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흐윽, 얀순아..."



울고 있는 내 앞에 보이는 것은 활짝 웃고 있는 얀순이의 얼굴. 설마 다시는 저 얼굴을 못 볼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얀순이는 최고의 여친이었다. 용모단정, 성적우수, 심지어 집안도 부자라 재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이상적이다 못해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여자. 그에 비해 나는 이렇다 말할 정도로 특출난 점은 없었지만 얀순이는 그런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었다. 하지만...



"아, 오빠아~ 빨리 와!"


"헥헥...얀순아 조금만 천천히..."


"오빠 빨리 안오면 두고 간다~?"


"그러니까... ! 얀순아 조심해!!!"


"에?"



끼이익- 쾅-



"얀...순아..?"



갑작스러운 사고. 정말 한순간에 벌어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던 사고였다. 분명히 초록불이라 건넌 얀순이였고 순전히 상대가 과도하게 속도를 낸 것이였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하아...하아..." 삐- 삐-


"흐윽...얀순아..."


"오...빠..."


"!! 얀순아 정신이 들어?!"


"하아...오빠...부탁 하나만...해도 돼..?"


"...응, 응! 뭐든지 들어줄께..! 말만 해!!"


"내가 어떻게 되던지...쭈욱...사랑해줄래..?"


"응..! 니가 어떻게 되던지 난 널 계속 사랑할꺼야..! 그러니까..."


"약속...한거지..?"


"야, 얀순아..?"



삐이이-



"..."


"..."



나는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



얀순이의 장례식으로부터 10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사회인이 되었고 현재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하루하루 먹고 사는 평범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옛날부터 평범했던 인생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도 변함이 없었다. 단 한가지를 빼면.



"얀순아..."



10년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는 그 이름. 평범했던 내 인생에 유일하게 특이점을 가져다 준 그녀. 나는 얀순이와의 마지막 약속을 떠올린다.



[어떻게 되던지...쭈욱...사랑해줄래..?]


"쭉 사랑할께...얀순아..."


설령 네가 귀신인 채라고 해도, 나는 널 계속 사랑할꺼야.



"선배에~!"


"...뭐야, 얀진이냐."


"에, 뭐예요. 그 반응."



회사 후배인 얀진. 쓸데없이 활기찬 것도, 활짝 웃는 저 미소도 묘하게 얀순이와 닮아 있어 대하기 어렵다.



"선배 오늘 시간 있으신가요?"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치지 마세요! 선배 시간 많으시면서~"


"하아...뭔 일인데."


"최근에 좋은 술집을 찾았는데요, 혹시 일 끝나면 같이 마시러 가지 않으실래요~?"


"알겠다, 알겠어."


"진짜죠?! 나중에 딴말 하시면 안돼요! 그럼 나중에 봬요!"



사무적으로 대하고는 있지만 항상 이런 식이다. 언제부터 저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얀진이는 의외로 내가 마음에 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얀진이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자꾸 얀순이의 얼굴과 오버랩 되버려 괴로울 뿐이다. 술 몇 모금 정도 마시다가 적당히 빠져나와야지.



......



"히극...선배에...딸꾹."


"하아...너무 마셨다고 너...술 약한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권유한 거냐."


"흐극...그래도오~ 선배랑 같이 마시고 싶었는 걸요오~? 에헤헤..."


"나 참. 이런 꽐라 상태면 도저히 내버려 둘 수도 없잖냐. 정말이지..."


"에헤...데려다주세요, 선배에~"


"에휴..."



어쩔 수 없이 얀진이의 집 위치를 알아낸 후, 나는 얀진이를 부축한 채로 밤거리를 걸었다.



"여기냐."


"예, 맞아요오~ 고맙습니다 선배에~!"


"후, 다음부턴 네 술 권유는 잘 생각해봐야겠다."


"에~? 선배 너무해요..."


"너무하거나 말거나! 지쳤으니까 난 간다." 훽-


"앗 자, 잠시만요 선배..!"


"가버렸네..."


"할 말, 있었는데..."



......



"하아...피곤하구만...내일부터 주말이라 다행이네."


"일단 빨리 씻고 나서 밥을...응?"



집앞까지 도착한 나에게 보인 광경은 불빛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창문. 아침엔 방의 모든 불은 끄고 나오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이상함을 단번에 알아챘다. 뭐야, 도둑이라도 든건가..? 아니, 도둑이면 오히려 불을 안 키지 않나? 



"엄마랑 아빠는 오시기 전에 항상 연락 주시는데...진짜 누구야..."



무서운 마음에 바로 신고부터 할까 생각했지만, 혹시나 내가 안 끄고 나왔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진짜로 그런 거라면 피곤해진다. 일단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어보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도망치면 되니까...



"..." 띡- 띠딕- 띡-



띠리링-♪



"..."



아무도 없나..?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아, 오빠♡ 이제 오는 거야?"



초등학생 여자애가 서 있었다.



"..."


"오빠?"


"..."


"오빠!"


"앗..! 여자애? 에..?"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진짜 전혀 상상도 못한 정체. 모르는 여자애가, 그것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애가 앞치마를 두른 채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꼬마야? 넌 누구니..?"


"오빠...벌써 까먹은 거야..? 나야 나, 얀순이!"


"뭐..?"



한번 더 정신이 멍해진다. 상상도 못한 사람에게서 나온 상상도 못한 이름. 의미불명이다. 뭔소리하는 거야 이 꼬마는?



"ㄴ, 너 그 이름은 어디서 알았어??"


"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오빠?"


"장난치지마!!! 그 이름 어디서 알았냐고!!!"


"왜 그렇게 화내는 거야? 그야 당연히"



내 이름이니까



"...뭐라고?"



뭐야, 얀순이가 이름? 아 그런가. 이름이 같은 건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하...나도 참 괜히 화내가지고...



"그나저나 오빠도 여전하네~ 나랑 사귄 날을 아직까지 비밀번호로 쓰고 있을 줄이야."


"에?"


"약속, 안 어긴거 같아서 다행이야♡"


"..."


"후후♡ 오빠, 나 있잖아..."



환생, 한 거 같아



3차로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갑자기 소재가 떠올라서 쓰긴 했는데 필력이 딸려서 장편은 힘들 수도 있겠노


진짜 장편 쓰는 사람들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거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