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비가 발정난 암고양이 애액마냥 끊이질 않네요."

 "대체 무슨 비유가 그래?"

 "암캐쪽이 알기 쉬웠나요?"

 "비유 대상을 말한게 아니야!"


 쉴새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이 거세게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는 이제 이상하지도, 드문것도 아니었지만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아직 이 소리가 익숙하지 않은것 같았다.
 그녀는 관절에서 약한 전기모터 소리를 내며 창가에 다가갔으나, 창문을 때리는 수많은 빗방울과 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급류를 보고 숨을 집어삼켰다.


 "정말로 고작 비 때문에 세상이 멸망했다고요?"


 그녀는 과거에 도로였던곳이 급류의 강으로 변해버린 광경을 보며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노란 우비를 뒤집어쓴 소녀는 말없이 그녀의 뒤로 따라붙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니 그치만...... 겨우 2년이라고요? 어떻게 세상이 고작 2년만에 멸망해요? 그것도 다른것도 아니고 고작 비 때문에?"

 "그런걸 물어봐도 난 몰라...... 난 줄곧 벙커에 있었으니까."

 "벙커요?"


 우비를 쓴 소녀가 그렇게 말하자 군복을 입은 여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여자의 반응을 보고 소녀는 오히려 이상하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아무것도 몰라?"

 "몰라요 저는. 저는 분명 몸의 수리를 위해서 전원을 내리고 동면에 들어갔던 기억 밖에 없다구요. 그런데 일어나고 보니 분명 이틀짜리 동면이 2년 짜리 동면이 되어버리지 않나, 세상은 비에 멸망해버리지 않나....... 보아하니 요청한 수리도 안된것 같고."

 "아, 로봇이라면 동면이라는 방법도 있구나."


 그녀가 곤란하다는듯이 말하자 소녀가 깨달았다는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형 로봇 군인은 그런 소녀를 보며 잠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어 다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전례없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과거에 찬란한 기술을 자랑했던 드높은 빌딩숲은 반 이상이 수몰되어 비로 인해 불어난 강물이 지나갈 뿐인 통로로 변해있었다.
 그마저도 불어난 급류가 빌딩의 모서리에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면서 곳곳에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이젠 빌딩풍이 아닌 빌딩와류를 걱정해야할 판이었다.

 그녀는 그런 거리에서 시선을 떼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꺼운 구름은 그저 어두운 하늘만을 보여줄 뿐, 분명히 그 너머에 있을 푸른 하늘이나 밝은 태양을 결코 보여줄 생각이 없는것 같았다.


 "비가 그쳤던 적은 있나요?"

 "아니."


 그녀의 질문에 소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첫 해일이 몰아닥치고, 두번째로 열파가 몰아닥쳤어. 그 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벌써 2년이 다 되도록 한번도 멈춘적이 없어."

 "정부는?"

 "반년쯤 됐을때 이미 기능을 잃었어. 그때 이미 불어난 강물에 지하 쉘터 대부분이 수몰되어 버렸으니, 뒤늦게 나오려고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거야."

 "......."


 소녀의 말을 듣고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의 기계 몸에 내장되어있는 기능을 이용해 외부와 통신을 시도했다.


 "......?"


 그녀는 이내 이상함을 느꼈다.
 인터넷의 접속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소 노이즈가 있었지만 인터넷 환경에 접속하는것은 문제가 없었으며, 과거에 있던 각종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페이지들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동면 한 이후로 업로드 된 게시글들도 잔뜩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 쓰여진 내용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어딜가도, 어느 세계의 페이지를 가도, 모두가 똑같이 멈추지 않는 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두가 이러한 사태로부터 살아남으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의 상황은 점점 나뻐지다가 어느순간 연락이 끊겼다.

 누군가는 쉘터에 숨어있다가 물이 점점 차오른다고 연락한 뒤 끊겼고, 누군가는 생존자 그룹과 합류하기 위해 급류를 건너다 끊겼다.


 "뭘 하고있는거야?"


 그녀가 침묵하고있자 우비 소녀가 물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과거의 정보를 열람하고 있습니다."

 "뭐? 당장 그만둬!"

 "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소녀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소녀에게 채 이유를 묻기도 전에, 그녀의 머릿속을 향해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

 [ "잘 보존된 군용 모델 바디라." ]


 일순간 머릿속에서 울린 이질적인 목소리. 그것을 듣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오른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공성방벽을 켜며 강제적으로 인터넷 연결을 해제했다.


 "지금 무슨───,"


 분명 이 건물에서는 창문을 때리는 지독한 빗소리 밖에 들리는것이 없었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 작동하는것은,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을텐데.


 [ ....─...──.....─시설─....전─ 복구됨.... ]


 이미 제 기능을 잃었을터인 건물에 전력이 돌아오고, 마비되었을터인 시설이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꺼져있던 전구들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고, 건물 곳곳에 방치되어있던 시큐리티 로봇들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는 소리가 전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것만 보면 좋은 소식처럼 보였지만.


 [ "그 몸, 이쪽이 받아가도록 할게. 군용 모델이라면 상당히 튼튼하겠지?" ]


 시설의 스피커에서 방금 머릿속에서 울러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는 보란듯이 치직이는 노이즈와 함께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경고. 시설 보안 최고등급 발령. 모든 시설을 대테러 배치로 이행합니다. 사내의 직원들께서는 안전하고 신속하게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


 그녀와 소녀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소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서, 서, 설마 팬텀에게 찍힌거야?!"

 "팬텀? 그것들이 아직도 있나요?"


 팬텀.
 불법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인터넷에 업로드한 뒤 네트워크를 떠다니는 무법자들이었다.
 시민이 물리적 주소를 두지않고 자신을 온전히 인터넷에 업로드하는것은 위법행위로, 그녀는 이러한 팬텀들과 교전했던 기억이 몇 번인가 있었다.
 의식만을 인터넷에 올려두고, 자신을 복사하고 덮어쓰기해서 온갖 기계와 네트워크를 옮겨다니는 암적인 존재.
 하지만 그것들은 정부의 사이버 수사대에 의해 철저하게 감시되고 검거되고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을텐데.


 "팬텀은 위험해! 그녀석들,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의 몸을 빼앗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고! 인터넷은 이제 그녀석들의 사냥터야!"

 "뭐라고요? 몸을 빼앗아?"


 스스로의 몸을 버리고 인터넷상의 가상의식이길 선택한 팬텀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몸을 빼앗는다.
 이것을 들은 그녀는 무언가가 상당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급류로 고립된 건물.
 되돌아온 시설 기능.
 사람의 몸을 빼앗으려는 인터넷 망령.
 고장난 기계 군인.
 뇌에 칩이 박힌 소녀.

 주어진 정보들을 빠르게 정리한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고 잠겨있는 캐비닛을 주먹으로 쳐서 부쉈다.
 쾅, 쾅 하고 몇번 주먹을 받아낸 캐비닛은 군용 로봇의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력하게 그 문짝을 내어주었다.
 그녀는 그 안에서 2년동안 방치되어있던 총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2년동안 습기속에 방치되어 붉게 녹슬어 있었지만, 적어도 노리쇠를 당기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밖에서 소리가 들려!"


 소녀가 방의 한쪽 문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그녀는 곧바로 달려가서 주변의 테이블과 캐비닛을 문 앞으로 밀어붙여 바리케이트를 만들었다.
 그러기를 머지않아 곧바로 문 바깥에서 무언가가 문을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나가는 다른 길이 있나요?!"

 "다른 길이라니?!"

 "이 건물에서 벗어날 방법이요!"


 쨍그랑, 하고 문에 붙은 작은 창이 깨지며 유리파편이 날렸다.
 그 작은 창 너머로 과거에 여러번 보았던 시설의 시큐리티 봇이 아이렌즈를 번쩍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자마자 미리 꺼내두었던 기관단총으로 시큐리티 봇에 총탄을 갈겨부었다.

 타다다당! 타다다당!

 총알과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문 너머의 거체가 경련하는 소리가 들렸다.


 "7층! 7층에 추락한 여객기가 박혀있어! 옆건물이 걸쳐서 껴있으니까 지나갈 수 있을거야!"

 "7층이라, 그 부근에 시큐리티 봇이 상당히 많은데!"


 그녀는 방의 다른쪽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소녀도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 쫓아달려갔지만, 이내 건물의 계단 앞을 막아서고 있는 시큐리티 봇을 발견하고 멈춰섰다.
 소녀는 우물쭈물하더니 그녀의 뒤로 숨으며 울먹이듯이 애원했다.


 "어, 어떻게든 해줘! 시민을 지키는게 군인의 의무잖아!"

 "그렇게 말해도 곤란해요! 날짜만 따지고 보면 저는 작년에 전역하기로 되어있었고!"


 그녀는 시큐리티 봇을 인식하자마자 다시 기관단총을 견착하고 전방을 향해 불을 뿜었다.
 하지만 거리의 문제인지, 총의 문제인지 이상하게도 방금전과 다르게 그녀의 총탄은 조금도 명중하지 않았다.


 "뭣보다 제가 수리받으러 온 이유가 조준보조기능이 망가져서 그런거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빈 탄창을 갈아끼우고 이어서 사격했지만, 이번에도 그녀가 쏘아보낸 탄환은 단 한발도 시큐리티 봇에게 명중하지 않았다.

 소녀는 그것을 보고 아연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로봇과 그녀를 번갈아보더니 절망한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럼 내가 널 깨운 의미가 없잖아 이 망할 깡통아!!!!!"

 "깡통보다는 암퇘지라고 불러주세요! 전역하고 재합성기로 생체 몸으로 바꾸려고 했단 말이에요!"

 "안 궁금해 씨발련아!!!!"


 세상이 멸망한 이래로, 드물게 빗소리보다 큰 소리가 울려퍼진 날이었다.












헤헤 비 마니 와서 너무 조타