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뜨니 연구소 같은 곳에 있다.


뭔가 격리를 위하여 폐쇠된 느낌의 장소.



"흡, 콜록 콜록!"



숨을 들이키자 거친 입자들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몸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먼지들을 내쫓는다.


나는 거칠게 기침했다.



잠깐 진정하고 숨을 안정화 하느라 몇 십초를 소모했다.


오랜기간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장소인지 입을 가리고 숨을 쉬는데도 먼지들이 앞 다투어 침입하려고 한다.


놀란 가슴으로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면 "마스크"라고 적힌 서랍이 있어 냉큼 열어 안면에 씌웠다.


그러자 호흡이 편안해졌다.



"..."



호흡이 편해지자 확실하게 드는 생각.


여긴 어디인걸까?


암청색의 코팅된 벽들에, 사람만한 크기로 유리관들이 장치들에 연결되어있다.


전부는 깨져있었지만 그 중 하나를 보니 흑갈색의 장발을 하고 있는 알몸의 여성이 초록빛이 나는 물이 담긴 관 속에서 뭔가를 얼굴에 쓰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인체실험실?


조금 초조해졌다. 아니 그보다도 어제 분명 내 방에서 자고 있지 않았나? 납치?


지금 몇 시지? 면접 보러 가야하는데, 라스트 오리진은? 신캐가 나와서 제조를 돌려야 하는데!


다급한 마음에 주머니를 뒤져보니 핸드폰은 있었다. 어제는 쓰러져 자느라 따로 빼 두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 2171년 7월 5일 ]



메시지 : 0건

전화 : 0건


인터넷에 연결 되어 있지 않습니다.

통신 권외로 통화불능.



이게 뭐지?


갑자기 150년이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소설, 만화나 애니 같은걸 너무 많이 봤나?


아니다.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보고 있지 않다.


시공간 납치? 아니 말이 안 된다. 철저하게 자연스러운 세계에서 살아왔으며, 나 자신이 납치될 가치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당연히 마법은 못 쓰고, 의외로 천재인 분야도 없었고, 뭐 처음부터 잘 한 건 없었으니까. 좋아해서 계속 하는 것들은 있어도.



다시 유리관 안의 여성을 바라 봤다.


그 아래를 보니 패널이 있었다.



[ X-1026 시저스 리제 ] [ 00005호 ]


[ 제조 100% ]

[ 상태 : 양호 ]

[ 멸망사태대비존속 규정에 따라 예약이 되어있는 개체입니다. ]

[ 예약에 따라 27분 뒤, 당개체를 내보냄. ]



어라? 


리제라고?


패널을 보니 더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한다.


다시 핸드폰을 열었다. 라스트 오리진이 깔려있었다.


혹시나 싶어 실행했지만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며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27분뒤에 나온다고?


잠깐, 잠깐. 리제라고? 내가 있는 세계가 라스트 오리진 세계?


아니 그보다 리제 옷 찾아 줘야 할 것 같은데!




=




곧 나올 리제의 옷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실을 나섰다.


문은 아주 내가 손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앞에 서자 푸쉬익- 소리를 내면서 위아래로 열렸다.


사소하게 감탄하며 복도로 나오자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는다.


리제가 있던 방은 그나마 그녀가 있는 관, 패널에서 나오는 빛으로 주변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문이 닫히자 암흑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핸드폰의 후레시를 켜서 주변을 비추었다.


또박, 또박. 발을 움직이자 넓은 복도에 소리가 울린다.


신발은 또 언제 신어져 있는 건지, 또한 공포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아 무서웠지만 조금 있다가 나올 그녀가 알몸으로 날 보는 순간


따귀는 맞지 않아도 엄청나게 부끄러워 할 것 같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리제는 그런 이미지였다.



2분 정도 걷자 [ 비품실 ]이 눈에 띄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그녀의 옷이 있을 것 같아 그 문앞에 섰다.


푸식- 하고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가자 박스들이 있었다.


무기, 약, 도구... 아 찾았다. 바이오로이드 의상.


많은 박스들이 열려있는 걸 보니 이미 누가 나왔거나 한 것 같았다.


음식이라고 씌여있는 박스는 모조리 비어있었다.


이 중에서 [ 페어리 ][ 리제 ] 라고 씌여있는 박스를 열었다.


후레시로 비추어 보니 맞는 것 같았다.


박스째로는 들고가기 힘들 것 같으니 한 손으로 가져갈까.



리제의 옷을 가지고 비품실을 나와, 다시 깜깜한 복도를 지나서 연구실에 들어왔다.



"..."



연구실에 들어오니 나체의 여성이 이미 유리관 밖에 나와있었다.


유리관 앞에서 온 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그녀는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좀비인가 싶기도 했지만, 과연 라스트 오리진에서 나온대로 상당히 아름다웠다.


젖어있긴 하나 긴 머리카락, 반쯤 감은 눈은 눈썹을 강조하고, 군살이 없는 뽀얀 살들과 균형미가 잡힌 몸매는 곧장 아이돌로 보내도 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게임에서 -S급으로 승급이 가능하지만-A급으로 평가가 되어있는 캐릭터?


사실 라스트 오리진의 세계관은 어둡지만, 돈이 있는 인간들은 적어도 미적으로 고민 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이 정도 기술력이면 성형수술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테니까.


아니, 거지들도 할 수 있는 그런 기술로 인식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감상을 하니 리제가 천천히 얼굴을 들면서, 여전히 반쯤 감은 눈으로 시선을 이쪽으로 향했다.



"..."


"..."



숨이 막혔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숨이 막혔다. 


이 침묵은 꽤나 오래 갔다.


그리고 그 간격을 먼저 부순건 리제였다.



"...주인님..."




=




먼저 말을 걸어온 리제는 추워보였다.


나를 본 그녀가 내뱉은 말은 '주인님'.


그게 전부였다.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먼저 비품실에서 같이 가지고 나온 수건으로 먼저 닦아주고서.


감각적이지만 그냥 그녀 스스로가 입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면 그 다음 대사가 자신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리제에게 옷을 입혀주고 나는 복도로 나갔다. 후레시를 키고 앞으로 나아가니 그녀가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요구에 응하며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은 리제야."


"...리제, 요?"


"응."



리제는 힘없이 답했다. 그녀가 뒤에있어서 의중은 알 수 없었지만 수긍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네. 특이 개체인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걸어가니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왼쪽은 1층, 오른쪽은 지하 10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간게 전부구나.


하나밖에 없는, 위를 보고 있는 삼각형 모양을 누르니 왼쪽 위의 숫자가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내려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나 본데.


그래도 리제에게 말은 걸지 않았다.


좀 전에 비품실을 보니 음식을 목적으로 누군가 이 시설에 들어 왔었을테고, 아마 먹거나 마실건 없겠지. 바깥으로 나가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리제는 지금 아무것도 먹거나 마신게 없다.



"..."


"..."



띠링-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어두침침한 주변 배경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와 리제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나는 1층을 누르려다 손을 멈췄다.


밖으로 나가면 뭐가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철충이 있을까? 아니면 오메가?


적어도 글자들이 한글이라 한국이라는 건 안다.


우리나라는 안전할까? 습격을 받지는 않을까?


꿀꺽.


침이 삼켜졌다. 


생각 해 보면, 설정대로의 세계면 난 죽을 확률이 높은거 아닌가.


비품실에서는 리제의 무기는 없었고 각자 호신용으로 쓸만한 권총만 챙겼다.


게다가 현재 리제는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다.



다시 그녀를 봤다. 리제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리제."


"네 주인님."


"내가 안전한지 보고 올테니까 잠깐 여기 있을래?"


"안 돼요..."



당연하려나.


어렵사리 1층 버튼을 누른다.


여기서 명령을 내리거나 설득 해 봐야 힘만 더 들겠지.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이 문이 다시 열리기까지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




밖으로 나오자 도심이 펼쳐졌다.


도시는 거진 초록색이었다.


건물들은 균열이있거나 무너진 것들이 있었다.


전쟁의 흔적이라는 걸까? 완전히 무너진 것들도 심심하지 않게 보였다.


폭격을 맞은 듯 도로나 길들도 성하지 않은 곳들이 많았다.


그 자취들은 어느 새 식물이 거의다 먹어 치운 것이다.


나와 리제는 걸었다.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음식과 물을 구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마트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이미 누가 털었을 수도 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의외로 보존식품들, 마실 것들이 있어 카트에 담던 도중이었다.



"어... 인간? 거짓말..."



선객이 있었다.


갈색의 단발을 하고 있고, 웃는 얼굴의 배찌가 붙은 머리핀.


발랄해 보이는 인상의 여성.


그녀의 얼굴은 무언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라오에서 본 적은 없는 캐릭터인데... 그래도 바이오로이드겠지.


단발의 여성은 그 상태로 계속 날 쳐다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놓치자 그제서야 정신 차린듯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하하, 안녕하세요 인간님."


"어, 네, 안녕하세요."


"..."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 리제를 봤다.


딱히 무언가 위험한 기색은 없었다.


아무리 얀데레라고 알려져있었지만 만난지 얼마 안 되어 괜찮은걸까. 



"저는 굳이 인간님이라 안 불러도 되요. 김라붕이라고 불러주시면 되요."


"아..! 죄송해요 제 소개를 먼저했어야 하는데. 제 이름은 아리아에요."


"반가워요 아리아씨, 어... 아니 아리아님이라고...불러드려야 하나?"


"푸훗, 그냥 편하게 아리아라고 불러줘요! 어차피 바이오로이드인걸요 뭘."



내가 존칭으로 부르려고 하다 당황하니 아리아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제서야 분위기가 풀어진게 느껴졌다.




=




일행은 셋이 되었다.


아리아라고 밝힌 바이오로이드는 멸망전 개체였다.


일단 물건을 챙기고 밖을 나가려니 비가 세차게 오고 있어서 그냥 안에 있기로 했다.


그녀도 사람을 오랜만에 본게 반가웠는지 여러 이야기를 해왔다.


인간들이 겪은 철충사태, 별의 아이 사태.


나와 리제는 그녀의 반대편에 앉아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아는 라오 세계관과 다른 양상이었다.



바이오로이드의 등장으로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졌지만 동시에 경제구도가 많이 바뀌었다.


빈부격차는 여전했다. 또한 실직자들이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건 잠깐이었고 경제가 심하게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의존하도록 바뀌어 가자 정부의 규제로 손해를 입을까 우려를 하던 기업들이 오히려 초저가 양산형들을 만들거나 되레 정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최소 1가구 1바이오로이드를 마련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들이 하는 일 대부분이 바이오로이드들에 의해 대체되었으나 전반적인 삶 자체는 더욱 윤택해졌다.


또 나중에 생긴 문제, 철충이나 별의 아이는 모두 인류와 바이오로이드가 이미 해결 한 것.


말을 마친 그녀가 씩 웃어 보였다.



"어때요? 인간님들과 저희 바이오로이드의 역사는 이랬어요."


"호오..."



그리고 아리아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그런데 라붕이씨는 얼마나 오랜시간 동면하다 깨어나신건가요?"


"동면이라기보다는 정신차려보니 근처 실험실 안에 있더라고요."


"정신차려보니...? 옆의 리제양은?"


"주인님이 일어나셨을 때 같이 있었어."


"앗...어? 어응, 그렇구나!"


"...?"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탔는지 리제에게까지 물어봤다가 낭패를 본 표정을 잠깐 내비친 아리아.


그러나 순순하게 적의 없이 답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나와 아리아 둘 다 놀랐다.


나는 아리아가 놀란 이유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아리아씨, 혹시 시저스 리제들도 보셨던 건가요?"


"맞아요, 다들 말이라도 걸면 자기 주인에게 접근하지 말라며 화를 냈었는데..."


"나온지 정말 얼마 안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보죠."


"...그런가?"


"아, 비가 그쳤네. 저는 이만 이동해 볼게요 즐거웠어요!"


"네 신세졌습니다.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네요."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 덧 비가 그쳐 있었다.


아리아는 잠깐 멍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천천히 밖을 보더니 작별인사를 했다.


나도 슬슬 다시 움직여야겠지.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아리아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곳 지리를 모른다.


리제도 눈을 뜬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마찬가지로 모를테고.


다행히도 현재 있는 층은 이불들이 꽤나 있었다. 허름하긴 했지만 이게 어디인가.


이부자리와 배게를 두었다. 리제와 나 따로.


먼저 식사 뒤, 리제의 상태를 체크 해 본다.



"좀 어때?"


"지금은 좋아요 주인님."



그녀는 웃어보였다. 목소리에도 활력이 있는 걸 보면 괜찮은 거겠지.


그런 리제에게 먼저 자는 건 어떻냐고 권유 해 봤다.



"다행이네, 난 잠이 안 와서 그런데 먼저 잘 수 있을까?"  


"전 주인님 곁에 있어야 해요, 옆에 계시지 않는다면 잠이 안 올거에요."


"피곤할까봐 물어 본거였지. 어디 떠나지는 않을거야."


"그럼 잠이 드실 때까지 붙어있어도 될까요?"


"그래."



그녀는 조금 초조해진 기색으로 거절하며 붙어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허가를 내리자 그녀는 천천히 가까이 와서 내 바로 옆에 앉고, 머리를 기대왔다.


무너진 잔해로 보이는 세상은 달이 비추고 있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보는 광경이라 굉장히 멋있었다.


게임이나 만화 같은 것에서나 보던 아포칼립스를 온 몸으로 겪게 될 줄은.


설레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교차 해 갔다.



"리제."


"네 주인님."



첫 마디가 이름을 지어달라는 말이었던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리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을 해 왔다.



"막 나와서 나를 봤을 때, 스스로에 대해 기억나는 거 없었어?"


"저는 정원 관리를 위해 태어났어요."


"하지만 정원을 위협하는 다양한 해충들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 되었죠."


"그러다 새로운 실험이 시작 되었어요."


"새로운 실험?"


"철로 된 해충, 거대한 해충들은 막강해서, 더  많이 강해질 필요가 있었어요."



"저는 그 실험체 중 하나에요."



실험체.


그렇다면 그녀의 반응이 조금 달랐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성격까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리제는 얀데레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더 물어봤다.



"리제 그러면 아까 아리아가 그랬잖아? 철충과 별의아이들은 모두 처치했다고."


"맞아요, 저도 일어나보니 모두 끝나있었어요."



"그리고 주인님이 와 주셨죠."



왼쪽으로 시야를 돌렸다.


그녀는 날 보고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한걸요."




=




날이 밝았다.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건물 내부로 비치고 있었다.


눈을 뜨자 낯선 광경이 다시 펼쳐졌다.


잠깐 어제 일이 꿈이 아니었나 생각했지만 이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지금이 현실이라는 걸 자각했다.


나는 벽에 기대있었고 리제는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라오 세계관에 떨어졌고 엉겁결에 날 따르는 바이오로이드도 생긴게

정말 신기했다.


적어도 지금은 리제에게서나 나에게서나 좋은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샤워도 하지 않았고, 리제는 그 유리관에 오래 있다가 긴 시간 박스 안에 있던 묵은 옷을 입었고.


그렇지만 그 냄새가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벼운 것들부터 무거운 것들까지, 유저들, 공식으로 나온 컨텐츠들을 봤던 나로서는 감회가 새로웠다는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인걸까?



멸망 전 인간들이 했을 법한 고민을 하는 사이, 리제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그녀는 날 보더니 베시시 웃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주인님."


"...좋은 아침."



여기 인류는 자기들도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빠질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나보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겠지.


리제에게 아침인사를 마주 건네며 그런 생각을 했다.



건물 안에서 배낭 두 개를 챙기고 그 안에 음식들과 물을 넣어 리제와 나 각자가 등에 멨다.


캠핑용 침대라든가, 치약 칫솔이라든가 등의 필수품들도 넣고 나니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와 리제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휩노스병이 걱정이었지만 별의아이들도 모조리 처리했다고 하니 별 문제는 없지 않을까?


대체 어떻게 처리했는지가 의문이었지만 뭔가의 기술을 만들었던 거겠지.


따라서 적어도 지금,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오르카 호의 수장이 되어 누군가와 싸울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남은 건 인류 재건 정도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나저나 어디로 가지. 


답변은 예상되었지만 리제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까?"


"전 주인님의 곁이라면 어디든지 좋아요."



리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는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그냥 어딘가를 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이따금 동물들이 거리를 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어미 사슴과 새끼사슴이 나와 리제를 잠깐 보다가 갈 길을 가거나.


숲에서 잘 들릴 법한 새소리가 역이 있는 사거리에서 많이 들리거나.



의외로 바이오로이드들을 많이 만날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몇 시간을 걸었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제 만났던 아리아는 그저 홀로그램이었던걸까.


세계에 나와 리제 단 둘만 남겨진 기분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는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걷다 보면 또 무슨 일이 생기겠지.


그런 막연한 기대를 하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