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은 죽었다


언제나 처럼의 아침이 되어, 자신의 주인님을 깨우러 온 콘스탄챠에 의해 발견됐다


바닥에 오물이 쏟아지고 혀를 길게 내민채 천장에 매달려있던 사령관의 모습


새벽부터 일어나 주인님을 위해 긴 시간 이어진 몸단장을 끝낸 후 보게 된 첫 모습이었다


오르카호 전체가 울리도록 질러낸 비명에 많은 자매들이 모여들었고


마찬가지로 모두다 눈 앞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회의실에는 몇몇의 지휘개체들만이 있었다


"각하께서... 지금.. 자살을 했다는 것인가?"


보고를 받자마자 급히 복귀한 마리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했고


"그렇소... 받아들일 수 없지만 지금의 상황에는.."


무적의 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령관이 죽을리가 없잖아... 거짓말 하지마.. 당장 어제도 나랑 같이.."


레오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참석하지 못한 개체들을 신경 쓸 겨를 없었다


사령관이 죽고 많은 자매들은 현실도피를 하거나 방에 틀어박힌 채 앓아갔다 


차마 따라 죽을수는 없었다, 자신의 사령관님을 위해서라도 그럴 순 없었다


몇일이 지나 라비아타의 주도하에 사령관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많은 자매들 속 자신의 사령관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닐라.. 괜찮아..?"


"콘스탄챠 언니.. 네, 저는 괜찮습니다.."


바닐라는 주인님이 죽은 뒤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를 싫어한 것은 아니였고, 그저 표현의 차이였을 것이다


3일간의 장례식 끝나고, 사령관의 시체는 지상의 이름모를 섬에 안치되었고 오르카호는 대대적인 우울증에 시달렸다


많은 자매들이 고통받았고, 그나마 상황이 나았던 자매들에게서 위로 받아왔지만 상황은 나아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령관이 죽은 이유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지나친 업무 강도가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었다, 그 외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에도 이유가 존재했다


별의 아이와 대면한 이후부터 아니, 오르카호에 합류한 이후 부터 사령관은 이미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그러나 짧은 위로는 커녕 자신의 육욕을 해소하느라 바빴던 자매들이 존재했다


그런것 또한 사령관은 모두 감내하며 받아냈다


상황은 상황대로 내무는 내무대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사령관은 지쳐만 갔다는걸 모두가 알고있다


결국 방치되어 일어난 죽음이다, 모두가 범인이었다


그는 티를 내지 않은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자신보다 자신을 따라주는 자매들을 챙긴 사람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탓하던 많은 자매들 중 몇몇은 문득 생각을 바꿨다


이 죽음은 자신들 탓도 있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사령관이었다


하지만 감히 사령관을 탓할 수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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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의 단발머리를 한 소녀는 격식있는 복장을 입은채로 오르카호를 청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여성이 소녀에게 지나가면서 머리를 후려쳤다


"지금 그게 청소한다고 하는걸까? 일을 하기 싫었으면 차라리 말로 하지 그랬니?"


"아...뇨... 앨리스 언니... 죄송합니다.."


"지금 노려보는 눈은 뭘까? 이러다가 한대 때리겠다 그치?"


바닐라는 눈을 내리깔며 이 일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싸가지 없는 년"


앨리스가 지나가고 나서야 겨우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바닐라는 다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두가 바래왔던 인물상에 가까웠다


사령관의 업무를 보조했으며, 언어모듈에 의해 의도적이든 아니든 독설과 폭언을 일삼았던 그녀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겐 가장 완벽한 책임회피 수단이었다


그녀가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렀을때도


"죄송해요 바닐라씨.. 실수로 태워버려서.."


포티아에게 다 태워져버린 식사를 받았고


"죄송하옵니다, 손이 미끄러졌사옵니다 부디 용서를.."


소완은 자신의 중식도로 그녀의 식판을 두동강 내버리는 등 갈수록 처참한 대우를 받아만 갔다


떨어진 것들을 그저 내려다보고 있는 바닐라에게 많은 자매들은 따가운 시선과 은근한 욕설을 흘려보냈다


 치욕을 참아내고 자신의 음식이었던 것을 치우고 식당을 나간 바닐라는


도망치듯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하루가 흘러 일주일이 되고 달이 넘어갈때쯤 그녀는 버틸 수 없었다


그러나 주인님이 살아 계실때에도, 돌아가신 이후에도 콘스탄챠 만큼은 자신을 위로해주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콘스탄챠는 많이 여윈 몸으로 숙소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었다


"어머, 바닐라구나 차라도 좀 마실래?"


"감사..합니다 콘스탄챠 언니.."


그녀는 콘스탄챠의 맞은편에 앉았다


"얼굴을 보니 오늘도 그랬나보네... 내가 오늘도 잘 말해볼께.. 그러니까 힘내자 응..?"


"네... 감사합니다 콘스탄챠 언니.."


그녀는 이 시간이 유일하게 행복했다


여기서만큼은 폭언도 폭행도 존재하지 않고 평화로웠다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앨리스조차 콘스탄챠 앞에선 가만히 있었다


영원히 이 장소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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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오르카호


숙소에는 불이 꺼진 채 모두가 잠들고 있었고 누군가가 나가는 소리에 바닐라는 눈을 떳다


극도로 심해진 경계심에 시간이 지날수록 예민해져간 그녀였고


살짝 뜬 실눈으로 주변을 살펴본 그녀는 콘스탄챠의 빈자리에 겁을 먹었다


도저히 잠들수도, 이 곳에 있고싶지도 않았던 바닐라는 은밀히 숙소 밖으로 나갔다


최소한의 전등만을 남겨둔 채 모든 불이 소등된 오르카호는 낮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나와 만나지 않길 바라며 바닐라는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그저 다시 돌아가면 콘스탄챠 언니가 돌아왔길 바라며 대변기칸의 문을 잠궈 숨을 죽였다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비참하다고 느낀 바닐라는 인기척을 느꼈다


"피곤하네.."


"이해합니다..."


콘스탄챠와 블랙웜이었다


"그 씨발년만 보면... 괴롭혀주고 싶지만.."


"죽어버리면 모두가 곤란하잖니.. 그렇지..?"


"네, 맞습니다"


바닐라는 듣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한참을 바닐라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둘이 나갔고


바닐라는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화장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모두에게 미움 받았던 바닐라가 유일하게 믿었던 그러나 지금은 아니게 된 콘스탄챠가 미웠다


이제 참아야했던 유일한 이유가 없어졌기에 그녀 또한 행복해질 수 있었다


다음날 바닐라는 죽었다


언제나 처럼의 아침이 되어, 화장실에 들어온 콘스탄챠에 의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