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거짓말쟁이...”

 

 아리아가 중얼거렸다

 

 신전에서 그녀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고만 그녀는 붉은 산으로 돌아와 틀어박혔다.

 

 폴리모프도 풀지 않고 틀어박힌 채로 하염없이 천장만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처참했다.


 둥지에 들어오면서 흘렸던 눈물은 아직도 흘러 바닥을 적셨고 밤낮없이 며칠 동안 눈물을 내뿜은 그녀의 눈은 불게 충혈 되어있었다.   

 

 계속 뭐라 중얼거리거나 소리치던 그녀의 목은 쉰지 오래였고 비단 같았던 붉은 머리칼은 산발이 되어 힘없이 쓰러졌다.

 

 거짓말쟁이...거짓말쟁이...”

 

 사랑한다며평생 나만 사랑한다며그렇게 필사적으로 말해놓고 어떻게 다른 여자를 안을 수가 있어그것도 고작 2년 만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녀에게 구혼하던 아론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간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반지를 내밀던 아론그의 간절함에 구혼을 받은 것이었는데...

 

 그녀의 머릿속에서 재생되던 장면이 전환된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던 눈은 다른 여자들에게로 향했다그것도 몇 년간 여행을 함께 했던 년들에게로그뿐만이 아니라 그녀만 알던 그의 굴곡진 몸이 그년들의 몸과 비벼지고 있었다.

 

 우웨엑...”

 

 구역질이 올라왔다허나 먹은 것이 없었기에 시큰한 위액만이 배출되었다.

 

 망할 년들...”

 

 아리아는 그녀를 제외한 다른 여성 동료들이 아론을 좋아한다는 걸 여행하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노골적인데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론과 다른 여자가 밤에 둘이 남는 것 같은 결정적일 때를 제외하면 그녀들을 제지하거나 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아론은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그것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고 부럽다는 시선을 받을 땐 몰래 비웃기도 했었다.

 

 그랬는데...

 

 하등한 년들이...”

 

 그 관계가 역전되어 버렸다

 

 하등한 년들이 그녀의 남자를 채갔고 아론은 더 이상 아리아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론내가 잘못했어용서해줘 응..?“

 -아리아 네 얼굴 따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부탁이니까 제발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아줘.

 -잠시만아론?! 아론!!

 

 그를 찾아갔을 때 그의 반응은 깨닫기 싫은 사실을 그녀의 머릿속에 처박아 넣었다.

 

 -

 

 와중에 비웃던 고양이년의 표정이 떠올랐다

 

 깔보는 듯한 표정그건 원래 아리아가 그녀들을 향해 몰래 짓던 표정이었다

 

 하등한 년들이!!!!”

 

 아리아가 주먹으로 바닥을 때렸다.

 

 후두둑

 

 그녀의 주먹이 때린 바닥에 크게 금이 가고 말았다그럼에도 그녀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쾅 쾅 쾅 쾅

 

 아아아아악!!!!!!!!!!!!!!”

 

 남편을 빼앗긴 울분이 담긴 주먹질에 그녀의 둥지가 울리기 시작했다아마 밖에선 다른 드래곤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그녀에게 중요한일은 아니었다.

 

 하등한 년들!!! 썩을 년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은 계집들이!!!”

 

 한동안 바닥을 때리던 그녀의 손이 멎었다

 

 나쁜 놈... 나쁜 놈아...나 아니면 안 된다며... 사랑한다며...!”

 

 미웠다.

 

 다른 여자에게 홀랑 넘어간 아론도그런 아론을 꼬셔간 도둑년들도 그리고 제약 때문에 손가락만 빨고 지켜봐야하는 현실도

 

 그녀는 너무나도 미웠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아리아의 어머니멜리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리아의 첫 유희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다른 드래곤을 같이 보내는 건데...’

 

 첫 유희를 너무 늦은 나이에 보낸 게 문제였다이미 완성된 용격에 첫 유희를 겪어버리니 용생과 유희가 뒤섞이고 말았다.

 

 그이만 살았었더라도...’

 

 멜리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의 남편을 떠올렸다

 

 200년 전 블랙 드래곤과의 전쟁으로 레드 드래곤들은 수장을 잃었었다때문에 붉은 산은 혼란을 빚을 뻔했었으나 다행히 수장에겐 피를 이은 해츨링이 있었다.

 

 아리아였다.

 

 전대 제왕의 피가 이어진 드래곤만이 붉은 산의 수장이 될 수 있다는 전통에 따라 아리아는 해츨링임에도 불구하고 왕좌에 앉아야만 했었다.

 

 그 뒤로 블랙 드래곤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190혼란을 다스릴 때까지 10아리아는 어린나이에 왕좌의 고독을 느껴야만했다

 

 ‘...그게 문제였던 걸까..’

 

 해츨링 시절부터 느꼈던 고독감에 삐뚤어져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그랬기에 유희에서 그녀의 마음을 채워주는 인간을 보고 반해버린 것이고.

 

 너무 몰아붙였구나..”

 

 멜리나는 이제 와서 아리아를 엄하게 키운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아무리 제왕에 걸맞게 키우기 위해서였더라도 조금정도는 응석을 들어줄걸.

 

 얼마나 힘들었으면 드래곤의 고명한 정신에 상처가 생겼겠나.

 

 멜리나는 폴리모프한 모습으로 아리아에게 다가갔다딸의 둥지에 온건 그저 딸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리아.”

 “...어머니?”

 

 아리아가 얼굴을 가리던 두 팔을 치우고 자신의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멜리나는 울어서 붉어진 딸의 눈을 보고 울컥했다멀리서 지켜보는 거랑 가까이서 보는 것과는 느껴지는 감정이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당장 자신의 딸을 이렇게 만든 연놈들을 잡아 찢어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아리아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놈은 확실히 아닐 것 같았다.

 

 많이 힘든가 보구나.”

 죄송해요..히끅..”

 

 어머니께 붉은 산의 수장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호통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멜리나는 그녀를 혼내기는커녕 품안에 끌어안았다

 

 어머니..?”

 네 잘못이 아니다어찌 그리 힘들어 하느냐...”

 

 왕좌에 오른 5살 이후로 처음 느껴본 어머니의 상냥함에 아리아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그녀는 조용히 어머니의 품에 몸을 기댔다.

 

 ...흐윽...”

 

 멜리나는 그녀의 품에서 서럽게 우는 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그러면서 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붉은 산의 제왕이 어찌 하등한 인간 따위에게 소중한걸 빼앗긴단 말이냐.”

 ..!”

 빼앗겼다 하더라도 왜 되찾으려 하질 않는단 말이냐.”

 했어요.. 했다고요몇 번이나 만나러 갔단 말이에요그런데...아론이 싫다고 했어요...꼴도 보기 싫다고.. 평생 본적도 없는 표정으로... 하하...”

 

 아리아가 힘없이 웃었다.

 

 그게 최선이더냐?”

 저보고 더 이상 어쩌라는 말이세요... 전 그 표정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른단 말이에요... 눈을 감아도 자꾸만...자꾸만...”

 

 아리아의 울먹이는 소리가 더욱 강해졌다멜리나는 아리아의 등을 두드려주던 손으로 아리아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말은 왜 네가 굳이 그 하등한 것들의 방식에 맞춰 주냐는 말이다.”

 “...?”

 너 또한 다시 빼앗으면 되는 것 아니냐네겐 그런 힘이 있단다.”

 하지만 그랬다간 레티아님께서 거신 제약을 어기게 되잖아요...”

 

 대륙을 창조한 여신레티아.

 

 그 레티아가 대륙을 만들고 첫 번째로 빗은 생물은 엘프라고 오만한 엘프들은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빚은 생물은 바로 드래곤이었다

 

 처음으로 만든 생물이었기에 레티아는 조절을 실패했고 단 한 마리만으로도 생태계를 위협하는 최상위 종을 만들고 말았다.

 

대륙에 드래곤들끼리만 있다면 모를까 그녀는 대륙에 다른 생물들을 넣을 생각이었고 그녀는 드래곤들에게 제약을 걸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이 다른 생물을 먹이를 얻기 위한 게 아닌 다른 목적으로 공격할 때는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을 말이다.

 

 이런 제약이라도 걸지 않으면 드래곤이 아닌 다른 종족들은 전부 드래곤의 노예가 될 것이 분명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 제약은 힘을 대폭 제한한 유희를 제외하곤 언제나 유효했다.

 

 아리아가 아론을 빼앗기고도 둥지에 처박힌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드래곤의 힘을 쓰면 다시 되찾는 건 쉬웠지만 제약 때문에 쓰면 안 되었고 유희에서 쓰던 힘은 그녀들을 제압하기엔 부족했으니까.

 

 레티아님께 허락받았단다.”

 ?!”

 

 아리아가 깜짝 놀랐다레티아님께 허락받았다니그게 의미하는 건...

 

 네 남편을 되찾는 것에 한해서만 제약을 풀어주겠다고 하셨다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살생도 허용해준다고 하셨고.”

 하지만 그중에는 레티아님을 모시는 성녀도 있는데...”

 허락하셨단다.”

 

 멜리나가 미소 지었다.

 

 아무리 성녀라 한들 붉은 산의 수장에 비할 바는 못 됐다막말로 성녀는 죽더라도 다시 뽑으면 그만이었으니까.

 

 ..”

 

 그것을 이해한 아리아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아하하하하!!!!!!”

 

 아리아는 자신이 붉은 산의 수장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