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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가 대공녀의 검에 찔려 죽어가던 그날,


두 여인은 신성마법으로 어떻게든 얀붕이를 살리려 했어


하지만 악마가 되버린 얀붕이에게  있어서 신성마법은 오히려 지독한 독이였지


그 어떠한 방법조차 그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두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신께 진심으로 빌었어


그 어떠한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제발 그를 앗아가지 말아달라고 


그러나 가늘던 숨은 점점 옅어지더니 마침내 호흡을 멈추었지


싸늘해진 시체는 더 이상 원망도 슬픔도 그 무엇도 표현하지 않았어


악마의 죽음으로 마침내 교도국은 평화를 되찾았어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마지막 기회까지 걷어찬 어리석은 여인들


더 이상은 후회도 사죄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


악마가 되어 천국행을 포기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던 얀붕이의 마음은 


결국 우둔한 여인들에게 닿지 못했어


얀붕이의 숨통을 직접 끊었던 대공녀는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어


용사로서, 기사단장으로서, 대공가 후계자로서의 모든 의무와 책임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지


격렬한 자해행위만이 그녀의 슬픔과 죄책감을 달래주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어


하지만, 빌어먹을 용사의 힘은 그 자해로 생긴 상처조차 바로 낫게 해버렸지


얀붕이처럼 상처투성이가 되면 조금이나마 그에게 사죄가 될 수 있을거라 여겼지만,


마치 그 사죄초차 받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몸은 티 한점 없이 멀쩡했지


제발 사죄하게 해줘,


뭐든 좋으니 제발 기회를 줘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아직 머리속에 그려놨던 행복한 상상들을 단 하나도 이루어보지 못했단 말이야


빌어먹을 신님, 듣고 있다면 제발 나에게 그를 돌려줘


부질없는 기도는 결코 신에게 닫지 않았어


슬픔과 죄책감과 절망이 뒤섞여 매번 그녀의 귓가에서 원망을 쏟아냈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공녀가 곧바로 목숨을 끊지 않았던 이유는 단하나,


밤마다 그녀를 찾아오는 행복한 꿈이였지


그와 결혼해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가지고 오손도손 사는 행복한 일상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 모든것이 그저 꿈일 뿐이였다는 허망감과 절망감 


그 부질없는 꿈은 아편과도 같았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지옥같으면서도 다음 밤 찾아올 꿈을 생각하며 지옥을 버텨나갔어


이제는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린 대공녀,


문득 해서는 안될 상상을 하고 말아


이대로 있어봤자 절대 그를 만날 수 없어


그저 끝없이 그리워하며 이룰수 없는 허몽속에 자신을 맡기는 것도 괜찮겠지


하지만 죽음 저편에 기다리고 있는것


얀붕이는 악마로서 죽었으니 적어도 천국에는 가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나도 자결해 교리를 어겨버린다면 


그게 연옥이건 지옥이건 조금이라도 그를 만날 확률이 있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이 주사위를 던지겠어


너가 없는 세상은 천국이라도 내겐 아무 의미가 없어


너가 있는 곳이 곧 내게있어 천국


설령 지옥의 밑바닥을 해매더라도 반드시 너를 찾아내겠어


그러니 지금갈께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사랑


결코 너를 이제는 혼자두지 않을거야 


영원토록 말이야


아무렇게나 방치된 성검을 오랫만에 쥐는 대공녀


그 예리한 검신은 여전히 예기를 잃지 않고 있었어


대공녀는 망설임없이 칼끝을 단숨에 목젖에 찔러넣었지


새빨간 피가 상처에서 왈칵 쏟아지며 바닥을 물들였어


바닥에 털썩 누우며, 그제야 안도하는 대공녀


아아, 누가 죽음이 두렵다고 했을까


이렇게나 편안하고 포근한 것이였는데


끝없이 몰려오는 수마속에 자신을 맞기며 대공녀는 눈을 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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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용사의 죽음, 또 한번 교도국은 혼란에 빠졌지


대공녀의 장례가 치러진 후 열흘 후, 새로운 성녀가 즉위했어


콘클라베가 아닌 추천에 의한 계승, 과거에 성녀후보로서 유력했던 추기경이 새로운 성녀로 간택받았지


그것은 전 성녀가 감쪽같이 실종되었기 때문이였어


한가지 더 수상했다는 점은 성녀가 죽은 전 용사, 얀붕이의 시신과 함께 사라졌다는 점이지


암살이다 납치다 말이 많았지만, 증거는 분명했어


이것은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녀 본인이 선택한 길이였지


이제는 성녀의 옥좌에 앉아 교도국을 통치하는 추기경


생각보다 이 자리는 그렇게 대단한 것도 없었어


그것이 전 성녀는 허무했던것일지도 모른다고 추기경은 생각했어


참 얄굳게도, 한때 그렇게나 원했던 자리인데, 


당신은 너무나도 쉽게 버리고 나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네요


덕분에 저까지 흥미가 식어버렸어요


그렇게나 그가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였군요


하지만 분명 후회하실거예요, 성녀님


이번에는 그에게 또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생각인가요?


하지만 당신이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것은 아니예요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이란것은 극복하는 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자도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마음만은 잃어버리질 말아주세요


아버지의 자비와 축복이 그대들의 앞날에 함께 하길


추기경, 새로운 성녀는 그저 그들의 앞날을 신께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것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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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의 시체와 함께 사라졌던 성녀, 놀랍게도 그녀는 한 오두막에 은거중이였지


허름한 복장에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그 누가 성녀라 생각할 수 있을까


성녀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대공녀의 죽음의 영향이 컸지


대공녀는 모든것을 포기하고 자살로 그와 만나고자 했지만,


성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어


사후 세계라고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있기는 한가?


결국 그런것은 버티지 못한자의 회피일뿐


차라리 그녀는 확실한 방법을 찾기로 했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성녀가 꾸민 계획


그것은 죽은자를 다시 살리기 위함이였어


아니, 정확히는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함이였지


과거 신마전쟁때 이도교들이 사용했다는 금술,


교도국에 의해 철저히 그 존재가 봉인당했다는 술법이 성녀에게 필요했어


악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성녀의 권한을 사용하여,


교도국의 비문을 몇달동안 미친듯이 뒤진끝에 간신히 얻을 수 있었지


그것은 죽은자의 시체를 한점도 남김없이 먹어 치우는 것으로, 


망자의 영혼을 강제로 붙잡아 자신의 뱃속안에 품는 금술  


그래, 성녀는 지금 임신중이였어


두달간 얀붕이의 시체를 조금씩 잘근 잘근 씹어서 혈관하나, 장기하나 빼먹지 않고 모두 먹어치웠지


처녀잉태로 신을 낳았다는 성모처럼, 사내와의 정을 통하지 않고 아기를 얻었지만


그 방식은 성스럽지 못한, 오히려 너무나 끔찍한 방식이였지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 신의 말씀과 율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어


설령 영혼이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성녀가 아닌 마녀로 불린다 해도


그녀는 간신히 몸부림쳐 얻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어


하지만 신의 섭리를 거스른 죄는 너무나도 컸지


그리고 그것이 사랑하는 그에게 또한번 큰 고통을 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미쳐 알지 못했어


비극의 시작은 태아가 다섯달이 될때부터였어


처음으로 느껴지는 아기의 태동


처음으로 강렬하게 얀붕이의 존재를 인식했을때, 성녀의 기쁨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지


조금만 기다려줘요 아가,


너가 태어나면 내 모든 사랑을 너에게 아낌없이 줄께요


나의 잘못은 평생을 너에게 헌신하며 속죄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무사히 태어나만 주세요


이제는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닌, 어머니로서의 사랑까지 더해져 


얀붕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끝도 없이 커져만 가는 성녀


하지만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지.


그 시작은 아기의 움직임였어


그것은 분명 산모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중 하나였지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했어, 그저 아기의 몸짓이 아니였지


마치 불이난 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문을 두들기는 듯한 절박함


아기는 어머니에게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거야


당황한 성녀는, 혹시 자신이 무엇을 잘못 먹었나 따져보았지만, 그건 아니였어


미친듯이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성녀,


그러는 와중에도 아기가 보내는 신호는 점점 절박히지고 또한 처절해지고 있었어


그러다 문득 머리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가는 것이 있었지


얀붕이는 악마로서 죽었지.............


그렇다면 악마인 얀붕이가 신성력을 잔뜩 지닌 자신의 뱃속에 있는다면............


그건 아기에게 있어 끓는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성녀는 그순간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어


자신의 이기심이 또 한번 그를 끝없을 고통의 구덩이로 밀어넣은거야


이제는 아기가 자신에게 보낸 신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어


제발 자신을 죽여달라고,


너무나 고통스러워 미쳐버릴것 같다고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그럼에도, 성녀는 얀붕이를 결코 죽이지 못했어


가증스러운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아기에게 속삭였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아가


나는 이번에도 당신에게 고통만을 주네요


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주면 안될까요?


정말 미안해요........미안해요..........악마는 당신이 아니라 저였어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이런 이기적인 엄마라 미안해요 아가..........

 

그렇게 몇 주가 흐르자, 아기도 지쳐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았어


다만 끝없는 고통을 인내할 뿐, 


성녀는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출산의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진통


산모에게 있어 너무나도 두려운 순간이였지만, 


성녀에게 있어서 만큼은 너무나도 기다려왔던 순간이였지  


다행히 진통은 길지 않았고 아기를 그리 어렵지 않게 낳을 수 있었어


아기는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미숙아에 가까울 만큼 작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모든것이 정상적이였지 


이제는 정말 끝났어요 아가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사랑해요


너의 얼굴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성녀는 당장이라도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싶었지만,


신성력이 반발을 일으켜 또 아기에게 해가 될까 감히 그러지 못했어


사랑하는 아이에게 직접 수유해주지 못하고 


농장에서 구한 우유만을 먹여야 하는 생각에 미안하고 서러워 또 괜히 눈물이 나왔지


그래도 이제는 모든게 잘 풀릴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미 모든것은 처음부터 완전히 어긋나 있었지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이 그치지를 않았던 거야, 그것도 며칠을 넘게 말이야


배고픔도, 불편함도, 잠투정도 그 이유가 아니였어


그것은 끊임없는 고통때문이였지


악마의 몸을 지니고 태어났으나, 


또한 성녀인 어머니에게로서부터 신성력도 함께 받아 태어난 아기는 그 존재부터가 비틀려 있었지 


아기의 몸속의 신성력과 악마의 힘이 무한히 충돌하며 끝없는 고통을 주고 있었던거야


성녀는 그저 신성력을 지닌 자신의 몸속에서만 벗어난다면 모든것이 해결될것이라 낙관했지만,


이미 처음부터 모든것은 잘못되어 있었지


서럽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우는 아기의 외침을 성녀는 외면하고 싶었어


너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해도 


나는 너를 차마 죽일 수 없어요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주세요


이제는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제 이런건 싫어요


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 아가......


성녀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아기에게 똑똑 떨어졌지


그러자, 놀랍게도 고통스러워 하며 울던 아기는, 


아주 잠시 그 울음을 멈추고


팔을 잠시 허우적거리더니, 


그 작은 손을 아주 잠시간이지만, 성녀의 볼에 가져다 대었어


아기의 행동에 놀란 성녀,


아기는 마치 엄마를 위로하는 듯 해 보였어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하듯이 말이야


처음 성녀가 되어 힘들어하던 자신을 위로하는 얀붕이의 과거 모습과


지금의 작은 아기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지


그제야, 그제서야 성녀는 아기를 놓아줄 수 있었어


아하하, 엄마가 되서 아이에게 위로나 받는다니,


완전히 엄마 실격이예요  


정말 미안했어요 아가...........아니 얀붕아


이제 그만 편하게 해줄께요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요


천국에서는 부디 행복하게 지내주세요


성녀는 마침내 결심했어


사랑하는 아기를 이제 그만 편히 보내주기로


성녀는 두 손으로 아기의 연약한 목을 부여잡고 꽉 졸라매기 시작했지


아기의 켁켁거리는 작은 숨소리가 들렸지만 결코 힘을 풀지 않았어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결코 손을 놓지 않았어


잠시후, 마침내 고요해진 아기의 숨소리


아파서 그동안 잠들지 못한 아기가 그제야 편히 잠들었지


드디어 사랑하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수 있게 되었어


성녀는 아기를 품안에 안은 채, 연료통을 가져와 바닥에 엎질렀어


기름이 콸콸 쏟아져 바닥이 흥건해지더니, 곧 벽난로의 불씨가 붙어 옮겨 타기 시작했어


작은 오두막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지


그럼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성녀


아기가 곤히 잠들 수 있도록 사랑을 담아 자장가를 불러주지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꼬꼬닭아 울지마라


멍멍개야 짖지마라


화염이 성녀의 발치를 휘감았지만 그녀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어


이것은 사랑하는 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진혼곡


또한 신의 품으로 아이를 다시 돌려주는 반환식이였지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새근 새근 잘도 잔다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불꽃이 모든 것을 태울때까지 성녀의 구슬픈 노랫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았어


-fin-      




이번건 확실히 짧노 

4편안에 완결날줄은 몰랐다

이번건 내가 생각해도 얀데레 요소는 좀 약하긴 하다

순수 후회물에 가깝다고 봐야할듯

외전은 언젠가는 들고 오겠음

로판 얀붕이는 계속 연재하겠음

그럼 ㅂ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