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어보면 좋음


느와르 사령관


느와르 리리스


느와르 아르망


느와르 팬텀 / 느와르 레이스


느와르 닥터


느와르 금란 123


느와르 감마


느와르 장화


ㅡㅡㅡ


새하얀 눈밭에 붉은 반점들이 흩뿌려졌다. 그 위로 발자국과 와이어들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폭발음이 고요함을 덮었다. 몸뚱아리들이 천천히, 빠르게, 느리게, 강렬하게 비명을 지르며 춤췄다. 무수한 성원을 받은 것 같의 붉은 꽃잎을 온 몸에 두른 장화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와이어로 찢어버렸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폭발음과 같이 어우러져 우악스럽게 지르는 비명들도 이제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무아지경이었다. 살아남는 것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죽여나갈 뿐이었다. 여러개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탄이 그녀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살점을 미약하게 찢고 피어나는 꽃들. 그리고 침묵. 와이어에 짓이겨진 손과 목을 더 이상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것이었다.


뒤에서는 급작스러운 냉병기들의 바람이 일었다. 베고 찔러넣는 행위를 그녀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베이고 찔린 상처들이 쓰라렸다. 지방과 불순물들을 머금은 끈적한 핏물이 와이어와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미약한 비명과 기합. 그녀는 순식간에 발을 들어 하나의 머리를 으깼다. 창을 찔러낸 이의 머리였다. 우악스럽게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린 순간, 다른 이의 입에는 폭탄이 물려있었다. 억지로 삼켜지는 마지막을 알리는 전자음. 온 몸이 터져나가는 것이 무엇임을 증명했다.


그녀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적은 많았고 자신은 혼자라는 것을 증명하듯 붉어진 눈을 내달렸다. 가장 먼저,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이의 목이 와이어에 긁혔다. 목을 부여잡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다음은 달려드는 살덩어리의 주먹을 피하며 심장을 향해 바디 스트레이트를 때려넣었다. 내부에서 심장이 터져버려 피를 토하는 이를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세 번째는 감정이 없는 AGS였다. 그녀는 간신히 내려 찍어지는 주먹을 와이어로 막았지만, 순간적인 충격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미약한 비명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큰 실책임을 깨달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이 허벅지를 꿰뜷었다. 자연스럽게 힘이 풀려 한쪽 무릎이 꿇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주먹이 그녀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장화의 온 몸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족히 수십번은 구른 그녀는 꽤 멀리 있는 나무에 쳐 박혔을 때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제서야 장화는 간신히 붙어 있는 가쁜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피가래가 입에 고이고 상처들이 아려왔다. 지금까지는 낮은 온도 때문에 둔감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고통이 한 순간에 몰려왔다. 허리가 저릿할 정도로 강한 자극들이 그녀의 몸을 옥죄었다. 방금 꿰뜷린 왼쪽 허벅지에서 흘러나온 피가 눈을 적셨다. 입에 엉겨붙어 있는 덩어리들이 내 뱉어졌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나무에 기댄 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때 마침 그녀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방금까지 눈 밭위에서 같이 춤을 추던 이들이었다. 몇몇은 팔이 베이고 다리가 그여 절뚝거렸다. 눈이 보이지 않아 부축을 받는 이도 있었다. 어느 한 곳이 폭발로 찢겨나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뒹굴기도했다. 어찌되었든 그들 모두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상처입어 죽어가는 이를 바라보았다. 질겁, 원망, 두려움, 체념 그리고 분노. 그녀는 그것을 보고선, 살면서 가장 격한 웃음을 쏟아내었다. 저들 중 기쁨의 표정은 아무도 없었다. 우스웠다. 자신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이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한심스럽고 가여웠다.


장화는 몸뚱아리를 나무에 의지한채 간신히 일어났다. 비척거리면서 일어남과 동시에 올려지는 총구들. 곁눈질로 보기에도 촌극이었다. 긴장한 표정들 사이에서, 하나의 바이오로이드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왼쪽 눈에 안대를 낀 레드후드 기종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권총을 장화에게 겨눈 채 입을 열었다.


“투항하라.”


“미친년. 오메가 그년이 날 잘도 살려주겠다.”


“처분은 그분의 일이다. 나는 그저 뜻을 따를 뿐.”


“그래. 그렇게 살다 뒤져. 난 죽어도 그년 발바닥 햝기는 싫으니까.”


“그렇군. 그렇다면... 유언은 있나?”


순간적으로 장화는 오른손을 움직였다. 팽팽해진 와이어가 다른 이들을 덮치려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발사된 두 발의 총탄이 그녀의 오른손과 팔을 꿰뜷었다. 권총탄과 소총탄. 레드후드와 숨어있는 저격수의 탄환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웃어보였다.


지금 레드후드에게 있어 상황은 비현실성의 연속이었다. 단독으로 대대의 절반을 도륙해낸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끝까지 몰렸는데에도 웃을 수 있다는 것에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에도 끊어내야했다. 그녀가 받은 임무는 살려서 대려오는 것이었지만 뇌리를 스치는 직감이 당장 쏴야만 한다고 충동이 머리를 울렸다. 그것 또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지막히 읆조린 장화의 한 마디가 울렸다.


“난 왼손잡이야. 병신들아.”


눈에 파 묻힌 와이어들이 붉게 점멸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바로 쏘지 않음을 후회했다. 팔이 아닌 머리를 노려야했다는 것을. 이윽고 터져버린 폭발들이 눈으로 시야를 가렸다. 비명들이 사방에 울려퍼지고 피와 살점들이 눈 속에 파 묻혔다.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레드후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터져나가는 폭발 속에서 고립된 순간, 가운데 손가락을 버젓히 들고 있는 장화를 보았다. 충분히 큰 실책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냉정함을 되찾고 방아쇠를 당기려했다. 아쉽게도 그 한 발은 장화에게 닿지 않았다. 당긴 순간 덮쳐진 폭발과 눈이 시야를 가렸고, 총탄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의미한 마지막이었다.


장화는 다시금 찾아온 침묵을 느꼈다. 모두가 눈 아래로 덮혀져 자신 혼자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천천히 시야가 좁아짐을 느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깨 달았다. 비참하고 홀로 남겨져 잊혀지는 것. 이제 더 이상 받을 감정도 내 뱉어질 감정도 없어지는 것이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미약한 숨을 내쉰 소녀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었다. 차가운 눈밭에 살아남은 이는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뒤집었다. 다시 눈이 내렸다.


“하. 개 같은 인생.”


무덤 하나 없는 죽음이었다.


ㅡㅡㅡ


장화가 비척이는 눈을 떴을 때엔 새하얀 눈이 떨어지는 설원이 아닌 한 번도 보지 못한, 정보로만 보았던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이 제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움직이는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바라보았다. 방금 감은 듯 소독약 냄새가 진하게 나는 붕대가 온 몸을 둘러싸고 있었고, 간신히 움직이는 팔에는 링겔이 꽃혀 있었다. 게다가 주변의 인원들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기까지 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어느 정도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구해졌다. 그리고 언제나 선행에는 댓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심지어 눈 앞에 보이는 이는 손익 구분이 철저한, 오메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반드시 무언가를 원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먼저 주도권을 잡기로 했다.


“원하는게 뭐야.”


분명 말은 울려퍼졌다.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마치 원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듯, 페도라를 눌러 써 보이지 않는 눈빛으로 말하는 듯 했다. 그녀는 그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욕을 섞어보기로 했다.


“귀에 총알이라도 박혔어? 뭘 원하냐니까? 할 말 없으면 꺼져. 귀찮게하지 말고.”


그의 뒤에 있던 리리스의 총구가 장화를 겨누었다. 자신과 같은 부류와 즉각적인 반응. 돌려 말하거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싫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원치 않는 이도 있었다. 사령관은 손을 들어 리리스의 눈을 보며 천천히 그녀의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장화를 흘깃 흘려 보았다.


“곧 오메가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그곳의 내부 사정에 밝은 자가 필요하다.”


“그래? 그런데 어째? 난, 자기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남자 가랑이 아래로는 못 기어가겠는데?”


순간적으로 침묵과 함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곳의 모든 총구와 칼날이 그녀를 겨누었다. 그녀는 차라리 이것이 마음에 들었다. 여제와 오메가 아래에서 지낸 세월, 그리고 방랑. 어쩌면 스스로도 지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사령관은 지금 당장이라도 이 여자의 총알을 머리에 박아넣고 싶었다. 하지만 대의와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한 번 참아내었다. 그렇지만 경고의 한 마디는 필요했다. 그는 손짓으로 모두의 이빨을 감추게 하고 말했다.


“만약 한 번 더 내 여자나 가족을 모욕하는 일이 있다면, 내가 직접 오르카호의 방식을 깨닫게 해주지. 이건 선언이다.”


“그거 눈물나게 고마운 충고 고마워. 그래. 백번 양보해서 받아들인다 치자. 그러면 너희들에 나에게 줄 수 있는건 뭔데?”


“가족.”


장화는 가장 어이없는 대답에 상처가 벌어져 피가 새어나오는 것도 잊고 크게 웃었다. 오랫만의 일이었다. 그는 어쩌면 가장 필요 없는, 혹여 평생 없을 수도 있는 것을 약속했다. 그녀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넌, 내가 그런 같잖은 가족놀이에 넘어갈 것 같아? 차라리 그년의 목을 준다거나 그런...”


“아니. 그건 줄 수 없다.”


아까와는 다른,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분노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담긴 말에 순간 몸을 흠칫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답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만약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감정이 터진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자신처럼 무언가를 계속해서 갈망할 것인가, 아니라면 빠져 허우적거릴 것인가. 그렇기에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좋아. 가족놀이 따위보다 복수로 하자고. 내가 아는 모든 걸 줄게. 대신, 내 마음대로 할꺼야. 그 년 빼고 모두 죽여도 상관 없는거지?”


“상관없다. 네가 배신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널 배신하지 않는다는걸 알아둬라.”


“그거 고마운 말이네.”


그녀는 그 때 깨달았어야 했다. 그에게 흥미를 느낀 순간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ㅡㅡㅡ


오르카호가 정박할 때 마다 꼭대기에는 언제나 장화가 있었다. 입에 불도 붙히지 않은 담배를 물어 까딱거리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는 마음씨 착한 다프네가 쿠키와 커피를 놓고가는 것을 제외하곤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런 그녀는 비어버린 커피잔과 그릇을 한 쪽으로 치워 기둥에 등을 맞대고 주저 앉았다. 가볍게 튕긴 손가락에서 불이 일어 담배의 앞을 조금씩 태워나가기 시작했다. 한 모금의 연기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사령관이 피는 것과 같은 초콜릿 향이 나는 담배향이 은은히 울려퍼졌다.


장화는 방금 다 비운 커피잔과 그릇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넓은 바다와 반짝이는 하늘로 담배 연기가 흘렀다.


“하. 씨발. 여기엔 이상한 새끼들이 너무 많아.”


그녀는 자신이 너무 감정적이 되었다며 자조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ㅡㅡㅡ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금란 - 장화(과거) - 리리스/아르망/장화- 닥터 - 사령관 - 팬텀/레이스 - 감마 순임


한 번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써봄


확실히 장화는 캐릭터성 확고해서 좋다 쓰기도 편하고 범용성도 좋고 서약대사도 미쳤고


물론 뽀꾹이가 서약 대사 더 귀엽긴 해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