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나는 하치코와 함께 체육관으로 향하던중 문득 리리스를 지난번에 봤으니 이번에도 거기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치코, 이 시간이면 너희 언니도 거기 있을까?"


"네? 리리스 언니는 주말에 운동하러 가지 않아요. 그리고 요즘 경호업을 정리한다고 바빠서 하치코랑 잘 놀아주지도 않아요..."


하치코는 리리스가 요즘 바쁘다는것에 추욱 처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런 하치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체육관의 계단을 올랐다.


"그래, 외롭겠네..."


"에헤헤...그래도 주인님이 있어서 좋아요."


물론 리리스가 잘못했다는건 아니지만, 하치코가 불쌍하긴 하다.


"안녕하세요~"


체육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마이티 관장님이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어서오세요, 회원님!"


뭐지? 왜 실내에서 모자를 쓰고 있는것이지?


탈모가 있어서 그걸 가리려는 것인가? 아니, 존중해야한다. 탈모가 있으면 그걸 존중해야 하는 법.


뭐...실제로 관장님이 탈모가 있는건 아닌것같다. 아마 외출하기 전이거나 외출하고 돌아온 상황이라 모자를 안벗은거겠지.


그리고, 관장님의 양 옆에는 두명의 여성이 있었다.


"당신이 말한 신입회원이 이쪽인가요?"


레깅스...? 비슷한걸 입고 노출도가 높지만 노출도에 비례해서 온몸의 근육이 드러나는 갈색피부의 여성.


"음, 나름 괜찮아보이는데?"


그리고 머리를 묶고 도복을 입은...쉽게말해 권법소녀? 스타일의 여성.


뭔가 둘 다 체육관 고인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쪽은 우리 체육관 단골이자 위쪽에 있는 무도관 관장인 티에치엔씨."


"반가워, 내 이름은 들어봤으려나 모르겠네? 이래보여도 무술계에서는 나름 유명하거든."


모른다. 방송으로도 유명한 격투대회 챔피언이라거나 그런거면 모르겠는데 그냥 무술계의 누군가라면 관심 가지는 사람이 아닌 이상 잘 모를거고...


"제가 무술계에 관심이 없어서..."


고맙게도, 티에치엔씨는 내 솔직한 대답에 쿨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뭐, 상관없어. 이제부터 알게될테니."


"그리고 이쪽은..."


"제 이름은 스카디. 보안전문 해커 겸 프로그래머에요."


"...해커에 프로그래머요?"


근데 몸은 개쩌는데? 뭐지? 비밀번호를 알기 위해 담당자의 척추와 머리를 해킹(물리) 하는건가?


사람에게 프로그래밍(물리)를 하는것인가?


내 생각이 비춰진건지, 아니면 스스로 그것에 대해 신경쓰는지는 몰라도 스카디씨는 곧바로 스스로의 몸을 매만지며 설명을 덧붙였다.


"제 몸이 이렇다보니 어떻게 비치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제 직업과 몸이 관계 없는건 아니에요. 코딩이 어디에선가 막히면 머리를 비우기 위해 운동을 하곤 했거든요. 수많은 고뇌와 창작의 시간이, 근육으로 몸에 남은...일종의 앨범이죠."


...그러니까 문제가 풀리기전까지는 운동을 계속했다는거잖아? 대체 안풀린 문제가 몇개였던거야?


"아, 네에..대단하시네요."


스카디씨의 대단함을 인정하고 있던 그 때, 얌전히있던 하치코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저는 하치코에요! 경호원 일을 하고 있어요! 미트파이를 좋아하고요!"


해맑게 웃는 하치코가 끼어들자, 관장님이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런, 어쩌다보니 자기소개시간이 됐네요. 회원님도 자기소개 한번 해주시죠. 가끔 제가 없을때 회원님의 운동을 확인해줄 분들이니까 친하게 지내시는게 나쁜 일은 아닐거예요."


"네, 강철남입니다. 체력이랑 근력을 좀 키우려고 여기 찾아왔습니다. 대학생이고, 지금은 휴학중에 과외선생을 하고 있습니다."


"아하, 어쩐지 젊더라니."


스카디씨는 흥미로운 눈으로 날 쳐다볼 뿐이었지만, 티에치엔씨는 나에게 다가와서 직접적인 권유를 해왔다.


"체력과 근력이라...무술 배워볼 생각, 없어?"


"무술이라...."


"아아, 오늘 운동하고나서 천천히 찾아와도 돼. 무술이라는게 몸을 혹사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자세를 배우고 단련해도 되는 법이니까."


뭐지? 왜 어느새 내가 배우러 가는게 확정된것처럼 말하지?


"체험은 한번 해보시는게 좋아요, 회원님. 가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긴 하지만, 티에치엔의 실력은 확실하거든요."


"말도 안되는 주장이 아니야! 아직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지 이론은 충분해!"


"그래요, 이론과 효율로 근육을 키운 저처럼요."


"이론과 효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근성과 땀의 노력이 있어야지!"


"근력이라는건 수련을 하다보면 알아서 늘게 되어있어! 목표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세 사람이 갑자기 근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 열기가 정말 뜨거웠다.


...뭔지는 몰라도,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붙잡혀서 내 몸속의 단백질(근육)과 수분(땀)을 강제로 착취당할것같다는 예감이 팍팍든다.


"아하하, 저는 오늘 일이 조금 있었어서 피곤한지라 이만..."


그렇게 양해를 구하며 빠져나가려한 순간.


터더덥.


내 양 팔과 어깨가 붙잡혔다.


"어디가세요, 회원님? PT 잠깐 받고 가셔야죠."


"그게, 제가 지금 피곤해서요."


나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자세교정만 할거에요. 안 힘들어요, 안 힘들어."


"피곤하면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는게 어때?"


"그래요, 올바른 근육과 올바른 자세를 갖춘다면 밤을 새워서 코딩해도 큰 문제가 없답니다?"


어어어...망한것같다.


"주인님, 운동은 리리스언니도 좋다고 말했으니까 좋을거예요!"


"내가 집에 돌아가기 힘들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하치코, 운전도 배워뒀고 주인님을 업고 집까지 갈수도 있어요!"


하치코는 해맑게 웃으면서 대답했고, 그런 하치코의 대답에 헬스장의 세 사람은 웃었다.


"호오, 데려다 줄 사람이 있으면 한계까지 짤 수 있겠는데...?"


"이거이거, 각자 조금씩 맡아도 되겠는데요?"


"그렇게 된다면, 나 잠깐 무도관에서 뭐 좀 챙겨와도 될까?"


세 사람은 나를 보며 웃기 시작했고...


"""우후후후후...."""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30분 뒤-


철컹, 철컹!


"흐어어억, 후우웁!"


"자, 자! 마지막 하나!"


짝, 짜악!


마이티 관장님이 박수를 치며 나를 격려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전혀 격려로 와닿지 않았다.


"마지막 하나만 말한지 여덟번 째인데요!"


20개만 하자면서 지금 27개를 하고 있으니까.


"말할 기운이 있으시네! 두개만 더하죠! 자, 하나!"


"으아아아!"


"으음, 그것만 끝나면 저만의 비밀 레시피로 배합한 보충제랑 식이섬유가 들어간 물을 드시고 3분 20초간 휴식, 휴식의 후반 40초에는 근육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병행하시면 돼요. 아까 시작 전에 마신 부스터의 효과가 남아있을 때 최대한 하는게 좋아요."


나는 지금 티에치엔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마이티 관장님과 스카디씨에게 강제로 PT지도를 받고 있었다.


근성과 열의의 마이티 관장님, 그리고 과학과 효율의 스카디씨의 방식이 합해지자 내 몸은 에너지가 쭉쭉 빨리면서도 효율좋게 계속 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엄청난 중량을 그대로 들어올린다거나 과도한 운동을 하는건 아니었고, 정자세로 반복하며 자세교정에 가까웠지만 가벼운 중량이라고 해도 계속 몸을 움직이자자 몸의 근육 곳곳이 자극되는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평소였으면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기고 열심히 운동했겠지만...문제는 몸에 열이 오르며 더워지기 시작했다.


가슴팍과 등짝이 후덥지근하고 조금 습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무슨 효과를 지녔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마음속에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돼...! 여기서 저 둘을 홀리게 하면 난 저 근육에 짜부라져서 죽고 말거야...!


두명, 세명, 어쩌면 네명...


일반적인 여자도 아니고 체력과 근력이 나보다 우월한 여자들을 상대로는 버티지 못할게 뻔했다.


20대 청춘에 복상사로 죽는건 원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내면의 평화와 살고싶다는 본능을 최대한 발휘해봤지만, 뜨거워지는 근육과 몸을 식히기 위해 땀을 분비하는것은 막을 수 없었다.


등과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나 자신마저 내 땀때문에 후끈해진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크흑, 나는 결국 이렇게 죽고마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주위를 쳐다봤지만, 어째선지 두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좋아, 다 하셨네요! 너무 과하게 시킨것같은 느낌도 있으니까...가고싶으면 가셔도 좋아요! 아하하, 생각해보니 황금같은 주말에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보충제에요. 이걸 마신 다음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한다면 내일 자고 일어났을때 느낄 근육통이 조금 줄어들거랍니다?"


두사람 다 그냥 운동 끝났을때 으레 할법한 말들을 하고있다. 그보다, 마이티 관장...주말에 부르는게 미안한 행위라는걸 알면서 부른건가...


"우와, 그보다 진짜 운동 제대로 한것같은데요? 땀이 쭉쭉 나고 계세요."


"이거, 샤워실을 쓰셔야겠는걸요? 옷은 갖고 계신가요?"


뭐지? 왜 아무렇지도 않아하는거지? 역시 운동의 극에 달하면 본능마저 근육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건가?


"일단 갖고는 있는데..."


나는 혹시나 싶어 주위를 더 둘러보았고, 나를 보며 눈을 빛내는 하치코를 발견했다.


크윽, 너한테 이런 일을 겪게해서 미안하다! 하치코!


"우와! 주인님! 근육에 힘이 들어가있어요! 멋져요!"


아닌데? 하치코도 멀쩡한데? 뭐지? 살고싶다는 본능이 뭔가를 했나?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모종의 원인이 있나?


뭐...일단 멀쩡하면 좋은거지.


"으음, 샤워까지는 안해도 될것같고, 등목정도로 끝내면 될것같네요."


"그럼 하치코가 도와드릴게요!"


나는 하치코의 도움을 받아 상반신만 씻은 뒤, 오늘 성당에 입고갔던 골타리온 티셔츠로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체육관에 다시 돌아왔을 때, 잠깐 무도관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던 티에치엔씨가 와있었다.


"아, 회원님이 왔네요. 그럼 저도 슬슬 가볼게요."


스카디씨는 이미 자리를 비운것같고...관장님도 이제 슬슬 나가려는 모양이다. 역시, 모자를 쓰고 있었던건 금방이라도 나가기 위함이었어.


관장님이 자리를 비우자, 티에치엔씨가 나한테 나가왔다. 이제보니 땀을 흘리고 있는데...?


"좋아, 무술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 전 네가 앞으로 걷게 될 길과 도착지를 보여줄 준비가 다 됐어!  후아, 덥다. 오랜만의 문하생이라 제법 무리했네."


땀을 닦는 모습을 보니 뭔가 되게 열심히 준비한것 같긴 하지만, 난 아직 입문한다고 한적도 없는데...?


"한다고 한적은 없는데...."


"아...그래? 그럼 20분동안 땀흘리면서 열심히 준비한거 다시 다 철거하러 가야겠네..."


너무 실망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나는 일단 속는셈 치고 넘어가주기로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읽은 무협지가 있어 무술이라는것에 아주 흥미가 없는것도 아니었으니...그냥 기체조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호신에 쓸 수 있을것 같아보이면 배워보는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래도 보기는 할게요."


"좋~아! 가보자고!"


티에치엔씨는 나를 이끌고 위층의 무도관으로 향했고, 거기에는 석고보드, 각목, 벽돌, 그리고 안전조끼를 입고 팔을 흔드는 사람 모형이 여러개 서있었다.


"...공사현장인가? 여기 아직 공사 덜 끝났어요?"


"주인님, 여기 청소를 잘 안하나봐요..."


누가봐도 길가의 공사현장에서나 볼법한 물건들이었지만, 티에치엔씨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시범을 위한 재료들인데!"


"재료...?"


"자, 보여줄게! 기본적인 것들만!"


티에치엔씨는 곧바로 사람 모형에 벽돌과 각목, 석고보드 등을 설치하고는 그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뻗어 석고보드의 위쪽에 주먹을 날렸다.


"이게 붕권!"


일상생활에서의 충격정도는 거뜬히 버티는 석고보드가 유리창마냥 박살났다.


"이게 무영각!"


빠른 속도로 내지른 발차기에 각목이 세조각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이게, 원 인치!"


가슴팍에 놨던 석고보드와 달리, 복부에 위치한 벽돌에 주먹을 대고 무언가를 하자 인형이 뒤로 날려갔다.


그리고 벽돌의 반쪽이 인형이 있던곳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우와!"


"인형이 붕 하고 날아갔어요!"


괜히 무도관을 하는게 아니구나!


"자, 봤지? 대충 이정도야. 한 2년정도만 배우면 똑같이 따라할 수 있을지도?"


"2년이라..."


오래걸리지만, 일단 배우는게 의미없어보이진 않는다.


"그래, 일단 기본자세 하나부터 가르쳐줄까?"


"네, 사부!"


나는 곧바로 티에치엔씨를 사부로 부르며 가르침을 청했고, 붕권의 자세를 배웠다.


"그렇지, 걸어가듯 가볍게 한보 전진하면서...몸이랑 같이 나간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약 10분정도 설명을 듣고 몸을 움직여본 결과, 어느정도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다.


"오오, 그렇지. 잘 하는데? 이제 그걸 완벽하게 만들수록 파괴력이 늘어날거야. 여기, 이 석고보드 한번 쳐봐."


티에치엔 사부는 내 앞에 석고보드를 가져다 줬고, 나는 배운대로 자세를 똑같이 따라했다.


빠직.


그저 동작의 반복만 했을 뿐인데, 보드에 흔적이 남았다.


"오...?"


"강하게 하지않고 그저 배운걸 반복하기만 했는데도 효과가 확실히 나오지? 하지만 여기서 완벽해지는게 가장 어려운 일이야."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그렇게 오늘의 수업이 끝나려던 그 때, 문득 하고싶은게 생겼다.


"사부, 이거 금간거 버리기 전에 한번 더 쳐봐도 되나요?"


"으응? 뭐, 상관없지. 연습에 매진하는건 칭찬해야하는 일이야."


나는 오늘 배운것에서 자세를 살짝 변형시켰고, 스텝을 살짝 밟아 짧게 찌르는게 아니라 크게 내뻗고 길게 뻗는 방식으로 주먹을 날렸다 마치 빗자루머리의 누군가가 쓰는 붕권처럼.


"오아!"


그 특유의 기합성과 함께 날린 주먹은 석고보드를 박살내고 그 뒤의 인형까지 부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물에, 팔짱을 끼고 관찰하던 티에치엔 사부는 당황했다.


"어어? 어?"


어? 마네킹은 비싼건가?


"자, 잠깐...이건 부수면 안되는건가?"


"아, 아니. 전혀 예상치 못해서...아무래도 내 방식보다는 그렇게 과격하게 쓰는 방식이 더 잘 어울리는것같네...? 으음, 오늘 가르침은 여기까지 하자고!"


티에치엔 사부는 마네킹을 구석에 던진 뒤, 나와 하치코의 등을 떠밀며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음...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다음에 또 보자고!"



두 사람을 떠나보낸 뒤, 티에치엔은 무도관으로 돌아와 부숴진 벽돌과 석고보드들을 끌어모았다.


그녀는 '예쁘게 잘리게 하기 위해' 살짝 썰어놓은 각목과 '파편이 날아가서 유리가 깨지는걸 방지하기위해' 금이가게 한 벽돌을 치우며 석고보드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못하는건 아니었지만, 시연에서는 완벽함을 보여줘야했기에 살짝의 가공을 거쳤던 것이다.


그리고 앞선 두개와 달리 석고보드는 언제든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었기에 별도의 가공없이 사용하고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마냥 약한 물건은 아니었다.


"일반인이 못부수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완벽하게 부술수는 없을텐데? 그리고, 나도 마네킹은 쉽게 박살 못낸단 말이야...아하! 이렇게 된거, 내가 못 이룬 입신양명을 이루게 하면 되겠다! 무술대회 국내, 아니 세계 챔피언! 그리고 그 스승! 엄청나게 출세할 수 있을거야!"


생각지도 못한 괴물 신인의 등장에 그녀는 '무술의 비법'이 들키는것에 대해 겁을 먹을법도 했지만, 그런 괴물 신인과 함께했을때 돌아올것에 집중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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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금 전 손에 남은 붕권의 감각을 계속 기억하며 집으로 향했고, 하치코도 아까 내가 물건을 부수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차 안에서 연신 주먹질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그 주먹질이 좀 심상치않다.


슉, 슈슉.


하치코의 손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진짜로 나고 있었다. 저게 입이 아니라 손에서 나는 소리라고...?


"에헤헤, 주인님. 저 어때요? 저 엄청 세요~!"


슈슈슈슉.


"그, 그래..."


계속해서 복싱 비슷한걸 반복하는 하치코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보았지만, 휴대폰의 검은 액정에는 내 얼굴만 비칠 뿐이었다.


"....나는 아닌데?"


내 휴대폰이 아니라면 한명 뿐일거란 생각에 옆을 돌아보자, 하치코가 메이드복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고 있었다.


"하치코 전화에요!"


"네, 언니! 하치코는 지금 주인님이랑 있어요! 네? 어디냐고요? 으음, 주인님 집 앞인데요?"


"리리스 전화야?"


나의 물음에 하치코는 고개를 끄덕였고,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갔다.


"네. 아, 네? 네! 바로 갈 수 있어요! 네, 끊을게요!"


"...어디 가야돼?"


"네! 언니가 전부 다 모아놓고 할 말이 있대요! 주인님만 집에 모셔다드리고 바로 오랬어요!"


뭐...집에는 쿠노이치 자매도 돌아와있을테니 별 문제 없겠지.


"그래? 잘 다녀와. 태워줄까?"


"아니요, 주인님! 하치코 혼자서 갈 수 있어요!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하치코를 보낸 뒤 곧바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고,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는 여자들과 만났다.


"주공. 어서와."


"주공, 오셨습니까?"


내 집에 있는게 당연한 쿠노이치 자매 둘.


"어머, 선생님. 일찍 오셨네요?"


그리고 왜 있는거지 싶으면서도 익숙한 시라유리.


뭐 인원구성이야 그럴듯한데...나가기 전이랑 달라진게 있다.


방의 구석에 뭔가 쌓여있는데? 상자? 쇼핑백?


"체육관 갔다오느라 좀 늦었다. 그보다 저건 뭐야?"


내가 구석에 쌓인 상자들과 쇼핑백을 가리키자, 시라유리가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두 쿠노이치분들의 일상복과 신발같은 물건들이에요. 두분께서 옷을 고르는 모습을 봤는데 패션센스가 너무 절망적이시길래...제가 간섭좀 해서 함께 쇼핑을 했죠."


아하, 이제 셋이 같이 있는 이유랑 구석에 박스가 쌓여있는 이유를 알겠다. 근데...얼마나 절망적이었길래 얘가 직접 나서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데?"


"으음, 한쪽분은 스포츠웨어만 고르시고 한쪽분은 멋을 포기한 느낌의 선택이라..."


한쪽은 성능빌런, 한쪽은 패션테러빌런인가...


"누가..."


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려던 찰나, 해답이 알아서 다가왔다.


"의, 의류를 고를때 가장 중요한건 기능성이다!"


이쪽이 성능빌런이군. 그럼 당연히 자동적으로 패션테러 빌런은...


"티셔츠, 반바지. 왜 안돼? 통기성, 좋아. 개별적으로, 편해."


"티셔츠에 <대장>이라는 문구가 있고 밀리터리룩 반바지에 카고바지를 고르는건 젊은 여성이 입을만한 패션이 아니니까 그렇죠."


"시라유리가 없었으면 진짜 웃기면서도 이상한 꼴을 볼뻔했네..."


"주, 주공?! 웃긴겁니까?"


"생각하면 조금 웃긴데?"


"주공. 나. 충격."


카엔은 그 옷에 진심이었던건지, 내 말에 볼까지 미세하게 부풀리며 삐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하하, 미안. 미안해."


내가 카엔에게 사과하고 있을 때, 시라유리가 슬쩍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보다 선생님, 오늘 밤에 예정이 없으시다면...저희랑 시간 조금 보내주실 수 있나요?"


유혹인가...?


"그러고보니 너 전에 집에 가라고 하지 않았냐? 안바빠?"


"어머, 반항의 목소리나 기회를 틈타 뭔가 해보려는 그런 잡것들쯤은 금방 정리한답니다. 그보다 선생님, 쿠노이치분들과 함께 간 쇼핑에서 제가 선생님이 기뻐할만한 속옷을 가져왔는데..."


시라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치마를 걷어올렸고, 그 안에서 검은색 레이스의 속옷을 슬쩍 보여주었다.


분명 속옷이라는건 가리거나 덮기 위한 물건일텐데, 그 목적에 별로 충실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때요...?"


"학생한테 안어울리는 속옷인데? 입으면 안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어머, 그럼 입으면 안되는 속옷을 입은 학생을...벌해주셔야겠네요♡"


"주공, 사실 저도...입었습니다..."


"속옷. 안입었어. 불편해."


란제리 둘에 아예 속옷없는쪽 하나? 아, 이건 못참지.


내가 셋의 상태를 상상하며 흥분하여 시라유리의 몸에 손을 댄 그 순간, 시라유리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엣, 에엣...흐오옥?"


시라유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와 허벅지를 경련하고 있었고, 자기 자신도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방금 무슨일이?"


"주공. 뭐. 했어?"


두 쿠노이치는 짐작가는게 없다는듯 의문을 품었고, 나도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도 몰라...일단 들어봐."


"네, 일단 부축을...흐오옷?!"


나와 함께 시라유리를 부축하기위해 다가오던 제로는 나와 손이 닿자마자 곧바로 주저앉았고, 방금 전 시라유리처럼 경련하기 시작했다.


"어...설마 이거....?"


"선생, 선생니임...굉장해애앳...! 벌써부터 이렇게♡ 흐으윽?!"


....내 능력이 폭주하고 있는것 같았다. 뭐지? 아까 헬스장에서 참은게 여기서 이렇게 되는건가?!


내가 갑작스러운 사태를 마주하고 당황하는 사이, 바닥에 쓰러진 두 여자는 그대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거...아무래도 손써야겠지?


아니, 손이라기보다는 제 3의 다리를 쓰는 일이겠지만....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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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티에치엔이 조금 사기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무능한건 아닙니다. 그저 완벽한 시연을 위해 약간의 사전작업을 거친것 뿐이며, 그녀는 벽돌과 각목을 스티로폼과 젓가락처럼 쉽게 부술 수 있습니다.


다음화는 어느정도 묘사가 들어가겠지만 평소대로의 떡씬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