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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ㅡ


보좌관이 죽었다. 사인은 권총 자살이었다. 유서에는 어르신을 위한 충성심이라느니 그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하나도 적지 않았다. ‘바이오로이드처럼 설계된 목적성을 가지지 않은 나는 변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선택했다.’ 라는 말 하나만이 적혀 있었다. 메이는 그 구절에서 두 가지를 읽었다. 하나는 결국 언젠가 변심으로 제 주인의 부인을 배신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위함을. 둘은 권력과 영향력을 온전히 넘겨주기 위해. 인간이 없을 때에만 상속 받을 수 있는 법 때문이었다.


“의미없어.”


그럼에도 그녀는 그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방에서 조용히 권총을 당긴 시체를 바라 보았을 때에도,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 놓지 않은 담백한 유서를 읽었을 때에도. 그저 무덤덤함을 연기하듯 몸을 웅크려 식어가는 손을 한 참을 잡고 있었다.


감정을 너무 많이 쓴 거야. 메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애도의 눈물 한 방울 하나 흘리지 않는 매정함을 연기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녀는 잡은 손을 천천히 풀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시체의 손이 툭하고 떨어졌다.


“이제 진짜 혼자구나.”


허탈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무릎을 팔로 감싸고 파묻은 얼굴에는 미묘한 슬픔이 일렁거렸다. 메이는 고개를 조금 들었다. 여전히 식어가는 시체 하나와 손에 쥐어져 있는 권총 한 정. 그녀는 일어나 그것을 집어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이윽고 총구는 그녀의 머리를 향했다.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 서서히 움직였다.


“지쳤어.”


방아쇠가 당겨졌다.


ㅡㅡㅡ


미련이라 함은 손에 쥔 모래와 같았다. 흘려 보내도 손금의 틈 사이에 남아 있는 작은 알갱이들. 털어내면 떨어져 사라질 것 같지만 조금씩 남아 까글거림을 만들 것이었다. 미련한 년. 여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방주의 앞에서 챙의 끝이 다 해진 정모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AGS들은 추적거리는 습기들을 가르며 방주의 주위를 서성였고 여자는 세차게 내리는 물줄기를 향해 만지작거림을 멈춘 손을 뻗었다. 차가움을 머금은 물이 손바닥의 오목한 부분에 고였다. 서서히 채워지다가 제 한계를 넘어 새어 나온 물들은 굴곡을 따라 손목을 타고 툭하고 떨어졌다.


차가워.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받았던 빗물을 흩뿌리며 손을 털었다. 물론 떨어지지 않은 물 알갱이들이 몇 방울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짜피 언젠가는 마르겠지. 그렇게 생각한 여자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으며 비어버린, 정확히는 의안으로 채워 넣어 안대로 가린 눈을 만지작거렸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몇년이 지났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었다. 단지, 철충의 총탄에 스쳐 지나갔다는 것만이 뇌리에 박힌 사건이었다. 10년이었나? 20년이었나? 70년이 지난 지금, 여자는 열 손가락으로 채 세지도 못할 날을 세 봤자 의미 없다고 여기며 여전한 무표정으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종종 입구에 무성하게 자란 풀이 움직일 때마다 품 안의 총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대부분은 동물들이었다. 멸종한 인간들이 나올 가능성은 없었기에.


이번에도 여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흔들리는 풀 숲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렇게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사이에는 동물들도 어딘가에서 몸을 피하고 있을테니까. 그저 바람이나 비 때문이야. 그렇게 단정지었다.


하지만 언제나 세상은 예외투성이었다. 정확히, 세 사람이었다. 우비를 쓰고 있어 더욱 선명한 사람의 형체였다. 여자는 순간적으로 놀라 품 안에 있던 권총을 그들에게 꺼내 겨누며 말했다.


“너네, 뭐야. 어떻게 여기까지 온거야?”


분명 여기까지 오는 길목에는 AGS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었다. 전역을 했더라도 나름대로 유능했던 그녀가 고심해서 짠 병력의 배분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태연하게 두 손을 위로 올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는 다가오는 그들에게 경계심을 가득 담은 총알 한 발 선물했다. 그들의 앞에서 소리를 내며 튀어오른 진흙들이 있던 자리에 총탄이 비에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다가오지마. 관등성명을 말해. 그리고 목적을 밝혀.”


“음... 내가 뭐라고 말해야 네 경계심이 누그러들까?”


“생각하는 척 하지... 어?”


천천히 벗겨지는 우비의 모자를 보자마자 여자는 순간 자신의 귀와 눈 의심했다. 정모의 끝에 가려졌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크게 되어 있었다. 의심과 놀람이 동시에 밀려온 탓이었다. 총구가 조금 내려갔다. 분명한 남자의 외모와 목소리였다.


“너, 인간이야?”


“응. 인간이야.”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인간은 멸종했다. 지금 살아남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 중에 상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자의 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한 남자였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불가능했다. 여자는 이를 꽉 꺠물었다. 어찌되었든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인간’은 어떻게 되어있던지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방주에 있는 노인은? 그 또한 찾아내지 못한 휩노스 병의 치료제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치료제 하나 없었기에 희생한 남자의 죽음과 남겨져 참아 왔던 여자의 감정들이 섞였 터져나왔다. 그녀는 순간적인 상황판단을 미뤄둔 채 다시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일종의 화풀이였다.


“오지마. 다음에는 머리야.”


인간은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남자의 손이 그들을 제지했다. 다시 한 걸음. 멈출 생각이 없는 발이 움직였다. 여자는 다가오는 그를 보며 끝이 바들거리는 총구를 계속해서 겨누었지만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내 이름을 [---]. 오르카호의 사령관을 맡고 있지. 그리고 내 목적은... 네가 지키는 방주의 주인을 추모 하러왔어. 부탁이 있어서. 세이렌, 알지? 너와 같이 약을 구하러 다녔다던데. 미안해. 사정이 있어서 그녀가 직접 오지는 못했어. 좀... 다쳤거든.”


남자의 말이었다. 앞으로 다섯 걸음. 그와 그녀 사이의 거리였다. 총구가 여전히 겨눠졌다. 앞으로 세 걸음. 여자는 생각보다 큰 남자의 가슴을 향해 총구를 올렸다. 앞으로 한 걸음. 권총의 슬라이드에 남자의 손이 올려졌다. 천천히 내려지는 권총에는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살아... 있어? 아니, 얼마나 다쳤어...?”


여자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운 이름이었다. 몇십년 동안 보지 못했던, 추억을 공유하는 소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경계심은 이미 누그러들다못해 사라져버렸다. 살아있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70년을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눈 감은 이는 돌아오지 않지만, 남아 있는 이에게 약속을 지키러 갈 수 있었다. 여자는 억지로 눈물을 참기 위해 정모의 챙을 억지로 앞으로 눌렀다. 남자는 그것을 보며 가벼운 한 숨을 쉬고는 말했다.


“이렇게 쉬울 줄 알았으면 바로 말해주는건데.”


“얼마나... 다쳤냐고... 대답이나 해.”


“그냥, 조금 다쳤어. 다리에 깁스를 해서 못 온 것 뿐이야. 생명에 지장도 없고 걱정할 정도는 아냐. ...둘이 비슷하네.”


“무슨 의미야?”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세이렌도 일어나자마자 너를 찾더라. 분명 방주라는 곳에 네가 있을거라고. 서로 그런 말 먼저 하니까... 좀 신기하잖아?”


“그 꼬맹이가 미련하고 멍청한거야.”


바보같아. 여자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 뱉고는 고개와 몸을 휙하고 돌려 버렸다. 하지만 눈에서 흘러내리는, 세이렌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섞인 눈물이 저 빗물처럼 흘러내려 소매로 몇 번이고 닦아낼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설픈 동정은 자존심 강해보이는 여자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자는 눈물을 대충 닦아내고 고개만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옆에 서 있는 우비의 틈 사이로 은발과 밤빛 머리카락이 보였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남자에게 말했다.


“너만 따라와. 나머지는 여기 있어.”


“주인님.”


“괜찮아. 이 정도 장단은 맞춰 줘야지.”


우비 하나가 남자의 팔목을 잡았다. 걱정이 가득 담긴 손짓이었지만 남자는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 맞아. 급하게 오느라 이름을 못 들었네. 이름이 뭐야?”


여자는 눈물을 닦은 소매를 털어내며 말했다.


“메이. 성은 꼬맹이랑 같아.”


같은 남자랑 결혼했거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ㅡㅡㅡ


끝이 보인다 보여 7월 전에는 못 끝냈다. 아깝다.


새드엔딩으로 끝내려다가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 급 선회함


그래도 장편 중에는 나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근데 이거 다 쓰면 뭐 쓰지. 모르겠다.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