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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의 문이 닫히자 이터니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것의 주인을 안고 울었다. 그것은 후회의 눈물이었다. 뒤늦은 후회였다. 이제 이터니티는 돌아갈 수 없는 실에 들어섰다.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가. 그것은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뒤늦게 알아챘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그것의 주인에게 주어진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브래드버리 가문의 덴버러 백작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빼앗아버린 것이었다.

 론 브래드버리, 이터니티의 주인을 위해. 무엇이 주인을 위해서란 말인가. 이것은 그저 콘스탄챠 S1과 그것의 아래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었다. 어느 편이 주인에게 더 나은 길이란 말인가. 이터니티와 함께 아무것도 없는 삶? 위기에 처하지만 영국 최고의 부자로서 살 수 있는 삶?

 이터니티는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터니티는 주인의 안전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터니티와 함께한다면 론 브래드버리는 안전한가? 말도 안되는 소리. 이터니티는 지금까지 론 브래드버리와 겪어온 일들을 떠올렸다. 수많은 위기가 있었고 론 브래드버리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도 없이 죽었을 것이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터니티는 울며 품안의 작은 아기에게 중얼거렸다. 론 브래드버리는 이터니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지. 이터니티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론 브래드버리가 언젠가 이터니티의 말과 마음을 알아들을 날이 올 것인가. 이터니티는 걱정 속에 그 날만을 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후회할 시간은 없다. 역을 출발한 열차의 위, 무언가 둔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자연스러운 소리는 아니었다. 이터니티는 그 소리를 듣고는 반사적으로 우는 것을 멈추었다.

 지금은 주인에게 사과를 할 시간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위협으로부터 주인을 지켜야할 시간이었다. 그것은 소리가 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은 충격 때문인지, 조금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 때문일까, 승객중 몇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들이 탔던 열차에서의 싸움은 주체만 바뀌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터니티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열차는 순식간에 최고속도에 도달했고, 바깥의 풍경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면 맞바람에도 날아갈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바람의 버티는 존재가 있다면, 시속 500km/h로 달리는 열차 위에 떨어져서 버틸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보통 강적은 아닐 것이었다.

 문이 떨어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엄청난 풍압이 객차사이의 공간을 휩쓸었고 그 위치에 있는 이터니티는 겨우 바람이 불지 않는 객차로 들어올 수 있었다. 투명한 유리문은 닫혔지만 바람에 흔들리며 쿵쿵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냈고 그 소리에 맞춰 이터니티의 심장도 쿵쿵대기 시작했다.

 문으로 들어온 것은 한 바이오로이드였다. 그것은 이터니티가 버티기 힘든 바람속에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양, 편한 자세로 걸어와 유리문을 열고 객차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주인님! 드디어 만나뵙게 되는군요! 저는 제 주인님이 사랑하시는, 아끼시는, 소중히 여기시는 컴패니언 시리즈의 블랙 리리스라 합니다.”

 이터니티보다도 더 흰 머리의 바이오로이드는 그것의 호박색 눈동자로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를 노려보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제대로 된 인사가 아닌, 비꼼의 의도가 들어간 인사라는 것은 그것의 살짝 돌아간 목에서 알 수 있었다.

 “으아아아!”

 두 바이오로이드를 본 다른 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객차로 달려갔다. 이 싸움에 휘말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블랙 리리스의 명성은 일반인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것이었으니까. 그것의 ‘사고’는 마케팅에도 쓰일 정도로 유명했고, 그것의 강함은 수많은 사례들로 대중의 인식에 각인이 되어있었다. 삼안 산업이 만들어낸 최강의 바이오로이드.

 그것이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 앞에 서있었다.

 “주인님! 보고 계십니까? 이 광경을 말입니다! 이 리리스가 드디어! 마침내! 결국! 이 자리에 섰습니다! 주인님을 위해 수많은 고생을 해 이 자리에 도달했습니다!”

 블랙 리리스는 외쳤다. 위를 올려다보며, 양손을 하늘로 뻗으며 외쳤다. 마치 그곳에 그것의 주인이 있다는 양, 그가 리리스를 보고 있다는 양.

 “블랙 리리스, 당신의 주인은 바로 이 론 브래드버리 주인님이 되십니다. 바라볼 장소가 잘못되었습니다.”

 이터니티의 말에 블랙 리리스는 무슨 말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제 주인님은 오직 한분이십니다. 덴버러 백작 휴이 브래드버리님, 그분이 제 유일한 주인님 되십니다. 그분의 혐오스러운 아이 따위, 제 주인이 될 가치가 없습니다.”

 “어쩜 그런 말을!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할 뿐더러, 주인님께 대하여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주인이라니요. 주인님께서는 언제나 저것을 흉물이라 말하셨습니다. 혐오스러운 것이라 말하셨죠. 그런 말을 들은 제가 주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저 반 것을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고요? 말도 안되는 소리!”

 “지금 주인님께 뭐라 하셨습니까!”

 이터니티가 그것의 주인에 대한 망언을 견디지 못하고 싸울 자세를 취하자 블랙 리리스는 순식간에 자신의 권총을 뽑아들어 이터니티의 머리를 겨누었다.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요? 당신은 주인님을 죽였어요. 제 사랑스러운 주인님을요! 당신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할 거에요. 주인님께서 우리를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셨다는 것을요! 어째서 주인님의 바이오로이드들은 학대와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인지요. 주인님의 사랑을 어찌하여 죽음으로 돌려주는 겁니까!”

 그렇게 외친 블랙 리리스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것은 진심으로 휴이 브래드버리를 사랑했다. 모두가 휴이 브래드버리의 학대에 고통받을 때, 블랙 리리스는 유일하게 그것을 주인의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였다.

 “어째서 주인님을 죽여야 했던 거죠? 왜 제가 사랑하는 존재를 앗아간 거죠? 저 하찮은 주인님의 사생아 때문에요? 이건 주인님의 복수에요.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앗아간 대가로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갈 거에요. 막아보세요. 저를 막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걱정마세요. 이터니티 당신을 먼저 죽이진 않을 거니까요. 지금 당장 이 방아쇠를 당기면 당신도, 저 혐오스러운 흉물도 순식간에 죽일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을 거에요. 당신의 얼굴을 볼 거니까요.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이터니티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바라볼 거니까요. 고통스러울 거에요.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겠죠. 당신은 빌 거에요. 제발 죽여달라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그럼 그 때 죽여주죠. 그래서 지옥에 떨어져서 주인님을 다시 만나 주인님께 자신이 한 행동을 사죄할 수 있도록요. 그리고 이 리리스도 같이 죽을 겁니다! 아아! 주인님!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립니다! 아무리 지옥이 고통스러운 곳이라 한들 주인님과 함께라면 그곳은 천국이나 다름 없는 곳입니다!”

 블랙 리리스는 자신의 권총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마치 그것이 그것의 주인의 손길인양.

 “절대로 주인님을 당신에게 죽게 할 수 없어요!”

 이터니티는 몸을 돌려 그것의 주인이 블랙 리리스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게 만들었다.

 “주인님께서는 자라실 겁니다. 성장하실 겁니다. 그리고 늙으시게 되겠고 언젠가는 돌아가실 겁니다. 저는 주인님의 임종을 같이 지켜볼 것이고 주인님이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것을 본 뒤에야 같이 무덤에 들어갈 겁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것이 제 인생입니다. 아무리 블랙 리리스, 당신이라 한들 주인님이 돌아가시게 할 순 없습니다!”

 이터니티가 외친 순간,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열차가 해저터널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죠? 이 블랙 리리스에게 어떻게 맞서신다는 거죠? 당신은 무기 하나 들지 못한 나약한 바이오로이드인데 말이죠. 당신은 무력하게 이곳에서 죽을 겁니다. 한가지는 말해드리죠. 저는 둘을 같은 무덤에 묻어줄 거에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해드리죠.”

 블랙 리리스가 그렇게 외친 순간, 왼쪽 창문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것은 맞은편에서 온 열차가 아니었다. 작은 무언가였다. 사람 크기의 무언가. 그것의 위에서는 밝은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비행형 AGS인가? 라고 이터니티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열차의 유리창을 깨고 무언가가 열차 내로 날아들어왔다.

 “후후, 이곳에 해충이 있었군요.”

 곤충의 날개와도 같은 각진 유리판 형태의 무언가가 등 뒤에 떠있는 한 바이오로이드였다. 그것의 손에는 거대한 가위가 들려있었고 그것의 실눈은 블랙 리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주인님을 노린다는 그 해충인가요? 총 같은 야만적인 물건이라니. 하찮은 상대가 되겠군요.”

 “시저스 리제. 여긴 당신이 나올 자리가 아니에요. 이 자리는 제 주인님의 복수를 위한 자리니 비켜주시죠.”

 “제가 그럴 리가 있나요? 해충을 앞에 두고 지나갈 리가 없죠. 제 사랑하는 주인님의 목숨을 노리는 해충은 이 시저스 리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시저스 리제는 사람 키만한 거대한 가위를 한손으로 들어 블랙 리리스를 가리키며 외쳤다.

 “겨우 시저스 리제가 진심으로 내게 맞설 것이라 생각한 거에요? 그런 일 따위 일어날 리가 없잖아요!”

 “맞아요. 저나 리제의 힘으로 당신을 막는 것은 무리죠. 그러니 우리는 당신을 이기는 것이 아닌, 당신의 발목을 잡는데 저희의 목숨을 사용할 겁니다.”

 시저스 리제가 깨고 들어온 창문으로 또다른 바이오로이드가 들어오며 말했다. 밀짚모자를 쓴 그것은 이터니티가 안고있는 론 브래드버리에게 다소곱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면 주인님, 잠시 이 다프네가 모시겠습니다.”

 다프네는 론 브래드버리를 안고 있는 이터니티를 단숨에 안더니, 공중으로 떠올라 자신이 들어온 창문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 무슨! 페어리 시리즈들! 감히 내 앞을 가로막는다고요?”

 “햇츙!”

 블랙 리리스가 날아가는 다프네를 향해 총을 겨누자, 시저스 리제가 그것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객차에서는 총 소리가 들렸지만 열차 밖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이터니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메이드장님의 명령입니다. 블랙 리리스로부터 주인님을 지킬 것. 그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걱정마세요. 주인님은 저희 페어리 시리즈가 지켜드릴 겁니다.”

 페어리 시리즈. 토마스 브래드버리가 공중정원의 관리를 위해 대규모로 구입한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그리고 그 공중정원은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의 바로 위에 있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다프네는 고속으로 달리는 고속철도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럼에도 그것이 쓴 밀짚모자는 바람에 흩날릴 뿐, 떨어지려 하진 않았다.

 “저희와 함께라면 주인님은 안전합니다.”

 다프네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터니티는 그 명령의 맨 위에는 콘스탄챠 S1이 있다는 것에 걱정을 했다. 그 안전이란 결국 콘스탄챠 S1이 만들어낸 것이었고 그것은 론 브래드버리가 아닌 덴버러 백작가의 안위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존재였으니까. 만일 이 자리에서 론 브래드버리가 죽는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끝낼 것이다. 겨우 그정도뿐인 안전이었다.

 그 생각을 하는 사이, 다프네는 고속열차를 추월했고 그 열차의 정차역이자 해저에 위치한 버리역에 먼저 도착했다. 그것이 역 플랫폼에 들어서 숨을 고르려 하는 사이, 열차가 뒤늦게 들어왔다. 열차가 멈추기 전에 재빨리 출발하려 한 다프네였지만 블랙 리리스는 그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직 속도가 완전히 줄어들기도 전, 총성이 울렸다.

 “빨리 출발하…”

 한발의 총성에 다프네는 작동불능이 되었다. 이터니리를 안은채 그것은 피를 흘리며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것은 다프네가 안고 있던 이터니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열차의 안에서 블랙 리리스가 총으로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아니면 여유를 즐기며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를 생포할 기회를 노릴 것인가.

 그런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계단으로 한무리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날아왔다. 시저스 리제들이었다. 그것들은 한꺼번에 블랙 리리스에게 달려들었고 총성과 시저스 리제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자매여, 그대는 주인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다른 다프네가 나타나 이터니티를 안아들었다. 그것은 역 바닥에 누운 자신의 자매를 보며 한마디를 한 뒤 빠르게 왔던 길을 통해 날아갔다.

 수많은 사람들과 구조물과 벽과 기둥이 있었지만 다프네는 날렵하게 그것들을 모두 피해 날아갔다. 이정도 속도면 절대로 블랙 리리스가 따라올 수 없을 거라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총성은 어째 잦아들지 않았고 소리가 줄어들지도 않았다.

 블랙 리리스는 따라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그것을 막으려 하는 수많은 시저스 리제를 물리치며. 수많은 피를 딛고서며. 그것의 복수를 위해.

 “이제 다 왔습니다! 공중정원에 도착하면 저희들이 보호해드리겠습니다!”

 다프네가 외친 순간, 밝은 빛이 이터니티를 맞았다. 공중정원의 아래에 만들어진 인공섬, 버리의 지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짙은 바다냄새가 그것의 코를 자극했고 답답한 지하의 공기가 아닌 상쾌한 바닷바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다프네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이터니티가 안아든 론 브래드버리가 괜찮을까 걱정될 정도의 속도였다. 그러나 이 속도를 내야 했다. 블랙 리리스는 날 수 없었다. 그것은 두 발을 땅에 디뎌야 하는 바이오로이드였다. 아무리 강한 바이오로이드라도 아무 기구 없이 하늘을 날 수 없는 법이었다.

 “저깁니다. 공중정원.”

 인류가 만들어낸 불가사의. 그것이 이터니티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두개를 위아래로 붙여놓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금색 구조물은 아무 지지물 없이 공중에 유유히 떠있었다. 땅으로 연결된 것은 오직 오르기 위한 케이블카들이 달린 케이블 뿐이었다.

 토마스 브래드버리는 이 공중정원을 보며 인류의 기적이라 감탄했고 휴이 브래드버리는 그것을 무식한 흉물로 취급했고 론 브래드버리는 아직 그것을 이해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공중정원의 주위에는 수많은 페어리 시리즈들이 론 브래드버리의 엄호를 위해 날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즉시 날아와 그것들의 주인을 지킬 것이었다.

 최고의 요새였다. 날 수 없는 블랙 리리스로부터 주인을 지키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만일 케이블카만 막는다면 블랙 리리스는 진입하지도 못하겠지. 그것은 날 수 없으니까.

 인간은 날 수 없다. 그것은 바이오로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존재한다. 그것은 인류가 DNA 개조로 바이오로이드에게 새와 같은 능력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날 수 있게 만드는 장비를 등에 짊어졌기 때문이다.

 제트엔진, 반중력 엔진과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장비가 있기에 기동형 바이오로이드들은 하늘을 날 수 있다.

 그 장비가 없는 바이오로이드는 날 수 없는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건 한가지를 간과한 이야기였다. 만일 그 바이오로이드가 충분히 강력하다면. 그래서 기동형 바이오로이드를 제압하고 그것이 멘 반중력 엔진을 활용할 수 있을 정도라면. 블랙 리리스가 시저스 리제에 올라타고는 그것의 목을 졸라 마구 움직이는 시저스 리제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럴 경우에도 여전히 바이오로이드는 날 수 없다는 명제를 믿을 수 있을까. 그 명제를 믿고 있던 다프네는 자신을 따라온 블랙 리리스의 총탄에 명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프네씨!”

 작동불능이 된 다프네는 공중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프네가 안고있던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론 브래드버리는 갑작스런 낙하에 울기 시작했지만 이터니티는 울음을 달랠 시간이 없었다. 그것은 떨어지고 있었고 블랙 리리스는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으니까.




 “그만두세요! 여기까지입니다!”

 음악이 울려퍼졌다. 기타의 리프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코러스. 공중정원에서 울려퍼진 음악은 공중에서 떨어지던 이터니티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블랙 리리스도 들을 수 있었다.

 -썬더!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그것은 버리 섬과 공중 정원의 관객도, 공중의 페어리 시리즈 바이오로이드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노래가 울려퍼진 것이었다.

 갑작스런 음악에 블랙 리리스가 놀란 사이, 무언가가 이터니티를 낚아챘다. 그리고 공중에서 멈추어선 그것은 블랙 리리스를 보며 외쳤다.

 “페어리 시리즈의 맏언니, 오베로니아 레아입니다! 블랙 리리스, 여기까지입니다!”

 오베로니아의 외침과 함께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