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새x들에게는! 약속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줄 필요가 있어."

"약속의! 소중함을! 새길 필요가! 있었으니까!"

-Library of Ruina 中, '버림받은 개' 조직의 리더 경미




 


 "너희 같은! 새x들은!"

 

 무지막지한 크기의 주먹이 무서운 기세로 날아든다.


 이미 잔뜩 얻어맞아서 피떡이 된 얼굴이 사람 머리만한 주먹에 맞아 처참하게 뭉개졌다.


 "이렇게! 쳐 맞고 뒈져야!"


 무지막지한 덩치의 경미에 비하면 가냘픈 체구의 장화가 무자비하게 날려대는 주먹에 맞은 이들의 머리통이 산산이 부서졌다.


 겉보기에는 별 힘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주먹에는 온갖 강화시술과 실전 경험, 수련으로 강해진 고급 해결사들도, 고급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들도 박살을 낼 정도의 힘이 실려 있었다. 하물며 그런 이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별볼일 없는 뒷골목 조직원들 따위가 그녀의 주먹에 맞고 무사할 턱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지!!"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피떡이나 뼈와 살이 분리된 시체로 만드는 경미와 장화를 향해서 '버림받은 개' 조직원들이 하나같이 질린 눈빛을 보냈다. 


 이들의 두목과 가장 강력한 전력이 빡친 나머지 누군가를 저렇게 박살내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했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날뛸 때마다 보는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는 한숨과 탄식이 절로 튀어나왔다.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야." 


장화의 동료이자 친구인 천아가 한심해하면서 혀를 찼다.


 "어이, 경미, 장화. 그쯤 해 두라고. 이제 슬슬 청소부들이 기어나올 시간이잖아."


"빡칠 만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묵사발을 낸다고 이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이 개x끼들이!"

 

 버림받은 개 조직의 간부들인 디노와 줄루가 말렸지만 경미도 장화도 주먹질을 금방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에까지 주먹을 마구 날려대면서 화풀이를 계속했다.  

 

 "약속만 지켰어도! 우리가 이러지는 않았어."


"이런 새x들에게는!"


"약속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줄 필요가 있어!"


"이미 다 죽여버렸는데 뭘 알려준다는 거야."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도서관 사건' 때까지만 하더라도 버림받은 개 조직은 뒷골목을 지배하는 다섯 세력 중 하나인 '엄지'의 산하 조직이었다.


 그러나 도서관 사건 이후로 버림받은 개들은 엄지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엄지가 요구했던 물건을 건네주는 데 실패해서 엄지로부터 숙청당할 운명이 된 버림받은 개 조직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다행스럽게도 여러가지 사건이 겹치면서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은 물론, 엄지와 그 산하 조직들을 적으로 돌린 상태에서조차도 살아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4차 기업 전쟁 직전 버림받은 개에 어쩌다가 흘러들어온 바이오로이드들- 엠프레시스 하운드라 불리는 조직 출신 바이오로이드들의 덕이 컸다. 


 상대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버림받은 개들은 그녀들의 존재를 금방 받아들였고, 장화와 천아 그리고 바르그는 자신들이 가진 능력으로 엄지와 그 산하 조직들이 보낸 자객들을 어렵지 않게 해치웠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한숨 돌릴 수 있었던 버림받은 개의 잔존 조직원들은 이전보다 더 강해질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세 바이오로이드들 또한 뒷골목에서 살아가면서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엄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도, 언제까지고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경미와 줄루, 디노는 흑운회와 라미에르 패밀리 등 엄지의 산하 조직의 간부들 중 몇몇과 접촉해서 엄지와 이들의 사이를 중재해줄 것을 부탁했고 그 대가로 몇 가지 일을 수행해 주었다.


 물론 엄지의 산하 조직은 버림받은 개와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고, 엄지 역시도 버림받은 개를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 경미와 장화에게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아서 피떡이 되고 있는 이들과, 주변에 널려있는 처참한 주검들은 모두 버림받은 개와의 약속을 저버린 엄지 산하 조직의 조직원들과 간부들이었다. 

 

"하긴, 이 자식들 때문에 080 기관이나 우리의 전 소속과도 충돌을 빚었지."


"그렇게 굴러가면서 시키는 개짓거리들을 다 수행했는데 말이야......"


"만일 이것 때문에 일이 꼬인다면......"


"......우린 엄지를 숙청하는 일만 남은 거지."


 예전 같았으면 엄지에게 숙청당하는 것을 두려워했을 이들이 지금은 반쯤은 농담이라 하더라도 엄지를 숙청하네 마네 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만일 일이 단단히 틀어져서 지금의 L사-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블랙 리버나 장화와 천아, 바르그의 전 동료들과 적이 된다면, 줄루의 말은 반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실행에 옮길 일이 될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덜덜 떨었을 버림받은 개 조직원들이었지만 지금은 다소 긴장할지언정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그만큼 강해진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이상으로 그들의 두목들이 강해졌다는 것을 믿고 있었으며, 그들의 곁에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바이오로이드들 또한 믿고 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도시의 별' 중 하나가 된 '잿빛약속' 경미와 '인형들의 특색'들 중 셋인 '진홍사슬' 장화-18, '보라독니' 천아-11, '푸른굉음' 바르그-22, 이 넷과 함께라면 정말로 엄지와 그 휘하 조직들을 숙청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리라는 것이 지금의 버림받은 개에 속한 모든 이들이 가진 믿음이었다.

 

"......뒷골목의 밤까지 정확히 30분 남았는데, 아직 안 끝났어? 아니면 청소부들까지 패 죽이고 자리 뜰 생각이야?"


 그런 믿음과는 별개로 이미 죽은 시체까지 곤죽을 만들어가면서 화를 식히는 경미와 장화의 행동을 보고 한심해하던 다른 버림받은 개의 간부들이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뒷골목의 밤'이라 불리는 시간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30분. 


 그 시간이 지나면 뒷골목의 범죄자들도, 조직들도, 해결사들도, 일반인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거나 하룻밤을 버틸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숨는다. 


 온몸을 썩은 악취가 나는 붕대와 외골격으로 감싼 괴인들, '청소부'들이 몰려나와서 길거리에 있는 모든 시체들과 살아있는 것들을 휩쓸어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들의 언어를 알아듣고 말할 줄 아는 통역이라도 고용하지 않는 이상 협상은커녕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청소부들은 비록 무적은 아니지만 쉽게 죽어주지도 않을 뿐더러,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뒷골목의 밤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계속해서 몰려온다. 


 지금의 버림받은 개들이라면 청소부들과 맞장을 떠서 뒷골목의 밤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특별히 얻는 것도 없는데 그 개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만일 아직도 경미와 장화의 화가 풀리지 않았다면, 이 둘이 화를 풀기 위해서 청소부들과 맞장을 뜨는 개고생을 자처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럴 생각까지는 없는지, 아니면 충분히 화가 풀렸는지 경미와 장화가 목과 주먹을 요란하게 꺾으면서 돌아섰다. 

 

"한 이십 몇 뿐쯤 남았다고 했지?"


"지금은 그쯤 남았지."


"이 근처에 24시간 하는 고깃집이 있으니 청소부들 볼일 끝날 때까지 거기서 회식이나 하자고."


 그저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미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대로 행동하기 전에 앞서서 자기 나름대로 활로나 퇴로를 미리 준비해놓고 움직였다. 폭력과 온갖 위협이 난무하는 뒷골목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으면서 그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었다. 


 이는 지구에서 테러리스트로서 활약해온 장화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저 둘이 죽이 잘 맞는 커플이라면서 뭐라고 떠드는 친구들과 부하들을 본 경미와 장화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리는가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장화에게 곁눈질로 시선을 준 경미가 어지간한 사람 몸통만한 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근데 거기 가면 또 엄지 산하의 다른 잡것들 있는 거 아냐?"


"있으면?"


"뭐, 청소부들에게 던져 버려야겠지." 


 장화를 끌어안은 경미가 앞장서고, 천아와 디노, 바르그와 줄루가 그 뒤를, 그리고 나머지 조직원들이 또 그 뒤를 따랐다. 


 화풀이를 하러 쳐들어오기 전에 경미가 미리 알아본 음식점으로 버림받은 개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남은 것은 박살이 난 가구들과 아지트, 신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뭉개진 시체들뿐이었다. 


 줄루가 말한 삼십여 분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시체와 죽음의 냄새를 맡고 찾아온 청소부들이 붉게 빛나는 낫들과 갈고리들을 가지고 그 자리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오전 4시 34분. 80분간 지속되는 뒷골목의 밤이 종료되고, 청소부들이 거리에서 사라지는 그 시간이 되었을 때 버림받은 개들이 휘두른 폭력과 살육의 증거와 흔적은 도시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버림받은 개라는 조직의 이름을 들었을 때, 장화-18과 천아-11, 바르그-22는 자신들에게든 원래 그 조직에 속해있는 이들에게든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엠프레시스 하운드. 여제를 자칭하는 광대,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사냥개들. 그것이 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주어진 운명이었고 역할이었다. 


 쓸모가 없는 사냥개가 가마솥 안에 들어가듯, 원래 세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녀들의 주인의 명령에 의해서, 자신들의 옛 동료들에 의해서 비참하고 허무하게 죽을 예정이었다. 그녀들이 이전에 다른 사냥개들을 처형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녀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이들에 의해서 죽을 차례였다.

 

 우연히 일어난 시공 균열은 죽을 운명이었던 이들 셋을 도시로 날려보냈다.


 그곳에서 세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섬기던 이들에게서 버림받고, 숙청당할 처지에 놓여있는 인간들을 만났다. 타인의 재산과 목숨을 빼앗고, 누군가에게 자신들이 모은 것들을 빼앗기다가 결국 자신들의 목숨을 빼앗기게 된 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이들. 


 그런 그들의 몸부림을 본 버림받은 사냥개들은 처음에는 무의미한 발버둥이라고 생각하면서 비웃었다. 그녀들이 보기에 버림받은 개들의 능력은 별볼일 없었고, 이 시궁창 밑바닥에서 살아남겠다고 아무리 발악해봐야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뻔해 보였다. 


 이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공허함.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데 대한 허무함. 자신들의 운명에 관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


 역설적으로 그것들이 엠프레시스 하운드로 하여금 자신들이 비웃는 인간들을 뒤따르게 했다. 


 버림받은 개들이 엄지 산하의 조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을 때, 엠프레시스 하운드는 누구에게, 아무런 명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의지로 무기를 뽑아서 인간들을 베어넘기고, 터뜨렸다. 어째서인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았고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엠프레시스 하운드였던 세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칭 여제,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사냥개를 칭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버림받은 개들이었다. 버림받은 개들의 일원이었고 이들과 함께 죽이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뒷골목의 일원이 되었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일상이었고 살아가는 목적이었던 장화와 천아, 바르그에게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뒷골목에서 매일 일어나는 온갖 일들도 그리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저 지구의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비하면 조금 더 자극적이고, 조금 더 삭막할 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뒷골목에서의 삶을 이어나가는 동안 세 바이오로이드들과 버림받은 개들은 점점 가까워져갔고, 이들 사이에 존재했던 벽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이들 사이의 벽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이들은 이전의 그들은 물론, 이들이 두려워했던 이들보다도 더욱 강해져 있었다. 어느샌가, 어떻게인가 버림받은 개의 리더인 경미는 도시의 별들 중의 하나가 되어 있었고, 버림받은 사냥개였던 세 바이오로이드들은 인형들의 특색이라 불리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돈을 물쓰듯이 펑펑 써댈 만큼 풍족해진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도시의 별급 조직이라고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이들은 엄지와 그 산하 조직들에게 숙청 대상으로 낙인찍혀 있는 상태였고, 협회와 그들을 아니꼽게 여기는 이들은 버림받은 개들을 어떻게든 길거리의 죽은 개처럼 만들어버리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버림받은 개들은 자신들이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마지 않았다.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나면 조금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것을,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과 그녀들이 걷는 길이 시체와 폭력, 피로 얼룩진 길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