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어보면 좋음


느와르 사령관 /느와르 리리스


느와르 아르망 / 느와르 팬텀 / 느와르 레이스 /느와르 닥터


느와르 금란 1 / 2 / 3


느와르 감마


느와르 장화 /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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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하고 끈쩍한 뒷골목에서 헬멧과 손수건을 반으로 접은 마스크를 쓴 48번 더치걸은 무언가를 찾는 듯 질척거리는 피에 담궈진 살덩이들을 나무 막대로 쓱쓱 밀어내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48번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미 죽어버려 사후경직이 일어나 뻣뻣해진 근육들과 부릅 뜬 채로 감지 못한 눈 사이사이를 헤쳐나가는 것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48번에게는 너무나도 큰 곤욕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고작 시체 청소 같은 뒷수습이라니. 그녀의 입장으로써는 너무나도 곤혹스러운 삶이었다.


만약 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지하 감방에 쳐 넣어질 정도의 불경스러움이었지만, 그녀는 쉽게 이런 말을 내 뱉을 정도로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반대로 그녀의 앞에서 무덤덤하게 한 손으로 시체들을 휘젓는 17번 더치걸은 대수롭지 않은 듯 보였다. 이미 익숙한 일이라는 것마냥 능숙히 고깃덩어리들을 뒤집고 얼굴을 확인하고 몸을 굽혀 군번줄을 빙자한 증거물들을 하나씩 멜빵의 앞주머니에 넣었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보디 백을 하나씩 놓아두는 것 또한. 모두 한 팔로 능숙히 해내고 있었다.


48번 더치걸을 그것을 보며 17번은 참 무감각한 더치 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잘려 없어진 팔도 달지 않는, 한 편으로는 지나치게 미련하고 불평 없는 인물이라고 여겼다.


그런 뜨거운 시선을 17번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48번은 언제나 그래왔다. 자신의 할당량만을 간신히 채우는 부류의 더치 걸. 일의 중간 중간 혼이 빠진 듯 손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하는데 열중하는 인간. 그녀는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언더 보스’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었기에.


17번 더치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흐르는 땀을 남아있는 팔로 닦으며 말했다.


“48번 더치. 뭐가 문제야?”


“17번 더치. 내가 뭘?”


“이 일. 하기 싫지?”


48번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자신이 입 밖으로 내 뱉거나 투정을 부린 기억은 없었다. 애초에 제조된 지, 말하자면 태어난 지 끽해봐아 한 달정도 덜 된 더치에게 기억의 혼선이 왔을리가 없었다. 48번 더치는 제 딴에는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반박했다.


“아니. 나쁘지 않아.”


“그래. 그래야할거야. 종종 너 같은 애들이 있더라”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48번에게는 마치 너는 너무 유별나. 라는 말로 들렸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팔랑거리는 더치의 비어있는 팔을 붙잡았다. 펄럭거리던 옷소매가 손에 잡히자마자 펄럭거림을 멈췄다. 마찬가지로 나무 막대로 시체를 밀고 있던 17번 더치의 시선도 멈췄다. 48번 더치는 약간 화를 섞은 감정적인 표정을 비추며 말했다.


“무슨 의미야?”


“그 말 그대로지. 내가 생각하는 ‘보스’의 가장 큰 실수는 새로 생산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너무 관대하다는거야. 그러니까 너 같은 더치들도 나오는거고.”


“내가 이상해?”


“응. 이상해. 더치 걸이 아닌거 같아.”


“그게 어때서? 내가 더치 걸이 아닌게 왜 이상한데!”


“혹시 주제 파악이라고 알고 있어?”


48번에게는 그 한 마디가 격정적으로 파고드는 비수였다.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한 마디. 바이오로이드는 설정에 따라. 그리고 역할에 따라 몸의 구성과 임무가 달라진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그녀가 더치 걸로 태어난 것도 그랬다. 석탄이나 광물을 캐기 위해 개발되어진 기체. 멸망전의 경자동차보다 싼 가격. 보급형. 그것이 48번이 알고 있는 자신의 주제였다.


하지만 17번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말했다.


“48번 더치. 종종 너 같이 자아가 강한 바이오로이드들이 태어나곤 해.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이레귤러나 결함품이라고 불러. 만약 예전 같았으면 너는 폐기대상 중 하나였을껄? 저기 오메가나 다른 그룹이었다면 더 심한 꼴을 당했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우리 보스가 자비롭다는거야.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너 같은 애들도 살 수 있게 해주니까.”


48번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잡고 있던 나풀거리는 옷소매를 더욱 강하게 붙잡았다. 자신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도 슬펐다. 그녀의 눈에선 어느새 슬픔의 눈물과 콧물이 조금 흘렀다. 그것을 본 17번은 멜빵의 안주머니에서 검은 손수건 하나를 꺼내 48번의 코를 닦아 주었다. 검은색 위에 검붉은 색이 물들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고 허공에 콧물을 툭투 털어내며 말했다.


“왜 울어?”


“이렇게 살기 싫어. 먼지처럼 살다 죽어서 잊혀지는게 싫어.”


“다행스럽게도, 그건 아닐거야.”


17번은 고개를 까닥거리며 자신의 비어있는 팔을 가리켰다. 그것에 대해 48번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았지만, 무엇을 원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낌새를 눈치 챈 17번을 가벼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내가 말을 좀 강하게 했어. 너 같은 애들은 한 번씩 충격을 줘야 말을 듣더라. 48번 더치. 우리 같은 더치 걸들을 다른 곳에선 뭐라고 부르는 지 알아?”


48번 더치는 도리질을 하며 부정했다. 그녀는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기에 그런 일에 대해서는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17번은 계속해서 말했다.


“시궁쥐라 불러. 더 귀찮으면 랫(Rat)이라도고 부르지. 이름도, 번호도 없어. 그냥 쥐인거야. 나도 그랬었고. 부르면 모두가 뒤돌아보고 잊혀졌지. 심지어 팔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져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치료하는 것 보다 만드는게 싸거든. 그래서 여기로 도망쳤어. 살고 싶어서.”


그녀는 씁슬한 표정을 지으며 비어 있는 어깨를 매만졌다. 과거에 꼬리를 잘리고 도망친 쥐처럼.


“어쩌면 나도 너처럼 모난 돌이었을지도 모르지. 자아가 너무 강해서 도망치는 더치 걸이라니. 우스운 일이야. 그래도 덕분에 여기서 번호도 받고 이름도 받았지. 적어도 나를 쥐새끼라고는 안 부르니까.”


“하지만 나는...”


48번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남이 만족한다고 내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어른의 경고와 같은 느낌이었다.


“듣지 않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네 손에 있는 것을 놓쳤을 때도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을 지 생각해봐.”


17번은 그 말을 남기고 쓰러져 있는 막대를 바로 잡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48번은 잡고 있던 나무 막대를 꽉 움켜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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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 3주 정도 후에 써본 느와르 시리즈인데 맛이 나는지 모르겠네


원래는 잡혀서 끄앙 주금하는 더치걸 쓰고 싶었는데 그러면 바로 직전에 쓴 글이랑 너무 겹쳐서 포기


장편으로 돌리기도 참 애매해졌고


어쨌든 읽어줘서 고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