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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바리는 발할라를 꿈 꿨다. 언니들이 말했던 것 처럼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게 허락된 낙원. 만들어진 생체 기계인 바이오로이드로 태어나 인간님들처럼 죽는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심금을 울리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 가증스럽고 잔학한, 언니들을 모두 도륙한 이들에게 복수를 해야했다.


발할라. 발할라. 나는 발할라로 가야만해. 안드바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으로 겨우 감쌀 수 있는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단 한 발뿐이었다. 숭고한 복수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녀가 숨어 있는 부식 창고의 문이 열렸다. 순간적인 환호성이 울렸지만 상자 뒤에 숨어 있는 소녀를 보지 못한 두 여자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야! 카멜! 내가 뭘 찾아 냈는지 보라고!”


“워울프. 잠깐만 좀 천천 히... 뭐야? 이 정도로 많아? 이 정도면 다음 보급 까지 버틸 수 있잖아!”


“그렇지! 어? 잠깐만. 저기, 저거. 술 아냐?”


“그러네... 꽤 비싼 거 같은데...”


워울프는 비싸보이는 술을 손에 집고는 카멜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어느새 주워온 술 잔 두개를 까닥거리기도했다. 거의 반 강제적인 압박이었다.


“에휴. 딱 한 잔 만이야?”


카멜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경쾌하게 터지는 소리와 함께 코르크 마개가 천장 위로 솟았다. 물론 그녀들에게는 응당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승자의 샴페인은 언제나 달디 단 꿀과 같은 존재였고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신에게 내리는 선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안드바리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언니들의 피와 살을 찢고 꿰뜷어 비명을 지르게 만든 가증스러운 살인자들 주제에 축배라니. 소녀는 아랫 입술을 강하게 씹었다. 짓이겨진 살점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그럼에도 안드바리는 인내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조금 만 더. 발키리 언니에게 들었던 것 처럼.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 술 냄새가 잔에 가득 차고 비워지기를 반복했다.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끊임 없이 울려왔다. 안드바리는 심호흡을 하며 권총의 방아쇠에 손을 집어 넣었다. 할 수 있다. 적을 조준하고 당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 뒤의 일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언니들의 복수를 할 기회는 지금 뿐이니까.


상자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튀어나온 소리에 반응 하기 마련이었다. 워울프와 카멜은 거의 동시에 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았다. 자신들의 허리보다 조금 더 큰, 허리까지 내려오는 소녀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분명 적은 없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과 눈 앞에 벌어진 현실 사이의 인지부조화였다.


안드바리는 정확하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총의 반동. 포물선을 그으며 지방이 섞인 액체를 내 뿜는 워울프의 미간. 그리고 소녀는 복부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 모든 것이 총성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자들이 무너지며 바닥에 부딪혀 무너지는 소리를 내었다. 무언가가 부서지고 박살나는 소리가 이리저리 울렸다.


카멜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했는지 깨닫는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전장에서 수 없이 사선을 넘나든 이의 판단력이었다. 워울프의 피가 미간에서부터 흘러 곡선을 따라 흘렀다. 동공이 서서히 붉게 물들었지만 감지 못하는 그녀의 눈의 아래에서부터 피웅덩이가 서서히 드리워졌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들거리는 자신의 손에 있는 물건과 쓰러진 소녀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워울프의 총과 복부에서부터 머금지 못해 내뱉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원망스러운 잔당.


판단은 곧 분노가 되었다. 카멜은 워울프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렇게 죽을 여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죽는다면 전장에서 죽어야 했다. 이런 개죽음을 누가 바랬겠는가. 수 많은 시체를 넘어서 이제 간신히 살아 남았다는 안도감이 목숨을 앗아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우악스럽게 총을 던져놓고는 쓰러져 있는 소녀를 향해 달려가 주먹을 쥐었다.


씨발년. 발할라의 썅년아.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내 친구를. 그런 고성들이 오가며 악의가 담긴 주먹이 안드바리의 얼굴을 내리 찍었다. 작은 체구의 소녀라는 도덕적 관념은 하등 의미가 없었다. 카멜의 눈에는 그저 자신의 친구를 앗아간 괴물만이 있었고 그녀는 그런 괴물을 처단 하는 것 뿐이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돌려내라고 수 없이 외쳤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더욱 세차게 내리쳐지는 주먹에는 서글픔과 원망이 묻어 있었다.


안드바리는 분명 반동에 의해 몸이 붕 뜬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상자에 부딪혀 멈추고 쓰러졌다는 것 까지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복부의 상처를 수습할 새도 없이 밀려오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악스러운 주먹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고통은 고통을 잊게 만들었다. 볼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작열감이 안드바리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아득해지는 시선 사이에 악의에 찬 얼굴이 보였다. 너희도 그런 표정 지을 줄 아는구나. 나도 그런 표정 지을 줄 알아. 안드바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중얼거리던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발할라. 발할라. 나도 이제 발할라로 갈 수 있어. 가서, 언니들을 만날 수 있어. 발키리 언니. 베라 언니. 님프 언니. 샌드걸 언니. 그렘린 언니. 그리고 알비스. 나도 이제 편해질 수 있어. 돌아갈꺼야. 그리운 자매들의 품으로. 그녀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피가 몰려 충혈된 눈에는 눈물과 피가 섞여 흘렀다. 아릿한 피맛의 슬픈 웃음이었다.


악의가 섞인 주먹은 총성에 하나 둘 씩 모인 이들을 신경도 쓰지 않을 채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모두의 호기심이 역겨움으로 바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막는 사람도 있었다. 카멜은 내려치려는 손을 붙잡은 이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칸 대장!”


앙칼진 목소리에서 슬픔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다시 꿈틀댄 손목이 칸의 더 강한 힘에 움찔거렸다. 카멜은 원망이라는, 자신의 대장에게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을 품었다. 이래서는 안되는 것을 아는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워울프가 죽었어요. 이 씨...”


“카멜.”


“대장.... 제발... 제발요...”


칸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원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복수를 행하는 이를 막는 것에 원망이 없을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막아야했다. 적어도 인간답게, 아니. 짐승이 되어버린 인간들처럼 되어서는 안되었으니까.


“가서 쉬어라. 이 일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서글픈 카멜의 울음이 창고의 모든 곳에 울려 퍼졌다. 서서히 멀어지는 그녀의 울음 소리와 함께 창고에는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소녀의 숨소리와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아무런 대화도 필요 없었다. 적과 적. 죽어가는 적을 바라보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다리가 찢기고 목이 잘리고 허리가 짓이겨진 시체들을 넘어 살아왔다. 그것에 어떠한 감정도 없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분노와 이성사이. 칸은 이성을 택했다. 서로 총구를 겨누는 이를 원망하기보다 동정했다. 강제로 생명을 불어 넣은 생체 인형들을 신이라도 된 듯 병정놀이에 자신들을 밀어넣은 인간들을 원망하는게 맞았다. 그녀는 그래도 되는 여자였다. 가장 ‘인간’스러운 바이오로이드였으니까. 살아 남은 생체 인형이었으니까.


칸은 허리춤에서 새끼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의 주사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안드바리의 목에 찔러 넣으며 말했다.


“사과는 하지 않겠다. 서로의 입장이란 것이 있으니까.”


엄지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액체가 서서히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편하게 보내주는 것 뿐이다.”


그녀는 간신히 남아 있는 입에서 우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발할라. 인간들이 만들어낸 세뇌이자 이상. 역겨운 소리였다. 바이오로이드가 명예롭게 싸워 죽는다면 과연 우리들을 만들고 죽이기 위해 밀어내는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칸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만약 네가 발할라에 간다면... 그곳에서는 모두를 만나기를 빌겠다.”


안드바리는 목에 무언가가 꽃히는 느낌이 들었다. 조그맣게 퍼지는 편안함과 졸음. 그 사이에서 그녀는 드디어 발할라의 문이 보였다. 구름이 내리 깔린 계단과 저 멀리 보이는 문 하나. 그 앞에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는 울음을 참지 않고 소리 지르며 계단 하나하나를 오르며 손을 뻗었다.


발할라. 나는 발할라에 도착했어. 언니들이 있는 발할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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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씁쓸한 문학이 취향이긴한데 아무래도 대상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함.


그래도 썼다.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