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편 모음 https://arca.live/b/lastorigin/52141864 






-일단 전부 후퇴 시켜줘-


"... 알았어"


적의 코 앞까지 왔지만 더 이상 진입할 길을 찾지 못했다는 보고 결과와 주변 상황의 악화로 인해 사령관은 일단 부대를 퇴각 시키기로 결정했다.


"후퇴입니까?"


"그래 팬서"


팬서 또한 코앞에서 적을 놓친 것에 대해 분해하는 표정이었다.


"레프리콘!"


"네! 지휘관님!"


"정찰장비 어떻게 설치하는지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대원들이랑 같이 설치 도와줘, 곧 퇴각할 거야"


"알겠습니다!"


레프리콘과 부대원들을 보내고 정비중이던 팬서에게 다시 다가갔다.


"팬서"


"예 말씀하십쇼"


"작전계획에 있던 3방어선으로 병력을 물릴거야, 일단은 주변에 있던 아군과 합류해서 입구를 계속 감시하면서 추가 명령 하달될때 까지 그곳에서 대기할 거다."


"알겠지 말입니다."


"장비는? 방금 전에 포격에 휩쓸린 것 같던데"


"원래 이런 전투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장비지 않습니까, 문제 없슴다"


"좋아"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 정찰장비들이 설치된 것이 눈에 보였다.


"전부 설치 완료했습니다."


"좋아 바로 퇴각하자"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올 때는 미처 보지 못한 잔해들이 보였다


'아까 거기 말고도 몇 번 더 싸웠나보네'


"굉장하네요"


"레프리콘 뭐가?"


"여기 있는 AGS들 전부 양산형이긴 하지만 커스텀 타입이에요"


"커스텀 타입? 양산형은 뭐, AI 수준이 좀 떨어지는 물건인 거는 알고 있지만"


"말 그대로 주문한 사람의 오더에 따라 사양이 바뀌는 물건입니다. 여기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장갑 강화형이네요"


"꽤 자세하게 알고 있네?"


"철충도 무장 형태가 다른 개체들이 많지 않습니까? 램파트 베이스로 유탄발사기, 대구경 기관포, 발칸, 소총 같이 말입니다"


"그랬지"


"그런게 대부분 커스텀 기체나 계열기 같이 여러 세분화된 모델들이 감염된 개체니까 그렇습니다. 스틸라인 정규 교육 시간에 배워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요"


"그렇다고 그렇게 집중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적을텐데, 굉장하네"


"아... 하하... 그렇긴 하죠"


식은땀을 흘리며 브라우니를 흘깃 바라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진심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해 보였다


"그 정도로 기계에 관심 있으면 나중에 정비 쪽으로 한번 알아봐 줄까?"


"ㅇ.... 예?!"


"응? 싫어?"


"아... 아뇨 그래도 제 위치는 아무래도 스틸라인이고 그... 좋긴 하지만, 저기 그..."


"왜,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하지만..."


"자신이 없나 보구나"


"...... 네... 죄송합니다"


"우리 애들 농사 처음 지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네"


"예...?"


"더치걸들 원래 하던 일이 뭔지는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광부로 일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정비 같이 기계를 만지는 일은 그럭저럭 했지만 농사를 한다고 했을 때는 녀석들도 엄청 걱정했어"


"아..."


"1년, 2년... 대충 4년 정도가 지나니까 그럴듯한 양이 나오더라고 덕분에 닭도 키워보고 섬에서 이런 저런 작물들도 길렀었지"


"그렇습니까?"


"그래, 덕분에 2차 연합전쟁, 그 뒤에 있었던 멸망전쟁에서도 먹을게 모자랄 일은 없었지"


"아..."


"뭐가 되었든 배우고 익힌 기술들은 늘 도움이 되는 법이지, 이런 일들은 모듈로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니까"


"그렇군요"


"태어나면서부터 기본적인 무언가 들을 이미 알고 있고 단순히 모듈만 새로 추가하면 전문가가 되고 태어난 목적이 있다는 의무감... 머리 속에 새겨진 그런 느낌을 내가 안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살면서 느낀건, 너희들도 인간이라는 거야"


"인간... 인가요..."


"그래, 살아가고, 무언가를 배우고,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 그게 인간이 아니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 이미 사령관을 통해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


레프리콘은 말없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결국 나도 내 손에 닿는 녀석들만 구할 수 있었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더라"


"그래도 옳은 일을 하신 겁니다"


"누군가는 위선이라 비웃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었지. 목숨이 아깝다면 어디 공적인 위치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됐어. 하나하나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사라졌지, 그래서 나도 숨었지"


"그 섬이..."


"전쟁을 겪고 기업들이 사실상 새로운 황제가 되어 생긴 제국들의 연합, 그곳에서 자행되는 합법적인 대량 학살을 보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 한동안은 무기력하게 살기도 했어"


"많은 일을 겪으셨군요"


"그래도, 그런 광기 속에 살고 싶진 않았어. 그리고 지금도 내가 지금껏 해온 일들은...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해"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네요"


"그러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거에 겁먹지 말라고 격려하려고 했는데 되려 내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비 말입니까?"


"그래"


"좋아하는 일이랑 해야하는 일이 같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의외네"


"지금같이 사방이 적인 세상에서,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 말이죠"


"그래, 니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래도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뀐다면 이야기 해, 도와줄테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이야기를 끝내고 시간이 지나 우리는 방어선에 도착해 장비를 설치하고 태세를 정비했다.


잠시간의 여유가 끝나고 다시 긴장 속에 서로 총을 쥔 채 숨죽여 입구를 감시하며 시간이 흘렀다.



====================================================================


8지 이야기가 끝나면 낙원은 오리지널 스토리로 진행할 생각임


흐린기억이나 8지는 기존 스토리를 관측하는 입장이었다면 낙원 스토리는 라붕이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