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황국 드래고니아를 통치하는 지고한 여왕 데오노라.

부도 명예도 미모도 다 갖춘 용 중의 용이지만 남편은 없다.


최근 남편을 얻기 위해 결투대회도 열어봤건만 참가한 모든 남자들이 자신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 채 살짝 휘두른 날개짓에 날려 떨어지거나 필살기 하나 맞추지도 못하고 항복을 선언하는 등 패배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조금만 민첩했어도 저 멀리 날려버린 검기에 몸을 던져 기꺼이 상대에게 찬란한 승리와 농익은 순결을 동시에 바쳤겠지만, 불행히도 결투대회를 전 국민이 직관하고 있던지라 순간적으로 망설여버린 게 문제였다.


혼자 방에서 홧술을 들이키고 있던 데오노라는 술김 덕분인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중대결단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창관으로 간다!


마계의 창관은 인간세계의 그것과는 개념 자체가 달라서, 창부인 마물이 도리어 창관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들어가서 자신을 지명한 남자 손님과 즐거운 하룻밤을 보낸 후 백년가약을 맺는 곳이다.

그렇기에 인간세계에서 통용되는 음습하고 퇴폐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지만 '지 스스로 남자 하나 못 꼬시는 번식탈락 노처녀 마물의 최종 종착지 아니냐' 라는 조롱어린 시선도 다소 존재하는 복잡미묘한 곳이기도 하다.

보통이라면 용황국의 여왕으로서 체면상 입에도 담지 않을 곳이지만 그 날의 데오노라님은 고독과 욕망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상태여서, 바로 로브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채 용이 잠드는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로 같은 골목 몇 개를 지나자 시녀들 사이에서 유명한 창관이 보였다. 저기서 자기 지인도 남편을 만났다던가. 혹여 정체를 들키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데오노라는 로브를 한 번 더 여미고 창관 안으로 들어갔다.

접수대에는 드래고니아에서 드문 마물인 교부타누키가 영업용 미소를 지은 채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접수대 뒤 벽에는 빽빽하게 거울이 걸려 있었다.


"안녕하신가, 이번엔 마물 손님이시군."


데오노라는 혹시나 교부타누키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우물쭈물 입을 열지 못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네. 여기엔 꽤나 지체높은 분들도 많이 오거든. 남편을 갖고는 싶지만, 여기 출입한다고는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클클클. 이름도 종족도 비밀이어도 괜찮아. 다만 이거 하나만 해주게나."


교부타누키가 웃으며 뒤에 있는 거울을 가르켰다. 자세히 보니 거울에는 드래곤, 웜, 와이번 등등 각종 마물들이 알몸으로 비쳐보이는 게 아닌가. 모두가 요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특이하게도, 손이나 부채 따위로 얼굴을 가린 채 나체만 드러내고 있었다.


"투영의 거울이라네. 옷을 벗고 자신있는 모습을 투영시켜서 내게 주게. 난 이걸 여기 접수대에 걸어놓을 거고, 남자 손님이 이걸 고른다면 바로 그대의 방에 넣어줄 예정이야. 마물이라면 얼굴도 지위도 아닌, 온전히 암컷으로서의 매력으로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어야지."


제가 찾던 창관 여기있네요. 데오노라는 얼른 거울을 받았다. 

설사 지명되지 않더라도 환불되지 않는 등록금까지 내버리고는, 바로 지정해 준 방에 들어가 얼굴을 가리고 거울에 알몸을 투영했다. 좀 과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등록금까지 낸 이상 돌이킬 수 있을리가 없었다.

거울을 건넨 다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교부타누키의 말에 따라, 데오노라는 초조하게 침대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만약 누군가 문을 열면 어떡하지?

로브를 벗으면 내가 누군지 알아볼텐데 뭐라 설명해야 하지?

날 봐버린 이상 덮칠 수밖에 없겠지?

덮치다 소란을 일으키면 골목 사람들이 다 날 알아봐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 만약... 밤을 보내게 된다면 뭐부터 해야하지? 역시 키스지? 키스 다음엔 펠라로...

아이는 몇 명을 낳는 게 좋을까?


한참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이,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후다닥 달려가 방문을 여니, 거기에는... 교부타누키가 있었다.


"미안하네... 그, 뭐냐... 영업이 끝났어."


뭐요? 하고 반문하려는데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눈에 비쳤다. 처음 들어오고 나서 5시간은 지나 있었다.


"오늘은 꽤 장사가 잘 되긴 했지만... 이, 이런 날도 있는 법이지. 너무 상심하지 말게나. 운이, 단지 운이 없는 거 뿐이니까..."


우물쭈물 변명하는 교부타누키를 지나쳐 카운터로 가 보니, 빽빽이 걸려 있던 거울들이 다 어디론가 가 버리고 단 하나의 거울만 달랑 걸려 있었다.

그 거울의 주인이 누군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기 뭐냐... 말한대로 등록금은 환불이 어려운데... 그, 내일 또 오면 등록금을 절반으로 깎아주겠네! 거울은 일단 계속 놔둘까...? 응?"


시야가 흐려지고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지만 꾹 삼키고 '됐어요' 라고 간신히 답한 후, 거울을 회수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동이 튼 골목을 빠져나왔다.

골목 어두운 곳에서 웬 용기사와 와이번이 서로 더듬어대다 인기척을 느끼고 깜짝 놀라는 것이 보였지만 데오노라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빨리 성에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발길만 재촉하는 것이었다.


여왕의 방에 어떤 기별도 없어 걱정한 시녀들이 문을 따고 들어가 본 것은, 족히 열개는 되는 드라네론티 빈 병과 산산히 부서진 거울 하나, 그리고 그 사이를 나뒹구는 여왕 데오노라님이었다.

평소의 엄격 진지한 자태는 어디가고 벌개진 얼굴로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뭐라 중얼거리는 데오노라님을 보며, 시녀들 또한 눈시울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눈물을 금치 못했다.


"왜 나만... 왜 나마아안..."


산새 한 쌍이 암수 정답게 지저귀며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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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노라 격투대회 게시물 보고 생각난 거 대충 싸갈김

델에라도 노처녀 기믹은 있지만 데오노라 쪽이 그 쪽으론 더 강력한 느낌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