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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맞겠지.

날 때부터 가족은 없고, 그 후 겨우 찾은 터전마저 스스로 불태운 나를 처음으로 피하지 않았던 너와 더 가까워질 수 없다니.

너라는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이던 나로서는 삶 그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곧 이를 받아들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며 생떼를 쓴다고 바뀌는 건 없으니까.

만약 그렇게 간단하게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면 나는 처음부터 가족의 따뜻한 손길을 받으며 자랐겠지.

그리고, 서라 너와 만나는 일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나마 지금 상황이 조금이나마 괜찮게 느껴졌다.

그래 내가 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없을 뿐이지 네가 사라진 건 아니니까.

연인은 못 되더라도, 여태껏 해온 것처럼 10년 넘는 친구, 둘도 없는 업무 파트너로서 남을 수 있다.

그 관계까지 잃어버리는 건 지금 나에겐 너무나도 두려운 상상이었기에 나는 너의 집에 향했다.

지금쯤이면 대략 술이 깨고 숙취에 괴로워하고 있겠지.

해장용 음식이라도 사가 지고 가서 너 술 좀 깨면 그때 천천히 이야기나 들어야겠다.

갑자기 울먹거리면서 급하게 사과하는 너에겐 좀 당황했지만, 나는 친구니까 얼마든지 위로를 해주었다.

그렇게 내가 어쩌면 가장 듣고 싶어 했던, 어제 그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 즈음이었다.

 

“아니야!”

 

사람 4~5명이 살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넓은 집에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큰 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목소리거나 순간 흥분한 너의 표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보이는 건 상관 안 했다. 내 온 신경이 향하는 곳은 ‘아니’라는 두 글자뿐이었으니까.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거지?

함께 사진도 찍고, 술도 마시고, 집에서 옷을 거의 벗고 돌아다닐 정도로 한 거면 연인 아니야?

온갖 의문이 머리를 헤집어대는 탓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나는 이를 겨우 억누르면서 말을 꺼냈다.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소리치면서까지 숨길 필요 없어. 아니 애초에 10년 가까이. 아니 넘게 인가? 아무튼, 그 정도로 친하게 지낸 친구인데 남자 친구 이야기 정도는 해줘도 되잖아.”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서로 털어놓고 언제든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

너와 연인이란 관계를 원했다가 좌절당한 나는 이런 친구로서라도 너에게 남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네가 생각한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너는 계속해서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그냥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도 못하는 건가?

나는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면 얼마든지 웃어주면서 축하해줄 수 있는데.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던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살이 좁혀지면서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이제 알겠다.

네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뭔지.

 

“나는 너와 서로를 믿고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 사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숨기려는 걸 보니 그것도 아니었구나.”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힘들 때는 도움이 되어주고 그 반대에는 기폭제가 되어주는 든든한 친구.

계속해서 숨기고 속이려고 하는 듯한 너의 모습에 나는 그것조차 되지 못하였음을 실감한다.

 

“아, 아니…….”

“저기, 서라야. 나 이젠 네 말이 뭐가 아니란 건지 모르겠다?”

 

너의 아니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나는 급히 그 말을 끊으면서 친구로선 꺼내선 안 될 감정, 이젠 어찌해도 상관없는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어제 네가 보낸 문자 보고 헐레벌떡 찾아왔는데, 너는 술에 취해서 아주 행복하게 자고 있고, 옷은 무슨 입은 둥 만 둥 거의 풀어져 있었어.”

 

“네가 누구한테 강제로 당할 사람도 아니잖아? 만약 그런 짓을 할 인간이 있었다 한들, 저항한 그것도 없었고.”

 

“그러면 네가 그 사진 속에 있던 사람이랑 그런 거 했단 거 아니야? 그럼 연인이지 뭐가 아닌데.”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제 내 눈으로 보고 겪은 진실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울분과도 같은 목소리에 너는 마치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난 분명 그때 옷은 제대로 입고 있었어.”

 

이해가 안 되었다. 방금까지의 네 모습을 보면 술에 취한 당시의 기억을 확실히 갖고 있다.

그러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거 아니야. 

거짓말을 하고, 숨기면서까지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럼 내 눈이 아닌 거네. 미안해. 서라야. 힘겹게 달려오느라 앞도 제대로 분간 못할 눈으로 멋대로 판단해서.”

 

너는 틀리지 않았다. 그냥 나 혼자서 잘못 보고선, 모든 걸 오해하고 주접을 떤 거다.

네가 듣고 싶었던 게 이거야? 그냥 내가 정신병자처럼 혼자 열폭 하고나서 반성하는 거?

 

“아니야...”

 

근데, 넌 왜 그것도 아니라고 하는 거야.

네가 옳다고 하는 건 도대체 뭐야?

몇 번이고 끊어져서 이제는 마디조차 남지 않은 정신 줄이 완전히 불타 사라진다.

 

“……시발, 아까부터 계속 뭐가 아닌데.”

 

“내 눈으로 보고 내린 결론도 아니라고 하고, 네 말 그대로 말해줘도 아니라 하고.”

 

“정말로 아니. 라고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야? 그냥 할 말이 없어서 고장 난 로봇처럼 아니. 아니. 아니. 만 반복하는 거야?!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입이 있으면 말을 해! 그래야 알아들을…….”

 

“그 남자. 너랑 닮았었잖아.”

 

그렇게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폭언들을 내뱉던 와중, 네가 꺼낸 말에 나는 급소를 찔린 것처럼 말을 멈추었다.

 

“네가 보고 싶은데, 나 때문에 고생하는 널 차마 귀찮게 할 수 없었어. 그래서 그 남자한테 잠시 눈길이 갔어.”

 

“그러다가 그 남자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셨어.”

 

“집에 데려와서 너하고 먹고 싶었던 술을 실컷 마셨어. 찍고 싶었던 사진을 찍었어.”

 

“나도 알아. 다른 사람에 너를 덮어씌우고 내 멋대로 자기만족을 하려고 했다는 것을.”

 

“정말로 미안. 미안. 나 때문에 계속 고생하는데, 그 짐을 덜어주지 못하고 얹기만 계속……”

 

“야.”

 

돌처럼 굳어있던 나는 이어지는 너의 말을 재빠르게 끊었다.

그러고선, 네 앞에 스마트폰, 네가 어제 보낸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준다.

 

 

 

 

 

 

 

 

***

 

 

 

 

 

너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했다.

 

물론, 알고 있다. 사과해서 끝날 정도가 아니라는 건. 

어제 내가 저지른 일은 너라는 사람을 모독하면서 내 욕심을 우선시하는, 아무리 술이 들어갔다 한들 너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는 나라면 해선 안 되는 일이다.

평소의 자상하고 과할 정도로 착했던 너라고 한들 화낼 법한 일. 어제 나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던 너라면 더욱 화를 내겠지.

차라리, 그 남자와 사귀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너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게 아무리 상황을 더욱 낫게 해주는, 의도가 좋다 한들 거짓된 것.

나에게 항상 진실하고 다정하게 대해 준 너에게는 절대로 범해선 안 되는 죄악이다.

물론, 너에게는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이겠지.

이미 종이에 먹물을 뿌려놓고선, 거기다가 새하얀 물감을 칠하려는 거나 다름없는 짓. 너에게 질타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렇기에 이 사과를 들은 네가 온갖 욕을 해도, 경멸하면서 나와의 관계를 끊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틀린 걸까.

 

“야.”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감정을 무엇 하나 털어내지 않고 그대로 전하던 와중, 울리는 너의 싸늘한 목소리.

그 손에는 보란 듯이 내 눈높이에 맞춰진 스마트폰의 화면이 한 사진을 띄우고 있었다.

분명, 내가 어제 너에게 보낸, 술에 취한 채 너와 똑같은 남자가…….

 

남자가……

 

남자가?

 

“이게 나랑 같은 얼굴이라고?”

 

다시금 들려온 너의 목소리. 그와 함께 눈을 깜빡인 나는 사진 속 만취한 내가 끌어안고 있는 남자를 본다.

 

날카로움이라고는 단 1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둥글둥글한 눈매.

가만히 있는 머리조차 휠 정도로 심한 곱슬의 갈색 머리가 아닌, 평범한 금발.

불꽃 능력을 다뤄서 그런 건지, 아니면 태생이 그런 건지 새하얀 피부와는 정반대의 새까만 피부.

너와는 닮은 곳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서라야... 너 진짜 왜 그러는 거야?”

 

분노의 끝은 슬픔이라고 했던가. 그 말대로 미치도록 화를 내던 너는 세상을 전부 잃은 사람처럼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 얼굴과 어제 내가 너에게 보낸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 또한 머리를 부여잡는다.

 

“아, 아니야... 분명, 나는...”

 

술에 취해서 정신이 흐려져 판단을 잘못하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을 색안경이라도 쓴 것처럼 보진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눈앞의 현실에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만! 이제 그만해.”

 

콰직!

 

크게 소리를 치면서 네 손에 쥐어져 있던 스마트폰이 완전 박살이 나서 바닥에 떨어진다.

 

“제발 그만해줘. 그만...”

 

이미, 내가 무엇을 이야기한들 네가 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듯 모든 걸 내려놓은 목소리로 너는 말하였다.

 

“그냥 아무 말 하지 말아줘. 내가 알고 있는 너를 나하고 대화를 나누기 싫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미친년으로 만들지 말아줘...”

 

“여, 영우야……”

 

분노가 깃든 강압적인 말이 아닌, 눈물 어린 애원.

그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처음 너에게 마음이 동했을 때, 불 능력을 조절 못 한다며 끝없는 자괴감의 늪에 빠지는 어린 너에게 했던 것처럼.

 

타악!

 

그렇게 내가 뻗은 손을 너는 아주 매섭게 쳐내었다.

그 짧은 순간 보였던 너는 마트에서 파는 생선의 것처럼 생기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미안. 때려서. 그리고, 괜히 내가 들을 이야기도 아닌데 파고들어서.”

 

“다음부턴 안 그럴게.”

 

그렇게 말한 너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붙잡을 새도 없이 어느새 멀어진 너는 집 밖으로 나가는 문고리를 잡아서 열었다.

이내 도망치듯 너는 밖으로 나갔고, 그 반동으로 한 번 옆으로 펼쳐졌던 문이 다시.

 

털컥!

 

닫힌다.

 

띠리링.

 

“영우야 잠깐……!”

 

도어락이 잠기면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비되었던 생각이 다시 움직였으나, 이미 불러 세울 사람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붙잡듯 손을 쥐었다 폈다. 3번 정도 반복한 뒤에서야 이 사실을 깨달은 내 뺨을 타고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진다.

분명, 어제 자신이 만난 사람은 너와 얼굴이 같았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다. 라는 생각에서 오는 억울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있는 것이라곤, 그 친절하고 다정한 네가 그런 표정과 말을 하게 만든 자신에 대한 혐오감뿐이었다.

 

“미안...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진심 어린 사죄를 들어줄 사람은 이미 어디에도 없고 눈앞에 있다 한들 그 사람에게 그것은 사죄의 의미가 아니다.

손을 매섭게 내치는 그 모습과 함께 찾아온,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마음의 아픔에 그를 통감했지만, 그래도 사과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를 좋아했던 마음이 가시가 되어 찔려오는 이 고통을 버틸 수 없었으니까.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

 

그렇게 방 안에 홀로 남은 여자는 누군가에게 닿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사죄의 말만을 반복한다.

 

 

 

 

 

 

***

 

 

 

 

 

“콜록! 콜록...”

 

입안이 텁텁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나는 몇 일간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메마른 기침과 함께 눈을 떴다.

 

목은 가뭄이라도 온 것처럼 말라 비틀어졌고, 눈은 태양을 바라보는 것처럼 따갑다.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술을 마신 것처럼 머리는 돌아가는 게 굼떴고, 그런 머리의 명령을 들어야 할 팔다리는 하나같이 무겁다.

말 그대로 살아는 있지만, 살아있다고는 할 수는 없는 개 같은 상태.

서라의 집에서 그녀와 만난 뒤, 근처 모텔에 눌러앉은 2일 전부터 계속 이랬다.

 

“시발...”

 

서라. 그 단어를 입에 담지도 않고,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2일 전에 있었던 기억이 하나같이 모두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 야. 야. 야! 왜 울어. 왜. 아으 진짜... 어제 술 마시면서 재밌게 놀았으면서 왜 이럴까...’

 

연인 관계를 포기하고 친구로서 너와의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것부터.

 

‘정말로 아니. 라고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야? 그냥 할 말이 없어서 고장 난 로봇처럼 아니. 아니. 아니. 만 반복하는 거야?!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그것마저도 안 된다는 것에 내가 내뱉는 건지도 모를 막말을 내뱉는 것.

 

‘다음부턴 안 그럴게.’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내뱉는 서라의 모습에 도망치듯 집 밖으로 나오기까지.

눈, 귀, 피부로 느꼈던 물리적인 감각 하나하나 전부 기억이 나서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

 

“개 시발...”

 

이보다 더 순한 말을 내뱉을 수 없던 나는 우선 말라 비틀어질 것 같은 갈증부터 해결하기 위해 일어났다.

 

끼릭!

 

평범한 사람이라면 옷을 대충 걸치고 근처 가게나 편의점을 들르겠지만, 나는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틀고선 쏟아져나오는 물을 그대로 입에 갖다 대었다.

모텔인 만큼 냉장고에 파는 음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누워있던 침대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고작 몇 걸음 걷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상쾌한 레몬 향의 음료는 수돗물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끄윽...”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부어 넣은 수돗물에 위장이 끓는 듯한 통증을 내는 것을 참으면서 나는 침대에 눕는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으면서도 나는 허공에 묻는다.

당연하지만, 대답을 해주는 이는 없다. 이 방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 따위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끓는 듯한 복통, 토할 것만 같은 두통이 흐려지고, 감각이 차단되면서 나는 잠든다.

 

 

 

 

 

***

 

 

 

 

 

그렇게 약 2일을 더 지내던 와중, 나는 거의 죽어가는 몰골로 그 모텔을 나왔다.

아니, 나와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어떻게 찾아온 지 모를 헌터 협회의 인간들에게 실려 나왔으니까.

듣자 하니, 내 상태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한계에 몰려 있었다고.

어떻게든 소식을 접하고, 카드 사용 내역 추적을 하여서 내 위치를 특정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괜찮으신가요? 하영우 헌터님.”

 

굶주림에 눈앞에 있는 음식을 먹어치우고, 제대로 된 관리하에 휴식을 취해 겨우 안정을 찾은 나는 눈앞을 바라보았다.

그 무엇보다 기쁜 마음으로 가득했던, 최상급 헌터 승격 소식을 알리는 남자 직원이 서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일 좀 구해주실 수 있나요?”

 

“네? 그게 무슨……”

 

내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는지 남자 직원이 되묻는다.

그의 시선에 나는 최상급 헌터고 뭐고 거지꼴에서 겨우 벗어난, 아직 관리와 안정이 필요한 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그런 놈이 일을 달라고 한다고? 그것도 역대 최고 화력의 불 능력이란 위험한 가능성까지 내포한 주제에?

차라리 심지가 타는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뛰는 게 인명 피해가 덜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미친 소리였다.

 

“지금 당장은 안 되는 거 압니다. 일주일. 일주일 동안 몸을 회복하고, 현장에 복귀하겠습니다.”

 

“일주일도 조금은 짧은 게……”

 

“부탁드립니다.”

 

짧은 한마디와 함께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눈을 뜨고 있는 게 괴로운 건 아직도 마찬가지다.

그런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온몸에 기운을 쫙 빼고 쓰러져 잠드는 것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고도의 집중력, 신체를 극한까지 운용해야 하는 헌터일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최대한 빨리 건강을 되찾겠습니다. 그러니, 헌터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결과적으론 부탁을 받은 남자 직원만 고생이었다.

상대는 임명식 날짜를 잡자마자 사라졌다가, 처참한 몰골이 돼서 나타나긴 했지만 최상급 헌터.

결코, 건들여선 안되는 천외천의 존재였기에 안 된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1주일은 역시 무리였는지, 2주가 지나고 나서 몸 건강을 완전히 되찾은 후, 능력 제어 검증까지 받은 뒤에야 나는 일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최대한 쾌적하게, 호흡에 불편함이 없게 만들어져도 헬멧은 헬멧인 걸까.

오랜만에 쓰는 내 신분을 가리는 도구이자, 헌터 손난로의 상징적인 붉은 헬멧에 이를 툭툭 두들기던 와중, 저 멀리 이번 괴물 소탕 작전에 협조할 인력이 도착한다.

 

“……최, 최상급 헌터 손난로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 이 업계에 발을 들인지 얼마 안 된 걸까. 내가 잘 아는 얼굴도 아니고, 나를 딱딱하게 대하는 근육질 남성.

나보다 머리 한두 개는 더 큰 거 같은, 거대한 키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던 와중, 나는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헌터에 헬멧 안의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라지만, 조금 등급이 높은 괴수들에게는 종잇장이나 다름없는 보호복.

신발부터 시작해서 목까지 가는 그 미래 시대적인 디자인의 끝을 장식하고 있는, 내 헬멧처럼 특수 제작된 하얀 색의 가면.

 

눈사람.

 

한 달 전만 해도 그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이자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내 아픈 기억만을 상기시켜주는 유서라의 헌터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이번 편은 분량은 좀 있는데, 뭔가 되게 내용이 없는 것 같다. 얀붕이가 왜 그렇게 빡쳐했는지 자세히 쓰고, 이후 얀순이 묘사를 하려고 해서 그런가.

이번에 글 써지는 게 되게 늦어졌는데, 얀붕이랑 얀순이 감정 묘사를 나름대로 제대로 쓰고 싶어서 그랬음. 근데 결과는 급전개로 아주 망해도 단단히 망한 거 같네. 어우 썩을.

아, 그리고 전개 답답하고, 느려서 미안. 내가 쓸 때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 했는데 보는 입장에서 불편할 수도 있을 거 같더라고.

아무튼, 구린 필력의 글 매번 봐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