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흐음.. 이제 이것도 끝물이네”

사설 대회랍시고 올라온 공고문에 덜컥 글을 하나 써서 올린지 1주일이 지났다.


글을 올릴 즈음엔

이미 1등이 유력해보이는 명작도 하나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읽어봄직한 소설들도 여럿 보였다.


수상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대회 주제가 말초신경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작가’로써의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철저히 소비자의 관점에서,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을 배설하는 행위다.


관심이라도 좀 받고

추천수가 50개라도 넘으면 족하다.

맞춤법도 엉망인 글…. 차라리 귀여니는 기승전결이라도 완벽했다.


“나참.. 사람 생각하는건 다 비슷한건가?”

하지만, 똥이라도 사향고양이가 싸면 루왁커피인지..

남자가 저질러놓은 글에 추천이 100개, 200개를 넘어 300개를 돌파했다.

이제는 모두가 읽어 본 것인지, 추천도 댓글도 달리지 않는다.


필요한건 대회 경품같은게 아니였다.

알량한 관심과 추천이 외식문화상품권보다 글쓴이를 배부르게 한다.


그는, 처음 받아보는 관심수에 소화장애가 오는듯 하다. 뒤통수가 저릿저릿 하다.


"허허…"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너털웃음을 지어보지만.

이미 자신의 글을 읽어본게 수십 번, 새로운 댓글을 확인하느라 새로고침도 수백 번은 했다.


[연재하는거 있어?]

[노벨피아 올려올려]


사람을 쑥쓰럽게 하면서 기분도 한껏 고양시켜주는 댓글들.

글쓴이는 괜히 올리지도 않을 노벨피아 아이디를 만들었다가, 창을 닫았다.


상상을 한다.

무료연재를 하다 유료연재로 넘어가게 되고.

자신이 올린 글을 수천명이 돌려 보면서

욕도 하고 칭찬도 하고

다달이 몆만원~몆십만원의 고료를 받는 취미생활이라…


짜릿함이 관자놀이를 넘어 이마까지 미치는 듯 하지만

글쓴이는 그저 상상에서 그칠 뿐이다.


“마감이 없으면~작가가 아니지~”

회사 일도 바빠서 헐떡거리는 그가

연재에 마감기한까지 지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가끔 소비자로서 창작욕구가 끓어오를 때.

입맛에 맞는 단편을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써내려가다가

마춤뻡이 맞춤법이 되도록 오탈자 검사기 한번 돌리면 될 일이다.


글쓴이에게 필요한건, 

언제나 알량한 관심과 추천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회 경품이나 고료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것이 작가와 글쓴이를 나누는 분명한 차이점이다.


[다음 화]

[뒷 이야기 어디?]

[골방에 가두고 글만쓰게 시킨다]

[더 가져와!]


이미 잘 마무리된 이야기의 뒤를 원하는 댓글들.

글쓴이같은 아마추어들에겐

하나의 사건을 조리있게 풀어내는건 할만한 일이지만,

여러가지의 사건을 나열하고 연계시키는건 불가능하다.


사회인 야구 투수가 메이저리거에게 1스트라이크를 요령껏 잡아낸다 한들

삼진아웃을 시키는게 불가능 한 것 처럼.


때문에 글쓴이는 자의로, 그리고 타의로 ‘단편빌런’을 칭하고 있다.

단 1개의 소재만이, 그에게 허락된 범위다.


“외식상품권이 나오면 어떻게 할까?”


아직 사설 대회의 마감까지 며칠 남이있거늘

벌써 글쓴이의 머릿속엔 자신이 우승자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그렇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을 알고 있지만

입가에 지어지는 웃음을 감출 수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눈에 띄는 댓글 하나.


[...커미션도 받아?]

의뢰?, 남이 쓰고 싶은걸 써주는건 취미생활과 거리가 멀다.

하물며 돈이나 만지자고 이 짓거릴 이어가는게 아니다.


 └[아니. 의뢰는 안받아]

   
    └[섭섭하게 쳐주지 않을게]

  

      └[돈 문제가 아냐]

       
         └[open.kakao/1#$%$!@#]



커미션은 무슨

월급이나 제때제때 나오면 다행인 중소기업 회사원에게
커미션을 타령하다니!


기분이 한껏 고양되어있는 글쓴이는 속는 셈 치고 오픈채팅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안한다니까요]


[50만원]

             [돈문제가 아니라, 제 생활도 있고]

[55만원]

             [저기.. 좀 무서운데…]

[60만원]

            [원하시는 소재나 캐릭터가 있나요?]


글쓴이는 거래 따위 할 줄 모른다.

점점 올라가는 고료를 살금살금 올려보기보단,

당장 괜찮은 금액이라도 잡는게 성미에 맞다.



[출력해서, 책으로 제본할거에요.

 장소나 장비는 대여해드릴게요]


           [음.. 제가 보통 쓰면 해봤자 

           2만자라.. 책으로 만들기엔…]


[65만원]


            [가능합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남자는 거래 따위 할 줄 모른다.



[사진]

[map.kakao.com/!@jcvnmadf34]
                   
              [아, 스터디카페 하시나보네요. 

              여기서 가깝네]


[집필은, 부디 여기서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말에 한 번 방문 드릴께요]

글쓴이의 말투가 점점 공손해진다.

얼굴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의 사업장으로

단돈 65만원에 정신이 팔려. 남자는 주말에 모든 일정을 비워 두었다.


—-

“계십니까?”


토요일 오전 10시.

글쓴이는 포멀한 느낌의 단정한 차림으로 스터디카페를 방문했다.

가방속엔 노트북 한개와 충전기, 지갑과 텀블러가 전부다.


“아. 금방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안쪽, ‘직원 전용’이라고 쓰인 방에서 나오는 사람이 한 명.

자신의 의뢰주이자, 이 스터디카페의 사장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여기”

글쓴이는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여자에게 건넨다.

이미 얼굴도 팔린 마당에, 이름이나 회사를 숨겨봤자 소용 없는 일이다.

하물며 온라인상에서 쓰는 아이디를 가지고 서로 부를 순 없지 않는가?


“어머나, 감사합니다. 이거 자영업자다보니 명함은 없고…”

여자는 카페의 상호와 연락처가 적힌 쿠폰을 내민다.


“아뇨. 괜찮습니다.”


“작가님께서 쓰실 장소는 이쪽이세요, 필요하신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여기 계시는 동안은, 커피도 무료랍니다~”

여자는 글쓴이에게 스터디 카페 자리 한 켠을 안내해준다.


사방이 높은 파티션으로 둘러져 있고

책상에 조명이 하나 놓여있고

전기 콘센트가 의자 옆에 위치해 있는

카페에서 명당으로 불릴만한 자리 하나.


“아…네”

하지만 글쓴이는 좋은 자리나 무료 커피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작가.

작가라

작가님이라!


이 얼마나 좋은 울림인가!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사업을 끊지 못하는 이유가 ‘사장님’때문이듯

남자의 뇌리엔 ‘작가님’이란 단어가 소용돌이 친다.


“뭐 불편하신거라도, 있으세요?”

여자가 조심스레, 글쓴이의 안색을 살핀다.


“아뇨! 아닙니다 하하. 감사할 따름이죠. 자 그럼, 전 집필을 시작하겠습니다.”

집필이라, 자신이 이야기 했지만 이 또한 좋은 울림이로다.


“천천히 해주세요. 마감은 없으니까요”


“저번에도 말씀 안하시던데, 원하시는 소재가 있으신가요?

이번에 보셨던 재벌이라던가, 소꿉친구라던가, 생면부지의 남이라던가. 의붓이라던가.”


“아뇨, 전 작가님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아요. 재밌게만, 재미 있게만 써주시면 된답니다.”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주문. 신규 오더가 들어왔는데 요구사항도, 제한사항도 없다.


“그럼,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무렴, 지금 천하제일인 ‘작가님’에겐 그런 것 따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글쓴이는 가방에서 먼저 노트북을 꺼낸다.


—-------


“하아.. 머리아프네.”

내리 두시간을 넘게 쉬지도 않고 자판을 두드렸다.


책으로 만들려면 오만자~십만자의 분량은 되야 할 것이다.

아직 채워진 부분은 오천자 남짓. 초반부도 넘기기 힘든 수준이다.


아마추어인 글쓴이에겐 플롯이라던가 시나리오 같은 게 없다.

그때그때, 구미가 당기는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취향을 저격하는 상황을 상상하고선

그에 맞추어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인물들을 구성한다.


글 속의 등장인물들이 제각기 굴러가다보면, 

생각해 두었던 결말보다 한참은 멀어진 완결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에 매우 만족해 한다.

자신도 모르는 하나의 스토리가 눈앞에서 완성되었고

그것을 가장 처음으로 읽는 독자는 바로 글쓴이 자신이니까.


그래도, 짬짬히 시간날때 취미삼아 하던 일을

업으로 하려니 머리에서 쥐가 난다.


글쓴이는 가방 속 텀블러를 꺼내 카운터로 향한다.


“커피... 한잔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수줍게 텀블러를 건네는 글쓴이.

근로소득자로서, 얻어먹는 행위는 생각보다 뻔뻔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자는 텀블러의 뚜껑을 열고, 분쇄기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고보니, 식사 아직 안 하셨죠?”

글쓴이는 문득, 여자에게 질문을 한다.

사회인으로서 얻어먹기만 하는 건 부끄러운 행위다.


“어머나, 내정신좀 봐, 손님을 모셔놓고 밥도 안드리고 있었네요”


“하하하. 아닙니다. 식사는 밖에서 하실까요? 제가 살게요”


“가게를 비우기엔 조금…”


“아.”

사장님이란 그런 것이다.

손님을 위해선 자신의 끼니도 먹고 싶은 것 하나 사다먹지 못한다.

카페 사장은, 함부로 밖에서 식사를 하지도.

냄새가 나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도 힘들다.


“제가 간단하게 샌드위치라도 만들어 드릴게요”


“이거 정말... 염치가 불구하네요. 감사합니다.”


남자는 카운터에 기대서 커피와 식사거릴 준비하는 여자를 쳐다본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것인가?


자신에게 있어선, 소설을 완성하고 받게될 65만원이란 거금보다

지금 여자가 준비해주는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가 더 값어치 있다.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부족하지만 않아도 충분하다.

65만원이야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불편한 금액 또한 아니다.


하지만, 계약사항에도 없는.

순수한 호의에서 나오는 커피 한잔과 샌드위치 한 쪽.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건 이러한 것이다.


“그래, 내가 언제 돈으로 움직였다고. 알량한 추천과 댓글이면 충분하지”


남자는 다짐했다. 설령 고료가 들어오더라도 거절하자고.

자신은 그 울림이 좋던 작가가 아니라

취미로 글을 쓰는 글쓴이일 뿐이니까.


“네?”

남자의 혼잣말에, 문득 여자가 뒤돌아본다.


“아니에요. 샌드위치, 맛있어 보여서요”


“후훗. 저희 가게에서 제일 잘나가는 것 이랍니다”

여자는 평소보다 햄을 두장 더 빵 사이에 끼워넣는다.



“어때요, 진전은 좀 있으세요?”

남자의 자리 뒤편에서, 살며시 말을 건네는 여자.


“아뇨, 이제 막 시작인걸요”

아까의 샌드위치 앞에서 한 맹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해가 뉘였뉘였 넘어가는데도 쓰여진 글자는 일만자에 훨씬 못미친다.

그럼에도 남자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하하.. 명함을 보니까 원래는 작가님이 아니신가봐요?”

들을때마다 느끼지만, 작가란 어휘의 울림은 정말 좋다.


“어휴, 작가라뇨, 저도 일개 회사원일 뿐인걸요”


“그래서, 명함받고는 깜짝 놀랬어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니.. 전 그런거 잘 못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오히려 사장님이 더 대단하신걸요? 전 자영업하면 분명 망할거에요”


주말이라 그런 것인지 몰라도

제법 이 카페, 손님이 많다.

하물며 손님들의 절반은 츄리닝 차림의 안경잡이 고시생들.

마진율이 작아도 장기간 이용한 충성고객들이다.


나머지 손님들도 공부하러 온 학생 커플들

잠시 시간을 떼우러 온 젊은이들.

알음알음 카페의 식사거리나 디저트 메뉴를 주문하는 동네 아주머니들.

돈을 깨나 쓰고도 금방 자리를 비워주는 좋은 손님들이다.


“저도 딱 하나 잘하는게 요리였는데, 어쩌다보니 카페를 열고 있네요”


확실히, 글쓴이가 먹어본 그 빵은 풍미가 깊다.

재료야 햄과 양상추와 마요네즈소스가 곁들여진 평범한 샌드위치지만

식재료의 선택, 조미료의 양, 조리 정도가 좋았던 것일까

특별할 것 없이도 ‘맛있다’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음식이다.


“하하.. 다 그렇죠. 저도 제가 이런 회사원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걸요”

글쓴이는 어느샌가, 노트북을 접고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앉아서 글만 써본적이 없다.

지금은 흥미가 떨어진 글보단, 관심이 가는 이 여자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


글쓴이가 생각해도 여자는 특이했다.

남자가 드나드는 게시판은 아무리 보아도 남성위주의 사이트인데,

의뢰주라고 나타난 사람은 정작 여자였다.


여자가 피폐하고 병든 남자주인공을 좋아하는건 자신도 이해한다.

헌데… 왜 이 여자는  다른 여자의 미친 모습을 보고싶어 하는 것일까?


“소설은, 다 쓰셨나요?”

하지만, 여자는 밍기적 거리는 글쓴이를 쏘아본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졌지만, 카페 마감시간 까진 아직 몆시간이고 남아있다.

의뢰도, 빵도, 커피도 공짜가 아니라는 이야기일까?


“아….아뇨, 한 숨 돌렸으니. 이제 다시 써야죠”

글쓴이는 덮어둔 노트북을 다시 펼친다.

회사 상사나 고객사에게서 느끼는 마감에 대한 압박,

피로와 긴장감이 동시에 피부를 타고 흐른다.


“후훗, 커피나 다과가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여자는 파티션 너머로 손을 흔들며 카운터로 향한다.

이윽고 설거지 하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만 남자의 귓가에 들린다.


“하아…”

남자는 잠시, 키보드에 머리를 파묻는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


“호오…흐음…”

여자는 모니터 앞에 앉아서, 글쓴이가 써내려간 글들을 읽으며 마우스 휠을 내린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4일째,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이 카페로 출근했으며, 평일에도 퇴근하자마자 카페로 나온 글쓴이.


이야기 전체의 가닥은 잡혔지만,

살을 붙이거나, 오탈자를 잡거나, 과정을 가다듬지 못했다.


오늘도 카페의 마감시간이 다가오자,

여자는 글쓴이의 자리 뒤에서 커피를 나르고, 쓰레기를 치우고, 음식물쓰레기를 비우고, 세제를 가져오고......


“혹시, 궁금하세요?”

마지못해 글쓴이가 뒤돌아서, 여자를 붙잡는다.


“아... 아니에요!. 편히, 편하게 있으세요”

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말로는 관심없다는 듯 이야기 하지만..

금세 남자의 자리를 빼앗아 앉고는, 완성되지도 않은 글을 읽어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이라, 결말이 바뀔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여자는 읽어본 글자를 다시 음미하려는 듯, 스크로를 몆번 위로 끌어올린다.



“이번 주면, 단편 한 개는 완성시킬 수 있을겁니다”

남자는 괜시리 뒷목을 긁적이며 이야기한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여자는 호기심을 모두 채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 마감을 준비한다.


“끝나시고 술이라도 한잔 어떠세요? 제가 살게요”
글쓴이는 슬쩍, 여자에게 술자리를 권유한다.

이 4일간, 남자는 카페에서 여자가 해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떼웠다.

얻어마신 커피의 샷도 10잔은 족히 될 것이다.


관심이나 흑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대로면 미안해 죽을 지경이다.


“아뇨, 내일 아침에 일찍 재료준비 해야해서, 다음에…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럼, 다음에.”

보기좋게 차인 것일까

의뢰주와 의뢰인의 관계일 뿐이라는 것인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듯 하면서도

막상 다가서면 멀어지는 이상한 태도.


“대신, 내일 저녁 드시고 싶으신거 있으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바로 이런 모습이다.

자신의 권유는 모두 거절하지만, 여자쪽에서 다가오는건 서스럼이 없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리조또가 좋겠어요. 약간 매운맛으로”


마음같아선 삼겹살이나 고추장비빔밥이 당기지만, 이런 카페에서 먹기는 힘들다.

4일동안, 글쓴이는 카페의 메뉴 절반 이상을 섭렵했다.

… 빵이나 달달한 것들만 먹다보니 물린다.



“네, 주문받았습니다~”

여자는 고객에게 응대하듯 대답한다.

곧이어,  글쓴이가 카페에서 나온다.

여자는 카페의 전등을 끄고 잠금장치를 설정한다.




“완성이다아아~~”

토요일 오전, 글쓴이는 마지막 엔터키를 누르며 탄식을 지른다.


다른 취미생활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뒤적거리지도 않고

회사의 잔업에 목매지도 않고

이 1주일간 오롯이 이 단편 하나에 목을 메었다.

10만자에서는 많이 못미치는 7만자 정도의 분량이지만

자신이 보기엔 만족할만한 글을 쥐어짜냈다.


USB에 써내려간 문서를 담고,

스터디 카페 구석에 위치한 프린터로 향한다.

레이저 프린터가 예열을 마치고, 남자의 글을 빠르게 출력해낸다.

출력물을 책상에 탁탁 두드리고, 클립으로 묶는다.

촤르르륵, 손가락으로 넘겨보고선, 의뢰주에게 들고간다.


“한 편, 다 됐습니다.”


“어머, 정말요?”

의기양양하게 내미는 종이뭉치를 받아드는 여자.


“하하, 입맛에 맞으면 좋겠네요”


“그럼. 읽어보고 올게요. 잠시만요.”

여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활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이렇게 코 앞에서 읽어보는 것 또한 글쓴이에겐 처음이다.

그슬그슬한 느낌을 참지 못하고, 카운터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남자.


오랜만에 노트북으로 뉴스도 보고, 유튜브도 시청하고.

자신이 방문하던 게시판에 다른 글들도 탐독한다.

진정한 자유의 시간이다.


….


“아직도 읽고 있나?”

자신의 글을 건네준지 2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짧은 분량은 아니지만, 몇 시간이고 읽고 있을 법한 분량도 아니다.


본디 지금쯤이면 여자가 점심거리를 가지고 남자의 자리에 방문할 시간인데

카운터에 비치는 여자의 뒷모습은 아까 그 자세 그대로이다.


“흐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남자는 자신이 읽은 글들을 살펴보지만,

이미 오탈자 검교정 프로그램도 돌린 뒤이다. 

모자란 부분이야 있을지 몰라도, 잘못된 부분은 없다.


그리고, 기지개를 펴는데...


“잠시. 괜찮으실까요?”

방금만 해도 카운터에 있던 여자가

갑자기 남자의 뒤편에 나타난다.


“으악!”

글쓴이의 의자가 뒤로 넘어진다.

남자는 놀랐는지, 의자에서 엎어져버린다.


“여기. 이부분 말인데요”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넘어진 남자에게 종이뭉치를 들이민다.


“아..아.. 넵”

여자의 시선은 출력물에 고정이 된 채, 넘어진 자신에게 조차 관심이 없다.


“빨간색으로 체크한 부분은 오탈자에요. 검교정 프로그램으로 돌려도 안잡히는 부분이거나, 프로그램이 잘못 고친 부분입니다.”


스무장이 넘어가는 종이에 빼곡히 채워진 빨간색 동그라미.


“이쪽 부분은, 처음 부분하고 모순이 되요. 여자 주인공이 있던 장소는…”

그리고 시작되는 신랄한 질타


오탈자

모순점

어법에 맞지 않고

어색한 상황들

이해가 가지않는 등장인물들의 대사

번역체 어투

하나부터 열까지 여자는 남자의 글에서 잘못된 부분을 잡아낸다.


마치 속옷까지 벗겨지듯이.

아니… 피부마저도 발랑 까져버리는 듯한 느낌.


화가 나는 것일까

아니면 부끄러움인가

남자의 얼굴은 귀에서 목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 그래도 소재나 결말은 참 좋았는데. 이런부분이 좀 아쉽네요”

십여분을 이어간 질타를 끝으로, 

‘소재는 좋았다’

라는 감상을 남기며 고개를 드는 여자.


그제서야 욹그락붉그락해진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주제넘게”


“아닙니다. 모두 사실인걸요”

남자는 글을 쓰는데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다못해 흔한 작문법 관련 서적 또한 읽어보지 않았다.


아마추어들의 모임에서 달리는 칭찬뿐인 댓글들에 취해있었을 뿐이였다.


“시간을, 좀 더 주실수 있을까요?”


“아니... 그래도 완성하셨는데.”

여자는 남자의 안색을 살피며, 아까와 달리 우물쭈물이다.


“그래도, 의뢰주 마음에 들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염치불구하고, 시간을 좀 더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출력물을 손에 든 채, 고개를 숙인다.


“괜찮아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마감은 없답니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야기한다.


“그럼..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글쓴이는, 뒤돌아 앉아 노트북을 두드린다.

가장 먼저 여자가 집어준 오탈자를 고치고,

어법이나 어투가 어색한 부분을 지운다.


30분 정도 뒤에, 여자가 소반에 커피 한 잔과 파스타를 담아 가져온다.

남자의 자리 옆에 놓아두지만

집중하느라 시야가 좁은지, 글쓴이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여자는 조심스레, 다시 카운터로 향한다.


2주의 시간이 흘렀다.

남자가 쓰던 글의 분량은 종전의 2배를 넘어가고 있다.


여자가 짚어준 부분에 틀린 점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남자가 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글의 가락이 세밀하게 잡히자

붙여질 살들도 더욱 많아진다.


작풍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글은 더욱 논리정연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이 풍부하게 만들어진다.


 “저녁, 식사하세요”

그리고, 그런 남자의 옆으로 여자가 소반에 음식을 담아온다.


“이거.. 매번 감사합니다.”

남자는 음식을 받으며 침을 꼴깍 삼킨다.


오늘의 메뉴는 피자와 나쵸칩

피자의 도우는 상용품이지만

여자가 직접 버섯을 손질하고

다진고기를 얹고 

모짜렐라와 슈레더 치즈를 얹어 

토마토 소스와 함께 오븐에서 구워낸 것이다.


남은 치즈는 나쵸에 얹어 전자레인지에 뎁히고

살사소스와 함께 내온다면 꽤나 괜찮은 양식이 완성된다.


하지만... 남자가 침을 삼키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여자가 하는 음식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맛있다.


종류도 다앙햐다.

피자

햄버거,

파스타

리조또

샌드위치

스크램블 에그

각종 도너츠

식빵을 활용한 허니브레드나 계란빵

바게뜨라도 남았다면 마늘을 갈아 직접 갈릭브레드로 재탄생시킨다.


…하지만

남자는 한국인이다.

2주가 넘도록 김치나 단무지조차 없이 피클 몆조각에 기대서 양식을 먹고 있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곳은 카페고

한식이나 중식처럼 자극적인 향신료가 많이 쓰이는 음식은 하기 힘들다.


향이 제법 강한 토마토소스가 쓰인 피자나 스파게티도

남자만을 위한 특별메뉴다.


맛있어 보이고, 실제로  맛있지만

먹기 힘든 음식을 향해 남자는 손을 뻗는다.


‘오늘은 꼭 말하자’

남자는 메는 목을 탄산도 없는 생수로 달래며 다짐한다.


남자의 텀블러엔, 우유가 가득 섞인 고소한 카페라떼가 있다.

…..왠지 모르게 소주가 그리워진다.



마감시간

여자가 카페의 불을 끄고

남자는 충전기와 노트북을 가방에 집어넣는다.


더이상 미룬다면 시간이 없다.

남자는, 카페 출입구에서 여자의 앞을 막아선다.


“저.. 사장님!. 내일은 저랑 같이 식사 하실까요?”


“네. 좋죠.”

남자의 결의가 무색해지듯 단숨에 나오는 긍정의 답변


“와.. 좋죠!. 그렇죠?  메뉴는 제가 고를게요. 제가 사도록 하죠”

남자는 말까지 더듬으며 고민한다.

내일은 불타는 금요일.

어떤 음식을 골라야 하는가!

삼겹살? 느끼해

곱창? 여자랑 먹기엔 좀

짬뽕?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밤늦게 여는 중식집이 있던가?

닭발? 여자들도 좋아한다던데.


“밖에서 먹기엔 조금... 드시고 싶으신거 말씀하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하지만, 뜻밖에서 남자와 여자의 인식이 엇갈렸다.


여자는, 이 카페 안에서 같이 식사를 할 요량이다.

이대로라면 코쟁이 양놈들이나 먹는 음식을 또 먹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짬뽕을 해먹을 순 없잖아요. 나가서 한식 드시죠 한식. 맵고 얼큰한거 어떠세요?”

남자는 조금 강하게 나간다.

얻어먹는 주제에, 불만도 많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다.

한국인에게 매운 음식이란 그런 것이다.


“음... 그정도는 괜찮아요. 주문 받았습니다~”


여자는 고객에게 응대하듯 남자에게 대답한다.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를 카페 입구에서 밀어내고

여자는 카페의 잠금장치를 설정한다.


다음 날 저녁시간.

여자는 직원 전용이라 적힌 사무실에서 연신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낸다.


손님을 맞이해야할 카운터엔


[용무가 있으시면 눌러주세요]


라는 안내판과 차임벨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누군가가 벨을 누르면,

달그락 거리는 와중에도 쏜살같이 튀어나와 손님을 맞이하고 커피를 준비한다.


그리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길 반복한다.


“괜한 이야길 꺼냈나?”


남자는 앉아있는 이 자리가 불편하다.

어차피 며칠만 있으면 글도 마무리 될텐데

조용히 여자가 해주는 음식이나 먹을걸.

어린애도 아니고 반찬투정을 했다가 지금 이모양이다.


사무실 문 틈 사이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긴다.

문 앞이라도 지나간다면, 무언가를 볶아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엎질러진 물에 관심을 떨쳐내기위해

글쓴이는 글을 쓰는데 몰두한다.


사실, 여자 몰래 다른 단편을 하나 더 써내고 있다.

아무리 여자의 첨삭이 완벽했다 한들,

남자를 순식간에 프로로 만들어 주는 건 아니다.


여자를 놀래켜주고 싶다.

이전에 여자에게 보여주었던 이야기의 후편을 만들어낼 재간은 없다.

대신에, 새로운 글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그게 아마추어니까.


분량은 기존 글에 비해 짧지만

여자가 보여준 품평을 의식해서

오탈자도 최대한 걸러내고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글의 짜임새를 도식화해서

모순되는 부분이나 어색한 점들을 줄여나갔다.


여자가 글을 읽고 만족해한다면 그때 이야기 하는 것이다.


‘고료는 필요없습니다.’


크으,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작전이다.


“들어오세요~”

직원 전용이라 적힌 사무실에서, 남자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의 문을 밀어제낀다.


“와…”

사무실 안을 가득 채운 습기와

코끝을 찌르는 매운 향.

중식집에서 느낄 수 잇는 화유의 냄새


휴대용 가스버너를 앞에 둔 채

여자가 남자를 맞이한다.


“이쪽에 앉으세요”


여자는 남자를 자리로 안내하고

집게와 국자를 들어 그릇에 음식을 담아준다.


“이거,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자신의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행동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시원한 빨간 국물과 오동통한 면발의 유혹은 이기기 힘들다.


“짬뽕은 처음 해봤는데, 입맛에 잘 맞으면 좋겠네요”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처음이라고 하기엔 고명의 모양새나, 면의 익기나, 국물의 색깔이

전문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잘 먹겠습니다.”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밥도 있으니까요”


남자는 면발을 집어내다 말고, 질문을 한다.

"저기... 저한테 왜 이리 잘해주세요?"


"잘해주다니요. 그냥 밥 한끼 대접하는것 뿐인걸요"


"그래도, 이렇게 매일같이 차려주시는건, 뭔가..."


이상하다는 말을 남자는 내뱉지 않는다.

상대방의 호의를 별난 것 취급할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다.


"저는, 요리하는 걸 참 좋아해요"


"저번에도 말씀해 주셨어요."


"음...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여자는 머리에 손을 대고선 골몰한다.


"요리기 취미니까, 제가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손님들한테 음식도 팔아요.


 하지만 그건... 돈을 받고 하는 거래잖아요?

아무리 자신있는 음식도, 누군가는 별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클레임도 걸어와요.


하지만, 이렇게 작가님하고 식사하다보면, 요리하는게 참 재미있어요.

언제나 작가님은 불평불만없이 맛있게 드셔주시는걸요"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취미가 직업이 되면, 더이상 그것을 즐길 수 없다.

남자에게 글이 그러했듯.

여자에겐 요리가 그러하다.


남자가 원하는게 추천과 조회수라면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맛있게 먹어줄 사람이다.



결국 밥까지 한공기 국물에 말아먹는다.

세면대에서 양치를 했지만, 위 속에서 양파내음이 올라오는 듯 하다.


중식임에도, 짬뽕은 분명 한국인이 만든 음식이다.

자신의 DNA가 내뿜는 만족감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저녁식사가 늦었다.

중식집에서 단 10분이면 나오고

배달음식으로 적격인 메뉴이기도 하지만.


짬뽕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재료를 손질하고 

육수도 준비해야한다. 


한시간 뒤면 카페의 마감시간이다.

남자는 열정을 좀 더 불태워, 글쓰기에 몰두하기로 한다.



“어.. 마감 안하세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은 마감시간에서 30분을 지나고 있다.


주변에 손님들도 보이지 않고

바깥은 간판도 불이 꺼진 채 가로등 불빛만이 반짝거린다. 


“내일은 쉬는날 이거든요”


… 무언가 대답이 잘 맞지 않는다.


“네?”

분명 내일은 주말인 토요일인데. 카페에서 대목인 주말장사를 하지 않는다니

이상하다.


“내일은 저희 카페 휴일이라구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아휴. 사장님도 쉬셔야죠. 저는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괜찮아요.”

가방을 싸려는 남자를, 여자가 가로막는다.


“저기... 사장님?”


“오늘은 계속 남아서 쓰셔도 괜찮아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저도, 집에 가서 씻고 자야죠.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다.

남자는 여자를 제치고, 카페의 문을 열어 제낀다.


[덜컹]


[덜컹덜컹]


…..


“그… 사장님? 문이 열리지 않는데요?”


뒤돌아 보기가 무섭다.

카페의 정문이 잠긴채 열리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곳엔 여자와 남자 단 둘이였을까?


“제가, 괜찮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유리도 된 카페 현관문에. 여자가 다가오는 모습이 비춰진다.

여자는 말을 이어간다.


“제가. 지금까지 너무 저만 생각했나봐요.

 제 입맛에 맞다고 음식도 양식 위주로 준비해 드리고

 제가 보기 편하다고 저희 카페에서 집필하도록 시키고.


 어제 짬뽕 이야기 하시고 나서, 생각이 번쩍 뜨였어요.


 그래, 좋은 작품을 위해선, 작가님에게 편한 환경을 만들어 드려야 했어요

 

 식재료는 뭐든지 있답니다. 말씀만 하시면 제가 만들어드릴게요.

 주무실거라면, 사무실에 간이 침대가 있답니다.

 씻거나 용변이 필요하시다면, 저희 카페 화장실을 이용해주시면 되요.

 커피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가 직접 타드릴게요”


“저기..사장님”

두려움에 못이겨, 결국 뒤를 돌아본다.


“작가님께선, 글만 써주시면 되요. 고료 받으셔야죠”

받을 생각조차도 없던 고료가, 남자의 앞길을 막아선다.


지금이라도 이야기 하면 된다.

당신 미쳤냐고

그깟 돈때문에 사람을 가두냐고

당장 내보내달라고


"해...핸드폰"

남자가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경찰에 신고를 하는게 훨씬 나을 것이다.


"작가님 스마트폰은, 제가 잘 챙겨놨어요.

잠시 충전중이랍니다. 다른 생각은 안하셔도 돼요.

인터넷 공유기도 꺼놨고, 현관 바깥 셔터도 내려놨어요.

창문에 블라인드도 모두 쳐 놨으니까.


작가님은 완성될 때 까지 글에만 집중하시면 되요"


방금까지 여자에게 동질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여자가 무섭다.


자신의 한마디에 카페에서 짬뽕도 끓여주는 여자인데

한다면 지금 자신을 가두고 통조림을 시킬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사방이 파티션으로 막힌

카페의 명당자리로 되돌아간다.



“아침식사는 뭐가 좋으시겠어요? 김치찌개?”


카페 안 간이침대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어제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글을 쓰느라 늦게 잠들었다.


남자의 자리 옆에 앉아서, 여자는 조용히 독서를 한다.

이따금씩 식어버린 커피를 리필해주고,

크래커나 견과류 같은 야식을 건네주기도 한다.


커피로도 못이기는 졸음이 쏟아져오자.

여자는 남자를 이끌고 간이침대에 눕혔다.


카페인 때문에 깊은 잠에 들지도 못하는데

눕자마자 정신을 잃듯 잠에 빠졌다.


“네”

남자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화장실로 향한다.


용변을 보고, 손을 씻으며 생각한다.

창문이라도 부수고 탈출할까?

여자를 제압하고 카드키를 뺏을까?


생각만 많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3주라는 시간동안,  카페 주인은 글쓴이 옆에 붙어서 살뜰히 챙겨주었다.

주중이건 주말이건, 때가 되면 식사를 대접해주고

언제나 자신을 위해 커피나 차를 끓여주고

간간히 말동무도 해주면서

자신이 하는 부탁은 무엇이든 응해주었다.


“소설만 다 쓴다면, 내보내줄지도 몰라…”


어차피 주말동안 이 카페에 있을 생각이었다.

바뀐것은 하나도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오히려 남자의 입맛에 맞는 아침식사가 지금 차려지고 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2일정도, 통조림이 된다고 해서 죽는건 아니잖아?


어쩌면, 여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남자는 말도 안된다는걸 인지하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잠시, 한숨 돌리고 할게요"


이제는 시간이 몇 시 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면 글을 쓰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커피를 마시고, 당을 충전한다.


이대로 가다간 가게의 인기상품인,

설탕에 절여진 모카번이 될 것 같다.


"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뇨.. 그냥 물이면 됩니다."


..

..

..


"그.. 왜 하필 저였나요?"

글쓴이는 자신의 텀블러를 만지며 카운터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질문한다.


"작가님 소설이 인상깊었어요"


"그래도, 연애글이라면 다른 사람도 많잖아요. 

서점에만 가도 진짜 작가들의 문학소설도 있구요"


"흐음... 여자주인공이 참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네?"


"거기 게시판에 올라오는 얀데레니 어쩌니 하는 피폐 취향의 글들, 

여자 주인공 대부분이 실패하잖아요. 

남자들에게 차이고, 비난당하고...


과격하더라도 사랑에 만큼은 최선을 다한건데.

동정이 가더라구요"


"근데... 왜 하필 저를?"


"그냥요. 재미있거든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요"


이유라곤 단순하다.

다음 이야기가 보고싶다.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과 별 반 차이가 없다.


"그럼, 전 그 다음이야기를 계속 써볼까요?"


남자는, 조금 힘을 내보기로 한다

이곳엔 자신을 가두고 통조림을 시키는 납치범이 아니라.

독자와 글쓴이가 마주앉아 있다.


어차피, 주말엔 여기서 보내기로 했으니까.

별 차이는 없다.



“소설은 잘 쓰여지나요?”


소반에 커피를 담아 남자에게 건네는 여자.

벌써 오늘만 세 잔째다.


“네. 뭐... 금방 완성될 겁니다.”

현재 시간은 일요일 오후,


어제도 밤을 새듯이 소설을 쓰고

카페인에 취해 겨우 2~3시간만 잠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여자가 해주는 아침식사로 돈까스를 먹었다.


정신이 몽롱하다.

카페인을 먹으며 밤을 지새는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머리회전이 잘 되지 않고, 눈은 건조하기만 하다.

헌데 타자만큼은 술술 쳐지는것이 자기자신도 신기히다.


소설은 오전 나절에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끝 까지 다시 읽어보며, 오자를 잡아내고,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검토한다.


“얼른 보고싶네요~”

여자는 어린애 마냥, 방방 뛰면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남자는 USB를 들고, 카페 구석에 위치한 프린터로 향한다.

40여장이 넘는 출력물이 레이저 프린터에서 연이어 나온다.


집게를 두어개 들어, 한 편씩 집어낸다.

책상에 서류뭉치를 한번 탁 치고.

여자에게 건넨다.


“여기, 완성본입니다.”


“와아…정말 완성된거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자는 양손으로 서류뭉치를 받아들고, 카운터에 앉는다.


남자는, 카운터의 맞은편에 앉는다.

여자가 남자를 위해 준비해준 커피를 홀짝인다.


다시 한 번, 카페인이 혈류를 타고 흐른다.

몽롱한 정신이 잔틴계 각성제에 조금이나마 깨어난다.


여자는 두 시간이고 꼼작하지 않은 채 글을 읽어 나간다.

남자도, 커피를 홀짝이며 그런 여자를 쳐다본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하아…”

여자는 한숨을 쉬며 서류를 내려놓는다.


“별로...이신가요?”

남자가 조심스레 의견을 묻는다.

아까 그 한숨소리는...



“아뇨. 잠시만요”

여자는 숨을 깊게 들이쉬다

한번 더 내쉰다.


“하아…. 너~~~~무 좋았어요

특히 새로 써주신 이 두번째 단편,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조금씩 압박해가는 그 떨림이 너무 좋아요!

거봐요. 작가님은 하면 된다니까요”


“하하...감사합니다.”


“아쉽다. 다음 이야기도 읽고 싶은데..."


"..."

남자는 아무말 없이, 여자를 계속 쳐다본다.

여자의 말을 기다린다.


“여기, 약속했던 고료입니다.”


헌데, 여자가 남자에게 돈봉투를 건넨다.

세지 않았지만 65만원이 들어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주신 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남자는, 처음에 생각했던 대사를 여자에게 건넨다.

여자가 내미는 돈 봉투를 살며시 밀어낸다.


“그건 그거구, 이건 꼭 받아주셔야 해요!”


여자와 실랑이를 벌인다,

이내 여자가 돈봉투를 남자의 가방속으로 집어 넣어버리곤

가방째로 남자에게 건네준다.


남자는 쓴 웃음을 지으며 가방을 받아든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조심스레, 현관을 열어달라는 눈치를 준다.


"흐음.. 그러지 말고, 저녁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하지만, 여자는 카드키를 꺼낼 생각조차 안한다.


"다음 편. 보고 싶으세요?"

마지못해. 글쓴이가 가방에서 서류뭉치 하나와 USB를 꺼낸다.


"와! 정말요? 그새 속편까지 쓰신건가요?"

여자는 눈을 반짝인다. 


남자가 준비한 회심의 역작은, 아까 건네졌던 서류들만이 아니다.

여자만을 위해 준비한 한 편의 글.


고료를 받고자 하진 않았지만

고료를 받고 난 뒤에 건네는 이 소설은

그 어떠한 것도 상관없이, 순전히 여자만을 위해 준비한 남자의 호의다.


여자는 서류뭉치를 향해 손을 뻗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다.


"저기… 그 작품은 얼마인가요? 70만원?"


여자의 물음에, 남자는 절망한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남자가 가장 원하는 건 돈도 자유도 아니다.


만약에, 여자가 순수한 관심을 보인다면

그냥 '그것도 읽어보고 싶어요'라고 말 했다면,

남자는 그냥 글을 여자에게 건네주었을 것이다. 

여자가 글을 읽어주길 기다릴 것이다.

탈출은 뒷전으로 미루고, 감상을 들으며 저녁식사를 같이 했을 것이다..


글쓴이가 원하는건,

언제나 알량한 관심이니까.


남자는, 커피가 들어있는 텀블러를 연다.

"여기, 글이 저장된 USB입니다. 인터넷이 안되니까, 클라우드도 백업도 없습니다."


그리고. USB를 텀블러 속으로 집어넣는다.


"...작가님? 돈이 혹시 모자르세요? 배..백만원이면 될까요?"

여자가, 최악의 선택을 연이어 저지른다.


남지는 손에 들고있는 서류뭉치를 들고 주방으로 향한다.


"백오십! 백오십 드릴게요!"

여자가 남자를 붙잡으려 하지만, 남자는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어 나간다.

붙잡는 여자를 힘으로 이겨낸다.


그리고, 종이를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올린다.

타타다닥, LPG 가스를 점화한다.


“아아아아악!!!!”

여자가 소리를 지른다. 남자를 밀쳐내고, 가스버너의 불을 줄이지만, 이미 종이의 1/3이 타버린 뒤다.


"안돼. 안돼안돼"

여자는 종이를 바닥으로 떨구고, 발로 밟아서 불을 끄려한다.

불에 탄 종이는 여자의 발길질에 찢어지기만 할 뿐이다.


"어…어떡해.."

소화기를 찾아 두리번 거린다.


그리고, 화재를 감지한 경보기가 울린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고, 잠겨진 문이 열린다. 

바깥쪽 철제 셔터도, 비상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간이 방화문이 설치되어 있다.


남자는 유유히, 열려진 카페 현관을 향해 걷는다.


"아….아아..."

불탄 종이가, 이젠 물에 젖는다.

여자는 종이뭉치를 어떻게든 건져내려 노력하지만,

여자가 손을 대는 그대로로 찢겨져 나간다.

그리고, 자신을 무시하고 나가려는 남자를 발견한다.


"기다려!!"

남자를 붙잡으러 다시 달려가지만, 

얼마 남지 않은 종이뭉치가 물에 흐트러진다.

고료를 내고 구매한 남자의 글도, 물에 흠뻑 젖어 망가져간다.


종이뭉치들과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여자.


남자가 건물을 나갈 즈음엔, 남자의 혼신의 역작은. 그 형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3일만에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씻지도 않고 잠에 빠졌을 거예요.


월요일 새벽에 겨우 깨어나, 회사에 늦지 않게 출근을 했을 거라고 봐요.


점심시간엔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감상하겠죠. 

화재나 납치 이야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자 혼자서 이 카페를 치우고 있으니까요. 


퇴근하고 나선, 자신이 자주 가던 게시판에 접속을 할거예요.

지금까지 올렸던 글들을 모두 지우네요.

당연히, 기존처럼 백업같은 건 하지도 않겠죠.


이제, 글 쓰는 것 따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할까요?.


여자의 마음은 알지도 못한 채.

남자는 속편하게,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이야기를 읽어보네요.

댓글을 달기도 하고, 추천을 누르기도 합니다.


여자는 생각해요.

그저 재밌는 글을 읽고 싶었을 뿐이고.

남자에게 해주는 요리가 즐거웠고

남자와 하는 이야기는 좋았으며

남자가 쓰는 이야기가 기대되었어요.


여자의 요리가 알맞은 가격에 손님들에게 내어졌듯이,

남자의 글에도 알맞은 가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


남자의 텀블러에서 USB를 꺼내, 깨끗한 물에 씻고 말려요.

복구업체에 가져가서, 복구를 의뢰합니다.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어요. 꼴랑 32GB짜리 USB인데도 50만원을 달라네요.

그의 소설보다 값어치 있는 금액은 아니니까, 흔쾌히 의뢰를 맡겼어요.


3시간 뒤에, 복구업체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거기엔, 지금까지 남자가 써놓은 TXT 파일이 줄지어 있었답니다.


게시판에서 본 글들도 있고.

보지 못한 글들도 있고.

저에게 의뢰를 받아 쓴 글들도 있었죠.


가장 최근에 쓰여진건, 


[카페 사장님께]


라는 제목이였어요.


제가 기대했던 속편은 없었지만. 

마지막에 불타서 보지 못한 그 글이 과연 이것일까요?


글의 내용은 담담한 것들 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났는지.

두 남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남자가 여자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여자는 처음으로 타자를 두드려봤어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건 어려우니까.

남자가 어떻게 행동했을지 상상하고

여자가 했던 일들을 적어나가요.


혹시나 싶어

남자에게 받은 명함을 꺼내들어요.

연락처가 있지만... 연락하기엔 두려움이 앞서요.


인터넷 게시판의 로그인 버튼을 눌러봐요.

혹시나 싶어, 명함에 적힌 이메일을 아이디로

핸드폰 뒷자리를 비밀번호로 해서 로그인 해봐요.


접속이 된 걸 보니

정말... 요즘 사람들이 보안에 신경쓰지 않는다는게 실감이 가네요.

저 또한 카페 출입문 비밀번호가 전화번호인건 비밀이지만요.


아직 치워지지 않은 카페 사무실에서.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적어준 글과

자신이 남자에게 보내는 글을 합쳐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말하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과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한 가지만, 가장 중요한걸 이야기 할겁니다.

다음주면 스프링클러에 망가진 커피머신이 새로 들어온답니다. 

매장정리도 끝내고, 영업을 시작할 수 있어요.


본래 여자의 취미는 요리입니다.

지금이야 음식을 팔기 때문에, 돈을 받고 하는 일이 되었지요.


하지만, 한번만 더,

소중한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어요.

남자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식사, 하러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추신) 사설 대회 상품으로 받았던, 10만원 외식 상품권은 제가 거절했어요.

당분간은, 제가 만든 음식만 먹어줬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