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화 1화 2화 3화 4화 5화

-----------------------------------------------


 #6. 키예프-프리피야트 방어전 (상)


 

 “...하.”

 

 얼굴이 눈물 투성이가 된 다프네의 보고를 받고 나자 나는 도저히 뭐라 말해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분명 필사적으로 그 두나이를 살리려고 했던 다프네들에게 있어서 그 ‘안락사’는 더없이 잔혹한 행동이었다. 그녀들의 노력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주라블리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주라블리가 두나이들을 지금까지 안락사 시켰다고 말할 때 제-358의 표정은 분노나 원망이 아닌, 슬픔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닥터는 방사능 피폭이 불치에다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수반한다고 말해 주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이런 야심한 시간에 우리들을 부르다니, 그대는 여럿이서라도...음? 뭔가, 그 표정은.”

 “아, 다들 왔구나.”

 

 함장실 안으로 들어온 건 지휘관급 인원들을 비롯한 오르카호의 중진들이었다.

 

 “이런 시간에 불러내서 미안해. 그렇지만...도저히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버려서 말이야.”

 

 다들 그 말에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전원이 착석한 후, 나는 거북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제일 먼저 말한 건 칸이였였다.

 

 “전장에서...치명상을 입은 빈사 상태의 병사가 가끔 자신을 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있긴 합니다만...사령관님을 만난 이후부터는 그런 상황이 없었기에....”

 “음. 이런 말 하기는 뭣 하지만 우리 같은 포병들은 한번 사상자가 나오면 부상자보다는 대부분 사망자가 생기는지라.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각하의 의중이 궁금하다만?”

 “몇 시간 전, 한 두나이 바이오로이드가 병동에서 숨을 거뒀어. 남의 손으로.”

 “무슨?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내가 들은 것을 전해 주었다. 심하게 피폭되어 괴로워하던 한 두나이가 자신을 죽여 달라 요청했고, 주라블리가 그 두나이를 죽여 줬다고. 그리고 그런 행동이 이 기지에서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있어 왔다는 것 까지.

 

 “이럴 수가, 그게 사실이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주라블리 기종은 PECS사의 바이오로이드에요. 소속은 시티 가드. 두나이 기종들을 통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인 만큼 두나이보다도 뛰어난 방사능 방호력을 가진 데다 특유의 이족 보행 다목적 장갑 장비 덕분에 개인 전투력이 어지간한 군용 바이오로이드 정도는 비교도 안 되죠, 그래서 블랙 리버의 도움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주라블리 기종은 자기 지휘 하의 바이오로이드를 즉결 처분하는 기능이 있거든요.”

 “!”

 “두나이 기종들의 근무처를 고려해 보면 그런 기능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죠. 당장 도망치더라도 이상하지 않으니. 다만 대부분은 인간의 명령이면 그럴 일이 없는 만큼 굳이 그런 기능이 필요한지 의문이라 그 진위는 확실치 않았는데...주라블리는 극히 소수만이 생산되었던 데다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만든 소위 말하는 특별 제조 개체들이라 저도 확실히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여서 말이죠. 레모네이드의 이름이 부끄럽네요.”

 “아니야,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어. 언제나 고마워. ...그나저나, 그래서 솔직히 나는 이 사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일단 지금으로선 다른 오르카호 인원들에겐 이 사실을 비밀로 하려고. 그 다음은 잘 모르겠어.”

 

 그러나 이 문제에 한해서는 그녀들도 뭐라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크게 의미 없는 말들만이 오가던 중, 갑자기 긴급 알림이 왔다. 단말기를 확인해보자 키예프에 있는 마리였다.

 

 [각하, 비상사태 입니다!]

 “?”

 [현재, 이곳 키예프 서쪽과 남서쪽에서 대량의 철충들이 발견되었고, 이쪽으로 진군해오고 있습니다!]

 “!”

 [게다가 앞의 세력에 비하면 그 수는 비교적 적지만 그래도 적잖은 수가 북쪽에서 프리피야트로 향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사령실 안의 공기가 바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함교로 달려갔다.

 

==================================

 

 “이게 진짜 무슨 일임까! 하루 종일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겨우 잠들었는데, 적습이라니! 대체 제 운수 요즘 왜 이럼까!”

 “전원, 신속히 이동하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적은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브아-앗?!”

 

 도시 중심부에 있던 브라우니를 비롯한 스틸라인의 육상군이 도시 외곽의 방어진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머드 메이든 부대가 그 뒤를 따르는 형태로 움직이던 사이, AA캐노니어 부대원들은 서둘러 포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마 이걸 여기서 쓰게 될 줄이야, 처음엔 설마 여기에 철충이 올까? 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포신 준비 완료되었고, 레이븐은 이미 스틸라인을 따라갔고. 에밀리는 오르카호에 남아있다고 했으니 이제 남은 건....”

 “음, 내가 왔다! 오르카호에서 여기까지 바로 날아왔지.”

 

 비스트헌터의 뒤에서 로열 아스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거대 탄약 컨테이너도.

 

 “포탄 비축량은 신경쓰지 마라! 이 기회에 저 철충 놈들에게 전장의 지배자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거다!”

 

 포병진지 전체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나오자 아스널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 그런데 서쪽과 남서쪽으로만 포를 방렬한 이유가 뭡니까? 프리피야트로도 향하는 철충들이 있다 들었는데.”

 “음, 그쪽은 각하께서 방책이 있다는군. 그렇다면, 나는 그 말을 믿을 뿐.”

 

 아스널은 미소를 지으며 포탄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

 

 [각하, 전 병력 배치 완료했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야. 아머드 메이든도 전원 자리를 잡았어.]

 [포병대도 준비가 끝났다. 언제든지 녀석들을 날려버릴 수 있지!]

 

 통신에서 느껴지는 전원의 사기는 충만했지만 내 마음은 여러 이유로 개운치 못했다. 흑해 내부로 들어오면서 호라이즌 함대를 대부분 지중해에 두고 온 것도 그 이유들 중 하나다. 며칠 전에 보급선 한 척이 오긴 했지만 보급선인 만큼 전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키예프만 해도 내륙으로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어 오르카호에서 즉각적인 지원도 힘들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기갑전력과 포병들을 키예프에 배치하지 않았다면 꽤나 골치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뭐, 지금도 있는 수송기를 전부 동원해 병력을 키예프로 배치하고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AGS는 키예프에 배치가 힘든 데다 오르카호를 지킬 병력도 있어야 하는 만큼 병력 차출 자체도 상당히 까다로웠다.

 

 무엇보다도 프리피야트로 향하는 철충들의 존재가 상당히 나를 불안하게 했다. 지상군을 투입하기에는 거리와 방사능이 발목을 잡았고, 해상 병력은 지형상 논외.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인데 상당히 리스크가 컸다.

 

 심지어 두나이들은 전력으로 칠 수도 없다. 애초에 비전투 기종이기도 하고, 아-52의 말에 따르면 며칠 전의 전투로 프리피야트 동쪽 방어진지는 사실상 괴멸. 그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해 전투 병력 자체가 극히 적은 만큼 본격적인 전투는 무리라고 했다. 그나마 이번에 탄약과 무기를 지원받아 최소한의 무장은 가능하게 되었지만....

 

 “페하?”

 “아, 아르망. 미안,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져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폐하께선 최선을 다하셨으니. 그 이후는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나처럼 저희를 승리로 이끄실 것이 아니신지요?”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 나는 그저 언제나처럼 할 뿐이다. 

 

 그렇게 다짐한 직후, 통신으로 아스널의 외침이 들렸다.

 

 [전원, 발포하라!]

 

캐노니어의 맹렬한 포격을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

 

 키예프 외곽 약 50km 지점에서 포탄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맹렬하게 진군해오던 철충들을 향해 떨어지며 폭발하는 포탄은 순식간에 큼직한 구덩이를 파내며 대량의 토사를 철충들에게 뿌렸다. 비록 캐노니어 병력이 키예프에 충분히 배치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의 포의 위력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157mm 포탄이 땅에 떨어진 직후 작렬하며 인근의 철충들을 산산조각냈다. 고철로 변한 동체에서 빠져나가려던 철충 유충들은 연달아 작렬하는 다른 포탄들에 채 탈출하지도 못한 채 파괴되었다. 한 하베스터는 장갑으로 파편을 막아내며 꿋꿋하게 이동하던 중, 상부에 정통으로 183mm 점착유탄을 얻어맞았다. 본래 점착유탄은 이름처럼 장갑 외부에 달라붙은 채로 폭발, 충격파로 그 안쪽을 파괴해 대량의 파편을 생성시켜 공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맞은 곳이 나빴는지 이 포탄은 하베스터의 상부장갑을 관통해 버렸고, 내부에서 폭발하며 하베스터의 위쪽을 아예 붕괴시켜 버렸다. 그 하베스터 안에 있던 유충은 즉시 파괴되었다.

 

 일부 칙 캐논들은 이에 대응하려 일제히 모여 등의 곡사포를 발사하려 했지만, 하필이면 그 순간 그들 중간으로 포탄 한 발이 낙하하며 폭발에 이은 유폭으로 화려한 불꽃놀이를 선보였다. 매머드 한 기가 자세를 잡고 대응사격을 하려던 순간 지근탄으로 자세가 무너지며 엉뚱하게도 앞의 아군을 포격해 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당연히 매머드의 포격을 직사로 얻어맞은 그 철충은 가루가 되어 버렸다.

 

 중장갑인 철충들은 직격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견디고 있었지만 철충들 중 대다수는 그렇지 못했고, 순식간에 파괴된 철충의 잔해들이 초원에 쌓이기 시작했다. 피해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고 반격 또한 제대로 할 수 없자 철충들은 그 수를 앞세워 어떻게든 포격지대를 빠져나왔고, 포화가 옅어지자 바로 앞의 1차 방어선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철충들과 1차 방어선 사이의 거리가 약 4km에 들어섰을 무렵 빅 칙 계열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방어선의 바로 앞에 폭발이 일어나고, 흙이 튀며 불꽃이 솟아올랐다. 물론 오르카호 쪽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즉각 아머드 메이든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의 사격이 개시되었다. 칼리스타의 90mm 포가 불을 뿜기 시작하자 빅 칙들의 주위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빅 칙 하나가 연달은 포격에 결국 파괴되며 주저앉았고, 한 빅 칙은 이오들이 일제히 뿌린 미사일들 중 하나를 정통으로 맞고 화려하게 폭발했다. 빅 칙 실더 하나가 앞으로 나와 아군을 보호하려고 양 팔의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양 방패에 거의 동시에 착탄한 2연장 대장갑 미사일에 자세가 흐트러지더니 그 틈을 정확히 노린 저격포에 머리가 뚫리며 쓰러졌다. 

 

 이에 억지로 몇몇 철충들이 방어선으로 돌격하기 시작하자 그에 대응하듯 이쪽에서도 블러디 팬서가 방어진지에서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장갑을 전개한 블러디 팬서는 자신의 120mm 활강포를 들어올려 적에게 겨누었다.

 

 순식간에 포탄이 풀 아머 빅 칙 1기에게 명중, 두꺼운 장갑을 뚫고 들어가 내부의 탄약을 유폭시키며 화려하게 격파했다. 동체에 달려 있던 포신이 찌그러진 채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걸 본 블러디 팬서는 다음 적을 찾아 나섰다. 또 다른 철충에게 포탄을 먹인 직후 적탄이 블러디 팬서에게 명중했다. 그러나 그 포탄은 두터운 장갑을 뚫지 못하고 도탄되었다. 장갑의 도장이 약간 벗겨진 것이 블러디 팬서가 입은 피해의 전부였다. 직후 블러디 팬서는 선회해 조금 전의 적을 포착해서 그 즉시 주포 연사로 되갚아 주었다. 그야말로 ‘되로 받고 말로 준다’였다.

 

 순식간에 두 자릿수가 넘는 대형 철충들을 격파하며 압도적으로 적을 밀어붙이던 블러디 팬서였지만 갑자기 기분 나쁜 금속음이 장갑에서 들려오며 충격이 몸에 전해지자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분투에도 애석하게, 적이 너무 많았다. 1대 1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만 압도적인 수 앞에서는 블러디 팬서도 곤란했다. 블러디 팬서가 철충 20여 마리를 격파하는 동안, 충원된 녀석들은 그 배였다. 한두 발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장갑이 연달은 피격으로 그 강도가 약해져 있었고, 장갑 전개장치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아머드 메이든 부대원들도 거세진 적의 반격에 조금 전처럼 압도적으로 적을 밀어붙이진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오와 스프리건은 이미 미사일들을 전부 다 써 버렸고 칼리스타도 포탄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대장, 퇴각해! 잘못하다간 포위되겠어!”

 “젠장, 알겠다!”

 

 결국 견디다 못한 블러디 팬서는 방어선으로 퇴각해 부대원들과 화력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방어선에 적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그 위력이 이전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순식간에 방어진지 일부가 허물어지고,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이 그 폭발에 휘말리거나 파편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큼직한 흙더미가 정수리를 가격하자 그 브라우니는 그 충격에 꼴사납게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우와앗? 이건 좀 크지 말임다?”

 “조용히 해라.... 적 좌표 확인...발사!”

 

 이에 대응하듯 이프리트들의 140mm 박격포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어지간한 야포와 맞먹는 위력의 포탄들이 하늘을 날아갔고, 땅에 떨어지며 인근 지대의 철충들을 날려버렸다. 레이븐이 전송한 적의 정확한 위치좌표와 포를 다루는 바이오로이드의 실력이 합쳐지며 적잖은 수의 포탄이 사격을 퍼붓던 매머드들에게 정확히 떨어졌고, 바로 그 매머드들을 고철로 바꿔놓았다. 적 진영 여기저기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이렇듯 전과만 놓고 본다면 오르카호 쪽이 철충들을 압도적으로 격파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명백하게 오르카호 쪽이 열세였다. 포병대는 적의 진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고, 방어진지에서의 포격도 적의 진격을 늦추지 못했다. 

 

 “전원, 사격 개시!”

 

 레드후드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방어선 전체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발포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보병들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저기서 노움 기종들의 콘크리트 방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레프리콘과 브라우니, 그리고 일시적으로 마리의 지휘체계에 편입된 베라와 님프들까지 사격을 개시하자 어마어마한 화망이 전선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과장 없이 배출된 탄피가 발목까지 쌓일 정도로 격렬한 총공격이었다. 

 

 게다가 임펫과 레드후드, 마리까지 공격에 가담하자 방어선부터 조금 떨어진 지역에 고철로 이루어진 일종의 경계선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한 나이트 칙이 경계선 너머로 뛰어오르자 그 순간 무수한 총탄에 동체가 찢겨져나갔다. 팔랑스 하나가 방패를 앞세우고 전지하려던 순간 임펫의 로켓탄에 방패와 방패를 든 팔이 터져나갔고, 순식간에 쏟아지는 납의 폭풍에 그대로 휩쓸려 산산조각났다. 일제히 뭉쳐 양으로 그 경계선을 넘어오려던 철충 무리는 그 순간 그쪽으로 쏟아진 마리의 레이저 화망과 레드후드의 소이탄과 기관포 사격에 바로 날아가 버렸다. 

 

 “전원, 물러서지 마라! 우리들에게 패배란 없다! 적들에게 우리의 모든 걸 쏟아 부어라!”

 

 그러나 그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철충들이 조금씩 경계선을 전진시켜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발포염만 겨우 보이던 철충들은 이제 그 종류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위치까지 다가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곳곳에서 탄약이 떨어져 가기 시작했다.

 

 “여기 탄약 떨어졌어!”

 “여기도 탄창 떨어졌지 말임다!”

 “콘크리트 수류탄이 없어요!”

 

 그런 외침에 바로 대기하던 실키들이 탄약을 보급했지만 애석하게도 실키들의 수는 전선의 규모에 비하면 너무 적었고, 실키들의 보급품도 그 양이 무한하지는 않았다.

 

 “여, 여기요! 여기도! ...저도 다 떨어졌어요!”

 “브?!? 아, 앞에 철충임다!”

 

 잠시 탄약이 바닥난 틈을 타 일부 철충들이 경계선을 돌파했다. 막 좌우로 뛰는 형태로 회피기동을 하며 달려가는 철충들은 쉬운 표적이 아니었다. 몇몇은 화망에 걸려 파괴되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거의 피격되지 않은 채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철충들이 방어선 바로 앞까지 달려가려던 찰나, 보라색 스파크가 브라우니의 뒤에서 튀기 시작했다.

 

 “그렇겐, 안 돼.”

 

커다란 고철 조각들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 달려오던 철충들의 동체를 파고들었다. 몸 곳곳에 고철들이 자라난 철충들은 달려오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몇 번이나 땅을 구르더니 방어선 근처에서야 그 움직임을 멈췄다. 이어서 경계선 근처에 널린 철충들의 잔해-즉 고철더미에서도 스파크가 튀더니 고철들이 마치 폭발이라도 일어나 사방으로 튀는 것처럼 날아가며 철충들을 휩쓸었다. 그 주위 일대는 폭격이라도 맞은 듯 순식간에 초토화되어 버렸다. 대량의 고철더미로 화한 철충들을 앞에 두고 네오딤은 담담히 중얼거렸다.

 

 “함부로, 날뛰지 마.”

 “...이럴 때 보면 조금 무섭지 말임다.”

 

 ========================================

 

 “하아아아앗! 전부 썰어버릴 거야!”

 “냐하하하핫~. 갈기갈기 찢어줄게!”

 

 다른 쪽에서는 오르카호에서 급파된 포이와 펜리르가 방어선을 뚫고 들어오려는 철충들을 무참히 토막내고 있었다. 앞에 철충 한 마리가 다가오자 펜리르는 손의 쌍날검으로 머리 쪽을 올려쳐 갈라 버린 후 바로 옆의 철충에게 반대편 끝을 쑤셔 넣었다. 그러면서 검 손잡이를 분해해 쌍검으로 바꾼 후 아직 철충에게 박힌 검을 움켜잡은 후 철충의 머리 위로 몸을 날린 후 반대쪽 검을 힘껏 머리 위에 찔렀다. 그러고도 그 철충은 움직이려고 했으나 펜리르는 어느새 다른 쪽 검을 회수해 손에 들고 있었다. 기합 소리와 함께 양손의 검으로 사정없이 머리 위를 난도질 당한 그 철충이 맥없이 쓰러지는 새, 거기에 지지 않겠다는 듯 포이가 뛰쳐나갔다. 적들의 사격을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마냥 유연하게 움직이며 달려가던 그녀는 장갑에 달린 클로를 치켜든 후 철충에 대고 힘껏 내리 그었다. 그녀의 클로는 단분자 날인 만큼 보기엔 애들 장남감 같아도 펜리르가 휘두른 검과 맞먹는 상처를 철충에게 안겨 주었다.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철충들의 동체는 고양이 앞의 문풍지 마냥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웃으면서 철충들을 도륙하는 그 모습에 아군이 환호를 보내는 사이, 한 브라우니는 철충들이 왠지 이쪽으로 다가오기를 꺼리는 것 같아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브라우니답게 1초 뒤에는 뇌 속을 포맷하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

 

 “좋아, 다 왔어! 언니! 한 방 날려!”

 “들리니까 머리 치지 마! 씨, 난 이런 목적이 아닌데.... 흡,-----------!”

 

 알비스의 방패 뒤에 은폐하고 귀마개도 단단히 착용시킨 채 전선으로 투입된 드라큐리나의 음파 공격은 수고를 들인 만큼의 확실한 결과를 내 주었다. 이쪽으로 달려오던 철충들은 그 일격에 내부 기재들이 뒤틀리고 튀어나오면서 주저앉았다. 몇몇 철충들은 파괴된 부품이 적재된 탄약이나 동력원을 건드렸는지 그대로 폭발했다. 쓰러진 철충들을 보던 드라큐리나는 어느새 자기 머리 위에 씌워져 있는 철모를 보았다. 그 철모와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의 기억 앞에 그녀는 잠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드라큐리나가 더 깊이 생각하려던 찰나, 또다시 철충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숨을 한번 내쉬곤 마음속 불안감을 토해내듯 가공할 만한 위력의 음파를 방출했다. 옆에 있던 알비스는 어쩐지 그녀의 눈가에서 물방울 같은 게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네, 다행히 긴급 투입한 인원으로 일시적으로 현상 유지는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다음은. 솔직하게 말해줘.”

 [이런 말을 각하께 하는 건 제 신념에 반하지만...현재로서는 퇴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이 너무 많습니다. 이미 도심 방어를 위해 후방에 남아 있던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도 어느새 반수 가까이가 방어선으로 투입된 상황이라....]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생각보다 철충들의 수가 너무 많았고, 키에프에 배치된 병력은 생각보다 적게 배치되었다. 그렇다면 이젠 어쩔 수 없이...잠깐. 혹시.

 

 나는 급히 지도를 들여다봤다. 만약 이대로라면.

 

 “키예프 한복판을 드네프르 강이 남북으로 도시를 통과해 흐르고, 현재 석관 공사가 진행되는 지역은 드네프르 강 동쪽이지? 그리고 우리 방어선은 키에프 서쪽 외곽이고.”

 [네? 네. 그렇습니다.]

 “부대를 드네프르 강 너머로 후퇴시켜.”

 [...네? 알겠습니다만, 어째서입니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대답했다.

 

 “이기기 위해서. 당연하잖아?”


----------------------------------------


 백신을 맞았더니 비축분이 사라져서...3일이었던 연재 주기가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