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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집안

뛰어난 외모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얀진, 얀붕, 얀순 삼남매.

딱 두 살 나이터울인 삼남매.



겉보기에는 완벽한 가정이었다.

겉보기에는.




얀순이는 언제나 아빠가 미웠다.


아빠는 늘 그랬다.


"첫째를 위해서 양보해야지! 동생들이 누나 언니 말도 듣고! 어! 동생이 되었으면 당연히 윗사람 말 따라야 하는 거 아니야?!"


얀진이는 맏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아빠에게서 용돈을 더 받고


얀붕이와 얀순이는 더 적은 돈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얀진이에게 건방지게 대한다면 종아리나 손바닥을 때리는 것은 일상이었다.




아빠는 늘 얀붕이와 얀순이를 구박했다.


버팀목이 되는 건

아빠에게 같이 혼나는 오빠인 얀붕이와

몰래 자신을 감싸주던 엄마 뿐이었다.



"또 서방새끼가 지랄이네... 에휴... 얀순아, 너는 꼭 커서 저런 어른은 되지 마라."


뒤에서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엄마는 얀순이에게 몰래 용돈을 챙겨주곤 했다.




얀진이 역시 미웠다.


커갈수록 점점, 아빠를 닮아서 말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많아졌다.


실수로라도 얀순이가 얀진이의 물건에 손을 대면, 그 순간 얀진이는 얀순이의 뺨을 후려갈겼다.




물론 얀순이도 지지는 않았다.


엄마를 닮아서일까, 얀진이가 자기 물건에 손을 대면 소리를 치고, 쌍욕을 내뱉었다.


"이 씨발련이, 용돈도 존나게 쳐 받으면서 동생년 물건에 손이 대고 싶냐!?"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얀진이가 얀순이를 때리는 소리와

얀순이가 얀진이에게 쌍욕을 내뱉는 소리만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소심하게 둘을 말리는 얀붕이의 목소리도.


언제나

그 둘을 말리는 것은 얀붕이었다.


얀순이는 얀붕이에겐 차마 강하게 나갈 수 없었다.

아빠에게 같이 혼나고, 얻어맞는 동지니까.




커갈수록

얀진이는 점점 아빠를 닮아 키가 커지고, 무뚝뚝해지고, 입보다는 손을 쓰기 시작했고

얀순이는 점점 엄마를 닮아 가슴이 커지고, 입이 거칠어지고, 바락바락 대드는 일이 많아졌다.


부모 사이가 갈라질 수록

얀순이와 얀진이 사이도 점점 갈라져갔다.


부부 싸움의 모습이

곧 자매 싸움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가 지나고 중학교가 지나고

얀순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결국 부모님은 별거를 한다고 했다.


집을 나가기 전날

엄마는 술을 마시며 얀순이에게 고백했다.


"얀진이 저거, 내 딸 아니다. 서방이라는 새끼가, 결혼하고 나서 딴 여자랑 바람피웠거든."


아빠가 엄마한테 사과하는 편지를 보여주며

앞으로 잘하겠다는 각서를 썼던 것을 보여주며

엄마는 얀순이에게 그리 고백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우리 부모라는 새끼들이나, 저짝 부모라는 새끼들이나, 자식을 무슨 가축 교배하듯이, 서로 집안만 보고 결혼시켰거든."


애초부터 사랑이 없이 결혼했고


"나도 좋아하는 남자 있었는데, 그래도 결혼했으니까 마음 접으려고 살려고 했는데, 서방이라는 새끼는 그 좆질 하나 못 참는 거 보니까 토악질이 나더라."


배신을 당하니 의무감도 없어졌다고.


"집안 이을 아들 하나 낳으라고 그렇게 구박을 해 대서, 간신히 아들 하나 낳고, 너 낳았다. 너만이 내 유일한 빛이야, 이 년아."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술을 계속 들이켰다.




다음 날

얀순이와 엄마는 집을 나왔다.


다른 가족 따위 필요 없다며

너만 있으면 된다며 엄마는 웃었다.


얀순이도 웃었지만


그래도 오빠는 보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얀순이는 오빠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오빠는 뭐 하고 살까?

왜 우리랑 같이 나와 살지 않았을까?

저 집에 뭐 볼 거 있다고 우리랑 같이 나와 살지 않았을까?


엄마는 얀순이만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같은 여자끼리라서 안심되어서 그러셨겠지만


오빠는 죄가 없지 않을까?




갈라져 살았어도

엄마는 아빠에 대한 증오를 잊지 못 한 모양이었다.


매일매일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고 나면 얀순이를 끌어안고 울거나

남편에게 증오섞인 욕설을 퍼붓곤 했다.




그리고 결국

감정 정리를 하러 간다고 하며

엄마는 아빠를 만나러 갔다.


서로를 살해했다.


아빠는 엄마를 두들겨 패서 죽였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 시체를 차에 싣고 도로로 나갔다고 했다.


엄마가 미리 브레이크선을 끊어둔 차를 끌고.




장례식장은 어수선했다.


엄마의 죽음은 슬펐다.

괜히 남편 잘못 만나서 이 개고생을 하셨으니.


애비야 뭐 죽건말건.



곧 이어 얀진이가 장례식장에 와서

아버지 영정사진을 보고 통곡을 했다.


어머니 사진은 본체만체 한 채로.



증오스러웠다.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면서

오빠 얀붕이랑도 같이 살았으면서

엄마는 저렇게 찬밥 취급을 해?



제례식이 끝나기 전까진

서로 죽일듯이 노려보았지만


그래도 타인의 눈이 있어

차마 서로 싸우진 못했다.




조문객을 다 돌려보내고 나서


둘은 마주앉았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얀진이었다.


"야. 얀붕이 어디 숨겼어? 어디에 숨겼길래 장례식도 안 와?"


"썅년아. 내가 어떻게 알아? 연락 안 된 지가 몇 년인데. 씨발, 지는 몇 년간 같이 살았으면서 그것도 몰라?"


"뭐? 너랑 같이 나간 거 아니었어?"


순간

얀순이는 머리가 멍해졌다.


오빠가 나가서 살았다고?


"하, 진짜, 씨발. 야. 어머니나 너나 존나 썅년들이긴 하다. 딴 새끼랑 바람펴서 너 낳은 어머니나, 얀붕이 데리고 나갔으면서 입 싹 씻는 너나."


"지랄 마. 딴 년이랑 바람펴서 주워온 년 주제에. 우리 엄마가 바람을 피웠다고?"


거침없이 세게 나갔지만

얀순이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그리고


"내가... 딴 여자랑 바람을 피워서 나온 자식이라고?"


얀순이의 말을 들은 얀진이도 순간 굳어버렸다.


"몰랐냐? 애비라는 새끼도 하여튼 지 잘못은 좆도 말 안 했구만... 그러니까 엄마가 날 아꼈지..."


다시 말을 꺼낸 건 얀진이었다.


"그래! 어머니가 너만 싸고 돌아서! 맨날 나와 얀붕이는 어머니한테 욕만 듣고 살았어! 조금만 잘못해도 씨부터 틀려먹은 자식들이라고! 애비가 그 따위라서 자식이 그딴 게 나왔다고! 욕을 안 듣는 날이 없었어! 얀붕이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용돈을 받으면 빼앗기고! 어디 나가려고만 하면 헤픈 년이라고 욕하고!"


"......"


"나중에 아빠가 말해주더라! 집안에 아들 하나 있어야 한다고 해서, 얀붕이까지 낳고 그 뒤로 어머니랑 관계 가진 적 없다고! 근데 니년이 태어났다고!"


"아, 그니까, 애비라는 새끼가 지가 바람 피워서 니년 데려온 건 좆도 아니고, 우리 엄마가 보복으로 바람 피운 건 존나 큰 잘못이고?"


"자꾸 말을..."


"엄마가 얼마나 마음고생했는지 알아!? 결혼하고 나니까! 애비새끼가 애새끼 하나 까서 끌고 왔다고! 씨발, 주워온 년이면 처신이라도 잘 하지, 너 때문에 오빠랑 나랑 애비한테 쳐맞고 산 세월이 얼만데!"


얀진이는 버릇처럼 손을 올렸다.

얀순이도 역시, 버릇처럼 몸을 감싸며 죽일듯이 얀진이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둘은 서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얀붕이는 어디 갔는데? 우리랑 같이 안 살았어. 너네 나갈 때 나갔었다고."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랑 같이 나간 거 아니라니까. 귀에다가 좆을 박으셨나."



얘기를 곱씹을수록 한심했다.


아빠는 얀붕이와 얀순이를 미워했다.

엄마는 얀붕이와 얀진이를 미워했다.


얀순이에겐 엄마가 있었다.

얀진이에겐 아빠가 있었다.


그럼, 얀붕이에겐?



얀진이는 곧바로 일어서며 말했다.


"야, 우리끼리 싸우는 건 일단 뒤로 치우고, 얀붕이 행방이나 찾자."


얀순이 역시, 따라 일어서며 내뱉었다.


"... 씨발. 피는 물보다 진하다던데, 피도 안 섞인 가족이 마음은 존나 맞네."


"그러게."




얀붕이를 찾는 것은 난항이었다.


얀순이가 고 3때 집을 나갔으니

얀붕이는 입대했었을 거다.


그럼, 전역하고 어디를 갔을까?



얀진이는 대학가를 뒤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부유했지만

얀붕이는 양 쪽의 지원을 다 받지 못했을테니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갔을 거다.


학교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얀붕이가 공부 할 때마다 얀진이가 오답노트도 만들어 줬었고

자기가 공부했던 노트도 차근차근 정리해서 다 물려줬었으니까


지거국으로 갔겠지.



얀순이는 전우회를 뒤졌다.

학교 친구들과는 그렇게 사이 좋아 보이지 않았었으니

어떻게든 과거를 모르는 이들과 친구를 하고 싶었을 거다.


사람 성격은 나쁘지 않았다.

얀순이가 어떤 쌍욕을 내뱉고 투정을 부리더라도

얀붕이는 괜찮다며 다 감싸주고

들은 바로는 얀진이도 감싸줬었다니까


나름 적응은 잘 했겠지





한 지방대학 예비군 사무실 앞에서

얀순이와 얀진이는 서로 마주쳤다.


서로 쓴 웃음을 짓고

인사를 나누려다가


저 멀리 얀붕이가 보였다.

다른 여자와 같이 걷고 있는.

그 둘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을 보이며.


생을 반쯤 체념한 채로, 그나마 서로 상처를 핥아주는 그런 얀붕이의 모습은 없어지고

정말 어디에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미소를 짓는 얀붕이의 모습이 있었다.


그제서야 둘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가진 감정이

그냥 가족애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좀 많이 비틀려 있다는 것을.





"얀붕아, 오랜만이야."


"오빠, 그 여자 누구야?"


다른 여자와 인사하고 헤어진 틈을 타

둘은 기습적으로 얀붕이 앞에 섰다.


그리고 얀붕이는

잠깐 굳었다가


그대로 달음박질쳐 도망가버렸다.



언제나 행동이 먼저인 얀진이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언제나 정신없이 말로 몰아치던 얀순이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이제껏

자기 상처를 끌어안아주던 남자가

자기를 보는 순간 도망쳐버렸다는 그 사실에


둘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얀순이는 얀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얀진이도 얀순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얀진이의 눈에는 광기와, 아버지의 폭력성이 엿보였다.

얀순이의 눈에는 광기와, 어머니의 악독함이 엿보였다.


그리고, 부모의 눈을 한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며 웃었다.





얀진이는 바로 자기 차를 끌고 왔다.

얀순이는 사무실에서 얀붕이의 정보를 얻어왔다.


그리고, 얀붕이의 서류 상 주소지로 향했다.



단칸방 지하에서

가방 하나에 옷가지 몇 점 쑤셔넣고 나오던 얀붕이는

다시 자매들과 마주쳤다.


얀순이는 바로 내려서 뒷 문을 열고

얀진이는 바로 얀붕이를 끌고 뒷좌석에 쑤셔박았다.


차가 출발했다.




"우리 안 보고 싶었어?"


운전석에 있는 얀진이의 물음에

얀붕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오빠. 왜 우리 보고 겁 먹은 쥐새끼마냥 도망갔어?"


조수석에 있는 얀순이에 물음에도

얀붕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하... 씨발... 오빠. 아가리에 접착제라도 쳐발랐어? 왜 토꼈냐고."


서서히 화를 내려는 얀순이를

얀진이가 한 손으로 제지하고

조수석 서랍을 열었다.


스턴건과, 후추 스프레이가 있었다.


"말로 안 되면 행동으로 해야지. 운전석에만 안 튀게 해."


차갑게 웃는 얀진이의 말에

얀붕이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재산... 재산 포기할게... 제발... 유산 상속 포기할 테니까... 그냥 날 놔둬... 그거 때문에 온 거잖아..."



아버지는 얀붕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머니는 얀붕이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둘이 갈라서던 그 날


'얀붕이만 아니었어도, 이혼해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 찾아갈 수 있을 텐데.'


라는 소리를 양 쪽에서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얀순이의 친자 확인 불일치 서류를 준비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얀진이가 다른 여자 애라는 증빙서류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재산의 반은 얀진이, 반은 얀붕이에게 가게 설정이 되어 있었고

어머니 재산의 반은 얀순이, 반은 얀붕이에게 가게 설정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 둘 다, 얀붕이 때문에 이 가족을 유지해야 하는데, 저 새끼 하나 때문에 내 자식에게 온전히 재산을 물려주지 못했다고 했다.



얀붕이는 그래서 얌전히 기다렸다.


부모님이 언젠가 다 돌아가시면

재산을 챙겨 외국으로 도망갈거라고 결심했다.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조용히 치유하며 살겠노라 결심했다.


그렇게 유산 분할을 기다리던 어느 날

변호사와 상담을 하며 걷고 있던 시간에

다른 유산 상속인 둘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깟 돈 때문에 날 피했다고?"


"와, 오빠.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가족을 버린 거야? 우리가 오빠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팔에는 전기로 지진 상처가 생겼다.

얼굴은 후추로 인해 눈물과 콧물이 쏙 빠지고 있었다.


팔이 뒤로 묶인 채로

얀붕이는 공포에 절여진 눈으로 자기 자매들을 바라보았다.


스턴건을 든 얀진이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후추 스프레이를 든 얀순이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시절의 공포가 되살아난 얀붕이는 그저 무릎을 꿇고 빌었다.


"미안해... 미안해... 살려줘..."


"누가 죽인대?"


얀진이는 그리 말하며

얀순이에게 물었다.


"너나 나나, 가족이 필요한데, 피 섞인 사람이 딱 한 명 뿐이네?"


"그러게. 그럼 둘이 공유하지 뭐."



부유한 집안

뛰어난 외모의 언니와 여동생

위로 두 살, 아래로 두 살 터울 자매를 가진 얀붕이.


겉보기에는 우애 좋아 보이는 가족이 다시 탄생했다.

겉보기에는.




p.s. 장르문학 갤러리에서 루리웹을 거쳐 네이버 블로그로 내 글이 불펌되는 걸 보면서

잘 쓴 근친은 먹히는 소재라고 확신했다.


근데 잘 쓰기가 힘듬. 하...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