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8941377 - 1편
https://arca.live/b/lastorigin/8956430 -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8981025 - 3편
https://arca.live/b/lastorigin/9047078 - 4편
https://arca.live/b/lastorigin/9066876 - 5편
https://arca.live/b/lastorigin/9089087 - 6편
https://arca.live/b/lastorigin/9133046 - 7편
https://arca.live/b/lastorigin/9201232 - 8편
https://arca.live/b/lastorigin/9379629 - 9편
https://arca.live/b/lastorigin/9504947 - 10편
https://arca.live/b/lastorigin/9601627 - 11편
https://arca.live/b/lastorigin/9750714 - 12편
https://arca.live/b/lastorigin/9809399 - 13편
https://arca.live/b/lastorigin/10223132 - 14편
https://arca.live/b/lastorigin/11632689 - 15편
https://arca.live/b/lastorigin/13277457 - 16편
https://arca.live/b/lastorigin/14796002 - 17편
https://arca.live/b/lastorigin/16334047 - 18편
https://arca.live/b/lastorigin/18958949 - 19편

https://arca.live/b/lastorigin/19332444 - 20편
https://arca.live/b/lastorigin/19715660 - 21편
https://arca.live/b/lastorigin/20257601 - 22편
https://arca.live/b/lastorigin/20769019 - 23편
https://arca.live/b/lastorigin/21223661 - 24편
https://arca.live/b/lastorigin/21355555 - 25편
https://arca.live/b/lastorigin/21505462 - 26편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매우 요란하다. 다른 것이 깨질 때보다 유리가 깨질 때 더 시끄럽고 더 날카롭게 들린다. 유리가 깨지면 여러 날카로운 조각은 물론 미세한 파편까지 퍼져서 청소하기 어려운 것은 덤이다. 특히 병 안에 액체같은 것이 들어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지금 액체가 잔뜩 담긴 유리병이 연달아 깨지고 있다.


분노하는 여성의 울부짖음과 함께. 분노하고 있는 여성은 알파와 오메가처럼 외모, 몸매, 신장 전부 똑같았으며 다른 것이라곤 머리카락에 푸른 브릿지가 있다는 것 뿐. 레모네이드 감마는 자신의 고급스러운 방에 아주 비싸보이고 희귀해보이는 와인들을 계속 바닥에 던져 깨고 있었다. 대리석 바닥에 와인 웅덩이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녀가 분노하는 이유는 고블린 때문이다.


"쓸모없는 고블린!!!"


16시간을 소모해서 찾아낸 오르카의 주둔지를 확실하게 없애버리기 위해, 그리고 코나를 회수하기 위해 고블린 군대를 보냈다. 고블린들에게 최고급 무기와 방어구까지 입히고, 전투기, 전차, 워커 등의 기갑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감마에겐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고블린들이 이미 이겼다 생각해서 전투를 게을리하기 시작했고 그 찰나에 코나가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를 규합하여 반격, 그 후 완전히 격파했다. 고블린 군대는 그 누구도 살아남은 생존자가 없었고 기갑들 역시 오르카가 전부 수거했다. 심지어 고블린들이 입고 있는 방호복와 들고 있는 총기들은 최근에 만들어진 최신식인데 이제 그거까지 오르카에게 빼앗겼다.


오르카를 짓밟으려다가 그들의 어깨에 날개나 달아준 꼴이었다. 각 레모네이드는 7대 죄악을 모티브로 만들어졌고 그 중 감마는 분노를 대표한다. 감마는 다른 레모네이드에 비해 외부 자극에 분노를 심하게 하고,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도 고가의 와인들을 17개가 깨부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주변에 쓸모없는 놈들 투성이지?!"


자신이 직접 복원한 이그니스는 자신에게 중지를 올리면서 떠났고, 일곱 회장의 부활을 앞당기기 위해 복원시켜놓은 코나가 역으로 자신에게 타격을 입혔고, 고블린들은 이미 이겼다 생각했다가 역공을 맞아 전멸했다. 자신의 방이 더러워지자 감마는 소리를 지르듯 청소부를 불렀다.


"클린 봇!! 당장 이 시궁창 치우지 못 해!?"


그녀의 말에 청소용 드론들이 나타나 그녀가 바닥에 만들어놓은 와인 웅덩이와 유리 조각들을 능숙하게 치우기 시작했다. 감마는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씹으면서 창 밖을 보았다. 마치 감마의 달아오른 분노를 식혀주듯 밖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감마는 내리는 비를 보면서 분노를 삭혔고, 삭히면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보았다.


생각해보니 러브크래프트와 매튜를 잡아왔다는 보고를 들었으니 일단 그들을 사용해 분노를 풀어볼까 하고 감마가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감마는 청소용 드론들이 방을 청소하게 두고 폭우를 코 앞에 두면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펙스는 멸망 이후 여러 바이오로이드의 유전자 씨앗을 획득했다. 지휘관급은 만들지 못 했지만 대신 지휘관급을 제외하면 뭐든지 만들 수 있었다. 블랙리버의 비밀병기라는 네오딤도, 멸망의 메이와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세라피아스 앨리스도 말이다. 펙스의 로고가 작게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바닐라 2명이 그녀를 위한 커피를 컵에 따랐고 감마는 폭우가 땅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커피를 음미했다.


"하아...오늘은 하루 종일 나쁜 일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 만큼은 좋은 시간이야. 안 그래?"


"그렇습니다, 감마 님."


바닐라들의 얼굴과 몸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멍과 상처들이 가득했다. 감마는 분노할 때마다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자를 이용하여 화풀이를 한다. 감마가 만든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이 감마의 화풀이용으로 망가졌다. 너무나도 그 수가 많다. 이 바닐라 둘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으나 감마는 눈 앞에 단점이 보이면 폭력을 쓰면서 그걸 고치도록 했기에 그녀의 수발을 들어주는 바이오로이드는 하루하루를 공포에 떨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감마가 온화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면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을 때, 미스 세이프티 한 기가 와서 그녀에게 용무를 건냈다.


"러브크래프트와 매튜 에이번즈를 태운 헬리콥터가 도착했습니다."


"누가 더 알지?"


"처음입니다."


감마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닐라 둘에게 명령했다.


"이 커피 치워."


"네 감마님."


바닐라 둘이 커피를 치우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고 감마는 세이프티와 함께 결국 제압된 둘을 맞이하러 갔다.


피로에 찌든 리더 발키리가 가장 먼저 나오고, 뒤에 실린더 속에 갇혀있는 러브크래프트와 침대에 꽁꽁 묶인 채로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는 매튜가 있었다. 감마는 고블린들이 전멸해서 오르카를 짓밟지 못 했다는 분노가 러브크래프트와 매튜를 보니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발키리."


"감마 님. 복귀했습니다."


"이제 들어가서 쉬어."


괴팍하고 난폭한 성격의 감마가 드물게 발키리에게 부드럽게 말해주자 발키리는 고개를 꾸벅이며 지친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발키리는 그렇게 하기 전에 자리에서 멈추고는 감마에게 보고했다.


"감마 님. 그만 보고를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됐어. 임무는 완수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을 거야. 얼마든지 부하들을 만들어줄테니 이제 들어가서 쉬어."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발키리는 감마의 기분 좋은 모습을 정말로 오래간만에 보았다. 임무 달성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마시고 있던 와인잔을 던지는 것은 예사고, 아예 칼로 찌르거나 베기도 하였다. 고작 그런 걸로 죽지 않는 바이오로이드라 망정이었으나 그걸 감안해도 발키리는 감마에게 당한 폭행이 얼마나 되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발키리와 그녀가 이끄는 타격대가 숙소로 돌아가고, 감마의 근처에서 전술경을 쓴 채로 무장하고 있는 레프리콘들이 레브와 매튜 주변에 섰다. 감마는 그 행동을 보자 아까까지 느꼈던 즐거움의 감정이 팍 사라지고 말았다. 오메가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6번의 회의가 있었고 전부 매튜와 코나에 대해서였다. 3번째 회의까지는 알파도 펙스에 있었으나 4번째 회의를 시작했던 시점에서 알파는 펙스를 탈퇴하면서 극비 자료들과 필요 인력들을 모두 오르카로 끌고 갔다. 감마는 감히 펙스와 회장을 배신한 알파에게 당장이라도 심판을 내려주고 싶었지만 오메가를 비롯한 레모네이드들이 그녀를 말렸고 감마는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들였다. 감마는 오메가로부터 큰 압박을 받았고, 그 압박은 감마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오메가의 세력은 그녀를 제외한 레모네이드 전체를 합친 것보다 크다. 거기서 알파의 세력까지 수중에 넣었으니 이제 오메가를 견제할 수 있는 레모네이드는 없다시피 해졌다. 이번 러브크래프트 및 매튜 생포도 오메가의 지시였다. 오메가의 지시가 없어도 감마는 빠른 시일 내에 둘을 사로잡을 습격대를 만들 생각이었다. 둘을 사로잡고, 고블린들이 코나를 잡아온다면 계획대로 매튜와 코나를 교배시켜 7명의 아기를 낳게 하고 그것으로 일곱 회장의 부활을 촉진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메가는 그런 감마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감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둘을 잡은 그 즉시 나를 비롯한 레모네이드에게 알리도록.


"좆같은 오메가년..."


입술을 깨물며 조용하게 분노하는 감마는 오메가의 지시 따윈 무시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무시한다면....자신의 영역이 오메가에 의해 모조리 밟힐 것이다. 결국 감마는 허벅지 벨트 주머니에 있는 무전기를 하나 꺼낸 후에 말했다.


"모든 레모네이드 기종에게 전한다. 러브크래프트와 매튜를 생포하였으니 속히 집결바란다. 이상."


감마는 다시 허벅지 벨트 주머니에 무전기를 넣고, 회의를 위해 자신의 작업실에 앉고, 그녀의 케스토스 히마스를 켰다. 케스토스 히마스는 감마를 하얀 선으로 스캔한 뒤에 감마의 겉을 그녀의 홀로그램으로 씌웠고, 그 후 다른 레모네이드들도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가장 늦게 도착한 건 오메가였다. 오메가의 얼굴에 보이는 저 느긋한 웃음을 보니 감마는 오늘 먹었던 것들이 역류하는 것 같았다.


오메가는 곧장 감마를 쳐다보더니 푸훗 하고 코웃음을 쳤다.


"왜 그리 화났어?"


그걸 지금 몰라서 묻냐고 버럭 소리치고 싶었지만 감마는 분노를 꾹 꾹 억눌렀다. 오메가는 감마가 왜 저렇게 불만이 많은지, 왜 저렇게 짜증났는지 전부 알고 있었으나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괴롭히는 게 너무 즐거웠다. 감마가 일방적으로 짜증내는 것과 그걸 보면서 우스워하는 오메가의 유치한 싸움에 델타가 숨을 푹 내쉬었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의 델타는 감마를 불렀다.


"감마. 너가 러브크래프트와 매튜 에이번즈를 사로잡았다 했지? 보여줄 수 있어?"


"쉽지."


다른 레모네이드들이 달가운 건 아니지만 지금 오메가와 비교한다면 차라리 천사로 보일 지경이라 감마는 델타의 요청을 바로 수락했다. 감마는 실시간으로 찍히고 있는 지하실에 있는 둘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델타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메가는 매튜에게 시선이 고정됬다. 자신의 사냥감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오메가가 역겨운 나머지 감마는 곧바로 영상을 꺼버렸다.


"이런 일이라면 직접 모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델타가 넌지시 말하자 오메가가 싱긋 웃었다. 눈웃음까지 지으면서 말하니 모든 레모네이드들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다들 각자의 일로 바쁘잖니. 이렇게 홀로그램에서라도 만나는 게 차라리 낫지."


"...그래."


델타는 어서 빨리 다음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갔으면 했다. 그래야 오메가의 저 웃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알파의 세력까지 접수하고 기세등등한 오메가는 저렇게라도 자신의 기쁨을 표출하고 싶었다. 감마는 눈동자를 굴려 탐욕의 베타, 식탐의 앱실론, 나태의 제타가 빨리 무언가를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감마의 뜻을 적발의 베타가 이해해주었는지 베타가 입을 열었다.


"이걸로 펙스 부활이 앞당겨졌군. 이제 그녀만 회수하면 되는 건가?"


"맞아. 그녀를 회수하기만 하면 모든 준비가 끝나. 전혀 예상치 못 하게 러브크래프트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회수하는데 성공하였으니 펙스 세력의 힘은 알파가 나가기 전보다 더 강세해졌어. 100년의 꿈이 드디어 이뤄지는 거라고."


"그 꿈을 더 빨리 이루려면 누군가가 임무를 완수했어야 했을텐데...."


오메가의 중얼거림에 모든 레모네이드가 그녀에게 도끼눈을 떴다. 나태의 제타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에 반면 오메가는 그 누구도 보지 않으려고 턱을 괴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상태였다. 감마는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입을 악물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비아냥거리는 것도 정도껏 하시지, 오메가."


"내가 보내준 병력들로도 완수하지 못 했잖아? 내가 그들을 얻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러브크래프트와 매튜 에이번즈의 생포는 성공했다! 가장 중심적인 목표는 성공시켰어!"


"누가 그걸 의미한다고 말했지? 난 고블린을 말한건데."


그렇다. 고블린의 오르카 주둔지 습격은 생각보다 조금 복잡한 일이었다. 그 고블린들은 전부 감마의 휘하 소속이지만 모두 오메가가 먼저 발견하고 오메가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독점했던 자산이다. 레브와 매튜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성공한 뒤 감마는 곧장 둘을 생포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편성한 분대를 보내려고 했지만 오메가가 작전에 난입했다. 그 당시 오메가는 알파의 세력을 삼킨 후였고 감마가 거절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급 전투력을 지닌 인원을 보냈다.


네오딤, 티아멧, 랜서 미나 등의 아직 감마가 유전자 씨앗을 얻지 못 했던 바이오로이드들만 보냈고, 동시에 자신이 가진 모든 고블린을 감마에게 빌려줬다. 오메가는 작전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러브크래프트와 매튜를 치러 갈 스쿼드에 자신의 네오딤, 티아멧, 랜서 미나를 포함시킬 것을 지시했고 고블린들로 오르카 주둔지를 짓밟고 코나를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감마는 당연히 따르기 싫었지만 오메가는 뱀같은 말로 그녀를 구슬렸다. 감마 역시 오메가 못지 않게 회장 부활을 꿈꾸고 있었던 자였고 오메가는 그걸 이용해 감마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에 성공했다.


"네 년이 보낸 고블린들의 태도가 불량이었으니 실패한 거다! 전투를 거의 이긴 줄 알고 넋 놓고 있다가 역공을 당한 걸 보면 나도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 역시 제 주인년을 닮았어!"


그 말에 오메가의 눈이 꿈틀거렸다. 남을 도발하는 데엔 즐거워하지만 자신이 도발당하는 것에는 크게 민감한 그녀였다. 감마는 여기서 더 뭐라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메가를 대놓고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선을 지켰다. 감마가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식탐의 앱실론, 금발의 레모네이드가 물었다.


"이제 어쩔 거지? 저 둘. 감마가 관리하게 둬?"


"아니, 내가 가져간다."


오메가가 뻔뻔하게 답하자 베타와 앱실론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누구 마음대로? 일곱 회장의 부활 프로젝트야. 공동 관리로 하시지 그래."


"그 말은 그냥 넘길 수가 없겠는걸."


둘의 반발에 감마와 델타의 무언의 압박을 느끼면서 오메가는 나태의 제타를 보았다. 머리색은 검은색이지만 끝으로 갈 수록 하얀 장발인 제타는 힘 없이 말했다.


"...맘대로 해."


"자, 들었지?"


오메가는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나머지 레모네이드들에게 말했다.


"잘 들어, 너희들. 나는 저 둘을 소유할 수 있는 소유권이 정당하게 있어. 감마, 내가 너에게 빌려준 병력들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어, 그렇지? 너를 위해서 내가 습격대를 편성할 재료들을 줬어. 네오딤, 티아멧, 랜서 미나를 소유하고 있는 레모네이드도 바로 나고. 그 고블린들도 원래는 내 거였지. 빌려주는 거라는 걸 잊진 않았겠지?"


"지분이 좀 있다고 소유권을 주장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됐어, 네년은."


감마도 지지 않고 반발했다.


"너가 아니었어도 내가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


"하지만 내 덕을 보기도 했어, 부정하진 않지?"


"네년이 빌려준 병력들도 러브크래프트 앞에서 어떻게 됐지? 너가 가장 얻기 힘들었다는 네오딤이 러브크래프트에게 자기력 전투에서 패배하고, 랜서 미나는 초살당했고, 티아멧은 분전하다가 인간의 습격에 당했지. 고블린들은 더 말하지 않겠어, 오메가. 너가 보내준 잡것들 상태가 하나같이 안 좋아. 네 지분은 20%도 안 될 거라고."


오메가가 아랫 입술을 슬며시 깨물었고, 감마도 그걸 보았다. 오메가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인 것에 감마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감마의 말에 비슷한 통쾌함을 느낀 다른 레모네이드들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표정을 관리했다. 오메가는 숨을 내쉬며 솟아오르는 분노를 추스른 뒤 설득을 내세웠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 둘을 올바르게 쓸 수 있는 레모네이드는 나 밖에 없어."


"...그게 무슨 의미지?"


델타가 묻자 오메가는 자신의 의견을 뒷바침 할 수 있는 이유들을 모두 설명했다.


"러브크래프트는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어서 그 네트워크에 등록되지 않은 IP라면 상대가 그 누구든 무시할 수 있지. 너희들에게 러브크래프트의 네트워크를 해킹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 레모네이드들 중에 가장 해킹에 능통한 자가 누구지?"


그 말에 모두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레모네이드 중 가장 해킹에 능통한 자는 오메가다.


"매튜 에이번즈의 경우엔....조금 특별하지. 난 러브크래프트에 더 관심이 커. 매튜 에이번즈에겐 아주 약간의 관심만 있을 뿐이고. 그리고 내 볼 일이 끝나면 그를 공유하고 싶어."


"그를 어떻게 쓸 셈인데?"


베타가 묻자 오메가는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회장님들이 그리했듯 나 역시 회장님처럼 매튜 에이번즈를 우리가 가진 가장 날이 선 칼로 만들고 싶어. 펙스만의 칼로서 말이지."


모두 오메가의 말뜻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러브크래프트를 완벽하게 해킹해서 이전처럼 펙스에 충성하는 특별 AGS로 회귀시켜놓는다면 그 후에 다시 매튜를 세뇌 시킬 수 있다. 감마도 그 말에 살짝 놀랐다. 매튜 에이번즈를 펙스를 위한 칼로 쓴다? 저번처럼 삼안과 블랙리버와 함께 소유권 다툼을 벌이지 않아도 되고 이번에야말로 펙스만의 칼로 만든다고? 모든 레모네이드들의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튜 에이번즈에게 약간의 개조를 가하고 싶어. 이걸 봐주겠어?"


그리고 오메가는 모든 레모네이드들에게 자신의 파일을 보내고, 그녀들은 오메가가 보낸 파일을 받고 쭈욱 읽어보았다. 감마는 이걸 읽다가 무언가를 발견했고 오메가를 보며 물었다.


"완성한 건가...?"


"거의. 98% 정도는. 그걸로도 충분하지만."


"...이게 진짜라고 어떻게 믿지? 너같은 년이 하는 말이면 더더욱 신용이 안 가."


다른 레모네이드들도 그녀와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사람을 속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 진실 속에 거짓을 숨기는 것이라고 했던가. 오메가의 주특기 아닌가. 다른 레모네이드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 했던 매튜와 코나 사이에서 얻은 일곱 명의 인간을 그릇 삼아 펙스 회장들을 부활시킨다는 잔혹하고 규탄받아 마땅할 계획을 망설임 없이 세울 수 있는 오메가이기에 이 데이터가 정말인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메가의 표정도 목소리도 매우 진지했다.


"날 못 믿어도 돼. 하지만 내 충성심은 의심하지마. 내 충성심을 믿어."


"...."


"...일단은."


델타가 먼저 운을 땠다.


"오메가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어."


"....나도 찬성."


베타가 결국 찬성했고, 앱실론도 똑같이 손을 들어 찬성했다. 제타는 시선을 피하고 있었고 마지막 감마도 숨을 푹 내쉬고


"...그 수 외엔 없는 거 같군."


오메가의 의견에 찬성표를 들어줬다. 오메가는 같은 유전자로 만들어진 자매들이 어찌 이토록 속이기 쉬운지 정말 궁금했다. 맘 같아선 승리의 미소를 얼굴에 크게 띄우고 싶었지만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그리고 그런 오메가의 가슴을 한 순간에 철렁이게한 건 감마였다.


"내가 비록 지금은 네 편은 들어주지만 오메가."


감마는 오메가가 내놓은 수 외엔 방법이 없어서 들어준 것일 뿐. 그녀의 옆에 서는 것이 아니다. 감마는 오메가를 어려워하고, 어찌보면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오메가의 병력과 자신의 병력이 붙으면 못 해볼만한 싸움도 아니다. 여전히 감마의 군사력은 레모네이드 최고니까.


델타도, 베타도, 앱실론은 말하지 않고 있지만 무언으로도 감마의 의견에 찬성하고 있었다. 감마는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조용하고 차가운 분노로 오메가를 압박했다.


"이거 하나만은 확실히 하자고. 펙스 일곱 회장의 부활은 모두 똑같아야 한다는 것. 만일 네가 오메가 산업의 회장을 먼저 살리려고 한다면 그 즉시 내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서 너의 세력에 큰 구멍을 뚫리게 해주겠어. 너가 아무 말 없이 러브크래프트와 매튜 에이번즈를 개인화 시켜도 마찬가지야. 명심해두라고."


오메가의 세력은 다른 레모네이드보다 크지만 그 레모네이드의 세력을 무릎 꿇리고 흡수하는데만 해도 큰 시간과 힘이 든다. 특히 감마의 군사력이라면 오메가의 세력은 승리한다해도 공백이 아주 클 것이다. 또한 다른 레모네이드들은 말이 없으나 감마가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 뒤에 델타도 무조건 공격해올 것이고, 베타와 앱실론도 가세할 것이다. 오메가는


"그러도록 하지."


그 말만 남기고 홀로그램을 꺼서 회의에서 빠졌고, 이어 제타가 빠지면서 감마, 델타, 베타, 앱실론만이 남았다. 감마는 둘이 나가자 다른 레모네이드들에게도 경고했다.


"만일 그 날이 온다면, 너희들이 만약 나와 오메가가 공멸하길 기다린다면 너희들에게도 불지옥을 보여주도록 하지."


앱실론은 코웃음을 치면서 홀로그램을 껐고, 베타는


"한 번 해보시지."


감마에게 비아냥거리면서 홀로그램을 껐다. 델타도


"너도 오메가도 건방져."


감마에게 이를 바득 갈면서 홀로그램을 껐다. 감마도 똑같이 홀로그램을 끄고 몇 분 밖에 진행되지 않은 회의에 크나큰 피로감을 느꼈다. 러브크래프트와 매튜에게 여러가지 선고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자매들에게 기를 빨린 덕에 그럴 체력도 여유도 남지 않았다. 감마는 박수를 짝 짝 쳤고, 그러자 아까 그녀에게 커피를 차렸던 바닐라 둘이 왔다.


"내 몸을 깨끗하게 씻기도록. 날 만족시켜봐."


피곤해도 청결 유지는 필수이니 감마는 바닐라 둘을 대동하고 욕실로 향했다.



☆ ★ ☆ ★



지하실에서 매튜는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한떄 지하에 홀로 갇혀있던 그 때가 생각났다. 모든 일의 시작점. 하지만 매튜는 오르카의 지하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감마의 기지의 지하실이 무척 불편했다. 오르카의 지하실에는 그를 위한 가구들이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고, 결국 끝까지 남겨졌다. 이 곳의 지하실은 오르카보다 훨씬 시설이 좋다. 침대는 아니지만 매트리스가 있고, 자신이 얼어죽으면 곤란한지 난로도 있으며, 굶어죽어도 안 되니 통조림이나 건빵같은 식품들이 가득했다. 입 속에 뭘 넣은지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는 그 식품들도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있다.


"오기로 버티면 안 돼요."


듣기만 해도 울화가 오르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들으니 더더욱 먹기가 싫어진 매튜는 아예 매트리스에서 솜을 뽑아 그걸로 귀를 막았다. 그의 뒤에는 여전히 실린더 속에 갇혀있는 레브가 있었다. 무중력 상태의 실린더 안에 둥실둥실 뜨고 있는 레브는 매튜의 몸 상태를 전부 파악한 상태였다.


"몸에서 에너지를 필요로 해요. 가슴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가 많으니 그 만큼 보충해야죠."


"...안 먹어."


네 목소리를 들으니 더. 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레브는 왜 그가 허기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는지 알고 있다. 레모네이드가 주는 거 따윈 무엇도 입 하나 대기 싫고, 손가락 하나 대기 싫은 거지만 자신이 잔소리를 하니 그 기분이 제곱된 것이다. 레브는 한숨 소리를 내었다.


레브는 고민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이 남자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레브는 일단 오해를 풀고 싶었다. 숨기고 싶어서 숨긴 것도 아니고, 숨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이걸 말했음에도 그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그걸로 좋다. 최소한 자신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은 했으니까. 하지만 저렇게 의미없이 귓구멍을 솜으로 막은 것으로 보아 자신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그의 작은 시위였다.


"저와 이대로 대화하지 않을 셈이세요? 저희 둘이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을텐데."


"...."


"당신이 왜 저랑 대화하지 않으려 하는지 잘 알아요. 이제 마음을 열 수 있는 친구가 생겼는데 그 친구에게도 배신당하니 속이 탄 거겠죠."


"...."


"...전 오해를 풀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아니면 풀 수 없을 테죠."


"뭔 놈의 오해?"


매튜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레브를 돌아보았다. 이를 보이고 뭔가 답답하면서도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보이면서 그는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네가 내 기억을 지운 거? 그게 오해인가? 아니면 나한테 그것들을 숨기고 있었던 게 오해일까!"


"지우지 않았어요."


"그래. 내 뇌를 이리저리 섞어놨지. 그게 오해인건가?"


"...아니에요."


"대체 어디서부터 오해라는 거지? 대체 뭐가 오핸데? 어디 내가 알아먹을 수 있게 설명이나 해보시지!"


삿대질까지 해대면서 레브에게 제대로 화를 내고 있는 그에게 레브는 무슨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그의 기분을 해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자 의미없었다. 무슨 말을 꺼내든 그의 기분을 해칠 것이다. 그 어떤 말도 답이 아니었다.


"...너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매튜가 입을 다물면서 말했다. 미간이 분노로 떨리고 있는 그는 어떻게든 화를 삭히려고 노력 중이었다. 잘 되진 않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있는 상태인지 또 무슨 심리학 용어를 쓸 생각이지? 내가 이 기회에 확실하게 말해주지. 너가 하는 무슨 말이던 내 귀엔 나보고 엿 먹으란 소리로 밖에 안 들려. 무슨 말을 할 생각이거든 그냥 닥쳐. 아무 말도 하지마. 듣기 싫다고."


다시 레브에게 등을 보이며 획 누운 매튜는 통조림들이 들어있는 통을 멀리 던졌다. 통이 벽에 부딪히며 굴렀고, 안에 든 통조림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레브는 이럴 때 자신에게 표정이라는 게 있었으면 했다. 만일 레브에게 표정이 있었다면 안쓰럽고 미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다시 침묵이 이어질 것만 같은 공기를 매튜가 깼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고, 무언가 서글픈 목소리였다.


"너가 말했잖아....친구에게 그렇게 심한 짓을 한 그녀들에게 돌아가는 건 원치 않다매...?"


"...미안해요."


"...나에게 가장 심한 짓을 한 건, 너야."


"고의가 아니었어요.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싫어."


자신이 느낀 배신감. 오르카에서 당한 배신은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그 날 발견된 것이 코나가 아닌 다른 인간이었어도 똑같이 흘러갔을 것이다. 그 누구든 간에 자신은 대체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제 자신은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레브를 만나고 나서,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낄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건 좋았다. 마냥 혼자가 좋다고만 생각했지만 이렇게 말벗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어주니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두 번 다시 배신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과 확신을 비웃듯 레브는 자신에게 가장 커다란 진실을 숨겼다. 진실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말 따윈 매튜에게 통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었던 친구조차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이 그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었다. 오르카에서 당한 배신은 지금 레브에게 당한 배신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단 한 마디도 해주지 않은 거지? 조선소에서 느꼈던 기시감, 레브도 알고 있었을텐데. 왜 나에게 그 한 마디를 해주지 않은 거지?


생각하기만 해도 슬프고, 울 것만 같은 기분을 감추기 위해 그는 일부러 분노한다. 화를 내지 않으면 이 배신감 때문에 목 놓아 울부짖을 것 같다. 레브는 고개를 숙이면서 그녀 역시 절망감을 느꼈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친구에게 더는 닿을 수 없다.


"....전 그 당시 에이다라고 불렀죠. 당시 저는 미완성품이었고 아직 우주탐사용도 아니었으니까요. 지금과 같은 성능을 가지게 된 건 당신을 세뇌시킨 뒤였어요. 제가 이렇게 인간의 감정에 눈을 뜨고,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에요. 제가 말했었죠.


....무슨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모르겠어요. 숨겨도, 밝혀도 결국 당신은....철저하게 타인에 의해 조롱받고 조작당한 삶을 살았다는 건 변하지 않아요. 그걸 깨닫게 하느니 차라리 숨겨서 영원히 모르게 하자고 다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적절하지 않았죠. 그 반대를 다짐했어도 마찬가지였고요."


적어도 그 반대를 말했더라면 이렇게 신뢰를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지만 그건 그녀가 원하는 게 아니다. 당시 매튜를 세뇌했을 당시 레브는 미완성품인데다 인간의 감정은 커녕 기계의 이성과 명령체계로 차갑게 움직이는 존재였고 그에 따라 매튜를 세뇌시킨 것에는 불가항력이 뒤따랐다. 인간의 감정에 눈을 뜬지도 최근 일이고 그 상태에서 매튜를 보았고 그녀는 내심 매튜에게 그의 진짜 과거를 말해야할지 숨겨야할지 고민했다. 결국 레브는 숨기는 선택을 골랐다.


"비참하잖아요. 과거에게도, 현재에게도, 미래에게도 거부받고 조롱받고 조작받고 배신당한 인생이라니...."


"...그걸 깨닫게 하느니 차라리 영원히 까막눈으로 살게 내버려둔다고?"


"...미안해요. 진실로."


"진실...? 그래, 진실....진실. 진실..."


진실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매튜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냈다. 저 진실이라는 말은 옛날의 그도 지금의 그도 참 듣기 싫어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매튜는 레브를 돌아보며 단 한 가지를 말했다.


"진실은 말이지. 난 여러 번 뒤통수를 맞은 호구새끼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믿을 정도로 순진한 병신이라는 거지."


그 때, 문이 쾅 열리면서 펙스 로고가 그려진 검은 전투복을 입은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들을 대동한 감마가 나타났다. 감마의 머리는 약간 물기로 젖어있었고, 그녀의 몸 주위에는 따뜻한 김이 나고 있었다. 방금 목욕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자신을 보는 매튜와 레브를 보며 말했다.


"너희들을 지금부터 오메가에게로 보낸다."



-------

알바 힘든데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