 않은 기회였다.


오르카호의 식사는 맛이 훌륭했다. 소완과 사령관 포티아들의 노력으로 최상의 식재료와 요리실력으로 만들어진 식사는 멸망전의 인간들에게 제공되던 요리보다도 월등했으니까. 하지만 '만찬'에는 그 중에서도 오르카호의 자매들 중에서도 소수의 인원만이 초대된다.




초대되는 인원은 매번 달랐다. 가급적 공평하게 신청만 한다면 오르카호의 전 인원에게 차례가 돌아가도록 하였으며, 매번 초대되는 사람의 숫자는 조금씩 달랐다. 어떤 때에는 5명, 많을 때는 20~30명에 달하는 숫자로 사령관의 사정에 따라 그때 그때 달랐고. 브라우니나 레프리콘 같은 일개 병사들도 사령관의 만찬에 함께할 수 있었다.




사령관은 닥터의 기술로 완벽하게 재현해 만든 송아지 고기를 깨끗하게 씻은 양손으로 힘껏 눌렀다. 뭉쳐있는 지방과 살코기를 균형있게 펴고 나면 골고루 허브와 통후추를 뿌려준다. 기본적인 시즈닝이 끝나면, 진한 간장과 각종 양념을 첨가한 소스에 잠시 동안 냉장으로 보관한다.




"소완군."


"예."




곁에 있던 소완은 지글거리는 소리가 나는 송어 구이를 요리하며, 사령관에게 재빨리 허브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튀김옷을 준비해주


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느덧 호흡이 맞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이 함께 요리를 시작한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사령관은 소완이 준비해둔 튀김옷을 정성스레 손으로 어루만지며 상태를 보았다. 보관 상태도, 재료의 상태도 최상이다. 역시 소완은 자신을 실망시킨적이 없다며, 사령관으 그녀에게 미소지었고. 사령관의 미소라는 답례를 받은 소완은 그에 마찬가지로 미소지으며 마저 준비하고 있던 송어 구이에 다시 손을 잡았다.




사령관은 개인적으로 내장요리를 좋아하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이오로이드들에겐 조금 거북한 요리일수도 있었기에 준비한 요리들은 대체로 호불호가 없는 숭어나, 살코기를 기반으로 한 요리였다. 일단, 아침인것을 생각했지만 만찬에 초대를 받은 바이오로이드들은 밤샘 탐색을 했거나, 전날 격무와 전투에 시달렸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겐 솔직히 말하자면 고칼로리의 요리가 어느정도 필요한 법. 자신을 위해서 온몸을 바쳐 희생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사령관은 정성을 다해 요리를 만들었다.




말 없이 한 동안 요리를 하던 소완과 사령관은 테이블에 하나씩 완성된 요리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 되었나?"


"그렇사옵니다. 주인님."


"만족스럽군."




테이블에 진열된 요리들을 보며, 사령관은 만족감에 사로잡혔다.




"소완군과 함께 요리를 하는 매순간은 기쁘기 짝이 없네. 저 요리를 맛있게 먹어줄 아이들의 얼굴과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 없을거라 생각하네."


"동감이옵니다. 자매들 또한 주인님의 요리에 기뻐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그래, 시간이 다 되었군. 준비를 마치도록 하지."




시계는 AM 07:40을 가리켰다. 이미 아침 점호는 진작에 끝났을 것이고. 각자 일과 준비 전, 식사를 하고 있을 시간이리라.


약간 사령관이 늦기는 했지만, 예상 했던 시간보다도 더욱 빨리 요리를 마쳤다. 아침 만찬의 준비가 끝난 사령관은 소완과 포티아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만찬장에 들어섰다.




이미 만찬장에는 멸망의 메이, 나이트 앤젤, 발키리, 콘스탄챠, 마리, 실키가 잔뜩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사령관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메이의 경우에야 약간 새침한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곁눈질로 사령관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마리 또한 근엄하고 무뚝뚝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지만, 사령관이 들어서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이 티가 났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이들의 얼굴을 쭈욱 훝어본 사령관은 미소지으며 활기찬 어조와 함께 인사했다.




"좋은 아침일세. 제군들. 환영하네."




"""""안녕하십니까. 사령관 각하.""""""


"만찬장에서까지 경례할 필요는 없다네."




일제히 일어서려는 아이들을 만류하듯 사령관은 손사래를 쳤다.




"사랑하는 아가씨들과 오늘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네. 이런 보잘것없는 솜씨로 아름다운 아이들의 요리를 몸소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를 표하네."


"어머, 작업멘트로는 100점 만점인걸 사령관?"


"아니에요! 저희야 말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사령관님..."


"저도 감사드립니다. 각하."




실키와 발키리는 이번이 만찬에 처음으로 초대된 것이리라. 기대와 기쁨을 감출 생각도 없이 얼굴에 온전히 감정이 드러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사령관은 미소지었다.




"그럼, 소완군. 들어오게나."




그 말과 동시에 이름모를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오며 소완이 만찬장으로 입장했다. 그녀의 손에서는 고급스럽게 플레이팅 된 사령관과 소완이 직접 만든 요리들이 예술 작품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아름다운 자태를 뿜내며 담겨 있었다.




"그럼 배고픈 아가씨들을 위한 긴말을 필요 없으니, 바로 시작하겠네. bon appétit(맛있게 드세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먹어준다면, 그것보다도 기쁜일이 없으리라.


아름다운 것이 곧 윤리적인것. 사령관은 자신의 요리를 먹으며 만족감과 기쁨에 찬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이야말로 사령관이 바라던것,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긴 그림이다. 사령관은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음악으로 삼아 황홀경에 빠진채, 스스로가 만든 요리를 입에 넣었다.




'역시 맛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더욱 좋군.'




중년 남성이 홀로 추하게 밥먹는 모습보다는, 역시 이 아름다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저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며 먹는 것이 더욱 맛있다.




"역시 사령관이네. 이번에도 신청하길 잘했어. 이 고기는 뭐야?"


"어린 송아지 고기에, 후추와 양념을 시즈닝한 후, 냉장실에 30분 가량 재워둔 것이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일세 메이양"


"메이양이라니, 그냥 메이로 불러."


"아름다운 아가씨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다니 꽤 영광스러운 제안아닌가."




그 말을 들은 메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자 곁에 있던 나이트 앤젤은 헛웃음소리를 내며 그녀를 내려다 봤다.




"아, 아가씨 취급받아 기쁘시겠습니다 대장?"


"다, 닥쳐! 너....!"


"쉿."




나이트앤젤에게 소리를 지르려던 메이에게 순간적으로 사령관의 짧고 굵은 제지가 귓가를 마비시켰다.




"아가씨들, 신성한 식사시간은 서로 행복과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니, 부디 Rude(무례)한 행동은 지양해주길 바라네."


"예, 죄송합니다. 사령관 각하."


"...알았어. 미안해."




아름다운 것에는 한도끝도 없이 자비로운 사령관이지만, 반대로 무례한 행동을 사령관은 극도로 혐오한다.




실제로 사령관은 리리스에게 독극물을 몰래 먹이려던 소완을 가차없이 처벌한 사례도 있었다.




신성한 요리와 음식물에 독극물이라는 추잡스러운 것을 탄 모독적인 행동.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령관의 아이를 무려 독살하려 한 무례하고 사령관의 기준으로 매우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에 그 전까지 단짝마냥 항상 소완과 붙어다녔던 사령관은 가차없이 소완에게 중벌을 내렸었다.


물론 그 이후 소완 또한 자신의 잘못을 뇌우쳤고. 사령관 또한 소완을 진심으로 용서했기에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당시의 일을 회상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바이오로이드들의 입장에선 무례한 행동에 분노한 사령관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똑똑히 알게 된 일이었다.




아무튼 그 일이 있은 이후부터는, 바이오로이드들도 사령관이 자신들을 사랑해주는만큼 언행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결과를 불러왔다.




무례한 것과, 사령관 기준으로 비윤리적인. 아름답지 못한 행동과 말을 최대한 지양하는 쪽으로 말이다.




"알았다니 다행일세 아가씨들. 음식이 식겠군. 예쁜 아가씨들에게 먹히지 못한 음식만큼 비극적인 운명은 없을걸세. 부디 남기지 않도록."


"푸후후후훗!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비극적이라.....알겠습니다. 각하. 꼭 남기지 않고 다 먹겠습니다."


"아, 물론 맛이 없다면, 내가 무례를 저지른 것이니. 숨기지 않아도 된다네? 이건 진심일세."


"그럴리가요. 사령관 각하의 만찬은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재빨리 사령관과 서로에게 사과를 한 메이와 나이트앤젤에 다시 사령관은 미소를 지으며, 얼어붙을 뻔 했던 만찬의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감사했습니다. 사령관님."


"각하, 오늘도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음식을 먹는것이 이리 아깝다는 생각이 들줄은 몰랐습니다."


"오늘도 괜찮은 만찬이었어 사령관. 다음번에도 꼭 초대해 달라고~"


"사령관님이 초대한게 아니라 대장이 신청한 거잖아요..."


"야!"




"맨날 출격나가서 MRE로 배를 채웠는데....정말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뻔 했어요."


"맛있었다니 다행일세 실키양. 모쪼록 다음 만찬때도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네에, 넷! 물론이에요! 꼭 신청할게요!"




단란했던 아침 만찬이 끝난 이후, 사령관은 산뜻한 기분으로 바이오로이드들과 인사를 나눈후 뒷정리에 들어갔다.




소완과 포티아는 자신들이 해야할 잡무를 사령관에게 맡겨줄 수 없다며 한사코 그의 호의를 거절하려 했으나. 꽤 고집스러운 성격의 사령관이 스스로 고무장갑을 낀채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는 없었다.


별 수 없이 사령관의 호의와 친절을 무시할 수 없었던 소완과 포티아는 사령관과 함께 식사의 뒷정리를 함께 했다.




"소완군. 이번 만찬은 어땠는가?"


"양념에 고기를 재우는 법은 저도 몰랐나이다. 소첩의 지식으로는 요리의 시즈닝에 간장이라는 요소가 없었기에, 주인님의 깊은 지식에 다시 한 번 감탄하옵니다."


"과찬일세. 나도 흐릿한 기억에 이끌려 시도한 것일뿐일세."




상당히 과장된 칭찬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령관은 소완의 칭찬이 나쁘지 않았다.


소완도 사령관의 요리 솜씨에 늘 경의를 표하고 있었고. 사령관 또한 소완의 요리 실력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령관은 오르카호의 모두와 항상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특히 소완은 바이오로이드와 사령관이라는 관계 이전에 두 사람은 요리인이라는 동질감과 높은 프라이드에 어우러져 서로를 매우 존중하는 깊은 관계인 것이었다.




-띠리릭!




"예, 애니웨어 소완 연락받았습니......."




그 때, 귀에 걸고 있던 통신단말기에 신호를 받은 소완은 설거지를 하다 말고 굳은 얼굴로 변했다.




".........."


"소완군?"




그런 소완의 이상사태를 깨달은 사령관 또한 그릇과 식기를 닦다 말고. 평소의 온화한 얼굴과는 달리 한겨울의 냉기와도 같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령관은 이미 소완의 반응으로부터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어느정도 짐작한 모양인듯 닦고 있던 식기를 곧장 내려놓았다.




"주인님. 코드 퍼플이옵니다."




코드 퍼플, 보라색-황제, 고귀함, 강력함.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색이다.


일반적으로 오르카호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령관 개인이 지정한 특수 코드 지정한 상황이다. 사령관은 약간 애처롭기도, 쓸쓸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깨끗하게 닦여 있는 식기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마음속으로 결심을 한 듯 셰프 제복을 벗어던졌다.




"포티마군. 미안하네. 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소완군과 바로 나가보아야겠네. 다음에 제대로 사과하겠네."


"아닙니다! 이쪽은 신경쓰시지 않으셔도 되요!"


"고맙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사령관의 뒤로 소완 또한 빠른 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이미 그녀의 손과 품속에서는 철충마저 고기마냥 다져버릴 수 있는 苏州(쑤저우) 나이프가 다량 장비된 상태였다.




"사령관이 전파한다. 레프리콘-44, 브라우니-474, 경호대장 블랙 리리스. 호명한 인원은 지금 즉시 완전 무장 상태로 비밀의 방으로 집합할 것."




단말기를 조작하며 말하는 사령관은 어느샌가 사납고 매서운 짐승같은 눈빛으로 돌변해 있었다.










"다 왔는가?"


"왔지 말입니다."




일반 브라우니들과 다르게 조금 가라앉은 눈의 브라우니는 약간 길게 자란 머리를 묶다 말곤 사령관에게 경례했다.


브라우니가 경례를 하자 그 뒤에 있던 레프리콘도 사령관을 보곤 깍득한 자세로 경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가급적 단 둘이서만 뵐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에요~"




살짝 치마를 잡아 숙녀다운 인사를 한 블랙 리리스는 사령관의 곁에 있던 소완을 한 번 째려보았다.




"상황이 어떤지 파악도 못하시는군요. 아무리 충성스러운 개라지만, 지능에 대한 결함이 의심되나이다."


"어머, 상황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죠. 다만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저 혼자만이라도 충분하니 하는 말이랍니다."




소완 또한 그런 리리스의 도발적인 눈빛을 마주하곤 한 쪽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며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였다.


늘 있었던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심하게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정도 일상적인 광경에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도 소완과 리리스에게 시선을 떼고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저흴 호출하셨단 말은.....그겁니까?"




브라우니 474은 다른 브라우니와는 약간 분위기가 달랐다.


다크서클이 생겨 가라앉은 눈빛, 다른 브라우니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긴 머리에 모든 브라우니들에게 지급된 갈색 라텍스가 아닌, 검정색 라텍스를 입고 있었다. 해당 브라우니는 멸망전부터 생존해왔던 몇 안되는 개체중 하나로 수많은 전투와 경험을 거쳐온데다가 닥터의 관리로 인해 2번의 승급으로 고급 바이오로이드와 맞먹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브라우니와 짝을 이룬 레프리콘은 말 없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사령관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목은 괜찮은가 레프리콘 양?"


[괜찮습니다. 사령관님.]




수화로 사령관에게 의사를 전달한 레프리콘은 입을 뻐끔뻐금거리며 그의 친절에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브라우니와 마찬가지로 전투모듈의 승급을 거진 레프리콘 44도 멸망전부터 생존한 개체였다. 멸망전에는 블랙 리버와 관계된 어느 대부호의 개인 사병중 하나였는데, 대부호는 보안을 중히 여겨 소유 바이오로이드의 성대를 강제로 절단하여 의사소통을 차단한 자였다. 지금에서야 수복을 하면 바로 나을 수 있겠지만, 해당 레프리콘은 무슨 이유에선지 성대의 수복을 거절한 채 여태껏 살아오고 있었다.




만약 사령관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이 수복을 받아들였겠지만, 사령관은 그녀의 아픈 트라우마를 필요 이상으로 건드리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하는 거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레프리콘은 사령관을 향해 맑은 미소를 보이며 괜찮다는 듯한 표시를 하여 사령관은 더욱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감상에 젖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다 모인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코드 퍼플이다."


"......."


"역시나아...."


"코드 퍼플인가요오..."




-철컥!




그 말을 듣자마자 리리스의 표정이 소름돋게 변하더니, 허벅지에 장착되어 있던 맘바를 소리나게 장전했다.


맘바가 사령관의 허락하에 곧장 살상모드로 전환된 소리였다.




"장소는 VT-09구역, 아직 해방되지 않은 지역이다."


"주인님, 발언해도 되겠나이까."


"허한다."


"소첩은 안타깝게도 전략과 전술에 관한 조예가 낮사옵니다. 허나, 해방되지 않은 지역이라면 미리 멸망의 메이로 전술 폭격을 행하거나 선발대를 투입하는 것이 낫다 사료되옵니다."


"맞아요. 주인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사전적인 작업은..."


"그것은 안된다네."




그 말에 소완과 리리스가 동시에 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서로 애정의 라이벌인것은 예전부터 마찬가지였지만, 딱 하나 공통된 점이 있다면 사령관을 향한 호의와 사랑이었다. 두 사람 다 사령관이 위험한 구역에 나가는 것을 원치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주인님...!"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네. 제군들.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겠지. 그 이외에도 내가 그곳까지 가면 안될 이유야 많을 걸세. 허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철컥!




"이번 일에 한해서 이의는 받지 않겠네."


"...그렇다면 더이상 말하지 않겠나이다."


"저도 충실히 주인님을 호위하도록 하겠어요. 걱정마세요 주인님. 벌레들은 모조리 도륙낼게요."


"그래, 믿겠네 소완군. 리리스군."




그 말을 하며, 비밀의 방 캐비넷에 배치되어 있는 군복으로 갈아입은 사령관은 어느덧 사령관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무장한 특수대원과도 같았다.


평상시와 모습이 달라서 그런 것일까 비밀의 방에 있던 인원들은 사령관의 모습을 보고선 살짝 어깨를 떨었다.


항상 친절하고 부성애가 느껴질만큼 자애로웠던 사령관이, 냉혹한 얼굴로 군복과 장비, 총기를 장비한 모습은 왠지 모르게 소름돋는 부분이 있었으니까.




완전 무장을 한 사령관은 다시 한 번 단말기에 손을 댔다.




"라비아타, 코드 퍼플 상황이다. 전 인원은 즉시 자리에서 대기할 것을 명령한다."


[알겠어요 주인님.]




라비아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령관의 손짓과 함께 비밀의 방 인원은 즉시 자리를 박차고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VT-09구역, 정보로는 과거 블랙 리버사가 '지배'했다고 알려진 도시이며 군용 AGS가 대량으로 생산되었던 공업 지대의 중심구다. 철충의 침략 이후로는 폐허나 다름 없는 유령 도시에 철충의 본대와도 멀리 떨어진 장소였지만, 그렇다고 철충이 이 도시에 없는 것은 아니다.




철충은 기본적으로 연결체의 지배를 받는다. 연결체와 떨어진 철충은 말그대로 낙오자가 되어버리며, 그런 낙오된 철충들은 이런 유령 도시로 짐승마냥 흘러 들어온다. 그 숫자가 결코 적지는 않아 방심할수는 없지만, 연결체가 없는 철충들은 철로 만들어진 벌레에 불과하다.




-뚝, 뚝.




"......."




-척!




"...!"




숨소리마저 소음으로 들릴 정도의 침묵 속에서 사령관의 수신호에 브라우니는 소리 없이 달려나갔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지하수도였지만, 야시경을 장착한 브라우니의 시야는 방해되지 않았다. 방해되는 것이라면...




[끼리릭..]




-퍼걱!!!




[끼, 이...!!!]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짧은 마찰음과 함께, 어둠속에서 꿈틀거리던 형체는 움직임을 정지했다.


움직임이 정지한 형체를 향해 총구를 겨눈 브라우니가 야시경을 벗자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클리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사령관의 뒷편에 있던 소완과 리리스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것은 동시였다.




"뒷쪽엔 이미 정리를 마쳤나이다."


"벌레들이 꽤 많았지만, 연결체는 없는게 확실해요."




서로 티격태격하는 것과는 달리, 막상 전투에 돌입하면 소완과 리리스의 콤비는 상당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공격에 뛰어난 소완과 방어와 반격에 특출난 리리스. 어지간한 구역의 탐색은 저 두 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사령관님, 여긴 안전하지 말임다."


[확인, 브라우니. 여긴, 레프리콘. 사주, 경계 할 것.]




말 대신 수신호로 브라우니에 의사표시를 하는 레프리콘은 여전히 총구를 어둠속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주먹을 쥐며 브라우니에게 대기 신호를 보내자. 브라우니는 약간 귀찮고 피곤하다는 눈빛을 했지만, 상급자인 레프리콘의 지휘에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레프리콘 괜찮다. 경계 태세를 거두도록."


[예.]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경계 태세를 푼 레프리콘은 브라우니와 함께 사령관의 옆에 섰다.




잠깐의 휴식에 레프리콘은 주머니 속에 넣어놨던 주사기를 재빨리 목에 꽂았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둠에 감춰진 레프리콘의 얼굴은 한 순간 황홀경에 빠진 듯 했다.




'진정제 중독이군.'




바이오로이드라는 강건한 육체를 가졌기에 진정제를 얼마나 집어넣든 몸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과거의 트라우마나 정신적인 중독성에 의해 저렇게 진정제를 들고 다니는 것이리라. 끊어도 문제 없지만, 가지고 있으면 항상 주사하게 되는, 약간 담배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다.




사령관은 천천히 어둠속에서도 은은하게 보이는 빛을 바라보았다.


지하수도 끝에 있는 거대한 철문, 그 어떤것의 침입도 허하지 않을 정도의 단단하고 굳건한 성벽과도 같은 철문은 척보기에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었으리라 생각되었지만, 사령관이 보기엔 부질없고 쓸데없는 낭비라 생각되었다.




'저런 낭비를 했어도,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군.'




문을 만들어낸 누군가를 한심하다 생각한 사령관은 인식 코드에 손을 올렸다.


다행히도 지문 인식이다. 닥터가 제조해준 코드 해석기는 순식간에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인간들의 지문 기록을 조합하여 철문의 암호를 해독해 냈다.




-철컹!!




오랜 세월이 지나, 경첩과 자물쇠, 톱니바퀴가 녹슬어서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 안쪽에서 바로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하수도의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풍경과는 다르게 상당히 밝은 분위기의 카펫이 보였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재료로 만들어진 듯한 카펫과 고풍스러운 복도와 장식. 어디서 공급 받은 것인지 모를 전기로 돌아가는 실내 온풍기와 공기 청정기 소리까지. 사령관은 가느다란 눈으로 모든 것을 눈에 담고선 깊게 숨을 들이셨다.




'먼지와 철, 향수와 술의 냄새.'




그리고 더러운 살덩어리 냄새.


뇌를 찌르는 듯한 향기롭고도 역한 냄새에 사령관은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모두 철문 안으로 들어오자 다시금 철문은 삐걱거리며 닫히고서야 사령관은 쓰고 있던 야시경을 벗어던졌다.




[환영합니다 주인님. 어떤 음악을 연주해드릴까요?]




사령관이 내부로 발을 들이자 AI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느라 프로그래밍된 AI의 목소리에선 약간의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Ai니까.




"...바그너, 신들의 발할라 입성(Einzuq der Götter in Walhall)"




닥터가 사령관에게 보내주었던 멸망전의 문화들, 안타깝게도 소실된 음악들이 많았기에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은 듣고 싶었던 음악의 제목이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귓가에 들려오는 선율은 상당히 이질적이면서도 풍유로웠다. 경쾌하고 웅장한 관악기와 현악기의 조합에 사령관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음악이 주는 감동을 진심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음악이, 소리가, 예술이 되어 들려온다. 귀와 고막을 타고 들어오는 진동소리는 하나의 합주곡으로 뭉쳐져 사령관의 마음속에 깊은 고동과 심장을 일깨우며 쿵쾅거렸고. 감동의 메시지가 담긴 바이올린은 독주하다 시피 그의 심장을 후벼팠다. 소리의 냄새를 맡듯 사령관은 눈을 감고 그 선율을 음미한다. 마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요리를 맛보듯, 음악과 선율을 맛보았다. 처음으로 듣는 생소한 음악은 사령관에게 있어 기적 그 자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6분 가량의 시간이 지나자 사령관은 감았던 눈을 뜨고 약간 축축해진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듣는 음악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훌륭하고 감동적이었다.




"훌륭하군..."


"저, AI는 주인님을 자신의 주인이라 인식했나봐요?"


"그렇겠지. 닥터양이 준 해독기에 통과했으면, 어찌됐든 저들의 창조주로 나를 인식했을 것일세."


"그나저나, 락 음악은 없슴까? 클래식은 제 취향이 아니지 말임다."




-퍽!




레프리콘이 책망하듯 브라우니의 어깨를 후려갈기자 브라우니는 아프지 말임다. 하는 말을 내뱉었지만, 정작 그녀의 표정은 처음부터 이 방공호에 들어온 이래로 단 한번도 변한적이 없었다.


피곤한듯, 지친듯 다크서클 진 어두운 눈빛은 가벼운 말투와 다르게 늘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브라우니군. 이곳이 어디인것 같은가."


"뻔함다. 돈이 썩어나서 바벨탑을 쌓은 부자 인간님들의 개인 방공호이지 말임다. 방공호치곤 그중에서도 여긴 상당히 돈을 더 떡바른 모양임다."




-퍼억!




"아프지 말임다 분대장님."




사령관에게 무슨 말버릇이냐는 얼굴로 브라우니를 노려보는 레프리콘에 브라우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런데 잘 알지 말임다. 아마 분대장님도 이런데 있지 않았슴까?"


"..........."




말을 못하는 레프리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다보니 사령관은 약간 분위기가 다른 방에 도착했다.


방공호의 내부는 고급스러운 부자들의 저택같았다. 예술 작품과 카펫,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치장된 복도와 방들이 즐비했지만, 복도의 끝편에 있는 방엔 마치 무균실과도 같은 사방이 지나치게 깨끗한 하얀색이었다.




"찾았군."




방의 한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투명한 유리관을 보며, 사령관은 실소를 지었다. 동면실, 멸망전의 인류가 잠든 거대한 관.


자신의 생물학적인 동족을 바라보며 사령관은 시리도록 차가운 미소와 함께 리리스에게 손짓했다.




사령관의 손짓에 리리스는 곧장 동면기의 조작 패널로 다가가 닥터의 해킹 코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권한이 허가된 몇몇 인물 외에는 조작 패널의 접근조차도 거부되지만, 방공호에 들어온 사령관의 해킹 코드로 인해 처음부터 대부분의 보안 체계는 무력화된 상태이다. 게다가 이런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방공호라면 철충조차도 알아차리기 힘든 곳이다.




-띠릭




"완료했어요 주인님."




리리스의 말과 동시에 거대한 유리관이 김을 내뿜으며 해동되었고. 이윽고 사람의 형체가 힘없이 앞으로 나뒹굴었다.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다. 인간, 순수한 인간이다.




"쿨럭! 쿨럭!"




병원 환자복같은 가벼운 옷만을 입은채 온전하게 동결되어 있었던 인간은 즉시 기침을 토하며 몸을 웅크렸다.


적지 않은 동면 기간은 인간의 몸에 부담을 주는 것은 당연했지만, 방안의 그 누구도 바닥에 웅크린 자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무심했다.




리리스는 처음부터 동면에서 깨어난 인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소완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 본다. 브라우니는 사주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사주 경계를 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두 사람은 동면에서 깨어난 자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레프리콘은 관심도 없는듯 주머니에서 다시 진정제를 꺼내 목에 주사하곤 편해진 듯한 표정이 되었다.




"우, 우욱! 크......누, 누구야. 지금은, 아 씨....머리 아파.."


"동면으로 인한 부담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걸세. 조심하게나."




사령관은 천천히 인간의 몸을 부축해주며 인간을 이끌어주었다. 약간 탄 피부에 노란색으로 물든 머리는 그리 품위있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하지만, 귀티가 나고 영양상태가 완벽한 것으로 보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령관은 알 수 있었다.




"어, 어...당신 누구야? 군인...?"




그제야 어느정도 시야가 돌아온 인간은 사령관을 보며 중얼거렸다.




건장한 중년의 체구를 가진 사령관은 겉보기엔 전장에 숙달된 완벽한 군인과도 같았으니까. 실제로도 그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그에게 굳이 대답을 해줄 이유는 없었기에 사령관은 말없이 그를 부축했다.




"걸을 수 있겠나?"


"아, 아빠는? 아빠는 어디간거야? 당신, 용병이지? 블랙 리버 소속인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자꾸만 헛소리를 하는 듯한 인간에 사령관은 속으로 허를 찼다.




벌써부터 품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하게. 일단......흠, 소완군. 이야기하기 적당한 방을 찾아주게나."


"알겠사옵니다 주인님."




방금전만해도 다 죽어가는 듯했던 인간은 우아하게 고개를 숙인 소완을 보자마자 기운이라도 난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곤 걸음을 옮기는 소완을 빤히 쳐다보았다.




"와우, 저거.......죽이네.."


"......."




순간적으로 사령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못들을걸 들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






청년은 자신을 미하엘 보칼슨이라 소개했다. 그의 이름이 어찌됐든 별 상관은 없었다.




그 어떤 상대를 대함에 있어서 최소한의 격식과 품위는 갖추어야 하는 것이 사령관의 생각이었기에, 사령관은 방공호 내부에 있는 주방으로 가서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방공호에 저장되어 있던 식재료는 진공포장되어 완벽한 동결 상태로 저장되어 있었기에 상당히 품질이 좋은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평소의 솜씨에 절반도 발휘하지 못했지만, 굳이 그런 것을 헤아릴만큼 상황이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충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고 가급적이면 빨리 일을 끝내야 했으니까.




"오, 존나 맛있네."




방공호 내부에서 응접실이라 추정되는 호화로운 장소로 자리를 옮기곤 청년이 사령관의 요리를 게글스럽게 씹어댔다. 요리에 대한 예절이 어쩜 이리도 부족한 것인지, 소완 또한 미간을 찌뿌렸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을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던 청년은 소완을 향해 의미모를 미소를 지었고. 그런 청년의 얼굴에 소완은 한껏 기분이 더러워진 듯 눈을 감았다.




속으로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은 사령관은 식사를 하던 청년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인류는 이미 멸망한지 오래 되었으며, 자신은 현재로선 유일한 인간이자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끄는 사령관이고. 철충에 대한 저항을 하고 있다는 대략적인 이야기를 간추려 말했다.




"하, 망할...멸망했다고? 꿀꺽...! 인간이?"


"믿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네.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이니 말일세."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나만 여기 남겨두고 도망치더니..."




뭐가 그리 분한 것인지 입술을 깨무는 청년은 방금전만 해도 맛있게 먹던 요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 광경에 순간적으로 리리스가 창백해진 채 사령관을 바라보았지만, 사령관의 모습은 흔들림없이 평온해 보였다.




"후우, 아무튼 그럼 나를 구조하러 왔다 이거지? 너는?"




처음 동면에 깨어났을 적의 당황한 태도는 사라지고. 한껏 거만한 태도와 말투를 하며 청년은 다리를 꼬아 앉았다.


아마도 멸망전의 사회적인 위치가 상당히 높은 부류의 인간이었으리라.




'위치가 높다고 품위가 있는 것은 아니군.'




무미건조하게 청년을 평가한 사령관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자네를 그 곳에서 꺼내주려 온것이 맞다네."


"하하! 잘 됐네! 바이오로이드 저항군이랬지? 저기 소완이나 리리스말고. 다른 년들도 많냐?"


"....품위를 지켜주지 않겠나? 그대의 베개 밑에 숨어 있는 악몽이 현실에서도 영향을 주진 않을 텐데?"


"우리 할배같은 뭔지 모를 헛소리는 그만하라고. 아무튼 다른 년들도 그 오르카호인지 뭔지에 많다 이거지?"




사령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고 들었다. 현재의 흔들리는 배와도 같은 삶속에서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면 방향을 잡아주는 키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풍랑에 떠내려가지 않게 자신을 묶어주는 닻이 될 수 있다.


물론 사령관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없다. 허나, 만약 자신에게도 어리고 젊은 시절이 있었다 가정한다면.....적어도 저 청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리라 확신했다.




"잘 됐네. 잘 됐어. 인류가 멸망했단거야 좀 아쉽긴 한데, 그래도 아직 완전히 멸망한 게 아니란 거잖아? 즐길 수 있는 오나홀 년들은 많고. 나는 아직 살아 있고. 그럼 충분하지."


".........."




-까드득!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아닐세. 일단 그대를 구출하기 전에 사실 몇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사령관의 말에 청년은 말해보라는 듯 거만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단답으로 말해줘도 된다네. 생각나는 대로 간단하게."


"뭔데? 빨리 말해봐."


"바이오로이드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암컷"


"...여자를 잘못 말한것이 아닌가?"


"인간 미만의 짐승, 도구를 여자로 말하기엔 과한거 아닌가? 도구보단 암컷이라는 표현이 관대한것 같은데?"




고개를 끄덕인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 질문일세. 만약 그대가 오르카호 저항군에 합류한다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나?"


"우리 아빠가 블랙 리버 이사랑 연줄이 많거든? 돈이라면 썩어 넘치..."


"지금 세상에 돈과 사과 한 조각 중에 뭐가 더욱 중요하다 생각되나?"


"하, 씨발...맞네?"




실소하는 청년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어차피 암컷년들이 알아서하겠지. 군용 바이오로이드도 있을거 아냐? 저항군인지 뭔지 내가 어떻게 아냐. 지휘도 어차피 당신이 한다면서?"


"........"


"아, 할 수 있는 게 생각났다!"




그 말을 하더니 청년은 소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일단 이년 임신시키는건 당장부터 가능할 것 같은데?"


".........."


"와, 얼굴 봐라. 비싼 몸이라 더럽게 예쁘다 듣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하네? 그쪽에 블랙 리리스도 당신꺼야?"


"그녀들은 내 소유가 아닐세. 그녀들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 본인 뿐일 걸세."


"뭔 개소리야?"




-빠드득!




사령관은 천천히 청년에게로 시선을 올렸다.




"아니 아까부터 당신이랑 나랑 뭔가 말이 안맞는거 같은데, 하나 물어보자. 당신 저년들을 뭐 인격체나 뭐니 그런걸로 생각하고 있어?"


"......"


"와 진짜? 성인군자 납셨네, 덴세츠 교단이야? 하하!"




웃음을 터트린 청년은 사령관의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으며 다시 다리를 꼬았다.




"당신 뭔가 착각하는게 있는 것 같은데, 저 암컷년들은 도구야. 인격체도 아니라고? 인간님들을 위해 쓰여지고 버려지고 박히기 위해 태어난 년들이라니까?"


"........."


"그런 년들을 뭐 잘 대해주면 당신한테 더 앵겨서 그래? 아, 그런 플레이였구나? 따뜻하게 대해주는 척하다가, 암컷년이 행복에 못겨워할때 갑자기 알몸으로 빈민가에 내쫓거나 걸레짝이 되도록 패고는 개들한테 던져 주는거. 그런 거지? 나도 해봐서 알아. 은근 그거 짜릿하다? 배신당했다는 양 떨어대는 암컷년들 표정이 진짜 개쩔거든!"




청년은 노란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며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이제보니 당신 나랑 동류였네. 어때? 오르카호가면 같이 암컷년들....."




-퍽!




"커, 커헉....!"




갑자기 목에 때려박히는 무지막지한 힘에 청년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경악했다. 처음엔 자신의 눈앞에 중년의 남성이 자신을 공격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년의 남성은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청년을 공격한 것은 새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순식간에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블랙 리리스가 그의 목아귀를 한 손으로 공중에 들어올린 것이었다.




"주인님, 죄송해요. 음악으로 정화된 주인님의 깨끗한 귀를 자꾸만 더러운 걸레로 문대는것만 같은 기분에.....저도 모르게."


"아닐세 리리스군. 오히려 감사를 표하지. 그대로 있어 주게나."


"커, 커헉.. 컥!! 이거....놔, 악.....암컷, 년...이익....."




-퍽!




".........허, 컥..!!!"




그 순간 소완의 나이프가 청년의 손과 어깨를 궤뚫었다.


급소를 피했기에 당연히 출혈이 심하지도, 목숨에 지장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고통은 아주 잘 느껴지지만 말이다.




"안타깝사옵니다... 쓰레기는 요리의 재료가 될 수 없사온데."


"너, 너 이익....카...흑........!"


"아, 레프리콘군?"


[옛.]


"허가하겠네."


[감사합니다.]




사령관에게 감사를 표한 레프리콘은 총을 어깨에 걸치곤 허벅지에서 대검을 꺼내들었다. 총에 착검하기 위한 대검은 철충과의 교전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지만, 짐승같은 고깃덩어리를 상대로는 충분히 효과적이리라.




청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프리콘을 보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은채 버둥거렸다. 하지만, 리리스의 무지막지한 힘에는 도저히 벗어날수도 없었고. 비명도,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완벽하게 틀어막힌 상태였다. 그저 그는 대검을 휘리릭 돌리는 레프리콘을 보며 들리지 않는 악바친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




어느새 희열에 찬듯 입꼬리를 올린 레프리콘은 대검을 쥔 채 그의 앞에 섰고. 브라우니는 그저 피곤한 눈으로 그 광경을 훝어보다가 다시 사주 경계에 들어간다. 소완은 비웃는 얼굴로 청년을 내려다보았고. 리리스는 무심하게 청년의 목을 부서져라 쥔 채 단단히 그를 고정시켰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인간을! 인간을, 감히 이 쓰레기 섹돌새끼들이 인간님을 공격한다고?! 산채로 해체기 갈아주마 이 썅년들아아!'




그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누군가의 귓가에 들릴 일은 없었다.


허나 사령관은 청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다는 양 허를 찼다.




"정말 무례하군. 사랑스럽고 아름다운...그 무엇보다 윤리적인 아이들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하다니......."




후우ㅡ천천히 퍼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콘스탄챠에게 꼭 담배를 끊기로 약속을 했것만....이렇게 어기고 마는군.




"아.....갸악..! 놔...놔...아악....!"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은 알겠네만, 부디 저 세상에 가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나."




그대가 얼마나 무례했는지 말일세.






오늘따라 담배가 더욱 쓰군. 이상하단 말이지...오랜만에 펴서 그런가 보군. 콘스탄챠 양에겐, 꼭 사과해야겠네.











아름답지 못한 것은 죄악이다.


아름다운 것은 곧 윤리적인 것이다.


무례 또한 죄악이다.


예의란 아름다운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담배를 피던 사령관은 유난히 쓴맛이 느껴지는 담배를 털어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이라고 해보았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짜에 불과했지만, 홀로그램으로 비춰지는 찬란한 햇빛과 대조적으로 방공호 안쪽은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세상과도 같았다.




"Ai, 파우스트-Le veau d’or est toujours debout(황금송아지의 노래)를 틀어주게."


[알겠습니다. 주인님.]




누군가의 비명과 고통을 즐거움이나 희열로 삼는 취미는 없다.


평소에 오르카호에서는 듣지 못했던 색다른 음악들로 더럽혀진 귀를 치유하며 사령관은 의자에 몸을 깊게 묻은채 담배를 마저 빨아들였다. 경쾌하고 빠른 음악의 선율과는 다르게 사령관의 기분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추하고, 더럽고, 역겨운 것들을 사령관은 꽤 많이 보았다.


바이오로이드들에 의해 구출되어 오르카호에 승선하여 사령관이 되고. 그녀과 동고동락하며 사랑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고, 기쁨을 나눈다.


항상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위기와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그 모든 것을 사령관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생각했다. 아니 진실로 그렇게 믿어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사령관의 사랑스러운 오르카호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믿음이었다.




멸망된 고요한 세상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위기를 헤쳐나가고. 힘을 모아 극복해낸다. 그 속에서도 행복과 기쁨, 즐거움을 찾아낸다.




그렇게 사령관은 진실로 아름답고 윤리적인 것들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기쁜일이며 평생동안 사령관은 이 아름다운 것들을 지키고 소중히 대할 생각이었다.


허나, 사령관은 철충이라는 외계의 벌레들보다도...더욱 역겹고 사령관의 기분을 지옥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듯한 것들과 가끔씩 마주해야 했다.




"소완군."




주인의 부름에 소완은 소리없이 빠른 몸놀림으로 사령관의 곁에 다가왔다.




"부르셨나이까."


"이번이....몇 번째지?"




잠시 생각에 잠기던 소완은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이번이 11명째 이옵니다. 휩노스병이 발병했거나, 이미 죽어버린 인간들을 포함하면 총 20..."


"그렇군. 어느덧 그렇게 되었나."




휩노스 병은 전파를 매개로 퍼진다. 중추신경계를 변질시켜 잠자듯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확정적인 죽음.


하지만, 예외가 되는 것이 있다. 전파를 기반으로 퍼지는 휩노스 병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중추신경계를 변질시키는만큼 전파로부터 중추신경계를 방호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는 오리진 더스트로 선천적으로 중추신경계를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금속으로 중추신경계를 감싼다는 원시적인 방법이 적용된 것이 바로 사령관이었고. 사령관의 육신 또한 오리진 더스트와 강화 시술이 적용된 새로운 육신을 제조해 뇌를 이식함으로써 휩노스 병에게서 자유로워졌다.




그렇다면 이 인간들은 어찌 된것일까?




결론은 뻔했다. 이들은 인간이었지만, 휩노스 병에 면역성이 생길만큼의 오리진 더스트로 신체가 강화된 존재다.


단순히 멸망전의 평범한 인간에게 강화시술을 적용을 했다면 중추신경계는 이미 휩노스 병에 감염되었으리라.


하지만 저 청년을 포함해 사령관이 여태껏 만나왔던 멸망전의 인간들은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수십, 수백번의 강화시술과 오리진 더스트 투입을 반복했으며, 중요 중추신경계가 오리진 더스트로 보호되어 뇌는 인간임에 분명하지만, 육신과 신경계만큼은 바이오로이드라고 할 정도다.


육체적으로만 보자면, 인간을 벗어났다 보아도 무방했지만, 그는 인간이었다.




"어찌 이리....무례할 수 있지?"




처음 사령관은 희망을 품었다. 또 다른 생존자의 발견으로 인류 재건의 발걸음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더욱 수월하게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외의 생존자가 있다는 말에 기뻤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사령관은 실망했다. 극도로, 너무나도 큰 실망을 해버렸다.




멸망전의 인간들의 추악한 삶과 진실, 그들의 토나오는 끔찍한 행적들은 이미 사령관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추악하고 더럽고, 아름답지 못하고, 비윤리적인 그들의 모습은 최후의 인간임을 자각하는 사령관은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마저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느낌이었다.




남녀노소가 관계 없이 인간들은 끔찍했다. 추악하고 더럽고, 멸망해야 마땅한 존재들이라고 사령관은 감히 생각했다.


그렇다고 사령관은 인류 재건의 희망을, 철충에게서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여태까지도 그는 최선을 다했고 필사적으로 임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 행보는 똑같이 흔들림없는 마음으로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신이 있다면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다면, 사령관은 그 면상에 욕을 퍼부을 것이리라.


사탄보다도 추악한 존재들을 이 땅에 남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은 마땅히 비윤리적인 쓰레기이며 그들은 마땅히 청소되어야 할 오물덩어리라고.




"레프리콘, 잠시 실례하겠네."


[네]




피와 살점이 묻은 대검을 털어내며, 레프리콘은 절도 있는 자세로 물러섰다.




청년은 꽤 많이 격하게 저항한것 같았지만, 리리스의 힘은 그런 청년의 저항을 가볍게 억눌렀고. 레프리콘의 대검은 막힘없이 청년의 힘줄과 근육, 신경을 조각내어 이제는 마치 실끊어진 인형마냥 힘없이 팔다리를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그대를 낳은 어미 또한 바이오로이드거늘, 자네가 그런 비윤리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유감일세...."


".....쿨럭..!"




참으로 신기했다.


사령관이 만난 생존자는, 모두 바이오로이드의 뱃속에서 태어났으며 강화수술과 동면기까지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갈 정도로 아비의 사랑을 받았으리라. 그런데도 저 청년은...아니, 사령관이 여태껏 만나왔던 모든 생존자들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멸망해야 마땅할 벌레보다도 못한 쓰레기들.




청년은 제발 살려달라는 듯이 사령관을 필사적으로 쳐다보았다. 신경계를 잘못 건드린 것인지, 아니면 레프리콘이 성대를 칼로 그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청년은 말도 하지 못한채 뻐끔뻐끔거리며 간절히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말게. 젊은 청년....내 그대를 용서하겠네."


"......!"




그 말에 청년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모, 몸만 회복되면, 너 부터 죽인다! 너만 죽이면, 암캐년들은 유일한 인간인 내 명령을 따라야할 거고...! 너만 죽이면, 이 늙다리 새끼만 죽이면...!'




갑작스러운 블랙 리리스의 힘에 제압되었지만, 청년 또한 수십번의 강화시술과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강화 인간이었다.


어쩌면 사령관을 몰래 기습하다면, 그를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수도 있었으리라.




청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령관은 그저 자애로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세례를 하듯, 사령관은 쓰러져 있는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 그대 또한 나를 용서하시게."


'뭐...?'




-빠득!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던 사령관의 손이 그의 목을 꺽어버린 것은 한 순간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손놀림에 아마도 청년은 고통을 느낄새도 없이 절명했으리라.




"그대가 좀 더 무례했다면, 아마 나 또한 그대를 오래도록 용서하지 못했겠지. 허나, 걱정말게. 진흙에서 태어나, 진흙으로 돌아가는 것뿐일세."




그래, 이 청년보다도 더욱 무례했던 자들은 조금 오래 살려뒀었지. 스스로 죽음을 바랄만큼, 오랫동안 말이다.


오래동안이라 해봤자. 몇 시간 정도였지만 말이다.


조용히 중얼거리는 사령관에 리리스와 소완, 레프리콘, 브라우니는 가라앉은 눈으로 마치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하지 말게. 나의 아름다운 아가씨들."


"그치만 주인님....그런 더러운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면......"


"그대들은 아무런 죄악도 짓지 않았네."




사령관은 다시금 불을 키곤 담배를 물었다.


아까보다도 더욱 쓰디쓴 담배였다.




"그대들은 나의 명령을 따른 착하고 윤리적인 아이들일세. 아직 아무런 잘못도, 죄도 저지르지 않았어."


"......."


"손을 더럽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면 충분하네."




아이들을 보는 사령관의 얼굴은 항상 그랬던것처럼 잔잔한 미소가 가득했지만, 리리스와 소완,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는 그가 슬픔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멸망전의 인간들에게 실망하고, 실망하고. 실낱같던 희망마저도 배반당한 그는 미소짓는 얼굴임에도 눈물을 터트릴것만 같았다.


첫 번째의 생존자부터 그리고 20번째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4명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다른 자매들이 모르는 사령관의 어두운 면을 함께했다.


거절할 수도 있었다. 사령관은 자신들을 존중하니까. 허나, 이 4명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주인을 홀로 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직 사령관만이 죄가 깊은 더러운 쓰레기들의 피를 손에 묻힐 것이라면, 자신들의 사명은 그런 사령관의 손조차도 함께 잡아주는 것이니까.




아무리 피가 묻은 손이라도, 그 어떤 명령이라도. 여기 모인 4명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이 사령관을 위해 몸을 바쳐 일하며, 그 손을 마주잡아 함께 죄악에 물들어주리라.






★★★






[오셨습니까. 사령관 각하]


"경계하느라 고생했네. 로크"




하수도를 빠져나오자. 고고한 자태로 주인을 맞이한 로크는 마치 인간처럼 예를 갖추듯 사령관에게 인사를 올렸다.




코드 퍼플 상황에서 사령관이 함께 하는 자들은 리리스, 소완, 브라우니, 레프리콘의 4인조가 기본이지만, 최근 여름 휴가 이후 합류한 로크 또한 코드 퍼플 상황의 출격 대원이었다.




로크라는 강력한 개체라면 둠브링어 팀을 투입하며 거창하게 일을 만들것도 없이. 대공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소수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었으니까. 하수도 밑에 숨겨진 방공호의 존재를 탐지해낸 것도 로크의 존재덕분이었다.




하지만 로크가 코드 퍼플 상황의 출격 대원에 속한 가장 큰 이유는 하잘것없는 쓰레기같은 인간의 죽음과 살해는 그에게 있어서 사령관 각하의 고귀한 명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고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령관을 향한 충성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가 어떤 행동을 했던간에 충격을 받지도 기밀을 누설하지도 않을 것이니...




[흠...]




로크는 새빨간 안광으로 사령관과 그를 뒤따르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상태를 살폈다.


방공호 안에 저장된 음악, 데이터, 정보, 그리고 챙겨운 물자를 제외하면,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별것 없었다.




[어찌됐냐고는 질문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실망이 크시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기대하는 것이 없다면, 실망할 일도 없다네."


[저런, 옳은 말씀이시군요.]




이미 기대할것도 없다. 그 말에 로크는 AI임에도 사령관의 내적 동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예전에 모시던 앙헬과는 다르게 바이오로이드, 심지어 AGS인 자신을 존중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사령관은 현재 로크에게도 있어서 고귀한 주인이었다.




그런 그가. 자비롭고 그 누구보다도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령관이 이리도 실망한 것이라면, 오늘 움직이지 않는 한낱 고깃덩어리가 된 인간이 어떤 존재였는지는 로크가 직접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짐승만도 못한 인육덩어리였겠지.




[사령관 각하는 옳습니다. 스스로의 행동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위로를 해줄줄은 몰랐네만?"


[위로가 아닙니다. 각하, 주제넘은 발언이겠지만 이 말은 충고이자 경고입니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 사령관은 턱을 까딱였다.




[저의 전 주인인 앙헬공께선 공명정대한 인물이셨습니다. 바이오로이드든 AGS든 인간이든, 금을 가져오거나 지키는 이익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했기에 누구보다도 저의 주인에 어울린 공평한 분이셨지요.]




AI임에도 로크의 말에는 마치 연극하는 배우처럼 잊혀진 과거를 기억나게 해주는 어조였다.




[사령관 각하께서는 존중을 우선으로 내새우시지만, 어찌보면 앙헬공처럼 공명정대합니다. 하지만, 앙헬공의 가치는 금이었지만, 각하의 가치는 제가 이해하기 힘든 정신적인 면에서의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십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저의 관점으로 보자면 상당히 수준이 높으며, 동시에 매우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겠군요.]


"수준이 높다고 칭찬은 아닌 모양이군."


[그 덕에 사령관 각하는 비윤리적인 것을 참지 못하게 되버리셨으니 말이지요. 저 또한 사령관 각하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후후후...]




마치 사령관을 비웃듯 로크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지만, 사령관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했다.


실제로 사령관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도, 로크의 지적이 틀리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꽤 정확한 말이니까.




[각하, 제가 각하를 모시게 된것은 바로 그 수준 높은 품위와 앙헬공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에 반한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 그 가치에 질려버려 수준을 낮추진 말아주십시오. 그랬다간 사령관 각하께서 여태껏 해왔던 모든 행동과 말, 그리고 20명째의 고깃덩어리를 만든 일들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를 만들어버리니 말입니다. 저 또한 각하에게 크게 실망하겠지요.]


"그렇군. 그럼 나도 질문하겠네 로크."




어느샌가 담배를 입에 문채, 로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령관의 눈빛에 로크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래, 저 눈빛이다. 앙헬공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저 무기질적이면서 동시에 저주같은 카리스마. 로크는 인간이 아님에도 사령관에게서 전율을 느꼈다.




"그대가 보기엔 나는, 그대를 실망시킬 것 같은가?"


[...그럴 가능성은 0%에 수렴하는군요. 죄송합니다. 사령관 각하. 너무 주제넘은 건방진 발언을 했군요.]


"괜찮네. 흥미로운 견해였어. 그대만 괜찮다면 자주 대화를 하고 싶군."


[물론입니다.]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려던, 사령관은 라이터안에 있던 가스가 다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이런..




[각하, 실례가 안된다면..]




로크의 손가락이 사령관의 담뱃대로 다가오자 작은 스파크가 일었다.




"호의에 감사하지."


[후후, 과찬이십니다.]




어느새 천천히 타들어가는 담뱃불을 바라보며, 사령관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맑았던 하늘이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청명했다.








★★★








평소와 달리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리제는 미소를 띈 채 오르카호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사령관에게 저녁 초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다프네와 레아에게 전하자. 두 사람은 호들갑을 떨며 각자가 아는 화장법으로 리제를 예쁘게 화장해주고 다프네는 심지어 발키리에게 양해를 구해 음악회용 이브닝 드레스를 빌려다 리제에게 입혀주기까지 했다.




두 사람의 호의만으로도 리제는 충분히 기뻤지만, 그것보다도 사령관과의 저녁 식사에 함께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리제는 더더욱 해맑고 기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아아, 주인님 주인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가슴이 너무 뜨거워져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가위 아가씨."


"앗! 아니에요! 주인님 제가....꺗!?"




사령관이 테라스로 나오자마자 리제는 깜짝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익숙치 않은 하이힐에,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채라 그런지 곧장 몸을 비틀거렸다.


그런 리제의 몸을 조심스레 캐치해준 사령관은 씨익 웃으며 다시금 리제의 손을 잡곤 그녀를 테이블에 앉혀주었다.


사령관 또한 리제의 분위기에 맞춰 오드리에게서 받아온 연미복을 입은 상태였다. 중년이었지만, 건장한 체격과 품위있는 태도의 사령관은 연미복이 무척이나 어울렸다.




"죄, 죄송해요! 주...주인님, 주인님이랑 저녁을 같이 한다는게 너무 기뻐서..."


"너무 흥분하지 말게나. 밤은 길고. 아직 시작도 안했으니."




그리 말하며, 사령관은 가져온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로띠 드 퀴스라네."


"그게 뭔가요...? 진흙? 진흙을 구운건가요 주인님?"




리제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리제는 진흙도 바닷물도 먹을 수 있어요! 맛있게 먹을....."


"진흙으로 구운 허벅지 살....그리고, 카누 모양으로 자른 골수 요리라네."




미소띈 얼굴로 친절한 설명에 리제는 사령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에 대한 조예가 그다지 없었던 리제였지만, 그런 리제라도 사령관이 품위있게 설명해주는 요리엔 손쉽게 빠져들고 이해할 수 있었다.




사령관은 진흙을 망치로 약하게 부수자. 그 안에 보물과도 같이 숨겨져 있던, 잘 구워진 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흙속에 감춰졌던 윤기나는 육즙과 잘 구워진 고기에 리제는 깜짝 놀라며 눈을 빛냈다.




"난 진흙을 이용해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네 가위 아가씨."




그리 말하는 사령관은 사랑스러운 보물을 다루듯 나이프로 조심스레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저녁 식사에 극적인 효과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진흙은 요리에 더 많은 풍미와 즙을 내주도록 도와주거든."




유려한 손짓으로 리제의 접시에 고기를 썰어주고, 소스를 입혀준다.


사소한 것같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리제는 너무 좋고 황홀해서 어찌할바를 모르겠다는 양 붉어진 얼굴로 사령관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았다.




"우리는 진흙에서 태어나, 다시 진흙으로 돌아간다네 리제양."




고개를 끄덕거리며 사령관의 말을 경청하는 리제의 모습에 사령관은 살풋 웃으며 다시금 고기를 잘라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가기 전에도, 그런 진흙의 은혜는 낭비되지 않게 충분히 사용해야 하지 않겠나?"


"네네! 마자요! 마자요! 주인님의 말씀이 옳아요!"


"후후, 그래 말해주니 고맙군."




고기를 완전히 자르고 서로의 접시에 나눠 담자 사령관은 리제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르카호의 테라스에선 저녁 일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맑아 더욱 잘 보이는 일몰은 타는듯이 붉고 선명했고 그 광경은 리제에게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주인님! 주인님! 일몰이....."




그리고 사령관에게 시선을 준 리제는 말을 멈추었다.


저녁 노을에 비춰진 사령관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도 쓸쓸해보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일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령관의 마음속에 근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리제는 이번에 넘어지지 않게 사령관의 앞으로 다가갔다.




"주인님~"


"아, 미안하군. 내 가위 아가씨를 두고 잠시 딴 생각에...."




아침에 그랬던것처럼, 사령관을 꼬옥 껴안은 리제는 아기마냥 그의 품속에 얼굴을 부볐다.


따뜻한 감촉, 아침과는 조금 다른 냄새, 하지만 무슨 냄새가 나든 상관 없었다. 그 냄새의 정체를 리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주인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리제는 그를 껴안을 뿐이니까. 어떤 근심 걱정이 있든, 어떤 일이 있었든 리제는 상관 없었다.


주인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인님일 뿐이니까.




"노을, 이쁘지요 주인님?"


"응, 그렇군. 정말 아릅다운 노을일세...."




사령관은 자신을 안은 리제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자네만큼 아름답진 않군."


"후후, 우후후후....."




기뻐서 어찌할바를 모르겠던 리제는 다시 웃는 낯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 음식이 식겠군. 늘 말하는 것이지만, 음식에게 있어 리제양같은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먹히지 못한 것만큼 비극적인 운명은 없을 걸세."


"그래요? 그럼 다 먹어야 겠네요!"


"후후, 그렇다면 그 음식도 기꺼이 기뻐해줄 걸세. 아 음식을 먹기전에..."




사령관은 어디선가 가져온 적포도주를 꺼내 리제의 잔에 채워주었다.




"이 고기는 적포도주와 어울릴걸세. 나도 술을 그닥 좋아하는 것은 아니네만, 오늘 같은 날은 조금은 취해도 되겠지."


"네에, 물론이에요. 저랑 함께 취해요 주인님~"


"너무 과한 것은 금물일세. 리제양."




리제를 보는 사령관의 얼굴엔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소중한 것을 보는 자애로운 시선으로 가득했다.




미소짓는 리제를 바라보며 사령관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윤리적인 그림들을 모두 지켜내리라.


그 무엇이 와도, 그 어떤 것이 위협하더라도 내 반드시.




"그럼 건배하세. 리제."


"네에 주인님! 건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