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얀붕이와 얀순이는 서로의 부모가 재혼을 하면서 만났다.


남매의 새 부모들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며 보듬어 주는 가족이었다.


불행하게도 가족의 행복은 머지않아 작은 균열을 통해 깨지게 되었다.


남매는 각자의 부모가 이혼 이전에 겪었던 문제, 그래서 결국 이혼하게 되었던 문제들로 또 고통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의 고통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으니.


부모는 얀붕이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말같지도 않은 논리를 펼치면서.


새아버지는 술로 인해서. 어쩌면 오래전부터 감춰두었던 더러운 감정을 쏟아냈다.


어린 얀붕이었지만, 그보다 더 어린 얀순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가족이니까.


그는 모든 학대를 견뎌내고, 그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얀순이를 학대로부터 지켜내었다.


얀순이도 마지막 남은 가족을 따랐다. 눈물을 머금은 채로 자신을 대신해 매번 희생하는 오빠를 꼬옥 안아주었다.


얀붕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부모는 무거운 짐을 털고 떠나버렸다. 애저녁에 버린 책임감과 그들의 죄는 남겨 둔 채로.


하지만 서로가 있었으니 괜찮았다.






지하실은 굳게 잠겼지만, 얀붕이의 희생은 학대가 없어진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물론 남부럽지 않게 얀순이를 키우는 것은 부족했어도, 그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얀순이는 물질적으론 몰라도 다른 방면에선 남부럽지 않은 모범생이 되었다.


어릴 적에 받은,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인한 백발은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은색으로 빛났고,


특유의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주변에 꼬여들었지만, 곧 벽보다도 못한 무언가와 대화하는 느낌을 느꼈다.


결국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신경써주는 담임 선생을 제외하고는 아예 없었다.


온갖 따돌림도, 선생의 인정과 이 정도면 어디든 원서 넣어도 되겠다는 칭찬에도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지만,


단 한사람때문에. 그녀는 항상 슬퍼했다.


그의 희생을 점점 견딜 수 없었던 얀순이는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오빠에게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이런 거 없어도 괜찮으니까, 같이 학교 다니자 오빠."

"배운지 좀 됐어도 내가 조금만 가르쳐 주면 진도 따라갈 수 있다니깐? 오빠도 머리 엄청 좋잖아."


"머리는 너만 좋으면 됐지. 그래도 여동생이랑 어떻게 같은 학년을 다니겠냐. 이 오빠는 부끄럽단다."


"그 정도는 금방 적응 돼. 쪼끔 고장났다고 안 쓸거야? 고쳐서 써야지."


"표현봐라. 이 녀석이."


지하실에서 지어주던 눈물섞인 미소가 아닌, 웃음를 짓는 오빠를 보며,


얀순이는 자신의 심장을 쿡쿡 찌르던 그 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한 줄기 빛이었던 마지막 가족이. 평생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그녀는 얀붕이에게 집착했지만... 딱히 집착할 것도 없었다.


중졸 얀붕이가 아는 여자는 커녕 지속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상처입고 버려진 얀붕이도 마찬가지로, 얀순이에게만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었으니까.






방과 후의 얀순이는 그의 체취에 항상 취했고, 그의 물건에게도 얀붕이를 향한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히 그에게는 더욱.


매일 밤 늦게 돌아오는 얀붕이를 강아지처럼 기다리다가 허리를 꼬옥 안으려 박치기를 하는 여동생.


곧바로 허리에 얼굴을 부비부비 문지르는 여동생을 보는 것은 얀붕이의 심장에 그리 좋지 않았다.


"밥 해놨어. 밖에서 먹고 온다고 거짓말하는거 다 알아 오빠."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그래 씻고 나서 먹을게."


"아. 오늘 야자하고 오느라 나도 못 씻었는데 아직."

"오빠, 오랜만에 같이 씻을래?"


"밥부터 먹어야징."


"히잉....그럼 밥 먹고 나서..."


"아 피곤해 밥 먹을 힘도 없네. 그냥 잘까."


"히잉......... 알았어...... 먼저 씻을게....."


"그래. 대신에 오늘은 밥 먹을 때 앞에 앉아도 돼. 징그럽게 안 쳐다보는 조건 하에."


"히히. 넹~"


점점 귀여워지는 그녀가 점점 들이대기 시작한다는 것은 얀붕이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퇴근하면 야릇한 냄새를 풍기는 그의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능히 예상할 수 있었다. 횟수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지만.


어쨌든, 얀붕이는 여동생의 사랑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얀붕이의 사랑은 너무 가족적인 것이었다.


피는 섞이지 않았다지만, 나락 인생의 자신과 얽히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결과를 부르지 못할 것이다.


자신도 타인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아직 서툴지만, 그녀도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미래에 그녀의 행복할 인생을 보는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끝맺음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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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


얀순이의 등교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알람을 재빨리 끄고, 눈을 뜨자.


여동생이 내 가슴을 껴안고 자고 있다.


무겁다.


"오빠.... 튼튼해...."


"무겁다. 떨어져라. 내가 섹드립 하지 말라고 했지?"


"나... 나는 엄하게 다뤄주는 오빠도 좋아."


"생각하는 것 좀 봐. 이 녀석이."


녀석에게 넌지시 다른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던져주는 것은 어떨까. 짧은 생각이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한창 때의 여고생이니 오빠 물건 말고 다른 사람으로 풀어도 괜찮아. 허락 받으러 오면 말이지."


"아아앟??? 어떻게??? 어떻게 알았어?????? 부끄러워......"


"앞으로 섹드립 하지 말 것. 감당도 못할 주제에."


"........"


"대답해야지."


"그... 썼던 건 계속 써도 돼?"


"이 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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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는 오빠의 공략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불확실했지만,


자신의 흔적들 중 일부를 들킨 것은. 거기다 제일 들키기 싫었던 것을 들킨 것은 부끄러웠지만


오히려 오빠가 내 마음을 확인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얀순이가 마음을 다잡던 날 밤.


"오빠...."


"문은 또 어떻게 땄대? 환장하겠네 진짜로."


"그건 안중요한데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얀붕이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오빠..... 오늘...."


"얀순아."


"어..?"


"내 여동생 얀순이. 귀여운 얀순이."


"헤헤헤...오빠...드디어..."


"하지만 이 오빠는 슬슬 지친다. 이제."


"어.....???"


"무슨 뜻인지 알잖아. 내가 오래전부터 눈치챘단 것도 알잖아."

"내가 모른척했단 것도, 그 이유도 알잖아 얀순아."


"오빠...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마..."


"인정하기 싫어도. 알잖아. 내 생각이 뭔지.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흐.....흐흑......"


"미안해."


"흐허어어어엉.....흐아아아아아앙..."


"미안해."


"왜.... 왜 안돼는데..."


"나는... 너를..."


"흑.... 아니야... 흐윽.... 그만 말해..."


"......."


"돌아갈게...."


"그래..."







그는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진 사람이다.


오늘은 평소답지 않게 얀붕이의 아침이 편의점 레토르트이다. 당연히 사서 그 자리에서 먹었다.


집에서 편하게 먹을 시간도 있었지만,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얀순이는 감기를 핑계로 결석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직접 가본다며 협박했을 담임이었지만, 얀순이에겐 푹 쉬라고 했다.


얀순이는 방에서 이불을 뒤집은 채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제 오빠를 어떻게 봐야 할지 등등의 생각 정리를 하는 가운데...


천천히. 얀순이의 마음에 흑색 빛이 나돌았다. 그 시절의 어두운 기억. 뒤틀린 관계. 그리고,


감춰왔던. 마음에 남은 그의 눈물섞인 미소에 감춰졌던.


뒤틀린. 자신의 사랑.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그녀의 마음처럼 새까맣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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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때는 두 시간 전부터 퇴근하고 싶다고 마음 속으로 아우성을 쳤을 테지만,


오늘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 마주해야 할 일이다.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다.


"왔어어어어어??"


"그래 임마."


여동생은 피곤해 보인다. 그렇지 않도록 연기한다. 기특하다. 미안해.


"오늘 저녁은 뭘까요."


"씻고 확인할게요."


"녱."








"이리와. 앉아. 맞은편에."


"앟. 웬일로?"


"상이다."


"흐흐.... 이 인간이.... 눈치없게...."


"그러냐."


"아니다. 상이면 받아야지요? 남들 다 받는 것도 아닌데."


"그렇지."


부담스러웠던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그 강렬함이 많이 누그러졌다.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러자, 녀석이 미소 짓는다. 어딘가 익숙하다. 어디서 봤던 표정이더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눈동자가 시커멓다. 원래 고생하면 눈빛도 바뀐다는게 그런 의미인가 생각하며 식사를 재촉한다.


갑자기 기억난다. 저 표정은 내가 가르쳐줬다. 그 시절에. 가르쳐줄 마음은 없었는데. 가슴 한 켠이 아려 온다.


머리도 아프다. 내 죄책감 때문이리라.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낌새를 눈치챘는지 그녀의 표정 뒤에 숨겨졌던 눈빛이 빛을 발한다. 활활 타는 것 같다.


저 눈빛은 어젯밤에 봤었다. 시야가 멀어진다.









나는 지금 빌어먹을 추억 속 장소에 있다.


잊지 못할 기억이었지만, 강인한 두 사람은 이겨냈다.


다만, 내겐 이겨낼 시련이 몇 가지 더 늘어났다.


일단 단단히 묶인 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만, 이럴 짓을 할 사람은 세상에 한 명 뿐이다. 뭐 미친 사이코패스가 묶어 놨을 수도 있긴 하겠다.


"얀순아."


"응 오빠."


기척도 느끼지 못했건만, 등 뒤에서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한 녀석. 탈출 시도를 했으면 뭔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직 아무 짓도 안했어. 오빠는 깨끗해."


"이 상황에 이 녀석이... 어쨌든, 이제 어쩌려고."


"오빠도 예상하다시피 받아줄 때까지 고백하기."


"되겠니?"


"오빠. 예전부터...."


"되겠냐고 얀순아. 내가 할 말이 더 있지 않다는 건 너도 잘 알아."


"그런거 몰라. 모르니까 제발 조용히 하고 좀 들어줘. 한 번도 말 못했어. 오빠는 한번도 말 못하게 했어."


"그 이유도 넌 알아."


"그딴거 몰라!!!!!!!!!!!!!!!! 조용히 해!!!!!!!!!!!!!!!!!!!!"


여동생은 똑똑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을 거부했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정답을 찾았을 테니.


내 방법이 역효과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도 계속 설득해야만 했다. 다른 방법이 있긴 할까?


"이제 들어줘. 오빠... 예전부터..."


"내 목소리가 그리 크진 않잖아. 소리도 니가 질렀구만."


"......나 장난하는거 아니야. 제발 장난 좀 치지 말아줘."


"알아. 끝날 때까지 안 풀어줄 거 아니까. 너 설득하려는 거야."


"안 들을거야. 오빠도 말 못하게 했잖아."


"네가 시작하기 전에 설득하려고. 시작하고 나면 못 돌아갈 것 같아서."


"설득이고 뭐고 오빠도 잘 알고 있어. 나갈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는거. 결국 오빠도 결국 인정해야 할 거야. 나도 다 알아. 오빠가 뭔 생각 하는지."


"그렇겠지. 하나만 빼고 말이지."


아직 대화가 통할 때 조금씩 누그러뜨려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전 처음으로 그녀의 부탁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것으로 내 마음은 다 전해졌을 것이다.


허나 내가 간과한 게 있다면, 점점 심해지는 여동생의 심리적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았단 것이고,


우리에게 각자 흐르는, 씻을 수 없는, 더러운 피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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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얀순이는 피에 새겨진 본능대로 행동하려 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혀 그것으로 모든 마음이 물들었으니.


검은색 사랑.


어떤 감정이든 더럽혀 검게 칠해버리는 그들의 더러운 피가, 이 상황을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네. 쓰는 법은 잘 아나 보구나."


"제발... 나 이거 쓰기 싫어... 그러니 이제 인정해. 제발!!!!"


강인한 얀붕이의 정신은 얀순이의 행동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얀붕이는 끊임없이 설득했고, 얀순이는 끊임없이... '행동'했다.








감금된 지 사흘째 되는 날. 얀순이는 점점 미쳐가는 것 같았지만, 얀붕이에게도 어쩔 방도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저 검게 칠해져버린 마음에 한 줄기 빛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얀순이가 돌아왔다. 그녀는 울고 있다.


얀붕이의 마음에 처음으로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녀는 울면서 다가와 옷을 한 꺼풀씩 벗기 시작했다.


"난...흐흑...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흑.... 강제로라도 오빠의 마음이 필요해요. 제발 오빠의 마음을 주세요."


그 동안 고백하는 말 한마디도 못하게 했던 것이 무색하게,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드디어 비참한 고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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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부터 여동생을 지켜왔다. 누구도 여동생에게 상처줄 수 없도록 내가 온 몸으로 막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여동생은 다름 아닌 나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


잠깐 사이에 결국 내가 우려했던대로 여동생의 고백이 시작됐고, 나는 여동생의 가장 비참한 모습을 보아야 했다.


나로부터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덕지덕지 꿰메어 내게 전했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나도 알고 있었다. 거지같은 방어기제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을 끝까지 감출 순 없다고. 알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지 모를 이 관계과 우리의 인생은 결국 파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받아주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더 이상 상처주지 않도록.


"그래. 얀순아..... 너 하고싶은 대로.... 다 하자.... 이리 와...."


일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변했다. 그녀의 표정도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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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어. 애초에, 이건 내가 이기는 게임이었으니까. 결국 내가 원하는대로 될 거라고.


시간이 갈 수록 나는 점차 초조해져 갔어. 오빠도 날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확신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반항하는거야?


정말? 정말 아니야? 나는 정말 그냥 가족이야? 가족이라서 이때까지 그랬어?


점차 내 마음이 찢겨나가기 시작했어. 정말 아니구나.


그래도, 난.... 포기 못해.....


몸으로라도.... 오빠의 책임감으로라도.... 난 오빠가 필요해.... 미안해... 쓰레기같은 동생이라서....


그러니 옆에 있게 해줘.....


옷을 벗었어. 이 짓 때문에 오빠가 내게 실망한다고 해도, 난 잠깐만이라도 옆에 있을래.


헤헤.. 그 정도만 허락해줘. 사랑하는 얀붕 오빠.






"그래. 얀순아..... 너 하고싶....."


얀붕 오빠가 내게 웃어줬다. 예전에 봤던 웃음이다.


여기. 지하실에서. 싫은 일이 끝나고선 내게 보여주었던 오빠의 그 미소.


오빠는 날 위해 미소지어줬다.


눈물 섞인 미소다.....


내가 한 학대로 인해. 상처받은 나를, 상처받을 나를, 나만을 지키고자 오빠가 웃었다.


내가 한 행동들이 떠올랐다.


내가 한 말들이 떠올랐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었는데, 나는..... 내가 오빠에게 했다. 내 손으로. 거기엔 당연하게도 피가 묻어있다.







아아... 얀붕 오빠. 이제 알았어. 내가 왜 안되는지.


나 같은 더러운 년이랑 오빠같이 빛나는 사람이 왜 함께 할 수 없는지.


난 오빠의 그 미소가 싫었어. 다신 보고싶지 않았어. 절대 그딴 표정 짓게 하지 않을거라 다짐했어.


이제 알았어. 오빠. 나랑 같이 있으면 오빠는 계속 그렇게 괜찮다고 내게 웃어 줄거야....


난 그런거 싫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오빠는 가도 돼.


오빠. 좋아해. 사랑해. 행복해.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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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가? 왜 안아줘? 난 그럴 자격 없어...."


"같이 가자. 사랑하는 여동생이 울고 있는데 어떻게 두고 가냐."


"안 돼. 나 이제 알았어. 그러니까 얀붕 오빠는 이제 가."




조용히 해라. 난 너한테 그런 표정 지으라고 가르쳐 준적 없으니까.


아니다. 저건 내가 가르쳐줬다. 시작부터 내 가정교육은 잘못되었다.


시작부터 우리 관계는 이렇게 될 것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보여준 그 미소가. 우릴 망가뜨렸다.


어쩔 수 없다. 그 때의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으니. 그래도 고장난 것은 고치면 된다. 너도. 나도.


네가 가르쳐줬잖아.




"안 가."


"왜 안 가는데...."


"나도 이제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안 가."


"흑...흑... 흐아아아아아앙...."


"또 우냐?"


"얀붕 오빠...... 미안해....... 흐아아아앙"


"뭐가 미안해. 넌 잘못 안했어. 그만 울어. 얀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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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울었냐?"


"응...."


얀붕이는 얀순이가 진정할 때까지 안아 주었다.


진정하고 보니, 얀순이는 팬티바람에 블라우스 차림으로 안겨 있었다. 부끄러웠다.


"........."


"너 안고 옮길랬는데, 힘이 안 들어간다. 너때매. 니가 나 들어."


"어어..?"


"침대로 가자."


"어어엏..?"






얀순이는 침대에 얀붕이를 내려 놓았다.


"잘 먹고 다니는지 힘은 세네. 난 못 먹고 다녔긴 해도 성인 남자를 들어?"


"얀붕 오빠만 들 수 있어. 이유는 몰라."


"어디가? 이리 누워."


"어어어엏...? 왜..?"


"몰라서 물으신다면 거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


"더 쉽게 말해달라고? 섹..."


"수갑 좀 가져 와도 될까요?"


"뭐... 뭘 하려고?"


"힘 빠진 얀붕 오빠한테 부끄러움을 선사할 거에요."


"안됩니다. 그냥 오세요."


"잠깐 거기 누워 계세요 환자님. 곧 신분조회하러 경찰이 올 겁니다."


"이리 오라고!"


"쾅!"


방문을 닫고 얀순이는 '그 차림'으로 우당탕탕 뛰어 다니며 물건을 찾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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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할려고 오라고 한 거 아니야..."


"학♡.... 조금만 참아줘 얀붕 오빠. 흐아♡...."


"으윽.... 손 풀어 빨리."


"오빠 나 페이스 떨어뜨리려고 그러지? 또 반항하려고 그러지? 이히히히... 흐읏♡! 아하악♡♡"


"그런 거 아니.... 으억... 이 녀석.... 끄악!"


"트득!"


그 순간. 수갑이 부러졌다. 그리 강한 구조로 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인지. 원래 이런 상황을 유도하러 만들어진 것인지.


"어앟.....한창 좋았는데....."


그녀가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틀렸다. 이 녀석은 그냥 자기 성벽을 나한테 끼워맞추고 있다.


내 위에 앉아 있는 그녀의 엉덩이를 붕대 감은 손으로 들고, 곧바로 찍어올린 다음 놓았다.


"아앙!"


기습적인 공격에 그녀가 당황했는지 나에게 엎어졌다.


"나도 처음이지만, 니가 너무 아프게 자세를 잡아서. 허리 아파. 이 변태야."


"엥? 엫? 흐아아앙♡♡!"


곧바로 몸을 뒤집어 그녀에게 올라탔다.


"이제 내 차례다. 건방진 녀석아. 이런 것도 좋아한댔지?"


"아...♡"


그녀의 눈동자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아마 그녀의 마음도. 내 마음도.





완전하진 않지만, 우리는 드디어 그 지하실에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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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싶었음. 표현이랑, 뭐 호칭 변화, 시점 전환 같은거.


오히려 읽는데 불편하진 않았을까 모르겠다.


맞다. 학원 얘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읍니다. 설정을 거의 다 배껴옴. ㅈㅅ합니다.


고마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