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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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트엔젤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지?”

 

 “그런 것 같습니다. 대장.”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작전이 개시되었을 때부터 하늘에 떠있던 메이와 부관 나이트엔젤은 멸망의 옥좌에 작동하고 있는 레이더 화면으로 보이는 광경이 당황스러웠다.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췄던 철충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충들이 진격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다시 대지를 흔들었고 총과 미사일을 발포하는 폭음, 수많은 폭발물이 터지며 일어나는 굉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이와 나이트엔젤을 당황하게 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총성, 폭발음, 굉음들은 전장에서 들리는 배경음과 같은 것이다. 레이더에는 녹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사령관과 붉은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철충들이 이동하는 경로들이 실시간이 움직이고 있었다. 

 

 단 한 개의 녹색 점 뒤로 셀 수 없는 붉은 점들이 그 뒤를 쫓고 있었다. 붉은색 점들은 그 수가 너무 많아 점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보일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녹색 점이 붉은 점들에게 삼켜져 사라질 것 같았지만 스스로를 미끼로 철충들을 시선을 끌겠다는 사령관이 세운 작전대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메이와 나이트엔젤은 사령관의 행동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몇 분 전 마지막으로 사령관이 공장 점령 작전의 진행도를 묻기 전까지는 사령관은 모습을 숨겼다 드러내기를 매우 규칙적으로 실행했었다. 사령관이 모습을 감출 때마다 옥좌의 레이더에서 녹색이 순식간에 사려졌고 모습을 다시 드러내면 레이더의 어느 부분에서 다시 감지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사령관은 계속 모습을 전부 드러내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메이와 나이트엔젤을 당황시킨 것은 바로 사령관이 나아가는 방향이었다. 녹색 점은 도시외곽에서 점점 더 밖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령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사령관의 돌발행동을 목격한 메이는 곧바로 무전을 걸었다. 무전 너머에서 시끄러운 폭발음과 총성이 들렸다. 사령관이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폭발음과 총성에 묻혀 알아듣기는 불가능했다. 

 

 “사령관! 사령관!! 야!!!”

 

 목이 터져라 사령관을 불러도 대답 대신 총성과 폭발음만이 들려오자 메이는 옥좌의 팔 받침대를 강하게 한 번 내리쳤다. 메이는 레이더에 표시되어 있는 녹색 점에서 한 순간도 눈을 때지 않았다. 녹색 점은 서서히 도시를 벗어났고 이내 완전히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도시 밖으로 나갔다. 

 

 “메이 내 말 들리나?”

 

 “사령관!!! 미쳤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사령관이 태연하게 무전을 걸어오자 메이는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그대로 터트렸다.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고함소리에 나이트엔젤을 비롯한 주변에 있던 대원들이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메이는 냉정함을 가까스로 유지하면서 고함을 계속해서 질렀다. 

사령관은 잠시만 조용히 해보라고 메이에게 요구했지만 메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령관에게 지금 하고 있는 돌발행동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사령관의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메이의 심장을 덜컹 떨어뜨렸다. 옥좌의 레이더에서 녹색 점이 사라진 것이다. 무전 너머에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메이는 계속해서 사령관을 불러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령관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레이더에는 여전히 사령관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 철충들을 계속해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레이더는 온통 붉은 점 투성이었다. 

사령관이 저 붉은 점 안 어딘가에 숨어 있는지 아니면 도시외곽지역에서 도시 내부로 이동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해가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메이는 마치 어둠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이의 고함소리는 서서히 힘을 잃고 작아져갔다. 

사령관의 무응답은 사슬처럼 메이를 옭아맸다. 사나운 곰처럼 사령관을 찾던 메이는 그냥 사령관이 무전에 대답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메이의 목소리가 작아지자 그제야 사령관은 메이에게 무전을 연결했다. 

 

 “메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너와 나만 알아야 한다. 다른 지휘관들에게는 비밀로 하도록.”

 

 진지함이 가득 묻어 있는 사령관의 말투에 메이는 사령관이 또 터무니없는 말을 할 것을 짐작했다. 메이는 오만가지 감정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렇다고 이성을 잃어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다른 지휘관들에게 비밀로 하라는 뜻은 곧 지금부터 사령관과 나눌 대화는 오로지 둘 만의 대화가 될 것이란 뜻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작정이기에 다른 지휘관들에게 비밀로 하라는지 메이는 찰나의 순간에 사령관의 생각을 짐작해 보았다. 

아마도 사령관은 둠 브링어만이 가능한 무언가를 주문할 것이라고 메이는 확신했다. 다른 지휘관들은 하지 못하지만 자신만이 가능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했다. 제공권 장악, 공중 지원, 지상부대 폭격, 이 세 가지가 가장 대표적이다. 설마...메이는 등골이 순간 써늘해졌다. 

 

 “사령관, 또 어쩔 작정인데?”

 

 레이더에 사령관이 잡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메이는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었다. 언제 사령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 알 수 없을뿐더러 어디서 모습을 드러낼지 예상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내가 도시외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너도 레이더로 봤겠지? 나는 지금부터 더더욱 도시로부터 멀어질 거다. 내가 명령하면 내가 있는 장소에 폭격을 시행해라.”

 

 뭐라고? 메이는 사령관이 과연 제정신인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스스로를 미끼로 철충들의 시선을 끌겠다는 도박에 가까운 작전을 세우고 시행한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자신이 있는 위치로 폭격을 시행하라니 사령관의 뇌구조는 보통 일반적인 인간의 뇌구조가 아닌 것인지 메이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거부하겠어. 그런 명령은 따를 수 없어.”

 

 메이는 바이오로이드들 중 거의 유일하게 인간의 직접적인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바이오로이드이다. 물론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이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인간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작전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를 배제하기 위해 대신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도 있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과 달리 언제나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메이는 가장 강력한 핵이란 무기를 언제든 자의로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을 두려워하기 않고 오히려 즐기는 듯한 언행, 인간의 명령에 구속되지 않을 수 있는 권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병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들이 맞물려 메이를 전쟁광에 자만심이 뭉쳐져 만들어진 덩어리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메이는 프라이드가 높을지언정 전쟁광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군단에 대한 강한 믿음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이는 인간의 극단적인 선택을 대신하고 막기 위해 얻게 된 권한으로 사령관의 명령을 거부했다.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사령관의 명령은 미친 짓이었다. 

메이는 사령관이 둠 브링어의 폭격의 위력을 과소평가한다고 생각했다. 핵무기를 발사하지 않더라고 대원들과 함께 한 번 폭격을 개시하면 도시 하나는 우습게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의 폭격이다. ‘파멸을 가져오는 자’ 라는 군단의 이름에 걸맞게 둠 브링어가 폭격한 곳은 오로지 파멸만이 남는다. 

 

 “사령관, 미친 짓은 적당히 해. 도대체 어떤 정신으로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어?”

 

 메이는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성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메이는 사령관이 어째서 방금 같은 명령을 내렸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메이의 명령 거부를 예상이라도 했는지 사령관은 대본을 준비한 것처럼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메이, 마리 녀석이 5분 정도면 공장의 물품들을 회수하고 귀환할 수 있다고 했었지. 5분은 이미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오르카호로 귀환하고 있겠군.”

 

 사령관의 말대로 지상에서는 공장에서 물품을 회수한 부대들이 지휘관들의 명령에 따라 오르카호로 귀환하고 있었다. 사령관은 계속 말을 이었다.

 

 “공장으로 진군했을 때와 달리 오르카호로 귀환할 때는 시간이 더 소모될 거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분 정도는 더 필요하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20분 동안 철충들의 시선을 그 도시에서 끌 자신이 없다. 도시외곽에서 빙빙 돌면서 시간을 끌 수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철충들이 도시 내부로 접근하게 된다면 귀환하는 대원들과 시가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재수 없으면 아군 중에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겠지. 이번 작전의 핵심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것인데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해서는 안 되지. 도시 안에서 시간을 끌지 못한다면 도시 밖으로 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아마 지금 레이더에는 철충들의 신호가 전부 도시외곽보다 더 밖에서 감지되고 있을 거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사령관은 막힘없이 말을 풀었다. 실제로 옥좌의 레이더 감지되고 있는 철충들의 신호는 전부 도시외곽보다 조금 더 바깥에서 잡히고 있었다. 

도시 내부에서 감지되는 철충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오르카호로 귀환하고 있는 지휘관들은 귀환에만 집중하고 신속하게 도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너라면 공중에서 언제든지 나를 지원해줄 수 있지 않나? 나는 철충들을 적어도 20분은 더 끌고 있어야 한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도시외각에서 벗어나면 아마 근처의 다른 도시에서도 내 뇌파를 감지하고 철충들이 몰려들겠지 그러면 나도 버티기 힘들어진다. 너가 주변에 있는 철충들을 폭격으로 정리해줘야 나도 이동이 편해진다.”

 

 레이더에 다시 초록색 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사령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령관은 말한 대로 점점 도시외곽에서 멀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도시를 벗어났다. 

초록색 점을 붉은 점들이 뒤쫓았다. 아직 무전이 꺼지지 않았는지 무전 너머로 철충들의 날카로운 진격 소리가 들려왔다. 총성과 발포음 하나 둘씩 들리기 시작했고 미사일과 폭탄들이 터지는 굉음이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전력으로 질주를 하고 있는지 거친 호흡소리가 들렸다.

 

 “내 걱정은 하지 마라. 포츈에게 각별히 부탁해서 탑재한 신무기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원하는 만큼 폭탄을 퍼부어라.”

 

 사령관은 무전을 끊었다. 더 이상 무전 너머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메이는 자신의 의견과 대답 따위는 들을 척도 하지 않은 사령관이 원망스러웠다. 

무슨 의견을 내놓든 사령관은 상관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아무리 반대를 해도 결국에는 그가 내놓은 계획에 따르게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사령관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메이는 한 번 한숨을 푹 쉬더니 옥좌를 움직였다.

 

 “거부하겠다더니 결국에는 따르시네요.”

 

 “거부했다간 사령관이 진짜로 죽을 수도 있잖아...어쩌겠어.”

 

 “어쩌다가 사령관님 같은 분을 따르게 된 걸까요...”

 

 “그러게...”

 

 메이와 나이트엔젤은 사령관 같이 걷잡을 수 없는 인간을 사령관으로 모시게 된 것에 대한 한탄을 했다. 자원과 식량 탐색에만 목을 매는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때때로 직접 작전에 참여해 압도적인 강함을 보이며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담력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내린 공격명령에는 스스로를 미끼로 하는 정신 나간 작전을 세워오고 완강하게 수행을 거부하던 세 명의 지휘관들을 말 몇 마디로 강제로 따르게 했다. 

이제는 자신에게 폭격을 가하라는 미친 명령까지 내렸다. 메이는 이런 작전을 수행하려고 하는 자신도 미쳤다고 생각했다. 분명 인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에도 사령관은 그 거부권을 행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전원 나를 따라 이동한다. 알아서 잘 따라와.”

 

 메이는 둠 브링어와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옥좌를 조종했다. 옥좌가 향하는 방향은 레이더에 잡혀 있는 초록색 점이 있는 곳, 도시의 외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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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 소장! 각하께서는 어디에 게신가?!”

 

 “사령관은 무사한 거야?! 너는 왜 아직까지 귀환을 하지 않는 거야?!”

 

 대원들과 안전하게 오르카호로 귀환한 마리와 지휘관들은 대원들에게 회수한 물품들을 알맞을 위치에 정리해놓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사령관에게 작전이 성공했다는 낭보를 전하기 위해 무전을 걸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무전을 걸어도 사령관은 무전을 받지 않았다. 마리, 레오나, 칸 세 지휘관 그 누구도 사령관과 무전이 닿지 않자 아직까지 귀환을 하지 않는 메이에게 무전을 걸었다. 

 

 “사령관은 무사해. 지금 철충들 사이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방금 나한테 무전을 걸었어. 내가 안전하게 데려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메이는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지금 사령관이 도시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수천 마리의 철충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을 말했다간 지휘관들이 오르카호에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메이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메이는 이번에 일어난 일을 사령관을 말대로 비밀로 묻지는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작전이 완전히 성공하고 사령관의 안전히 확보된 다음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눈치 빠른 지휘관들이 더 캐묻기 전에 메이는 빠르게 무전을 끊었다.

 

 “메이 소장! 메이 소장!”

 

 메이가 무전을 끊어버렸지만 마리는 애꿎은 무전기에 계속 소리쳤다. 

 

 “보아하니 절대로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레오나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공장에서 물품을 전부 회수하고 귀환을 했을 때부터 오르카호로 귀환할 때까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철충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은 점은 둘째 치고 작전 중에 항상 들렸던 총성과 발포음, 폭발음이 어느 순간부터 멀어지더니 오르카호로 귀환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들렸다. 

대지를 뒤흔들던 진동도 어느 순간 사라진 것도 의심스러웠다. 

 

 지휘관들은 설마 사령관이 아무 말 없이 돌발행동을 한 것인지 의심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지휘관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독단으로 무언가를 실행에 옮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고 당장이라도 다시 대원들을 이끌고 나가고 싶었지만 사령관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가 없었다. 만약 사령관이 모습을 숨기고 있다면 도시 전체를 이 잡듯 수색해도 찾을 수 없다. 

발을 동동 구르던 지휘관들은 결국 오르카호에 남기로 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봤자 아무런 도움과 성과도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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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는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메이는 지금 생산 공장이 있던 도시가 아닌 가장 가까운 또다른 도시의 하늘에 떠있었다. 

생산 공장이 있던 도시와 비슷하게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모습,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도시는 생산 공장이 있던 도시보다 붕괴의 규모가 더 크단 점이었다. 이 도시는 형태가 남아 있는 건물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 

시선을 조금만 내리면 수많은 철충들이 지상을 검게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령관을 쫓아 도시까지 따라온 철충들, 원래부터 있었던 철충들까지 합세해 최후의 인간을 죽이기 위해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령관을 찾고 있었다.

 

 레이더에는 사령관을 나타내는 초록색 점은 보이지 않았다. 분주하게 이동하던 초록색 점은 다른 도시로 진입한 그 순간 자취를 감췄다. 

철충들이 우글거리는 저 도시 어딘가에 사령관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 메이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천운인지 우연인지 하늘을 비행할 수 있는 연결체 철충인 레이더는 없었다. 덕분에 메이는 사령관의 신호만을 기다리며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상태였다. 

 

 심장이 진정하지 않고 계속 강하게 뛰었다. 메이는 이번만큼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끼는 폭격명령 대기는 처음이었다. 오르카호의 멸망의 메이는 마리와 칸과 달리 유전자 씨앗을 통해 재생산된 개체이다. 때문에 두 지휘관처럼 직접적인 경험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생산되면서 주입받은 기억 모듈을 통해 수많은 간접적인 경험이 내재되어 있었다.

항상 폭격을 하기 전에는 흥분과 해방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었다. 적들에게 멸망과 공포를 심어줄 마음이 들었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메이는 처음으로 폭격의 위력이 너무 강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언제나 더 강력한 폭탄과 미사일을 요구했던 그녀였고 자신의 엄청난 화력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그 강력한 화력이 다름 아닌 사령관이 있는 장소에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자 오싹했다.

 

 “준비는 됐나?”

 

 “준비는 이미 된 상태야.”

 

 메이는 이미 체념한 상태였고 사령관이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버튼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이 약하게 떨렸다. 물론 사령관은 그런 메이의 마음을 알 리가 없었다. 사령관은 지금 도시의 한 가운데에 서있었다. 사방은 철충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철충들이 불과 몇 미터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몇 철충들은 사령관의 바로 옆으로 지나가기도 했지만 모습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철충도 사령관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 메이에게 지휘관들이 오르카호로 무사히 귀환에 성공했다는 낭보를 받았고 슬슬 사령관도 오르카호로 귀환해야할 시간이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폭격을 개시해라. 적당히 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 알겠나.”

 

 “알겠어.”

 

 메이는 둠 브링어 대원들에게 폭격을 준비하려는 지시를 내렸다. 대원들은 폭격을 실행하는 도시에 사령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령관이 도시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폭격을 실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로지 메이와 그녀의 부관인 나이트엔젤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껏 긴장한 메이와 나이트엔젤과는 달리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폭탄들은 철충들에게 쏟아부을 생각에 대원들은 들떠 있었다. 순식간에 폭격 준비가 끝났다. 메이는 사령관의 신호를 기다렸고 그 신호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레이더에 녹색 점이 나타났다. 수많은 붉은 점들이 녹색 점을 향해 몰려들었다. 저주스러운 금속음이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고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철충들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는 곧바로 폭격 명령을 내렸다. 생명을 신께 인도해주는 사자들이 발사되는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족히 수십 발이 넘는 물량의 미사일들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도시에 거대한 빛이 일었다. 

빛이 일고 다음에는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대지가 흔들렸고 폭발에 박살난 잔해들의 자욱한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빛이 일고 굉음이 들려올 때마다 레이더에 감지되었던 수많은 붉은 점들이 사려졌다. 

자욱한 먼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레이더는 지상의 현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수많은 붉은 점들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단 하나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사령관을 나타내는 녹색 점이었다. 

어느 순간 녹색 점이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다. 메이는 대원들에게 폭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폭격이 멈추자 자욱하게 일었던 먼지구름이 바람에 날려 서서히 걷혔다. 먼지가 서서히 걷히면서 가려져 보이지 않던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먼지가 걷힌 곳에는 도시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원래부터 황무지였던 것처럼 문명의 흔적은 먼지가 걷힐 때 함께 날아갔다. 

멸망당한 황무지의 중심에 한 검은 물체가 서있었다. 뇌파도 전파도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물체였지만 메이는 저것이 사령관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에게 아무런 정보를 듣지 못한 둠 브링어와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은 모든 것이 사라진 황무지에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것에 동요했다. 

도대체 저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인가? 대화가 오갔다. 물체는 보이지만 아무런 뇌파나 전파 따위는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을 가중되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한 눈치 빠른 스카이나이츠 대원이 황무지에 서있는 저 검은 물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녀는 사령관과 함께 작전에 나선 적이 있었던 P-22 하르페이아 37호 개체였다. 저 검은 물체는 사령관이 작전에 참전했을 때 착용하는 ‘엑소 스켈레톤’ 이란 강화외골격이란 걸 기억해냈다.

분명 ‘엑소 스켈레톤’ 에는 착용자의 뇌파와 차단하고 모습을 투명화시키는 장치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작전 도중 사령관의 뇌파와 모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어디선가 나타나는 것을 본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둠 브링어들은 사령관을 향해 폭격을 한 것인가? 하르페이아의 머릿속을 끔찍한 사실이 관통했다. 무차별적인 폭격이 실행된 도시에 사령관이 있다. 

하르페이아는 시선은 천천히 폭격명령을 내린 메이에게 향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거만한 태도와 표정을 유지하던 메이 대장이 지금은 십년감수를 했다는 풀어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메이는 천천히 옥좌를 착륙시켰다. 제트 엔진이 땅에 가까워질 때마다 먼지가 흩날렸다. 사령관은 메이에게 천천히 다가와 수고했다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거봐, 내가 말한 대로 됐지? 철충들은 전부 죽었고 나는 보다시피 몸에 생채기 하나 없지 않나.”

 

 사령관은 헬멧을 벗으며 하하 웃었다. 메이는 그런 사령관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다. 과연 인간이 맞기는 한 것인가 이제는 사령관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마저 들었다. 일반적인 인간은 이런 미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 작전이 있기 전까지 메이는 사령관을 겁쟁이라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메이는 자신이 틀렸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령관은 메이가 알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메이는 사령관이 어떻게 그 폭격 속에서 살아남았지 물었다. 사령관의 등 부분에서 무언가가 분리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금속판이었다. 사령관의 양 옆에 떠있는 금속판이 전개되더니 푸른색 에너지 실드가 나타났다.

 

 “익숙한 방어막이지? 역시 포츈이군 오르카호의 정비소장다운 실력이다. 그 블랙 리리스의 ‘로자 아줄’을 장착시키라는 명령을 이렇게 완벽하게 수행할 줄이야. 앞으로는 더 과감한 작전도 수행 가능하겠어.”

 

 사령관의 만족스러운 미소에 메이는 오한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과감한 작전? 다음에는 또 어떤 작전을 세울 생각인거야?’

 

 사령관은 메이에게 오르카호로 귀환하자고 말했다. 비행이 가능한 둠 브링어와 스카이나이츠와 달리 아직 비행 장치는 장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령관은 작전을 개시하기 위해 처음 도시에 왔을 때처럼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공중으로 떠올랐다. 

오르카호로 귀환하며 메이는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지휘관들과 함께 머리를 모아 저 시한폭탄 같은 사령관을 억제할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절실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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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카호로 귀환한 사령관은 함장실에서 지휘관들의 면박을 들었다. 그녀들은 상관에 대한 예의와 지휘관으로서의 품위 따위는 집어던졌다.

 

 “각하!!! 메이 소장에게 전부 들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사실입니까?!!”

 

 “사령관, 인간은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만물의 영장으로 불린 거야. 그런데 이번 작전을 세운 것도 작전 중에 우리에게 언급도 없이 돌발행동을 한 것도 내가 보기에는 전혀 이성적이기 못한 작전들이야. 다시는 이런 짓 따위 하지 않도록 해.”

 

 “사령관, 이것은 결과의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 진지하게 따져야 할 사안 같군.”

 

 사령관은 혀를 치며 비밀을 지키지 않은 메이를 째러보았다. 지휘관들이 알면 귀찮아질 것이 분명하기에 비밀로 하라고 말했거늘. 메이는 사령관의 눈빛에 똑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답했다. 

 

 “왜 그렇게 다들 흥분하나? 그래 내가 돌발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지 않았나? 만약 내가 돌발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사망자와 부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기적이 가능했을 거라고 보나?”

 

 사령관은 지휘관들이 주는 압박감에 전혀 눌리지 않았다. 저 정도 압박감에 기가 죽을 정도로 사령관의 무른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휘관들의 면박에 반박하며 말을 이었다. 

 

 “모든 계획에는 다 차질이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이번 작전 도중 일어난 차질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타파한 것이다. 나는 철충들의 시선을 끌며 대원들이 귀환하기 위한 시간을 끌어야 했고 그 시간을 끌기 위해 도시를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포츈에게 블랙 리리스의 로자 아줄을 장착하라고 명령했고 작전에 돌입하기 전 수차례 확인을 했기에 둠 브링어의 폭격에 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령관은 지휘관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성적이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나는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안을 택한 것이다. 그러니 시간 낭비는 이쯤하고 가서 오늘 회수한 물품들을 정리한 자료를 내게 가져왔으면 좋겠군. 회수한 유전자 씨앗 중 고위 개체의 유전자 씨앗이 있다면 서둘러 복구해서 내게 데려와라.”

 

 사령관은 나가라는 손짓을 하고 의자를 돌려 지휘관들을 등졌다. 지휘관들을 이를 악물며 함장실을 나갔다. 함장실을 나가며 지휘관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들은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령관을 억제할 방안, 그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메이의 말에 동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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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망쳤지만 글 쓰는 것은 행복하다. 개추와 댓글로 위로 받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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