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인들은 날 믿지 않는다] 라는 소설이 있다.


제목만 봐도 내용이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가지만, 혹시 몰라 설명하자면.

주인공 '도유진'이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에 휘말리면서 주변에 오해를 쌓아가고, 

망가져가는 평판과 인간 관계 사이에서 발버둥치는 전형적인 4드론 피폐물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 도유진은 범재다. 오히려 둔재에 가깝다. 

세상을 구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답게 특별한 재능이 있긴 하지만 그건 작품 후반부에서나 밝혀지는 일.

도유진에겐 끊임없이 시련이 주어진다. 몇번이고 딛고 일어서긴 하지만, 범재인 도유진에겐 사건을 해결 할 능력만 있을 뿐 천재들처럼 '최선' 의 결과를 끌어내진 못한다. 


가까스로 최악만을 피할 뿐, 재능의 결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차악'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품에선 도유진의 재능 부족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킨다. 


작가가 더욱 악질인 점은, 그렇게 죽어라 노력하고 또 노력한 도유진의 폼이 드디어 절정에 다다르면,

도유진은 물론 생도의 능력으로는 절대 해결하지 못할 시련을 주어서 다시 한번 도유진을 절망의 낭떠러지로 밀어버린다는 것이다.


유일한 혈육인 누이를 잃고, 누명과 오해 때문에 어릴적부터 함깨한 소꿉친구를 포함한 다른 히로인들 마저 도유진의 곁을 떠나버린다.

작중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변절자'들은 영악하게도 도유진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며.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학사 측에선 지네들의 치태를 대중들에게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고한 학생 한 명을 희생시킨다.


뭐, [히로인들은 날 믿지 않는다] 는 대충 이런 소설이다.

#후회, #집착 태그는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의문인, 고구마를 졸이고 또 졸여서 만든 클리셰 범벅 피폐찌개.


말이 길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도 않는 소설 리뷰를 한 이유는 따로 있다.


다름이 아니라 [히로인들은 날 믿지 않는다]의 주인공 '도유진'은 지금,

내 앞에 쪼그려 누워 잠에 취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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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요람, 아카데미.


하지만 배움의 요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발랑 까진 요새 히어로 지망생들에게 아카데미의 도서관은 그리 인기 있는 장소가 아니다.

뭐,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니다. 정보의 충당은 아카데미의 수준 높은 교육 덕분에 부족하다 못해 넘치고, 학사 일정은 생도용 개인 단말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개인 훈련에 시간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한가로이 앉아 책이나 볼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거다. 아카데미 도서관에 2년동안 파리만 날리고 있는 건.


어쩌면 2년은 고사하고,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건 아카데미의 전통일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사서인 담당 교수가 생도한테 짬을 때리면서까지 이 곳을 버렸을까. 

아, 참고로 교수한테 짬 맞은 생도가 나다. 그리고 난 조교도 아니다.


시끄러운건 질색이고, 주연들 눈에 띄기도 싫어서 아카데미 도서관을 애용했을 뿐이었는데, 

어느샌가 교수가 [사서 대리] 같은 해괴한 직책을 만들어 오더라.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계속 말하자면, 교수가 사서 일을 짬때린 거랑은 별개로 [사서 대리] 로서의 도서관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사서 일로 꿀빨던 교수가 괘씸해졌다고 해아하나.


기본적으로 도서관의 분위기는 상당히 아늑한 편이다.  

사서 일이라 해봤자 도서관 청소, 서가 정리, 도서 대출 정도의 일 밖에 없는데, 청소는 아카데미의 클린 시스템 덕분에 먼지가 쌓일 일도 없고, 서가 정리와 도서 대출 일은 애초부터 도서관에 찾아오는 학생이 없으니 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사서 대리] 라는 직책을 들이밀면서 아카데미의 쓸대 없는 일정을 뺄 때가 가장 좋았다.

학사 일정 씹고 도서관에 구비된 사서 전용 커피와 디저트를 만끽할 때면 극락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햇수로만 따지면 2년, 아카데미 도서관은 나만의 보금자리 역할을 아주 잘 해주었다.

오늘의 일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여느때 처럼 책을 보던 날이었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고 종이 내음과 커피 냄새가 은은한 도서관에 불청객이 찾아온 것은.


잠시 화장실에 볼 일을 보고 보금자리에 돌아온 내 눈에 보인건 도서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검정색의 무언가였다.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아카데미 도서관에 사람이 올리가 없잖아.


과학동에서 흘러들어온 키메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신에 마력을 두른 채, 가까이 다가가자 보인 것은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흑발의 미소년.

교복 넥타이에 달려있는 브로치가 초록색인걸 보니 1학년인듯 싶었다.


1학년이라면 지금 서바이벌 실습 끝나고 뒷풀이로 바쁠텐데, 게다가 1학년동은 도서관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소년을 이리저리 관찰하던 중, 나도 모르게 헛숨을 삼키고 말았다.


눈에 들어온 건 왼쪽 가슴팍에 달려있는 금색 명찰이었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이름 석 자.


[도유진]


아주 익숙한 이름이었다.



"어?"



···.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곳엔 한 소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스런 달빛이 스며든 듯한 흑발, 도무지 인상을 특정하기 힘든 눈매, 물망초 무늬가 인상적인 팬던트.

머릿속에 각인되듯이, 소년을 처음 마주한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담긴- 소년의 세 가지 상징이었다.]


마치 스쳐지나가듯 떠오르는 원작 소설의 문구.


도유진··· 도유진이잖아.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주인공을, 이렇게 허무하게 만나 버렸다고?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내가 [히로인들은 날 믿지 않는다] 의 세상 속으로 들어온 날.


이 몸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유진을 포함한 주연들의 이름을 수소문 했었다.

그러나 찾을 수 있었던 건 교관으로 올라가 있는 도유진의 누나의 이름 뿐.


동기나 선배들 중에 도유진의 이름이 없다는 점. 아직 도유진의 누나가 살아있다는 점으로 원작에서 멀지 않는 과거라는걸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는데 이렇게 만날줄은··· 상상도 못했다.


도유진은 지금 1학년이었구나.

내, 후배였구나.


눈 앞의 소년이 도유진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이 1학년 서바이벌 실습 뒷풀이 에피소드가 진행중이라는 걸 한 번 인식하고 나니, 내 시야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도유진을 바라보는 시야가 말이다.


검은 머리는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푸석해져 있었고, 늘어진 다크서클은 광대 위를 넘보고 있었다.

수척해진 몸 위, 소매를 걷으면 멍자국이 보이고, 피딱지가 굳어있었다.

안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 잔뜩 찡그린 얼굴은 괴로운 듯, 자면서도 간간히 앎는 듯한 침음성을 뱉고 있었다.


도서관의 온도는 항상 따뜻하다. 그런데도 도유진은 오들오들 떨고 있었으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



뭐든지 현실보다 더한건 없다고 하던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긴 하지만, 활자로만 접했던 도유진의 상태는 말로 이루 표현하지 못 할 정도였다.


그래도 한 문장으로 묘사하자면, 내가 살면서 본 그 누구보다 초췌한 몰골이었다. 산송장 같다고 해야 하나.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낼려는 찰나,



~♩-♪-♬-♪


"아···."



나도 살짝쿵 놀랄 정도로 요란하게 울린 수업 종에도 도유진은 몸만 살짝 뒤척일 뿐, 전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



" ··· 윽,  ··· 흐."



여전히 괴로운 침음을 흘리는 도유진.


'···그래, 일단은 깨우자.'


뒷풀이 폐회식은 참여해야지.

생각을 실행에 옳기고, 자고 있는 도유진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린 순간,


-휙!



"아···!?"



누군가가 내 팔을 빠르게 낚아채감과 동시에, 내 손목에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구···! 어?"

"윽, 아으으···!"



크게 확장된 도유진의 눈동자, 하지만 그곳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근데, 손목···, 손목이 너무 아픈데···.



"흐, 소, 손목···!"

"어? 네? 손목? 아···."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도유진의 팔을 찰싹 찰싹 때리자 도유진은 그제서야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내 손목을 놔주었다.

···벌겋게 부어오른 가녀린 손목이 애처로웠다.


무, 무슨 이런 놈이 다 있어? 기껏 사람이 깨워줄려는데···!



"······."

"······."



어색한 정적이 찾아왔다.

내 손목과 얼굴을 힐끔힐끔 번갈아 쳐다보면서 눈치를 살피는 도유진.


···에휴, 무슨 길고양이 같은 반응이야.

자기가 먼저 할퀴어놓고 지레 겁먹어 버리고···.


내가 손목을 살살 쓰다듬는 도중, 도유진은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이내 사색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상한건 표정만 사색이 되어갈 뿐, 도유진의 걸음은 도무지 때지지 않는 모양새였다.

아니지,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닌가.


도유진은 이내 체념한 듯, 두 눈을 꼭 감고 10초 가량을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히 불안해 보이는 건 매한가지 였지만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거운 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서는 도유진의 뒤를 따라나서서 배웅하고 있었다.



"···일단, 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이 놀라셨을 탠데, 이후에 반드시 보상 하겠습니다."

"···."



사실, 도유진이 이토록 불안에 떠는 원인는 최근에 진행 했던 1학년의 서바이벌 실습 평가에 있다.

1학년 오늘이 되서야 뒷풀이를 진행하는 이유는 시험장을 습격한 변절자들로 인해 생긴 문제의 정비 때문이고.


도유진은 서바이벌 평가 습격 사건 이후, 한 여학생을 강간했다는 의혹에 휩싸인다.

그리고 소문의 확장은 지금도 진행중에 놓여 있다.


도유진에겐 거짓으로 만들어진 업보가 너무나 많았으니까.


도유진의 평판은 입학 당시부터 바닥을 달리고 있었다. 교관 누나를 둔 빽으로 들어왔다느니 뭐니 하는 소문도 무성했고.

게다가 그는 최하위 성적을 기록하는 F반의 생도다.


도유진은 천재들만이 들어오는 아카데미에서, 살을 깎는 노력과 기적적으로 따라준 운을 통해 최하위 턱걸이 성적으로 입학에 성공한 케이스다.

재능 없는 범재. 오히려 중간에서 더 떨어지는, 둔재에 가까운 범재. 그런 도유진을 바라보는 천재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약한 도유진을 혐오하는 도유진의 누이는 그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방관하기만 한다.


인맥도 실력도 없는 도유진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조롱에 맞설 힘이 없다.

무성하게 불어나는 소문을 겉잡을 힘도 없다.



"···그럼."

"······!"



솔직히 이대로 도유진을 보내주어도,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도유진은 이 세상의 주인공이니까. 아무리 삐걱거려도 결국은 이겨내는 걸, 나는 아니까.


몇 년 동안 사이다 없는 고구마를 먹더라도,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모두에게 인정받고, 히로인들을 후회시킬테니까.

오히려 도유진과 어울리는 걸 누군가가 본다면, 내 평판만 떨어지리라.


하지만―



"잠깐―"



애석하게도, 내 팔은 이미 도유진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러다 늦겠습니다."

"···읏."

"할 말이 있다면, 빨리 해주시죠."



할 말이 밖에 나오지 못한 채, 입 안을 맴돌았다.

정적이 이어지기를 수 초. 

도유진은 대뜸 노기가 담긴 목소리로 내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이미 소집 시간은 지난지 오래라고. 왜 벙어리처럼 벙긋거리기만 하냐고, 도서관 소파에 뉘어 자다가 늦은 한심한 히어로 지망생으로 보지 않겠냐고.

옆에서 듣는다면 전혀 납득가지 못할 이유를 늘어놓으면서 뱉은 막말이었다.


그리고 입 안에서 문장을 굴리며 곱씹던 나는, 말했다.



"···쉬는 시간이던, 점심 시간이던. 쉬고 싶으면 도서관으로 와도 괜찮아."

"무슨 소립니까 그게."

"여긴, 도서관은 나 말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까.  ···피곤한 생도 한 명 쯤은 재워줄 수 있어."

"당신이 이곳 주인이라도 됩니까?"



나는 품 속에서 카드키 하나를 꺼내들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여기 주인이다.



"나, [사서 대리]야. 교수님한테 권한 양도받았어. 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도서관이지만···."

"···."

"그러니까, 교실에서 있기 힘들면, 언제든지 여기로 와도 괜찮아."



아마 도유진은 날 보고 '이 년은 대체 뭐지' 같이 어이없어 하지 않을까.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도유진의 악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동기를 강간한 후배를 단 둘이 둔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니, 아카데미 생활에 관심이 없거나 머리가 꽃밭인 사람으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데도.

이겨낼걸 알고 있더라도. 결국 행복해질 걸 알고 있더라도.


···.



좋은 말 백개, 욕 하나를 못 이긴다는 말이 있다.


도유진이 걸을 길은, 백개의 불행 뒤에 하나의 행복이 기다리는 가시밭길이다.

그리고 도유진에게 있어서, 타인의 시선은 가시밭길의 가시나 다름 없다.


1학년 밖에 되지 않은 지금도 도유진은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가시에 찔릴대로 찔린, 테이프 몇장으로 겨우 이어붙인 피칠갑의 마음을 안고서.


그러니까. 


운명에 예정된 불행이라면, 어차피 불행에 다다를거라면, 지금 이 순간조차 불행하다면.


내가, 가시밭길의 가시 정도는 치워 줄 수 있는거잖아.



"절, 아십니까?"



도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자기를 아느냐라, 아마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 없는 질문이 아닐까.


그러니,



"···아니, 몰라. 처음 보는 후배님."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이렇게 대답 할 수 밖에 없는거다.


도유진은 어딘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연신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윽고 도서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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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진에게 언제든지 도서관으로 찾아와도 된다고 말 한지 일주일.

참 사람 무안하게도 도유진은 한번도 도서관에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도유진은 내게 눈길 한번조차 주지 않았다.

어차피 나나 도유진이나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라 그런가, 딱히 크게 신경쓰이진 않았지만.


그러나 일주일 전과 달라진 점은, 이후로 도유진을 마주칠 때 마다, 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져 갔다는 점일까.

아마도 생각보다 더 고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찾아온 월요일 아침.


모닝 커피 향이 코를 간질이는 내 도서관에,

도유진은 저번주보다 훨신 초췌해진 몰골로, 마치 빨려 들어오듯 도서관에 찾아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며, 활자와 책내음을 즐길 뿐이었다.


도유진은 날 한번 흘겨 보고는, 저번처럼 도서관 구석에 있는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 뒤로, 도유진은 쉬는 시간이 될 때면 항상 도서관을 찾아왔다.

1학년 동에서 도서관이 있는 여기까진 거리가 꽤 될텐데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유진은 아예 강의 하나를 그대로 째고 잠에 들 때도 있었다.


사소한 것들도 바뀌어갔다.


언제 한번은 아침 일찍 도서관에 찾아온 도유진이 내 옆에 서서 커피를 만들 때도 있었고,

가장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던 도유진이 이제는 도서관 중앙에 비치된 퀸사이즈 소파에서 편안히 다리를 뻗고 자게 됐다는 점 이랄까.


우리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1년 전부터 변함 없던 종이를 넘기는 소리,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에 어느 남자애의 새근새근한 숨소리가 추가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