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어보면 좋음


느와르 사령관


느와르 리리스


느와르 아르망


느와르 팬텀 / 느와르 레이스


느와르 닥터


느와르 금란 1 / 2 / 3


느와르 감마


ㅡㅡㅡ


질척거리는 피가 울렁거렸다. 살점이 채 떨어지지 않은 와이어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끈적한 지방이 섞인 핏물이 장화의 옷과 머리 그리고 얼굴에 덕지덕지 붙었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에 찐득히 굳어있는 피를 보고 햝아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철냄새를 가득 풍기며 복도 중앙을 가로지르며 걷는 자신에 대해 보는 눈이 많았다. 대부분은 질겁의 표정보다는 경멸과 체념의 눈길이었지만.


그녀는 당장이라도 하나를 붙잡고 저 가증스런 눈알을 뽑아내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구걸할지, 아니면 저주섞인 말을 쏟아 낼지 궁금했다. 어쩌면 살려달라고 버둥거리며 다른 이들을 찾을 수도 있었다. 어느쪽이던지 뿌듯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장화는 그렇게하지 않았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답지 않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분명 그 남자가 자신이 자는 사이 뇌를 헤집어 놓거나 그에 준하는 정신지배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그가 싫어하는 동료 상해와 살해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제 스스로 미친년이라고 되뇌이며 이번 ‘외근’에서 가져온 주머니에 담긴 모듈을 만지작거렸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것을 모두의 앞에서 부숴버린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에 대해. 무표정으로 일관할지, 아니면 격한 반응을 보일지. 어쩌면 가벼운 한숨으로 포기를 선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은, 그녀는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것이었다. 목을 졸리거나 온 몸이 구속구에 묶여 매달릴 수도 있었다. 조금 더 나아가면 그의 손에서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장화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차라리 그의 손에 죽는 것이 좋았다. 다른 이들에게 죽는 것은 홍련, 그 망할 여자의 눈길보다 싫었다. 애잔함을 동반한 동정의 눈빛. 멸망전이나 후나 마음에 안 드는건 여전하다며 욕을 내 뱉었다. 돌아오는 것은 납득의 끄덕임이었었지만.


그녀는 이 오르카호 전부가 가족놀이에 심취해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부터 이곳의 주인인 사령관부터 모두를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언밸런스였고 아이러니였다. 그럼에도 거역할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도 귀찮은,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를 볼 때 마다 튀어올랐다. 오히려 그를 가지고 싶다거나 나를 봐줬으면 했다. 어떤 방식이던지간에, 기쁘면서도 미쳐버릴 것만 같은 불 같은 욕망이 이글거렸다.


와이어의 피가 거의 말라 바닥에 연한 핏자국 만을 남겼을 때에, 그녀는 사령관실의 문을 열었다. 익숙하면서도 위화감이드는 구조였다. 가운데 놓인 긴 탁자와 그 옆을 장식하는 개인 소파들. 그 뒤에 있는 빈티지한 탁자와 수수하지만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사령관. 그리고 양옆으로 서 있는 은발의 경호원인 리리스와 콘스탄챠. 그는 문이 열리고 장화가 자신을 향해 걸어올 때 까지 아무런 미동 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다가오는 혈향과 끈적거리는 핏덩어리가 카페트에 엉겨붙는 것을 본 콘스탄챠가 조용한 한숨을 내 뱉었다. 리리스는 언제라도 그녀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을 수 있게 권총 두 정을 만지작거렸다.


그럼에도 장화는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사령관을 향해 다가갔다. 허리춤에서 대롱거리고 있는 피 묻은 모듈을 툭하고 그의 앞에 던져 놓았다. 그 순간 리리스와 콘스탄챠는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지극히 냉정한 판단이었다. 장화는 그런 행동들을 보며 가벼운 조소를 날리며 그녀들에게 말했다.


“왜? 쏘려고?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죽여버리는게 빠를지, 니들이 날 죽이는게 빠를지  고민을 좀 해봐야할껄?”


“저 혼자서라도 충분해요. 원래 하룻강아지는 맞기 전까지는 위아래를 모른다고 하지요?”


“그러게. 삼안의 잡초들을 꺾으면, 어떤 표정으로 일그러질까?”


두 여자가 으르렁거렸다. 방아쇠에 손이 올라가고 와이어가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나지막히 깔리는 남자의 음성. 근엄하면서 위엄있는 한 단어였다. 


“그만.”


그 즉시 리리스와 콘스탄챠는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렸다. 떨떠름함 하나 없이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반대로 장화는 코웃음을 치며 조소를 내보였다.


“이래서... 가족 놀이하는 것들 하고는. 제 가족이 아니면 바로 총구를 들이미는 것들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장화. 그녀들을 욕 보이지 마라.”


“하. 지극정성이네.”


장화는 어깨를 으쓱거렸고 사령관은 가벼운 손짓을 보냈다. 그것을 본 리리스와 콘스탄챠는 움찔거렸지만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조용히 문 밖으로 나가는 그녀들은 버젓히 서 있는, 피투성이 소녀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녀는 가벼운 코웃음을 쳤다. 역시 자신과는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때 여제에게 바쳤던 충성이 무의미해질만큼 바뀌어버린 자신을 조금 투영 해보기도했다. 의미 없는 행동이었지만.


사령관은 자연스럽게 모듈에 손을 뻗었다. 상처 하나 없는, 먼지만 조금 내려앉은 물건이었다. 그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사다리가 될 것임을.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를 길들일 수 있는 목줄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세운 지론을 파하면서까지 옥죄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그녀를 제어할 방법은 필요했다. 가족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가족의 안위를 위해 지배해야만했다. 모순이었다.


장화는 모듈을 바라보고 있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도 마냥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멸망 후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만큼의 능력은 여전했다. 그렇기에 이 모듈과 임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너. 일부러 날 보낸거지?”


“이 임무에 너 만큼 적합한 인물이 있나?”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의도가 명확하잖아? 여제님의 모듈로 날 길들여야 할 만큼, 너만을 위한 사냥개가 필요했던거야? 착각하지마. 난 더 이상 누군가의 개가 되지 않아!”


“그런 것 치고는 꽤 말을 잘 듣는군.”


“착각하지마.네 같잖은 가족 놀이가 어떻게 끝날지, 지켜보고 싶거든.”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는 탁자위의 담뱃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지만 불은 붙히지 않았다. 그저 유심히 자신의 앞에 있는 장화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그 눈빛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 치욕스러움과 굴종을 종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왜, 어째서 움직이는 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여제를 따랐던 그 때처럼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렇지만 그때와는 다른 기분과 감정이었다. 장화는 드디어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강압이 아닌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는 행동.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미약하게 튀어오른 불꽃이 사령관의 담배에 불을 붙혔다. 블렌딩 된 담뱃잎의 향이 서서히 방 안을 메웠다. 담배의 한 모금이 내 뿜어졌을 때, 그녀는 대뜸 책상의 모서리에 앉고서는 그의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사령관의 얼굴을 붙잡고 그것의 끝과 끝을 이어 붙혔다. 그 행동이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치직거리며 불타오르는 담배를 사이에 두고 소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공허한 보랏빛 눈과는 반대로, 가득 차 있는 검은색 눈동자. 그녀는 그것을 제 눈과 가슴에 채워 넣었다. 천천히 떨어지며 연기가 동시에 내 뱉어졌다.


“좋아. 어울려줄게. 대신, 네 두 눈 안에 날 담아.”


사령관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장화는 그것을 듣고선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처음 보이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다 타들어간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 껐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든 계약의 시작이었다.


ㅡㅡㅡ


장화가 사령관실을 나선 순간, 문 앞 세 걸음 앞에는 리리스가 서 있었다. 제 주인을 지키려는 듯 이미 홀스터를 벗어난 권총 두 정이 손에 쥐어진 것을 본 소녀는 순간적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과격한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은발의 경호원은 침착한 몸짓과 미동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장화는 자신과 비슷한, 격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부류가 제 주인의 앞이기에 억누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구보다 전투를 좋아하고 피비린내를 향수삼아 뿌리고 다니는 주제에. 그런 그녀를 향해 소녀는 조금 도발 넣은 말을 입에서 내 뱉었다.


“여기서는 아양 안 떨어도 되는데. 안 그래?”


“주인님의 호위로써 품위를 지키는것이란다. 혹시, 블랙리버의 갈보가 가르쳐주지 않았니?”


리리스는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말들을 내 뱉었다. 분명 다른 이들이 있었다면 놀라거나 식겁했을 분위기와 말투였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 물러섬 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게. 여제님이 계셨다면 당장 네년의 입을 찢어놓으라고 하셨을텐데. 아쉽게 됬네. 게다가 지금은... 인간의 뒤에 숨어있고.”


“착각하지마. 주인님께서 너를 살려두고 계시는거야. 갈보의 사냥개를 가족으로 받아주신 것 부터 너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감사함을 느끼렴.”


“하. 그래. 평화를 만끽하다보면 무뎌지기 마련이지. 약해진것을 그렇게 포장한다면... 목을 조심해야 할거다.”


“그건 다행이네. 그 때는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다시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귀찮다는 듯이 장화를 신경쓰지도 않고 옆을 지나가며 나지막히 말했다.


“주인님께 몸과 마음에 작은 상처라도 난다면, 우리 오르카호의 방식이 뭔지 머리에 쳐 박아줄게. 이건 선언이야.”


“그래? 나도 선언 하나 하지. 네년 목은 반드시 내가 딴다. 기대해.”


그리고 사령관실의 문이 닫혔다.


ㅡㅡㅡ


무슨 느와르 시리즈 잠정 중단하자마자 바로 느와르 특화캐가 나오냐


나오자마자 구상은 했었는데 자꾸 꼬이다보니 지금 쓰게 됨


반응 괜찮으면 갓 사령관과 만난 시점으로 하나 더 쓸 생각임


쓰다보니까 은근 리리스랑 비슷하면서 다른 점이 있더라 


둘 다 전투광인데 하나는 얀데레지만 소프트하고 하나는 애정결핍이고


어쨌든 이런 느낌도 괜찮다 싶어서 써 봄


읽어줘서 고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