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나 사실 소설 쓰고 있다."


"소설? 무슨 소설? 네 성격상 웹소설은 안 쓸거고, 순수 문학이나 그런 쪽으로 쓰고 있냐?"


"아니, 웹소설. 내가 다른 사람한테는 말 안하려고 했는데... 진짜 친구 중에서 웹소설 보는 애가 너 밖에 없어서 말하는 거야."


항상 약속을 잡아도 일이 있다고 매일같이 발을 빼더니, 이런 깜찍한 짓을 하고 있을 줄이야. 나는 우울한 얼굴로 내게 작은 비밀을 말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평소에 서브컬쳐 쪽으로는 관심도 없어보이는 놈이 소설을 쓴다니까 조금 당황스럽긴 하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어서 날 부른 거야?"


"연독률이 개박살이 났다. 원래도 개박살이 났는데, 계속 박살이 나고 있어."


"박살이 나는데는 이유가 있겠지. 고구마 덩어리라던가, 아니면 네가 이상한 드리프트를 했다던가. 제목부터 알려줘. 자리에서 15화만 보고 평가해줄게."


내 말에 친구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의 제목을 말해주었고, 나는 해당 소설 플랫폼에 들어가 한 편씩 보기 시작했다.


선작 13000/알림 2600


회차수 105.


최근화 조회수 136.


태그 - 판타지/피폐.


나름 글에 재주가 있었던 모양일까? 태그가 고작 두 개에 불과하지만 선작은 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회차수에 비해서 조회수가 처참하기 그지없다.


"이미 겉보기부터 문제점이 들어나는 것 같은데, 기다려봐. 술 마시면서 한 화, 또 한 화 감평해줄테니까."


어차피 무료 회차는 15화까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태그가 들어가있지만 소주와 함께라면 문제없이 감평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술과 함께 녀석의 소설을 천천히 보기 시작했고, 대략 9회차 정도 되었을 때 핸드폰을 접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야, 천용준."


"...왜?"


"도대체 뭘 쓰고 싶은건데? 왜 연독률이 좆박았는지는 제대로 알 것 같다. 필력은 뒤지게 좋은데 그걸 주인공의 피폐에만 쏟아부으니까 당연히 연독률이 좆박을 수 밖에 없지. 너, 105화까지 계속 주인공이 피폐한 이야기만 썼지?"


"그걸 어떻게 알았냐?"


"그게 아니라면 선작에 비해서 최근 조회수가 이렇게 낮을 리가 없으니까. 적어도 주인공이 숨 쉴 구멍은 만들어줘야하는 거 아니냐?"


나는 녀석에게 피폐물의 정석에 대해 그 자리에서 강의하기 시작했고, 녀석은 그걸 들으며 묵묵히 메모장에 메모를 해나갔다.

그리고 메모를 마쳤을 즈음, 녀석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상우야,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


"106화에 있지도 않은 구원자를 갑자기 등장시키면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을까? 차라리 처음부터 글을 다시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미친 새끼야. 이 상태에서 리메이크하면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아? 리메이크의 끝은 연중이야,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아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맞아. 네 말을 들으니 내가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알았거든."


녀석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처음부터 내 소설의 잘못을 꿰뚫어 본 너라면 그 이야기를 헤피엔딩으로 마무리 할 수 있겠지. 믿는다, 상우야. 너밖에 없어."


"그게 뭔 개솔...."


갑자기 눈 앞이 어지럽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느낌에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서 힘이 빠지며 책상 위로 엎어졌다.

넘어짐과 동시에 내 머리는 책상에 부딪쳐버렸고, 나는 머리에 아릿한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신사숙녀 여러분!!! 다들 오늘 만을 기다리셨겠죠? 불사자 켈른!!! 그의 전투가 곧 시작됩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