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내글아님)드래고니아 갔다가 사기 먹고 용기사단 입단한 이야기


(발굴 내글아님)드래고니아 갔다가 사기 먹고 용기사단 입단한 이야기- 2 -








“비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깜빡 졸은 모양이다.

어깨 아래로 따뜻하고 미약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드래고니아의 자랑인 온천지대 용천향의 한 대중목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있다.


“듣고 있어?”


옆에서 날 부른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은색 머리칼이 인상적인 미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알몸으로 같은 탕에 들어와 백옥 같은 피부를 밀착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질적인 부분이 있었다.


날개와 일체화된 팔, 팔다리에 붙어 있는 갑각과 뾰족한 뿔과 꼬리, 틀림없는 와이번의 증거다.


“아니 안 듣고 있어. 깜빡 졸았거든.”


“아~ 이리스 단장, 오늘 너한테만 고되게 굴었지. 뭔가 기분 나쁘게 한 거 아니야?”


“어젯밤에 명월에서 혼자 술 마시다가 만났거든. 술김에 노처녀라고 놀렸는데… 그건가?”


“단장의 역린을 건드렸네. 그보다….”


실티아가 뾰로통한 얼굴로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무의식적으로 양 볼을 눌러 잡았다.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후! 하지마! 그보다 왜 혼자 마신 거야?”


“내가 미쳤다고 네 앞에서 취하겠냐? 기회주의자 새끼. 네 앞에서 취했다가 무슨 일을 당하라고?”


“동거하는 연인 사이에 무슨 일 좀 당하면 어때?”


“연인 아니고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 말에 지랄발광을 떨며 노발대발하는 와이번 한 마리를 뒤로하고 탕을 나왔다. 곧 뒤따르듯 실티아도 나왔다. 몸은 흠뻑 젖었지만 곳곳에 산재한 욕탕에서 올라온 수증기 덕분에 주변엔 따듯한 공기가 흘렀다.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목욕탕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공기가 피부에 닿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실티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냥 기다리기도 뭣해 가판대에 들러 온천만쥬와 따듯한 차를 사 먹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김이 서린 유리병에 담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추위가 한결 가셨다. 슬슬 나올 때가 됐다 싶어 대중목욕탕의 입구를 바라보자, 실티아가 천의 면적이 적은 노골적인 옷을 입고 나왔다.


저런 차림으로 춥지도 않나 싶었지만, 용은 체온이 높아서 이 정도 추위는 추위도 아니다. 라고 최근 실티아가 우쭐거리며 말했던 기억이 났다. 실티아가 내 쪽을 보곤 살갑게 웃으며 다가오다 내 손에 들린 만쥬와 차를 보곤 얼굴을 찌푸리며 달려왔다.


“앗! 내 만쥬!”


“나한테 만쥬 맡겨 놨냐? 내 만쥬는 개뿔.”


내가 뭐라 하건 말건 마치 처음부터 자기 것인 양 만쥬 하나를 뺏어 갔다.


“야 이 도둑년아.”


실티아는 내 욕에도 아랑곳 않고 만쥬를 복스럽게 처먹었다. 달달한 만쥬를 처먹었으니 차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차를 내밀어 실티아가 처마시게 두긴 개뿔 내 뱃속으로 단숨에 들이켰다.


“짠돌이!”


“차 맛 좋다.”


이 돼지 와이번의 섭섭해 하는 모습을 안주 삼아 차를 마시며 낄낄대고 있는데, 실티아 돌연 손을 내밀었다.


“쓰레기 버려줄게.”


“흐음….”


버려준다니 나쁠 건 없지만…. 이 발정 와이번이 기특한 의도를 가지고 이럴 리 없다.


“몰래 가져가서 물고 빨고 그러려는 건 아니지?”


“뭐, 뭐! 그럴 리가 없잖아! 정말 생각하는 게 완전 변태라니까!”


“아님 됐고. 자 버리고 와. 저기 쓰레기통 있네.”


“에에… 지금 버릴 필요가 있을까?”


실티아가 곤혹스런 어조로 물었다.


“필요고 나발이고 쓰레기가 손에 있고 쓰레기통이 보이면 바로 버려야지.”


“하지만 바로 여기일 필욘 없잖아? 쓰레기도 버려지고 싶은 곳이 있을 거고….”


드디어 미친 것인가? 쓰레기의 심정에 공감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인가? 나는 이런 여자와 같이 살아도 되는 것인가?


“너 자기가 무슨 소리 하는지 알고 있는 거냐?”


“우으…, 애초에….”


“애초에 뭐?”


실티아가 수치심에 얼굴을 잔뜩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더니 고개를 홱 쳐들었다.


“애초에 다 당신 탓이잖아!”


“네가 내가 마시고 버린 유리병에 저열한 욕망을 발산하려는 게 왜 내 탓인데.”


“키스도 안 해줘! 섹스도 안 해줘! 안아주지도 않고! 각방 쓰고! 매일 밤 혼자 술이나 마시러 다니고! 나도 외롭단 말이야!”


이 미친년이 공공장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주위의 이목이 우리이게 집중됐다. 차가운 시선이 내게 꽂힌다. 내게만.


“억지로 하면 싫어하니까 혼자라도 풀려 했던 거라고! 유리병 정돈 좋잖아! 유리병 정돈…,”


이번엔 그대로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고 있다. 주변의 시선이 영하를 뚫고 절대영도로 곤두박질 쳤다.


“뭐야? 여자를 울린 거야?”


“안아주지도 않는데….”


“쓰레기….”


웅성웅성 시끄럽다. 아니 하기 싫은 걸 나보고 어쩌라고.


“히끅! 유리병 정돈 좋잖아. 히끅! 물고 빨고 넣는 것 정돈….”


“넣는 건 또 뭐야….”


결국 어쩔 수 없나. 그것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실티아.”


“…왜.”


“나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하곤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뒷감당이 좀 힘들 것 같긴 한데…, 지금 이 순간만 모면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시선이란 게 워낙 따가워서 나 같은 유리 심장은 버틸 수가 없다.


애초에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주위의 이목을 끄는 것부터가 개념이 읎다… 이 말이야. 세 살배기 애새끼도 아니고, 장터에서 장난감만 보면 사줘 사줘 울면 뭐든지 해결되는 줄 아는 그런 애새끼.


하여간… 그 노처녀 년도 그렇고 이 발정 와이번도 그렇고 오늘따라 술을 마시지 않곤 못 배기게 만드네.


…왜 이렇게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지?


“가지마….”


배에 압박감이 느껴져 살펴보니 실티아가 주저앉은 채로 꼬리만 움직여 배를 휘감았다. 아~ 과연, 난 허공에서 발길질만 했던 건가.


“왜 맨날 그렇게 못되게 구는 거야? 내가 그렇게 싫어? 벌써 한 달도 넘게 섹스도 안 해주고.”


“왜냐면 넌….”


점점 죄는 힘이 강해지고 있다. 방금 먹은 만쥬가 현대미술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려 하고 있다. 좀 고급스럽게 표현해봤는데 진짜로 토할 것 같다.


“넌 피임 안 하잖아아아악!”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인연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조임. 너무 강한 나머지 반대로 만쥬가 위장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탭탭탭! 꼬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을 치는데도 힘을 뺄 생각이 없는지 힘은 점점 강해지기만 했다.


“끄아아….”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세상이 노랗게 변하고 이렇게 죽는 건가 싶을 때 고공에서 선회하고 있던 흑룡이 빠른 속도 내려오고 있었다. 단번에 코앞까지 내려온 흑룡은 빛무리에 휩싸이더니 휘황찬란한 갑주를 착용한 드래곤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착륙했다.

드래곤 소녀, 대지에 서다.


금발에 적색과 녹색의 오드아이… 엥? 이거 완전 우리 노처녀 단장님 아니냐?


“그만!”


또렷하고 청아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단장은 한 마리의 침패지처럼 발정한 와이번과 다 죽어가는 한 떨기의 가련한 팬지꽃 같은(내가 생각해도 펀치라인 죽이는 듯) 날 한 차례 살피더니 옛 마왕 시절의 드래곤 같은 얼굴을 했다.


“또 너희들이냐!!”


용천향의 대중목욕탕 앞 대로변에서 단장의 노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제 와서 밝히는 거지만 이곳은 드래고니아다.

용들의 왕국, 바꿔 말하자면 용이 아니면 살기가 힘든 곳이다. 아마.

용이 최고, 용이야 말로 지고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선민의식을 가진 놈팽이들의 나라. 아마.

국수주의로 똘똘 뭉친 배타적인 도마뱀들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아마.


각설하고.


드래고니아엔 얼굴마담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용기사가 있다. 음유시인 나부랭이나 기술자들이나 검투사들은 반발할 수도 있는 의견이지만…, 무시해도 좋다. 결국은 공무원이 되지 못한 ‘패배자’들의 헛소리에 불과할 뿐. 껄껄껄.


결론은 용기사인 나 = 승리자. 라는 것이다. 결코 바라던 건 아니었지만….

난 원래 레스카티에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는데, 마을 광장에 게시된 벽보에서 드래고니아 건국일 기념 축제 광고 포스터를 보고 속아서 갔다. 속아서 용기사가 됐다.


법을 어금니에 낀 치석이나 긁으며 만들었는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전역이 가능하다며 그 당시 드래고니아 관광 가이드를 맡고 있던 실티아를 내 기룡으로 짝지어 주곤 강제적으로 용기사로 등록했다.


그렇게 반년이 흘러, 지금에 이른다.


“비고, 네 기수 중에 아직 서임식을 하지 못한 용기사는 너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알트이리스, 드래고니아 용기사단의 단장이 쏘아붙이 듯 물었다.

용천향에서의 일을 일단락 짓고 단장실에 불려와 훈계를 받고 있다. 실티아는 자기 방에서 아마 훌쩍거리거나 내 유리병으로 저열한 욕망을 발산 중일 것이다. 어쩌면 둘 다거나.


“어째 받는 급여가 차이가 난다 싶었는데 그것 때문이었군요. 몰랐네요.”


그 정도 차이면 용덮밥이 몇 그릇이냐….


“네 기수뿐만 아니야! 그 다음 기수도! 그 다다음 기수도! 그 다다다음 기수도! 전부 서임식을 끝냈단 말이야!”


“아… 예…. 근데 저 저녁 안 먹고 왔는데요?”


단장이 흉악한 앞발(드래곤이라 손이라 써야할지 발이라 써야할지 모르겠다.)로 책상을 내리쳤다. 대리석 책상엔 미세하게 금이 가 있었다. 무서워라….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야! 네가 용기사 생활엔 불만이 많다는 건 알아. 하지만 벌써 반년이야. 조금은 진지하게 하는 게 어때?”


“저한텐 이제야 반년이에요. 바라지도 않던 용기사 생활을 하게 돼서 참으로 과분한 심정이긴 한데… 너무 부담스럽거든요? 조금은 융통성을 발휘해서 전역 좀 앞당겨 주는 건 어떻습니까?”


“하아…. 실티아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자기 동기들…, 심지어 자기보다 어린 용들조차 서임식을 끝내고 용기사로서 일하고 있어. 자신의 어머니를 동경해 용기사단에 입단한 그 아이가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라고.”


“예예, 퍽이나 미안하네요.”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다시 팔을 들어 올렸지만 이내 팔을 거뒀다.

실티아도 그렇지만 이쪽도 내게 아주 켕기는 없진 않을 테니까. 아니면 금간 대리석 책상이 아까워서 일수도 있고.


“뭐, 저도 돈 받고 용기사 하는 이상 완전히 대충하는 건 아녜요. 그냥 높은 곳이 무섭다보니까 비행이 젬병이라 그렇지. 그것만 아니었음 서임식도 이미 끝났을 걸요.”


“그건 기룡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야. 기룡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비행 정도야…!”


“저한테 사기 쳐서 용기사단 입단 시킨 녀석을 어떻게 믿으라고요? 단장도 한 몫 거들었죠?”


“윽! 그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는지 단장은 내게서 눈을 돌렸다. 항상 그랬지만 대화를 여기까지 끌고 오면 그때부턴 내가 대화의 주도권을 가진다. 명예나 기사도 같은 걸 중시하는 단장으로선 날 속였다는 게 오점으로 남았을 테니.


이따금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남발하면 효력이 희미해지는 건 만고의 진리니.


“뭐,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대충 사과라도 하면 되겠죠.”


“넌… 후우, 됐어. 알아서 해라.”


“넵. 근데 단장,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뭐지? 쓸데없는 소리라면 이제 됐다만.”


미안하지만 쓸데없는 소리 맞다.


“단장이 노처녀인 이유 말이에요.”


“아무래도 오후 훈련이 부족했던 모양이야….”


뚝 뚝- 주먹 푸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거 남들한테 너무 신경 써서 그런 거 아녜요?”


“뭐?”


“지금도 그렇고. 자기 부하한테 너무 신경 쓴다 이겁니다. 안 그래도 용기사단 단장이라 자기 결혼 활동할 시간도 없을 텐데, 부하 일까지 신경 쓰니까 시간이 날 턱이 있나.”


요는 나한테 신경 끄라는 소리다.


“나한텐 단장으로서의 책무가….”


“그걸 벗어던지라는 거죠. 평소에도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하시는데… 좀 풀어진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 없어요. 암요. 단장은 정말 훌륭한 단장인 걸요.”


“훌륭한 단장….”


기쁜 표정으로 내 말을 되풀이했다. 여전히 칭찬에 약한 단장이다.


“결혼 활동을 위해서 와인까지 만들 정도로 지극정성을 다하는데 왜 지금까지 남자가 없겠습니까? 그게 다 단장이 너무 딱딱한 모습만 보여주니까 그런 게 아니겠어요? 자고로 남자든 여자든 숨쉴 틈 정도, 다른 사람이 파고들 여지 정도는 보여줘야 이성이 꼬이는 겁니다.”


“숨쉴 틈….”


“단장처럼 아름답고, 멋있고, 능력 있는 완벽한 드래곤이라도 조금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줘야 인간미… 아니 용미? 하여간 그런 게 있어야 남자도 꼬이고 그러거든요.”


“아름다워… 내가?”


단장이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몽롱한 표정으로 내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비고, 네가 볼 때 난 그… 아름다운… 편인가?”


“예… 뭐.”


마물이란 건 다 예쁘게 생겼으니 뭐.


“날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을 줄은…, 넌 문제아에… 의욕도 없지만 그래도 심성은 좋고 하면 되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에겐 이미… 실티아가 있으니 난 포기해 주길 바란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역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가….”


씁쓸한 투로 말을 흐리는 단장,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아. 네 의지가 그렇게 확고하다면… 받아들이마. 실티아에겐 같이 양해를 구하도록 하자.”


“아니 무슨 말이냐고요. 설명 좀 해주세요. 왜 갑자기 지 혼자 결론을 내고 지랄이세요?”


“비고! 아무리 연인 사이라도 언어 선택은 신중히 해야지.”


내가 잘못 들었나?


“연인 사이요? 누가 누구하고?”


“너와 나다.”


“드디어 미치셨어요? 하도 남자가 안 생기니까 꿈하고 현실하고 혼동하신 것 아닙니까? 저하고 사귀는 게 단장님의 ‘희망사항’인 건 알겠는데, 그런 건 망상 속에서나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허 참 껄껄.”


“나에게 아름답다고 한 건….”


“그냥 칭찬한 거죠. 낄낄. 어째 단장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미천한 연애경험이 드러나십니다요. 칭찬 한 번 받았다고 고백이라고 착각하다니…. 풉풉.”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항상 날 훈계하는 단장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다니…, 이러니 단장의 역린을 건드리는 걸 그만둘 수가 있나! 터무니없다!


“그렇구나…. 착각이었구나….”


이런 슬슬 폭발하겠네. 슬슬 자제해야 할 타이밍이 온 듯.


“난 정말 바보구나.”

“그러게요.”


이런! 한마디 더해 버렸네? 나도 참 못 말린다니까★


“이만 가라. 혼자 있고 싶으니.”


적당히 목례나 하고 갈까 했는데 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터질 듯이 흔들리는 눈동자. 붉어지는 눈시울, 맺히는 물방울. 어? 우냐? 울어?


“어…, 오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죠. 하루에 여자 두 명을 울렸다는 오명을 얻긴 싫거든요. 근데 여자 두 명 울렸다고 하니까 엄청 능력 있는 남자 같지 않습니…”


“그냥 꺼져!”


“넵.”


단장실을 나왔다. 진짜 당분간은 안 건드리는 게 좋겠다. 실티아 녀석도 날 꼬리로 조여 죽이려 들었는데 단장 정도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다.


연병장을 지나쳐 기사단 숙소로 향했다. 그새 소문이 퍼졌는지 날 보는 용기사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분명 ‘이 새끼 또 사고 쳤구나.’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나 왔어.”


“응….”


숙소에 있는 개인실에 들어가자 풀이 팍 죽은 얼굴의 실티아가 맞이했다. 계속 삐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리병으로 한 발 빼고 나서 현자 타임이라도 온 걸까?


“저기 오늘 있었던 일은 미안해. 너무 흥분했나봐. 아픈 데는 있어?”


“귀가 아프네. 단장한테 한 소리 들었거든.”


실티아가 작게 실소했다. 그리곤 화들짝 놀라곤 내 눈치를 보더니 다시 풀이 죽었다.


“저기… 나 싫어졌어?”


대답은 듣기 싫다는 듯 눈을 꾹 감았다. 그렇다고 귀가 안 들리진 않을 텐데, 나름대로 충격에 대비하는 걸까.


“흐음….”


뭐라 대답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 생각이 없는데. 단장 놀리고 싶은 만큼 놀렸으니까 딱히 앙금도 없고.


“야.”


실티아가 몸을 움찔거렸다. 난 오른손을 뻗어 실티아의 이마를 향해 뻗었다. 실티아는 눈을 감느라 다가오는 검은 마수를 눈치 못 챘다.


손가랑을 퉁겨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멀뚱히 날 바라보는 실티아에게 말했다.


“용덮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응.”


안심한 실티아가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 듣기 싫다면 대답을 안 하면 된다. 모르는 편이 마음 편할 때도 있는 법이고.


“용화초랑 테일 리프는 넣을 거야?”


“당연히 빼야지.”


“치.”


용화초는 몸에 열을 내고 흥분 작용을, 테일 리프는 발기 작용을 한다. 두 개가 합쳐지면 결과야 뭐 말할 것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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