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이제 몇 명 남은 건가요? 제나트"

"대략 4,5명 정도 남은 것 같은데요. 아르토 영애."

"죽을 만큼 고생했네요 정말."

"그런데 다 구하면 우린 이별이예요."

"알아요. 서로 원수지간인데, 가까이 하는 걸 허락해줄 리가 없죠."


루토 가문의 외아들인 나, 제나트 루토. 그리고 테리언 가문의 외동딸, 아르토 테리언.


서로 원수지간이기에 만나기만 해도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어쩌다 한 번 만나기만 하더라도 주먹이 오가지는 않지만 비수가 섞인 말이 오가며 서로를 비방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의 가문을 적으로 알라는 걸 먼저 배울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하루 아침에 이런 관계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가?


절대로.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불구대천의 원수를 눈 앞에 두고 동맹을 맺으라니. 헛소리도 정도것 해야지.


"어쩌다가 동맹을 맺은 건지 모르겠네요. 루토 가문을 내 손으로 구하게 될 줄이야."

"말은 똑바로 해야죠. 제 손으로 테리언 가문을 구하는 거랍니다."

"그렇다면 그냥 같이 했다고 하죠."

"예, 예. 아르토 영애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느 한 순간에 서열 끝자락에 있는 외동자식들만 남고 가문이 뿔뿔이 흩어졌다면, 헛소리가 아니다. 반란 혐의도 아니고, 누명도 아니다. 적국에서 강제로 억류를 한 것이다. 서로 연락도 하지 못하게 나누어서.


"제가 살다살다 병사나 기사도 아니고 영애 한 명이랑 적국에 쳐들어 갈 줄은 몰랐네요."

"비실비실한 당신보다는 조금 튼튼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리저리 다 만져놓고 비실하다고 하는 건 무슨 심보죠, 아르토 영애?"

"제가 언제 만졌다고 그러는 거죠? 상처난 거 치료하겠다고 그런 걸 그렇게 해석하는 건가요?!"


조금은 큰 소리로 부정하는 아르토 영애. 몇 달 동안 붙어다니니까 서로 원수지간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의지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말장난도 서슴없이 하게 된 걸까?


"잘 생겨서 봐줍니다. 제 넓은 아량에 감사하세요."

"아량이 넓긴 하죠."

"어딜 보는 건가요? 음흉하긴."

"뭐, 당신도 여러 번 봤잖아요."


그러면서 다음에 구할 사람을 정하는 두 남녀. 몇 달에 걸친 구조작업이 이제 끝을 보이고 있었다. 완전히 끝이 나게 된다면, 지금 우리의 이런 관계도 끝이 나겠지.


'정말로, 그러길 바라고 있는 건가? 나는 아르토 영애를......'

'제나트와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가문도 중요하니까......'


"아르토"

"제나트"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무언가 말을 꺼내려 하는 두 남녀. 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서로의 눈빛을 보았을 때 둘의 말문은 막히고 말았다. 그 사이에 먼저 입을 연건 제나트였다.


"아르토 영애."

"예, 제나트."

"이번 일이 끝나면, 저와......"

"그만."


그러나, 뒤의 말을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는 아르토. 그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걸까. 그러기에 더 듣기 싫어서 그 말을 끊는 걸까.


이렇게 서로의 가문을 구하더라도, 우리는 원수지간이니까. 서로 섞일 수 없는 관계니까. 서로의 목적이 일치하기에 힘을 합쳤을 뿐인, 이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관계.


"다음에 구할 사람을 정하죠."

"......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그러는 건가요."


그 말을 끝내고 바라본 아르토의 얼굴에는, 작은 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여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의 얼굴에, 물방울이 여러 개 흐르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다음에 구할 사람부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순간적인 충동인지, 아니면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성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뒤에서 아르토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내 스스로의 욕심이었던 걸까. 나는 아르토를 그저, 그녀가 아프지 않게 안을 뿐이었다.


"...... 어쭙잖은 동정인가요."

"동정 따위가 아닙니다. 그냥, 이러고 싶었습니다."

"그럼 부탁 하나만 할게요."

"얼마든지."


그녀는 끌어안은 나의 팔을 조금 풀어, 나와 마주한 뒤 다시 나를 끌어안았다.


"조금만, 제 눈물이 마를 때 까지만 이렇게 있어주세요."

"그게 당신의 부탁이라면."


이룰 수 없는 소원을 안에 담아두고 눈물로 내보낸 걸까. 무엇보다 듣고 싶었던 그 말.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원수 지간이 아니라 그저 그런 평범한 관계였다면 이룰 수 있었던 그 소원을 가슴에 담아두기만 해야 하는 이 현실에 나는 제나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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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0분만에 글이 뚝딱 나오는 소재를 가지고 왜 안 써오는 것이지? 원작자는 빨리 풀버전을 써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