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다.

사람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나 실시간으로 경험 중이다.

나도 설마 절대 변치 않을 거라 다짐했던 사랑이 이리 빨리 식을 줄 몰랐다.

 

그녀가 이렇게 집착이 심할 줄 알았다면 고백했을 때 거절했을 것이다.

지금도 쉬지 않고 울려대는 핸드폰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한다는 것을.

 

아직도 답장하지 않는 걸 보면 눈치를 못 채나?

아니, 분명 챘을 거다. 

챘으면서 끈덕지게 전화와 문자를 계속하고 있는 거겠지.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필히 그녀도 지쳐 떨어지겠지.

1인용 캐리어에 간단하게 짐을 싸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잠시 잠적하여야 한다.

 

다시 한번 핸드폰이 울린다.

이렇게 불안감에 싸여 지낼 바에는 차라리 끄는게 낫겠다 싶어 핸드폰을 보자 화면에는 내가 예약했던 숙소가 찍혀있었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조건 이 전화를 받아야한다는 생각.

 

“여..보세요?”

 

[저기 오늘 얀챈 하우스 예약해주신 얀붕씨 되시죠?]

 

“네. 무슨 일로 연락해주셨나요? 분명 예약은 오늘일 텐데”

 

[저, 그게…. 오늘 예약이 맞나 확인한 차 연락 드, 드렸습니다.]

 

침착하게 들려야 할 안내원의 목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너무 수화기에 가까이 대고 말하는 것도, 말을 절면서 조용히 말하는 게, 마치 협박당하는 듯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론은 쉽게 도출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가정에 문제가 생겨서 예약은 취소하겠습니다. 위약금은 보내드릴 테니까….”

 

분명 얀순이가 이 일과 관련되어 있다.

서둘러 통화를 마치고 연락을 끊으려 하자 수화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 어어…. 손님, 이러시면….]

 

[비켜봐]

 

털컥-

 

통화의 상대가 바뀌었음을 들리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

아니, 들으면 안 되는 목소리다.

 

[얀붕아. 어디야?]

 

“얀순아. 우리 그만하기로 했잖아.”

 

[얀붕아. 내가 잘못했어. 다 고칠게. 한 번만 만나서 얘기하자. 응?]

 

“제발 날 좀 놓아달라고! 너의 그런 면이 싫어서 이렇게 된 거잖아!”

 

[얀붕아. 진정해. 응? 일단 만나서 오해를 풀고 싶어.]

 

“오해는 무슨 오해! 내가 너 때문에 지금 불안장애에 걸렸다고!”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기회는 무슨. 누가 남자친구가 바람피울까 봐 틈만 나면 집에 몰래 들어오고, 도청기까지 설치해놔?”

 

[그건...]

 

“말 나온 김에 말하자. 너 나한테 맨날 만들어주는 음식에 넣었던 그 약병에 든 거 뭐야? 뭐 인체실험이라도 하는 거야?”

 

[얀붕아. 일단 내 말 좀...]

 

“시끄러워! 자고 일어났더니 니가 내 옆에 누워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민폐라고! 시발, 좀 연락 하지마.”

 

[...]

 

“헤어졌으면 우리 곱게 헤어지자. 응?”

 

[...]

 

순간 너무 흥분해버렸다.

그간 쌓여있던 말을 그녀에게 뱉자, 큰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고,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조용히 수화기를 잡는 이 시간이 불편해 일단 전화를 끊기로 다짐했다.

 

“끊는다. 미안하면 이제 날 내버려둬”

 

[야]

 

그녀에게 들려온 답변은 내 예상외였다.

질질 짜거나,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 냉정하고 차가운 말투.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씨발. 얀붕아.]

 

낮은 어투로 내게 하는 욕설.

그녀의 입에서 욕을 듣는 것은 처음이다.

항상 내 앞에서 내숭을 떨던 그녀가 이토록 세게 나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내가 너가 있는 곳에 못 갈거 같아?]

 

“...이거 다 녹음 중이야. 오면 경찰에 신고할거니까”

 

[얀챈아파트 얀챈동 얀챈호]

 

“..”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알면서도 내가. 시발. 내가 기회를 준 거라고!]

 

“기회는 무슨 기회! 누가 너 같은 여자에게..”

 

[그만. 더 이상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마. 내가 좋아하는 얀붕이는 날 좋아해줘야해]

 

“미쳤어. 너 이러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아? 결국 상처만 곪는거라고!”

 

[지금 갈게.]

 

뚜- 뚜- 뚜-

 

끊긴 수화기의 소리만이 고요한 방을 감쌌다.

볼에 흐르는 액체를 무심코 닦아내자, 내가 식은땀을 잔뜩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험하다. 이건 진짜로 위험하다.

 

 

 

..........

 

 

 

내가 말하기는 뭐하지만, 내 여자친구는 흔히 말하는 여신이다.

대학교에 갓 입학했던 당시의 나는 과 대표로 나왔던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

OT, MT, 1학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가까워졌고, 그녀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참 기뻤다.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떄는 모든 것이 다 괜찮았다.

우리는 함께한 만큼 더 단단해졌고, 서로가 서로의 모든 것이 되었다.

어떤 일을 해도, 어떤 생각을 해도 우리는 그 전부를 공유했고, 서로를 위했다.

 

하지만, 사귀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본면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고운 가면 속에 감쳐져 있던 것은 추악하고 질척한 질투심. 

 

그녀는 내가 그녀 외의 여성과 대화를 섞는 것을 극도록 혐오했다.

그녀는 내가 그녀가 알지 못하는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보지 않았다.

 

급기야 내 핸드폰 기록부터 시작해서 무단 침입, 동기에게 협박. 갈취.. 

그녀는 점점 더 선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문제로 많이 다투었지만 나 역시 그녀를 놓을 수 없었기에, 그녀가 미운만큼 그녀를 좋아했기에 그녀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문제는 그녀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는 것이다.

그 죄책감을 이용해 더욱 압박해 오기 시작하면서 나도 폭발해버렸다.

 

결국 모든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지 일주일째.

그것이 오늘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녀는 이 곳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도망가봤자 어차피 찾아올 것이다.

한없이 절망적이다.

 

그녀가 내게 화를 낸적이 한 번 있었다.

오랜만에 올라온 고등학교 동기들과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놀이공원에 갔던 일.

 

그 무리에는 여자가 포함되어있었고, 그녀가 나를 찾아왔던건 당연지사였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얼굴을 붙잡고 혀를 내게 집어넣었다.

그것을 부끄러운 마음에 뿌리치자, 정색을 하고 화를 내고는 나를 강제로 집으로 끌고 왔다.

 

분명 연약한 여자인데, 아니 두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미인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나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갔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가 이 곳에 도착하는 시간까지의 카운트 다운.

나는 그 시간안에 대책을 짜야만 했다.

 

대체 무엇을 해야 그녀가 완전히 포기를 할 수 있을까.

평생 굴려본 적 없는 머리를 계속해서 굴렸다.

그러다 번뜩이며 떠오른 생각.


“그래..!”

 

내 죄책감을 그녀가 이용했다면, 나 또한 그녀의 죄책감을 증폭시키면 되는거 아닌가?

그래. 이왕이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나는 아마 감금당할 것이다.

분명 그녀가 핸드폰으로 이상한 기구를 잔뜩 사는 것을 몰래 본적 있으니.

 

나는 자살을 연기하기로 했다.

그녀가 끔찍이도 슬퍼하기를 바라며.

그녀가 죄책감에 몸부림치기를 바라며.

 

 

 

..........

 

 

 

무엇을 할지 정하자, 그 뒤는 순식간이였다.

가장 티가 안나는 죽음은 일산화탄소의 중독.

서둘러 연탄을 구비해 내 방에 두었다.

 

잔뜩 피운 다음, 환풍구를 테이프로 막고 문 또한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어두었다.

적당히 창문을 열어 연기를 내다버리고, 들어왔을떄 콱 막힌 느낌이 들 정도만 남겨두었다.

 

그 다음은 유서다.

이 광경에 충격을 받은 후, 결정타를 먹이는 거다.

 

그녀가 절망에 빠지는 광경을 상상하자 이상하게 개운한 마음이 일었다.

왼손으로 삐뚤빼뚤하게 연필을 눌러가며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수돗물 몇방울로 눈물을 만들어 글을 번지게 하며, 내 생각을 빼곡이 적기 시작했다.

 

[지쳤어. 너 때문이야. 살 의미가 없어.]

 

후반부에는 멘탈이 나간것처럼 저 세 말을 반복적으로 적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방을 잔뜩 망가트린 뒤, 그녀를 기다리면 된다.

그녀가 절망에 취한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놀래키는 것이다.

 

내게 향하는 분노가 임계점을 넘기 시작하면 기필코 나를 떠나겠지.

천년의 사랑도 질릴 정도의 막장을 보여줄 것이다.

 

혼자서 미래를 그리며 시시덕거리고 있을떄, 밖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그녀가 왔구나!

서둘러 적당히 방을 망치면서 파편으로 가득찬 공간에 누워 그녀를 기다린다.

 

“얀붕아. 나야.”

 

쾅- 쾅-

 

“지금 문 열면 다 용서해줄게. 아니, 아니지. 내가 잘못했어. 우리 얘기 좀 하자. 응?”

 

쾅- 쾅-

 

“얀붕아. 너 안에 있는거 다 알아. 나 아는 방법 있어. 아, 얀붕이 이거 싫어하지? 이제 안할게 응? 너가 보는 앞에서 다 부실게 이거.”

 

쾅- 쾅-

 

“문 열어주라. 보고 싶어. 우리 벌써 일주일쨰야. 얀붕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 왔는데, 응?”

 

쾅- 쾅-

 

“...”

 

“열어.”

 

“열라고!!!”

 

“흐흐흐. 니가 이런다고 내가 포기할거 같아?”

 

철컥. 철컥.

 

저 미친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내 아지트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철저히 그녀에게 숨겼던 장소인데, 대체 어떻게?

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얀붕이가 잘못한거지? 그치?”

 

저벅. 저벅.

 

그녀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기분이다.

숨을 애써 참고는 그녀를 기다렸다.

 

“얀붕이 재미없는 짓을 하네. 테이프로 방을 막아두다니.”

 

“시트콤도 아니고 말이야!!!!!!!!!!!!”

 

콰직.

 

어디서 나왔는지 칼로 테이프로 막혀있는 방문을 찌르는 그녀의 광기가 여기까지 전해졌다.

찌릿 찌릿 몸이 울리기 시작했고, 상황을 극적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발!! 내가!! 얼마나!!”

 

콰직.

 

“너는 내가 감금할거야. 날 사랑한다고 다시 속삭여 줄때까지! 아니, 평생!!”

 

콰직.

 

“내게서 도망갈 수 있을거 같았어?”

 

파편이 흝날리며 문이 뜯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제발 나를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줘.

 

“얀붕아. 일단 대화를 하자. 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눈을 감고 있어 그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말을 멈춤으로서 그녀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숨을 최대한 참으며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듭고 낡은 좁은 방에는 매퀴한 연기가 나고 있었고, 나는 연탄 옆 부서진 가구 옆에 평온히 누워있었다.

 

“이게 뭐야...”

 

“어? 이게 아닌데...”

 

그녀가 살아오면서 결단코. 생각이라도 해보질 못했던 광경.

그녀는 그 현실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들었던 음식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얀붕아...?”

 

한없이 공허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심코 대답할 뻔했다.

아까의 광기는 사라지고, 지금 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혼란스러운 대학생 한 명 뿐이다.

파편이 팅기며 환풍기를 건드렸는지, 팬이 돌면서 유서가 그녀의 앞으로 날려왔다.

 

“종..이..?”

 

[지쳤어. 너 때문이야. 살 의미가 없어.]

 

“나.. 나 때문에..?”

 

그녀가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죽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멘탈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얀붕아. 이건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나는 그냥 너랑 화해해서..”

 

“내가 잘못했던 것을 다 말하려 했어.. 나 너 없인 못살아.. 응? 얀붕아 대답 좀 해봐”

 

“우리 싸우기 전날에 내가 해준 볶음밥 먹고 싶다고 했잖아. 나 열심히 준비했다? 평소에 비싸다고 마다했던 재료도 잔뜩 넣었는데...”

 

“얀붕아. 나 그 얀붕이 동기가 끔찍이도 미웠는데 결국 사과도 하고 왔어. 오늘 자랑하려고 했단 말이야.”

 

“얀붕아, 일어나봐. 대답 좀 해줘. 나 지금 이상해. 몸이 막 떨려.”

 

“이런게 아닌데. 내가 원한건.. 내가.. 나.. 나..”


"이상해. 나 이상하다고. 이게 뭐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중간부터 숨을 참는게 조금 힘들어서 약간씩 쉬고 있었지만, 당황한 그녀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어느새 내 옆에 앉아서 내 손을 잡으며 흐느끼는 그녀.

내 몸을 만질 것을 대비해서 미리 차가운 물에 몸을 식혀놨다. 

 

계속 그렇게 미안해하다가 빨리 갔으면 좋겠다.

그 순간부터 나는 승리를 만끽하며 자유를 누릴 것이다.

 

“얀붕아.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너랑 깍지를 끼며 얘기를 하는 건데..”

 

“하하.. 왜 나 혼자만 얘기하지? 아, 얀붕이한테 음식 줘야하는데..”

 

“아,,,아,,, 미안해. 얀붕아, 내가 잘못했어. 눈 좀 떠봐. 응?”

 

“미안해.. 미안해.. 흐흑.. 미안해.. 제발.. 제발!!”


"숨을 쉴 수가 없어. 숨이 막혀.. 얀붕아, 얀붕아..." 


“흐흐.. 얀붕아. 나도 따라갈게. 나 얀붕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옆에서 계속 사과를 하던 그녀가 문을 부실 때 썼던 칼을 드는 것을 실눈으로 보았다.

위험하다. 진짜로, 자살할 셈이다.

 

“잠깐, 그건 아니지!”

 

“어...? 얀붕이..?”

 

“아.. 시발..”

 

나도 모르게 몸이 나서서 그녀를 막았다.

덕분에 손에 조그마한 상처가 나면서 빨간 액체가 조금씩 떨어졌다.

 

뚝- 뚝- 

 

피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방안에서 울려왔고, 나와 그녀는 동작을 멈춘채로 서로의 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좆됐다, 진짜로 좆됐다.

지금이라도 서프라이즈 파티라고 할까? 

지금이라도 절하면서 사과를 해야하나?

차라리 다 포기하고 얌전히 납치를 당해야..

 

“흐윽.. 흐윽..”

 

“...얀순아...?”

 

“야,야 얀붕아.. 내가.. 흐.흑..”

 

그녀의 눈물을 보자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이 일을 벌인건데.

 

“미안해.. 흑. 내가.. 잘못 흐흑.. 생각했던 것 같아.. 흐아앙-”

 

“얀순아..”

 

“내가 다 고칠게. 내가 전부 바뀔게. 한 번만, 용서해줘”

 

“얀순아. 미안. 장난이 조금 심했지?”

 

“흐윽. 나 진짜 죽어버리려고 했어. 사랑해 얀붕아. 그 무엇보다 사랑해”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 그녀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새 나는 그녀에게 말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내뱉어 버렸다.

 

“그럼 나 놓아줄 거야?”

 

“그건 아니지 시발 새끼야”

 

“어?”

 

지지지지직--

 

아 시발...

 

내가 흘린 피 위로 그녀의 눈물이 섞여 만든 웅덩이를 넘어지면서 팅기며 그대로 기절했다.

아니, 애매하게 기절하지 못했다.

몸이 계속해서 움찔거리고 있었고, 전기충격기를 든 그녀가 나를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내가 잘 해볼게”

 

“으.. 으..”

 

“얀붕이를 위해서 준비한게 많아. 어서 가자?”

 

세상 해맑게 웃는 그녀에게 욕을 했지만 내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미..친..련..”

 

“응! 나는 얀붕이에게 미친 여자야!”

 

그녀가 내 한쪽 발을 잡자, 저항하지 못하는 내 몸은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방 안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은 상쾌한 콧노래와 함께, 집 앞에 있던 벤에 내 몸이 실렸다.

 

“이건 다 얀붕이가 잘못이니까... 날 이렇게 만든 얀붕이가 잘못한거니까...”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그냥 도망갈걸 괜한 짓을 했다 생각하고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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