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아님)드래고니아의 만년 훈련생, 폐급 용기사 2 -






점심은 거실에서 먹었다. 요리는 세 가지로 간단하게 구성된 코스 요리였다.

전채 메인 디저트, 전채는 순무와 피클 샐러드 위에 달콤한 크림을 올리고 포도 식초를 뿌린 것, 메인은 새끼 마계도마뱀의 갈비 부위를 향이 강한 버섯과 같이 로스팅하고 그 위에 마계 도마뱀의 뼈를 하루 종일 동안 우려낸 퐁 드 보를 끼얹었다.


그리고 지금은 디저트를 먹고 있다.


“홀스타우로스의 우유로 만든 크림치즈 옆에 포로의 열매 시럽에 절인 딸기 슬라이스를 얹고 그 위에 밀감 셔벗을 올려놓았습니다. 셔벗과 치즈, 딸기를 같이 얹어 드시기 바랍니다.”


요리를 가져온 종업원, 가게에서 마주친 어린 와이번이 설명했다.

가게 안에서 봤을 때완 분위기가 틀렸다. 정숙하고 프로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이런 코스 요리 사 먹으려면 얼마나 할까? 차마 상스러워 보일까 물어보진 못하겠지만.


“15에서 20 정도 하지 않을까?”


실티아가 말했다. 갑자기 무슨 말을… 아 가격 말하는 건가?


“궁금해 하는 얼굴이길래.”


싱긋 웃는 실티아의 얼굴이 얄밉다. 얼굴이 붉어진다. 실비아 씨와 겜지 씨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식사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15, 20이면 용덮밥이 몇 개냐.


“어차피 그 돈이면 용덮밥을 몇 그릇이냐 같은 걸 생각하고 있지? 비고의 경제관념은 용덮밥이 기준이니까.”

“남이사 신경 꺼.”


마냥 맛을 음미하며 식사를 즐기기엔 분위기가 너무 가시방석이었다. 실비아 씨는 즐거워하며 나와 실티아를 보고 있고, 겜지 씨는 노골적으로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어째, 입에는 맞는지 모르겠다.”


겜지 씨가 내게 물었다.


“맛은 있는데 좀 불편하네요. 밥 먹는데 누가 보거나 말 거는 걸 싫어해서요.”

“그럼 우리 가게에선 식사 못 하겠네. 러브 라이드는 커플 고객 전문이니까. 커플이 아니어도 손님은 받지만 1인 고객에겐 조금 괴롭겠지.”

“어차피 비싸서 못 가요. 거기다….”


거기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끼리 드세요~ 같은 어필하는 음식 따윈 취향도 아니다. 이 말까지 내뱉으려도 도로 삼켰다. 내가 너무 추하기도 했고. 옆에 있는 실티아를 슬쩍 곁눈질해 보니 우리 둘 간의 대화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겜지 씨가 말을 재촉했다.


“거기다 러브 라이드는 너무 높이 있어서요. 제가 비행하는 걸 무서워하시는 거 아시잖아요.”

“용기사면서 말이지.”

“정확히는 훈련생이죠.”


그렇게 말하며 은제 스푼 위로 크림치즈와 절인 딸기, 밀감 셔벗을 올려 입안으로 넣는다. 차고, 시고, 달고, 치즈에서 나온 지방의 감칠맛과 약간의 짠맛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디저트가 가장 취향에 맞네요.”

“실티아가 좋아하는 메뉴라 넣어봤는데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사람 좋은 얼굴로 웃는 겜지 씨, 실티아에게나 보여주는 자상한 얼굴을 내게도 보이고 있다. 아마 실티아의 모습을 보고 안심시키기 위해 저러는 거겠지. 실제로 효과는 탁월해서 실티아는 안도해 하며 즐겁게 실비아 씨와 대화를 나눴다.


식사가 끝났다.

종업원 와이번이 테이블 위의 빈 접시를 치웠다.


“이야~ 잘 먹었습니다~ 역시 파파가 만든 밥이 최고야.”


실티아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기지개를 폈다.


“비고는 항상 용덮밥만 먹으니까. 이렇게 가끔씩이라도 고급진 걸 먹지 않으면 미각이 둔해질 것 같아.”

“용덮밥이 뭐가 어때서?”


싸고 맛있는데.


“먹고 싶을 땐 언제든지 찾아오렴.”


사람들의 흔히 떠올리는 자애로운 어머니상을 한 실비아 씨가 말했다.


“남편이 만들어 줄 거야.”


말하는 내용은 전혀 자애롭지 못했지만. 익숙한 취급인 듯 겜지 씨는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말처럼 자주 얼굴 좀 보이고.”

“응.”


가족끼리 단란한 모습은 보기 좋지만 난 그런 걸 감상하며 흐뭇해하는 취미는 없다. 식사도 끝났으니 자리를 뜨고 맥주라도 한 병 따고 싶을 뿐.


“화목한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방해하는 것 같아서 죄송한데 전 슬슬 내려가 봐야할 것 같아서요. 실티아 등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죄송한 건 가식이 아닌 본심이다. 부모 자식 간에 쌓인 회포를 풀겠다는데 뜬금없이 그걸 방해하는 꼴이니까. 하지만 끼어들지도 못할 대화에 곁다리로 남아 있는 것도 불편하고, 괜시리 신경 쓴답시고 내게 쓰잘데기없는 질문이나 던지는 걸 받아먹는 꼴도 우습다.


자리 망치는 걸 두려워해서 말 꺼낼 엄두도 못 내다가 시간만 허비할 바에야 눈총 조금 받고 즉시 자리를 뜨는 게 훨씬 낫다.


그럴 작정이었으나 예상외의 복병이 있었다.


“뭘 그리 급하게 가? 아, 그렇지. 비고에게 예전부터 내가 기르던 마계 식물을 좀 보여 주고 싶었는데 좀 보고 가지?”

“아… 제가 식물에는 조예가 없어서 흥미가 동하면 따로 부탁하죠.”

“비고.”


웃으며 권하던 겜지 씨가 표정을 굳혔다.


“부탁하지. 같이 식물 좀 보겠어?”

“…안 될 것 없지요.”


다시 활짝 웃었다.


“좋아. 거친 남자들만의 시간을 갖자고. 실비아, 당신은 실티아와 대화라도 나누고 있어.”

“알았어. 그럼 우린 우아한 여자들만의 시간을 갖도록 할까?”

“아 저기….”


실티아가 머뭇거리며 나와 겜지 씨를 살폈다. 실비아 씨가 진정시키려는 듯 실티아의 손등에 손을 올렸다.


“이쪽이야.”


실티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겜지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겜지 씨의 안내에 따라 온실로 들어갔다.


온실은 투명한 재질의 판으로 이루어진 시설이었다. 각종 마계 식물이 즐비했고 대게 식재료로 쓰이거나 관엽 식물이었다.


“러브 라이드는 ‘둘뿐인 숲에서 쉬고 있는 커플‘이라는 컨셉의 레스토랑이야. 그래서 인테리어를 짤 때 관상용 식물들을 마구 배치해뒀지. 우스갯소리로 단골손님들은 레스토랑인지 식물원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도 하고.”


겜지 씨는 실소를 치며 식물을 어루만졌다.


“이런 컨셉의 레스토랑 문을 연지 20년이 다 돼가다 보니 어느 샌가 나도 마계 식물을 키우는 취미가 생겨버리더군.”


그렇게 말하곤 온실을 걸으며 각종 식물에 대해 설명했다. 한참을 그렇게 설명하다 듣다못해 물었다.


“식물 설명을 이제 됐어요. 따로 부른 이유가 뭡니까?”

“마침 잘됐어. 무관심한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도 슬슬 질려가던 참이니까.”


오늘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마뜩찮은 얼굴로 날 보고 있다.


“난 네가 싫어.”

“노골적이네요.”

“딸도 아내도 없으니 숨길 필요도 없지.”


뭐 우리 둘만 남겨진 일은 이번이 처음이니.


“딸을 뺏었다…. 그런 이윤가요?”

“없다곤 말 못하겠군. 허나 딸이 고른 남자니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널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야.”


내가 미움 사는 타입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부딪치는 사람은 처음이다. 생각보다 마음이 아프다.


“지금의 네가 실티아의 남편이면 실티아만 불행하게 만들 뿐이야.”

“실비아 씨도 그렇고 진짜 말귀가 어둡네요. 남편도 아니고 연인도 아녜요.”


살짝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그리고 길어야 반년 정도 후면 알아서 사라져 줄 겁니다.”


입대 반년 후부터 분기 별로 신청이 가능한 전역 신청은 기각됐지만 1년을 채우면 가능한 전역 신청은 다르다. 수리만 되면 그 때부턴 일반인 신분이다.


“그게 제일 문제라고. 네가 떠나면 그걸로 끝인 줄 알아?”

“무슨 말이에요?”

“네가 떠나면 실티아도 용기사를 그만 둘 거야. 틀림없어.”

“예?”


그 실티아가? 용기사를 누구보다 꿈꾸던 실티아가?


“딴 용기사라도 구하겠죠.”

“이런…! 후우… 넌 마물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라.”


겜지 씨는 차마 나오려던 욕을 삼키려던 것처럼 답답해하며 탓하는 투로 말했다.


“실티아하고 섹스는 했나?”

“이봐요 아저씨. 너무 나갔어요. 아무리 딸에 관한 일이라도 정도가 있는 거잖아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했어 안 했어?”


고압적인 태도에 화가 났지만 목소리에 심각함이 묻어났기에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했죠. 근데 발정기 때만 했어요. 서른 번 좀 안되는 횟순데.”

“횟수는 상관없어. 단 한 번이라도 했다면 마물은 그 남자를 남편이라고 인식한다고. 네가 아무리 부인해도 실티아는 널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덮친 건 그쪽이 먼저에요.”


첫 경험을 떠올렸다. 고요한 집안, 날 맞이하는 실티아.


“안타깝게도….”


겜지 씨가 말을 흐렸다. 그러곤 허공을 쳐다봤다. 머릿속으로 방안이라도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방법이 없어. 이건 마물의 본능이야. 본능을 교정할 순 없는 법이지. 그래 네 말대로 실티아가 딴 용기사를 구한다? 남편인 네가 있는데? 차라리 용기사를 그만둘지언정 네 곁을 떠나진 않을 거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데요?”

“네가 바뀌어야지.”


말문이 턱 막혀왔다. 부조리한 전개에 될 대로 대라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아주 멋대로 말하시는군. 내 사정도 모르….”

“네 사정은 알고 있어. 내 딸 때문에 본의 아니게 용기사가 된 것도.”

“아는 사람이 그래요? 아버지잖아요. 책임지고 설득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는 게 딸의 행복은 아니잖아. 난 아버지야. 내 가족이 불행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아.”


겜지 씨의 표정이 마치 애원하는 듯한 얼굴로 바뀌었다. 마음 한 편으론 이렇게 잘난 사람이 이런 얼굴을 내게 보인다는 것에 우월감을 느꼈다. 자기혐오가 일었다.


“비고, 네가 부조리하거나 강압적인 걸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어. 그러니까 부탁할게.”


난 예전부터 그랬다. 강압적인 태도로 명령하거나 부당한 일에는 앞뒤 생각 안 하고 반항하는 버릇이 있다. 그건 친구, 어른 심지어 부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반대로 부탁에는 약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강하게 대하기가 어렵다. 특히 내가 그 원인이라면.


“지금 당장 결정하는 건 무리에요.”

“흠….”


겜지 씨는 석연치 않은 듯 콧숨을 냈다.


“싫어도 언젠가는 결론이 나겠죠. 그냥 기다리세요.”

“…알았어.”

“그리고.”

“뭐지?”

“괜히 저한테 비굴하게 굴거나 약한 모습 보이지 마세요. 그런다고 마음이 바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제가 그런 걸 싫어해서요.”

“핫.”


겜지 씨가 실소를 내뱉었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온실에서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곧장 실티아를 데리고 러브 라이드를 나섰다.


“저기 파파랑 무슨 얘기했어?”


바람을 가르며 날갯짓하던 실티아가 물었다. 모습은 와이번인데 목소리는 여자 목소리라 심히 괴랄한 느낌이 든다.


“진지한 얘기.”

“내용 안 알려 줄 거지?”

“응.”


실티아가 억지로 뚫은 바람의 길, 실티아에게 몸을 조금만 떼면 휘몰아치는 바람에 허공으로 날아갈 것만 같다.


“오늘은 얌전하네?”

“뭐가?”

“평소엔 비행하면 오두방정을 떨었잖아. 떨어진다! 떨어진다! 라고. 오늘 올 때도 그랬고…. 좀 재미없을 지도.”

“너 일부러 위험하게 비행한 거였냐?”


하여간, 잘 대해주면 아주 기어오르려고 한다니까.

그냥 정신적으로 지쳐서 그런 걸 거다. 비행 중 야단법석을 떨며 공포에 젖을 체력도 없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 사이로 용황국 드래고니아의 경치가 보였다. 평소엔 무서워서 살펴볼 겨를도 없었지만 제법 아름다웠다.


실티아의 등에 밀착해 천천히 움직이는 경치를 살폈다.


비행도 나쁘진 않아.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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